소설리스트

# 43. (43/75)

  

# 43.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젠 한밤중에 불쑥 찾아와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드렸는데 오늘 아침엔 과분한 아침상까지 차려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머니.." 선우가 대문 앞까지 그를 배웅 나온 윤여사에게 깍듯이 허릴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실례는요 뭘. 우리 희원이가 덕분에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말씀 들었어요. 오히려 제가 부족한 점 많은 우리 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딸자식을 가진 엄마의 직감으로 희원과 선우의 사이가 그저 평범한 관계로만은 보이지 않았지만 희원이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선우를 소홀히 대접할 수 없었기에 큰손님 치루듯 아침준비에 정성을 쏟았던 윤여사가 대문 앞까지 나와 선우를 배웅하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맞아요, 선우오빠. 우리 언니 정말 자알 부탁드려요."

 윤여사 옆에 서있던 효진이 톡 끼어들더니 덥썩 선우의 손을 끌어 잡으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그 때 희원은 유난히 아침잠이 많아 걸핏하면 지각하기 일쑤였던 효진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며 머릴 감고는 마치 외출이라도 할 사람처럼 차려 입은 것도 모자라 연한 오렌지색 립그로스까지 바르고 있는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효진이 동생도 잘 있어요. 만나서 정말 반가왔어요. 언제 서울 나오면 꼭 놀러와야 돼요." 선우가 환하게 웃으며 효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어머, 정말요?!"

  "얘, 효진아. 이제 그만... 그 손 좀 놓아드려라." 

 꼭 놀러오라는 선우의 말에 효진이 제자리에서 폴짝거리며 잡고 있던 선우의 손을 마구 흔들자 보다 못한 윤여사가 한 마디 했다. 

  "엄마, 그럼 저 가볼게요. 추운데 그만 들어가세요." 윤여사의 핀잔에 금방 뾰루퉁한 얼굴이 되어 서있는 효진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던 희원이 윤여사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그러세요. 추운데 얼른 들어가세요." 

  "그래요. 우리도 들어 갈테니 얼른들 가봐요, 그럼."

  "예.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선우는 윤여사에게 다시 한 번 허릴 굽혀 인사한 뒤 희원과 함께 문 앞을 떠났다. 그리고 효진과 나란히 서서 골목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윤여사가 혼잣말처럼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생긴 것만 반듯한 게 아니라 성품까지 반듯한 젊은이 같네."

  "그렇죠, 엄마? 이야, 우리 언니 보기보다 재주 좋아. 어떻게 저런 킹카를 낚았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를 말야. 내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다들 까무라칠 거야, 분명히." 

 효진이 혀를 내두르는 시늉을 하며 그렇게 말하자 윤여사가 그녀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으며 핀잔을 주었다.

  "시끄러워. 그런 소린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누가 두 사람이 사귀기라도 한다고 하든. 괜스리 나중에 언니 혼사 길 막힌다. 친구한테든 누구한테든 찍소리도 하지마. 안 그랬다간 네 다리몽둥이가 성치 않을 줄 알아. 알았어?"

  "히잉, 엄마는 괜히 나만 가지고 그래. 척하면 척이지, 꼭 말로 해야 알아, 엄만?"

  "이 기집애가 그래두!"

 비록 선우의 사람 됨됨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윤여사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저 평범한 자신의 큰 딸 희원과 만인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가 걸맞는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에 마음이 썩 편치만은 않았다. 엄마의 입장으로서 자신의 딸이 혹여 상처라도 받게될 까봐 걱정되는 마음부터 앞섰기 때문이었다.

  "춥다. 얼른 들어가자."

 윤여사는 잠시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을 지우곤 그 때까지 목을 길게 빼고 이미 두 사람이 빠져나간 빈 골목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효진의 등을 밀며 대문턱을 넘어섰다.

 골목 어귀를 막 빠져 나온 후 희원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선우에게 물었다.

  

  "차는... 어디에 주차했어요?"

  "차 안 가져왔어." 이유 모를 미소를 지으며 선우가 대꾸했다.

  "그래요?"

  "일부러 두고 왔어. 돌아갈 때 기차 타고 가고 싶어서."

  "기차?"

  "응. 나 기차 타본지 되게 오래 됐거든. 핑계 김에 돌아가는 길엔 너랑 같이 기차 여행이나 해볼까 해서 차는 두고 왔어."

 선우가 말을 마치는 순간 희원의 마음속엔 다른 말은 다 빼고 오로지 너랑 같이 기차 여행이나 해볼까 해서라는 말만 남아 매혹적인 울림을 만들며 거듭 거듭 메아리쳤다. 희원은 겨울바람이 너무 시려서 그런 것처럼 얼른 양손으로 붉어진 두 뺨을 감쌌다. 

  '정말 이래선 곤란해, 채희원. 냉정을 좀 찾아. 꿈을 꾸는 건 어제 밤으로 족하다고 했잖아. 설마 아직까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원은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던 손으로 한 쪽 뺨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얏!"

  "......?"

  "으흐흐. 아무 것도 아니예요. 그나저나 기차를 타려면 우선 역으로 가야되겠죠?" (당연한 소릴.....)

 난데없는 희원의 외침소리에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선우를 향해 희원이 뻘쭘하게 웃으며 얼버무리는 투로 그렇게 말하곤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이 탄 택시가 춘천역 앞에 이르렀을 때 선우는 목도리와 모자 또 선글라스 속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선우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희원은 종종 혼자 생각하곤 하던 것이었지만 인기스타란 것이 꼭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일반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갈 수 있는 장소,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에 그들은 쉽사리 접근하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물론 그 이상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자명하긴 했으나 레드비트 멤버들과 주욱 함께 생활하면서 지켜봐 온 희원은 위와 같은 이유로 그들이 안됐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튼 썩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 가운데 줄을 서서 표를 끊어온 것은 희원이었다. 

  "10시 출발 이예요. 음... 얼추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래? 잘 됐다. 야, 이거 은근히 설레는 걸."

 희원은 실제로 선우가 들떠있는 듯한 모습을 쳐다보며 빙긋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춘천 집에 올 때마다 거의 기차를 이용하는 희원 역시 첫 기차여행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레고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목적지가 부산이 아니고 서울이라는 게 천추의 한 일 뿐이었다. 천추의 한!

 십 여분 남은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선우가 근처 구멍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어슬렁거리는 모습에 희원이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요? 말만 해요. 내가 사줄게."

  "흐흐, 정말? 좋아! 그럼... 이거 하고 저거 하고 또... 저어기 저것도 맛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거... 이건 첨 보는 건데......"

  "후후. 알았어요, 알았어. 다 사줄게요."

 마치 설날 어린 동생의 손목을 붙잡고 나와 세배해서 받은 절 값으로 그 동안 먹고싶어했던 군것질 거리들을 몇 가지씩이나 한꺼번에 사서 들려주며 인심쓰는 기분으로 희원은 구운 오징어며, 쥐포, 센베이 그리고 또 군밤과 땅콩과자를 봉지 봉지 사서 선우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 때 봉지들을 받아들며 입이 벌어지는 선우의 모습이란! 희원은 키만 멀대 처럼 컸지 대여섯 살 바기의 표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뺨이라도 꼬집어 흔들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러 참아야 했다. 

 이윽고 플랫홈에 청량리행 무궁화 열차가 도착했다. 다른 승객들 무리에 끼어 열차를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의 얼굴엔 햇살 같은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강촌요?"

 희원은 다소 눈이 휘둥그레진 얼굴로 조금 전부터 오징어와 쥐포를 열심히 질겅거리고 있는 선우를 돌아보았다. 땅콩과자와 군밤은 초반에 이미 봉지를 비운 상태였다. 

  "그래, 강촌."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선우는 남춘천역을 지나면서 곧 강촌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을 듣고는 불현듯 잠시 강촌에 들렸다 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꼭 들렸다 가고 싶었다. 무조건!

  "청량리 행 표를 끊었는데 강촌에서 내려버리면......"

  "표야 다시 끊으면 되지. 넌 강촌에 많이 가봤니? 난 고등학생 때 친구들하고 어울려 딱 한 번 가본 기억 밖에 없다. 지금 생각에 꽤 운치 있던 곳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해. 그러니까 우리 강촌 역에서 내리자. 오케이?"

  "오케이!"

 희원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데이트코스로 연인들이 즐겨 찾는 강촌을 선우와 단둘이 거닐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하겠는가 말이다. 강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희원의 마음은 알록달록한 기대감으로 설레어 왔다.

 '아, 역에 내리면 선우오빠랑 먼저 자전거를 타야지. 연인들처럼 2인용 자전거를 빌리는 거야. 오홋! 그리고 또... 아 또... 그 담엔 뭘 할까? 어느 쪽으로 가볼까? 음......'

 간간히 하얀 눈발이 날리는 꿈결같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두 사람은 강촌을 찾은 보통의 연인들처럼 그렇게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마음껏 만끽했다. 연인들처럼 2인용 자전거를 빌려 타고 눈 덮인 산수를 감상하며 자전거 전용도로를 유유히 달리기도 하고 얼음이 꽝꽝 얼은 샛강에서는 서로를 끌고 당기며 발 썰매를 타다가 미끄러져 구르기 일쑤였지만 두 사람은 목이 아파서 더는 웃을 수 없을 때까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전용도로에서 멀지 않은 구곡폭포를 구경하러 가기 위해 산길을 오를 때 선우는 그리 가파르지 않은 비탈에서도 희원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말없이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반달 모양의 눈을 하고 미소지으며 주저 없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구곡폭포는 겨울이 되면 폭포가 얼어붙어 빙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이기도 했는데 두 사람이 폭포 가까이에 다가서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간혹 등반객들의 발길에 채여 떨어지는 낙석이 하필 희원의 근처에 떨어지는 매우 위험천만할 뻔한 사고가 있었다. 그 때 선우가 위를 올려다보며 어찌나 화를 내고 펄펄 뛰었는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총이란 눈총이 모두 두 사람에게 꽂혀들었다.

  "야, 방금 돌 차서 떨어뜨린 자식. 너 내려오기만 하면 죽어! 그니까 죽을 때까지 너 거기서 내려오지마. 알았냐?! 우쒸!"

 그러나 그런 것엔 아랑곳 않고 선우가 위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 동안 희원 혼자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하며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선우가 그렇듯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심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산을 내려온 두 사람은 선우를 금세 알아 볼만한 젊은이들의 발길이 비교적 뜸한 토속적인 느낌의 식당에서 뜨끈한 콩나물국에 산채 비빔밥을 게눈 감추듯 뚝딱 먹어치우곤 미리 예매해 둔 기착 시각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다시 강촌 역을 향해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야 했다.

  "여기 참 좋다. 좀 더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싶은 곳도 많이 남았는데 정말 아쉽네. 희원아, 우리 언제 시간 내서 여기 꼭 다시 놀러오자. 그 땐 시간 좀 넉넉히 잡고 오는 거야."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선우가 희원을 향해 말했다. 희원은 그런 선우를 돌아보며 잔잔한 미소로 대꾸를 대신했다.

 두 사람이 다시 청량리행 기차에 올랐을 때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는 실내 공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꽁꽁 언 손을 비비며 지정된 좌석에 다다른 두 사람은 그들 좌석과 마주보도록 고정되어있던 맞은 편 좌석에 다소 범상치 않은 복색의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곤 잠시 뜨악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숱이 많은 검은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산발하고 그에 걸맞게(?)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던 남자는 도통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는데 매우 클래식한(?) 디자인의 잿빛 한복-원래가 잿빛인지 아니면... 오래도록 빨아 입지 않아서 그런 색이 되었는지 검증할 재간은 없었지만-에 검은 양말과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는 폼이 정신적 컨디션에 일시적 혹은 영구적 오류가 생긴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깊은 산 속에서 오랜 수도생활을 하다 잠시 속세로 돌아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한복과 같은 톤의 잿빛 보퉁이를 소중하게 끌어안은 채 잠든 것처럼 지긋이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선우와 희원이 조심스럽게 그들의 좌석에 몸을 붙이자 불현듯 눈을 뜨고 놀라울 만큼 형형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쏘아보았다. 아마도 잠든 것이라 아니라 명상 중이었던 듯 싶었다.

  "허어... 오악이 모두 빈곤하지 않고 빛이 좋으니 아가씨는 부귀 영화할 상이로구먼. 특히 콧대가 반듯하고 흠 하나 없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으니 재운이 따르겠군. 부부궁이며 노복궁, 천이궁이며 복덕궁 모두 훌륭하니 아가씨를 데리고 날 남정네는 복이 터졌다고 봐야겠구먼."

 대뜸 희원을 향해 좔좔 늘어놓는 그의 달변에 희원과 선우는 얼떨떨한 얼굴로 말없이 산발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총각도 물론 좋은 관상을 타고나긴 했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는 마음 고생이 많을 상이야. 쯧쯧쯧... 게다가 여자 마음 고생 꽤나 시키겠구만."

 선우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남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선우의 관상 풀이를 내놓자 선우는 못내 마땅치 않은 듯 눈쌀을 찌푸렸다.

  "아무튼 간에 젊은이. 자네는 절대로 이 아가씨를 놓쳐선 안되네. 두 사람은 하늘이 내려준 천생배필, 천생연분이라 이 말일세. 알아듣겠나?"

  "그, 그렇습니까?"

 잠시 찌뿌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선우가 이내 얼굴을 활짝 피며 밝은 얼굴로 되묻자 사내가 위엄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특히나 두 사람은 무엇보다 속궁합이 아주 잘 맞아요."

  "......"

 속궁합이 잘 맞는다는 소리에 선우가 짐짓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지만 그 때까지 사내와 선우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만 있던 희원은 선우가 웃는 까닭을 알지 못해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두 남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근데 속궁합은 뭔데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천진한 얼굴로 물어오는 희원을 향해 두 남자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에헴....."

 산발남자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마치 충전된 에너지가 바닥 난 로봇처럼 이내 다시 눈을 지긋이 감으며 침묵모드로 들어갔고 조금 전부터 혼자 나즈막히 킬킬대기 시작한 선우는 한동안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게 뭐지?'

 희원은 한동안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무래도 두 남자들이 대답을 회피하는 눈치로 봐서 대답하기에 계면쩍은 무엇인가보다 여기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는 새 차츰 몸이 녹은 두 사람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산발남자처럼 스르르 눈꺼풀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른한 침묵 속에서 몇 분 간격으로 두 사람은 결국 머리를 맞댄 채 노곤한 잠 속에 빠져들었다.

 하얗게 습기가 어린 열차 유리창 밖으로는 낮게 가라앉은 구름 아래 눈 쌓인 경춘 국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고즈넉이 지나가고 있었다.

 규칙적인 열차의 흔들림 속에서 희원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맞대고 어렴풋이 선잠이 들어있던 선우는 비몽사몽간의 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거듭 거듭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시는... 다시는 희원을 놓치지 않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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