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 (23/75)

# 22.

  "아얏!"

  "어휴... 마늘을 찧으랬지 누가 손가락을 찧으랬어?"

 위태로운 손놀림으로 마늘을 찧다 급기야 자기 손가락을 찧고 호들갑을 떠는 성진을 바라보던 준희가 핀잔을 주며 말했다.

  "우쒸, 처음 해보는 거니까 그렇지. 아호.. 아퍼라."

 눈물까지 글썽한 얼굴로 왼쪽 검지 손가락을 빨던 성진이 발끈해서 대꾸했다.

  "아, 그러게 형은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내가 그랬잖아."

  "나도 미역국 끓이는데 일조하고 싶어서 그랬다. 그게 그렇게 잘못이냐."

 성진이 입을 내밀며 금세 뾰루퉁한 표정이 되어가지고 준희를 향해 항변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우와... 선우형이 만든 계란말이 좀 봐. 예술이다 예술."

 성진과 준희의 토닥거림엔 아랑곳 않고 노련한 솜씨로 계란말이를 부치고 있는 선우를 돌아보며 준희가 탄사를 아끼지 않자 성진은 더더욱 삐진 얼굴이 되어 궁시렁 거렸다.

  "음흉스럽기 짝이 없는 놈 같으니라구. 저런 솜씨를 감쪽같이 숨겨두고 여지껏 라면 하나도 못 끓이는 척을 하고 있었다니."

  "그건 그래. 선우형. 이런 재주가 있으면서 우리끼리 살 때 어떻게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었어?" 성진의 말에 준희도 동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고수는 아무 때나 함부로 칼을 뽑지 않는 법이거든." 선우가 계란말이를 뒤집으며 짐짓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어우, 그래 잘났다, 잘났어 은선우."

  "그나저나 서둘러야겠다. 곧 있으면 희원씨가 아침 준비하러 내려올 시각이야."

  

 세 사람이 희원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주방에 모여 그렇듯 부산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희원은 그 시각 아침 준비를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막 세수를 하러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

  "응? 이상하네. 어디서 꼭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나네."

 눈을 반쯤은 감은 상태로 욕실을 향해 걸어가던 희원은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다시 어기적 어기적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세수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스킨을 바르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하나로 묶은 다음 희원은 다시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가 주방 근처에 다다랐을 때 이층에서 얼핏 맡았던 구수한 미역국 냄새가 한층 뚜렷해지면서 부산스러운 움직임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오빠들 모두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어, 누가 또 내 대신 아침 준비를 했나보네. 저 이제 발목 다 나아서 정말 괜찮다니까요 ." 

 희원은 뜻 밖에도 자기보다 먼저 일어나 주방에 모여있는 세 사람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다 이미 상차림이 거의 끝나있는 식탁에 다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미안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 적어도 오늘까진 무리하지 않는 게 좋아. 내일부턴 학원도 다시 나가야 할텐데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지." 

 마치 음식준비를 혼자 다 해놓고 기다린 사람 같은 태도로 성진이 희원의 등을 토닥여가며 말하자 그 광경을 보고 섰던 준희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 희원이도 왔으니 그만 식사를 시작할까? 야, 준희야. 거기 내가 찧은 마늘로 끓인 미역국 좀 떠와봐라."

 성진이 '내가 찧은 마늘'이란 말에 특히 강세를 넣어 하는 얘기를 들으며 희원은 왠지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세 사람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러나 성진의 손에 등이 떠밀리는 바람에 우선은 식탁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상하네... 어딘가 오빠들 분위기가... 좀 이상해. 왜 그럴까? 그냥 내 착각인가?'

 그러나 그 날이 자신의 생일이란 사실을 또 다시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희원은 더 이상 의심을 굳힐 이유를 찾지 못했으므로 별 생각없이 준희가 떠다주는 미역국을 앞에 받아놓고 수저를 들었다. 하지만 희원은 그 때 세 사람의 시선이 비밀스럽게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야, 이렇게 아침에 미역국을 먹고 있으니까 오늘이 꼭 누구 생일날이라도 되는 것 같다야." 

 성진이 문득 시치미를 떼고 생일이란 소릴 입에 담자 선우와 준희가 성진을 잡아 먹을 듯한 얼굴로 살벌하게 째려보았다.

  '미역국? 생일?!'

 불현듯 희원은 그제서야 그 날이 자신의 생일이란 것과 객지에 혼자 나와있더라도 생일날 미역국만큼은 잊어버리지 말고 챙겨 먹으라던 엄마의 당부가 퍼뜩 떠올랐다.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정말 기특한 우연도 다 있지. 오빠들이 내 대신 준비한 아침상에 미역국이 나올 줄이야. 꼭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걸 알고들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후훗.'

 멤버들이 그녀의 생일을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고 여기던 희원은 그 날 아침상에 미역국이 오른 것을 그저 희안한 우연 정도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어찌됐건 간에 생일날 아침 뜻하지도 않던 미역국을 얻어먹게 되었다는 사실이 희원은 기뻤다. 우연이든 뭐든 그녀는 생일날 아침 자신이 손수 끓인 것도 아닌 타인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있지 않은가!

 희원은 괜스리 감사한 생각에 오빠들이 준비해 준 미역국이며 계란말이며를 더더욱 맛나게 열심히 먹었다. 

  "아휴, 아무튼 성진이 형은. 형 때문에 산통 다 깨질 뻔했잖아."

 준희가 연신 희원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주방을 힐끔거리며 잔뜩 목소리를 낯춘 채 힐난조로 입을 열었다.

  "아니, 나야 뭐 그냥 아무 소리도 않고 지나가기 뭐해서..."

  "저녁 때 깜짝 파티로 희원씨 놀래켜 줄라고 했던 거 형 때문에 물 건너 갈 뻔했다는 거나 좀 알아두셔.

  "알았어, 임마. 그나저나 너희 둘은 희원이 선물 뭘로 샀냐?"

  "그건 우리끼리도 서로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뭐 나중에 희원이 한테 물어보면 다 알 건데 뭘 그러냐. 난 어제 백화점 폐점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좀 더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린다. 야, 은선우. 말해봐. 넌 뭐 샀냐?"

  "난 아직 못 샀어."

  "응? 뭐야 너도 같이 백화점에 갔었잖아."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어서."

  "그럼 어떡하려구?"

  "이따가 잠깐 나갔다 오지 뭐."

  "하긴... 그럼 되겠구나."

  "그나저나 우리가 파티 준비할 동안 희원씨를 잠깐 밖에 내보낼 구실부터 만들어야지. 안 그래?"

  "그러게 말이다."

 그러나 멤버들의 고민은 잠시 후 절로 해결이 났다. 그 날 오후 희원이 잠시 외출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던 것이다.

  "오늘 저녁 가족회의 겸 단합대회를 하기로 했거든요. 7시까지 들어올 수 있겠어요?" 준희가 현관문 앞에서 스니커즈 끈을 묶고 있던 희원에게 다가와 물었다.

  "가족... 회의 겸 단합대회...요?" 갑작스런 얘기에 희원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희원씨가 빠지면 안 돼요. 늦지 않게 올 수 있죠?"

  "예? 예에..." 

 왠지 평소답지 않게 시간 맞춰 귀가를 당부하는 준희의 태도가 조금은 낯설었지만 가족회의 겸 단합대회라는 타이틀로 인해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며 희원은 고개를 끄덕인 후 집을 나섰다.

 수영과 약속 장소로 정한 카페에 들어서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수영의 모습이 금세 눈에 띄었다. 

 하긴 언제 어디서 뭘 하고 있든 금세 눈에 띌 인물이긴 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희원이 수영의 곁으로 다가갔다.

  "발목은 그래 이제 다 나은거야?"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요."

  "그럼, 걷는데 지장 없지?"

  "예? 예."

  "나가자, 그럼."

  "어,어딜..."

  "따라와보면 알아."

 다짜고자 수영은 희원의 손목을 잡고 카페를 나섰다. 

 수영은 영문도 모른 채 총총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르던 희원을 카페에서 3분쯤 거리에 위치한 부띠끄로 데리고 들어갔다. 

  "시간 맞춰 왔네. 그나저나 오랜만이야, 수영씨."

 부띠끄 여주인쯤으로 보이는 세련된 중년 여성이 수영을 매우 반기는 태도로 맞았다. 

  "사장님이 나와 계실 줄은 몰랐네요. 전화로 부탁드렸던 거 있죠. 그것들 좀 여기 이 아가씨한테 입혀봐 주세요."

  "그래, 저 쪽에 준비해 놨어."

 수영과는 꽤 친숙한 관계처럼 보이는 그 여성은 수영에게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희원에게 돌린 후 잠시 동안 희원의 외모를 쭉 훑었다. 드러내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순간 입술을 실룩이던 그녀의 눈빛에는 분명 멸시감이 깃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희원은 자신도 모르게 찔끔하고 주눅이 드는 심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외모나 차림새로 사람을 판단하는 그 여사장에게 반감이 들었다.

  "자, 아가씨는 이쪽으로 절 따라 오시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희원을 향해 수영은 고개짓으로 부띠끄 여사장을 따라가 보라고 했다. 얼떨결에 여사장을 따라 간 곳은 탈의실 앞이었다. 그 곳엔 여직원 하나가 몇 벌의 드레스를 준비해놓고 희원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자, 이것부터 하나 하나 입어보도록 해요. 탈의실은 여기..."

 등이 몹시 패어 보이는 검은 색 롱 드레스 한 벌을 희원에게 들려주며 여사장은 손가락으로 탈의실을 가르켰다. 

 희원은 도대체 자기가 왜 이 옷들을 입어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도도한 태도의 여사장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간 촌닭 취급이나 더 받는 결과 밖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애서 일단은 자신도 시치미를 떼고 그냥 입어보라는 대로 입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 건네준 검은 색 드레스로 다 갈아입고 난 후에도 희원은 탈의실 안에 걸린 거울로 자신을 비쳐보곤 차마 탈의실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으악! 이거 뭐야 등짝이 다 나오나잖아. 이딴 걸 어떻게 입고...'

  "희원아. 뭐해? 아직 다 못 갈아입었어?" 

 수영이 탈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 마이 갓!

  "다, 다 갈아 입었어요... 나가요..."

 희원은 한 쪽 팔을 뒤로 돌려 가능하면 드러난 등을 조금이라도 가려보기 위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며 주춤주춤 탈의실 밖으로 나섰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수영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사장의 얼굴엔 '놀고있네'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예쁜데! 그런데 희원이 너 살 좀 더 쪄야겠다. 옷이 좀 헐렁해 보이네."

  "옷이 헐렁한 게 아니라 이 옷이 원래 좀 가슴에 볼륨이 있는 체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옷이라서 그래."

 여사장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다소 비꼬는 듯한 억양으로 말했다. 그 옷은 절대 아무나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옷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상하네. 우리 희원이 가슴도 제법 빵빵한 걸로 아는데... 아무래도 제가 보기엔 옷 치수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요. 보세요. 허리 부분만 품이 남네."

 수영의 말에 여사장은 된통 약점이라도 꼬집혀 망신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으로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직원에게 얼른 다른 옷을 건네주도록 시켰다. 물론 수영의 입에서 자신의 가슴이 빵빵하네 어쩌네 소릴 들은 희원 역시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희원은 푸른 색 쉬폰에 진주가 박힌 고전적인 디자인의 드레스와 실루엣을 강조하기 위해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은 단순한 디자인의 붉은 색 드레스, 공주님 풍의 핑크색의 드레와, 흰색과 검은 색이 세련된 조화를 이루는 드레스 등등을 포함해 무려 십여 벌의 원피스 드레스를 입어 보았다. 졸지에 모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니 수영의 품평을 받으며 오른 쪽으로 돌으라면 오른 쪽을 돌고 왼쪽으로 돌으라면 왼쪽으로 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꼭 영화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생각엔 끝에서 두 번째로 입어봤던... 그... 감청색 실크 드레스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희원이 네 생각은 어때?"

  "글쎄요... 옷들은 하나 같이 다 이쁘지만..." 

 왜 자신이 이런 옷들을 입어봐야 하는지 막 수영에게 물으려는 찰나 수영이 재빨리 그녀의 말허리를 가로채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이쁘다면 내가 말한 감청색도 원피스도 싫지 않은 거지? 그럼, 됐어. 사장님, 여기 어울릴만한 구두랑 백 좀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미스 최. 여기 엊그제 이태리에서 들여온 구두랑 백 있지. 그것 좀 가져와 봐."

 마치 변신한 신데렐라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수영의 차에 오른 희원은 그러나 다소 불안한 심경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수영을 쳐다보았다. 차창 유리를 통해 저물어가고 있는 오후 햇살을 비스듬히 받고 있는 그의 얼굴은 석고 뎃생으로 너무도 친숙한 줄리앙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수영선배, 난데없이 이 옷이랑 구두는 다 뭐고 지금은 또 어디로 가고 있는거죠?"

 희원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싱글거리고 있는 수영을 향해 결국 궁금증을 쏟아냈다.

  "옷이랑 구두는 파티를 위해서고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은 파티장이야."

  "파티... 장요?"

  "응." 

  "무슨 파티장이요?"

  "가보면 알아."

  "선배..."

  "쉿! 곧 있으면 도착할 테니까 궁금해도 조금만 참으세요 공주님."

 신호대기에 걸려 잠시 정차 중에 수영이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희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희원은 어딘가 다소 들뜬 듯이 보이는 수영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 일단은 침묵하기로 했지만 무엇보다 7시까지 귀가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문득 희원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백마대신 검은 색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니는 줄리앙의 얼굴을 한 왕자님 곁에서 끊임없이 시간을 확인하는 신데렐라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혼자 미소를 지었다.

 수영의 차가 이윽고 멋진 빌라 건물들이 즐비한 동네 어귀에 접어들었고 대 여섯 채의 빌라를 지나친 뒤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희원은 마치 에스코트라도 받는 기분으로 수영의 손에 이끌려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4층 짜리 빌라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가 어디예요?"

  "내 집."

  "예?"

 수영이 살고 있는 빌라는 복층형인 모양이었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운동장만큼 커다란 거실 한켠으로 예술적인 곡선을 자랑하는 계단이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원의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은은한 모랫빛 펄감이 느껴지는 대리석 바닥의 거실 중앙에 그림처럼 아름답게 세팅되어있는 테이블이었다.

 가장자리가 매우 섬세한 레이스로 처리된 흰 색 식탁보 위에 은제 식기와 은제 촛대가 놓여있었고 촛대에는 보라빛 양초가 두 개 꽂혀 있었다. 양초와 같은 보라색 체크의 러너와 냅킨이 매우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청색 크리스탈 수반에는 이름 모를 꽃들로 가득 장식된 부케가 작은 화원을 연상케 했고 눈처럼 순백의 생크림 케익 옆에 나란히 놓인 붉은 색과 흰 색 와인 병은 마치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절묘한 색채의 대비와 조화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식탁 위의 광경은 꼭 예술 작품 그 것이었다.

  "어때, 맘에 드니? 널 위해 준비한 자리야."

  "나를... 위해서요?"

  "그래. 너 한 사람을 위한 파티, 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었어."

  "그럼 파티장이라고 했던 얘기가... 아앗, 그런데 내 생일을 선배가 어떻게?"

  "그 정도야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방법이 있지." 그가 희고 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르키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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