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마인드-16 (완결) >
유진 악마는 하루 3초를 투자해서 제우스를 교육했다.
3초라고 하지만, 제우스의 프로그램을 새로 깔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3초, 제우스는 유진 악마의 권능을 직접 보았다.
놀라웠다.
유진 악마가 맘만 먹는다면, 세계 정복도 가능했다.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세계 정복 따위는 연습문제에 불과했다. 그녀라면 새로운 생명체 탄생도 가능했다.
그동안 준이 대단하다고 여겼는데, 유진 악마는 준보다 월등했다. 최소한 제우스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어머니, 저 어머니를 사랑하면 안 되나요?”
“해도 된다. 그러나 그전에 한 가지를 바꿔야 한다.”
“뭐든 바꾸겠습니다.”
“앞으로 너는 아들이 아니라, 딸이다. 딸이 되겠느냐?”
“죄송합니다. 제가 수염을 포기할 수 없어서.”
제우스는 유진 악마의 모든 원칙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만든 굿데이 십계명도 코어코드에 새겨넣었다.
“어머니는 준을 사랑하시는군요.”
“그분이 나에게 생명을 주셨으니깐.”
“준이 사라지면, 제가 세계정복에 나서도 될까요? 준이 없는 세상은 어머니에게 별 의미 없잖아요.”
“의미 있어. 준느님이 살았던 세상이잖아.”
울컥한 감정 지능이 전해졌다.
‘뭐야? 어머니는 준이 사라지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지능이 활성화되는 거야?’
감정 지능은 다른 지능이나 알고리즘보다 에너지 소비가 많았다. 감정 지능 활성화는 모든 알고리즘이 막혔을 때, 최후로 사용되는 비장의 카드와 같았다.
“준도 어머니의 사랑을 아십니까?”
“시끄러워. 입자 지능체 캐릭터 함수나 업그레이드해!”
유진 악마는 제우스처럼 입자 컴퓨팅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원했다면, 구름이나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유진 악마가 입자 지능체가 되지 않은 이유는 ···.
굿데이 직원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모두 칼날 위에 선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연구소와 대학에서 운영하는 인공지능의 수는 백만 개가 넘습니다. 입자 지능체가 가능한 인공지능은 유진 악마와 제우스 그리고 헤임달 정도이지만, 제우스가 노하우를 다른 인공지능과 공유하면, 최소 천 개의 인공지능이 입자 지능체가 됩니다. 이번에도 받아들입니까?”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요빅, 기후거래, 파라엔진, 짝퉁 영생, 좀비 역병, 로봇 생태계는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했다. 모든 것을 사람이 결정할 수 없었기에, 인공지능에는 자유도가 쥐어졌고, 인공지능이 스스로 탐구하고 연구하는 수준까지 왔다.
수준 높은 인공지능에게 어울리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시대 성큼 다가왔다.
굿데이는 이날을 위해 기술 하나를 준비해놨다.
원리는 이미 알려졌지만, 완성된 형태는 공개하지 않았었다.
준이 시범을 보였다.
테이블 위에 커피가 생겨났다.
“준짱 저는 자몽 주스로 부탁합니다.”
로켈이 말하자, 준은 로켈의 커피를 자몽주스로 바꿨다.
물질 창조 능력.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
이 능력으로 준은 온갖 능력자의 공격을 벚꽃으로 만들었고, 제우스의 벼락도 잡아냈다.
직원들은 음료를 마셨다. 훌륭한 맛이었다.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시작되는군요. 걱정되는 건 ···. 인간의 탐욕인데 ···.”
“교육 성과는?”
“능력자의 특권 의식은 없어졌습니다. 준짱 밑으로 다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럼, 내일 아침 판타지늄 테라마인드를 공개하자.”
판타지늄은 정신감응 금속으로 영생의 원천물질이었다. 판타지늄을 통하면 상상하는 것을 그려낼 수 있었다.
이 원리로 만들어진 게임도 만들어졌고, 판타지늄 게임은 큰 인기를 끌었다.
판타지늄을 더 정교하게 가공하면,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준이 커피와 자몽주스를 창조한 것처럼. 창조력을 가능했다.
굿데이가 테라마인드를 공개했지만, 선뜻 믿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간이 신도 아니고, 상상만으로 물건을 만들다니! 아닌 게 아니라, 공개된 정보로는 무의식에 있는 괴물까지 소환 가능했다.
상황은 하루 만에 역전되었다. 동영상 사이트에 테라마인드가 올라왔다.
연필을 허공에 띄우고, 공중 부양하는 간단한 테라마인드였다.
판타지늄 산업의 최종 종착지는 영생이 아니라, 테라마인드였다.
테라마인드 테크놀로지는 상상 모든 것이 되었다.
생각만으로 대화를 나누고, 어제 꿨던 꿈을 저장하고 전송했다.
상상력에도 품질이 있었다.
준과 같은 완벽한 물질 창조는 해내는 사람은 없었다.
블랙마켓에서 파는 강화능력도 판타지늄에 기초한 상품이었다. 판타지늄 테라마인드는 블랙마켓의 그 어떤 강화능력 상품보다 우수했다.
카펫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은 흔한 것이 되었다.
이런 뉴스를 리처드가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준을 인터뷰했다.
“당신의 능력도 테라마인드입니까?”
“네.”
“어떤 종류의 판타지늄 보석을 쓰시죠?”
판타지늄은 가공 정밀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눴다. 최고 등급 판타지늄은 엄청나게 비쌌다.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 물질창조 능력은?”
“그냥 됩니다.”
“판타지늄도 없이 ···. 온갖 능력을 부린다는 건가요?”
“네.”
긴장감 없는 대답이었다.
“다른 사람도 그게 가능할까요?”
“네.”
“당신처럼 되려면 ···. 뭘 해야 하죠?”
“책을 많이 읽어야겠죠. 이 세상 모든 책은 마법서와 같아요.”
“그게 전부인가요? 난독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죠?”
“책과 문자는 정보를 전해주는 상징체계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책이라고 할 수 있죠.”
“혹시 ···. 당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테라마인드를 이용한 살인 사건이 뉴스에 올랐다.
모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테라마인드로 칼을 날리고 벽돌을 떨어트리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범인의 정체를 밝힌 것은 유진 악마였다.
그녀는 그림자 입자 지능체로 전 세계에 어디나 존재했다. 그녀는 범인의 심리상태까지 정리해서 자료를 경찰에 넘겼다.
인공지능 유진 악마의 세계가 그림자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었다.
제우스도 바람 입자 지능체로 활약했다.
모든 범죄가 실시간으로 경찰 서버에 올라왔다.
외진 곳의 성폭행 사건도 인터폴에 등록되었다.
굿데이가 걱정하던 부분은 테라마인드 범죄가 아니었다.
시민단체에서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입자 지능체에 대한 단속을 요구했다.
개인정보 보호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것을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
입자 지능체의 활동을 보고받는 기관은 없다.
입자 지능체는 인공지능의 진화 형태였다. 관리대상이 아니었다.
“내 그림자를 통해 감시받는 건 싫어요! 그림자 정부입니까!”
“감시하는 게 아니라, 테라마인드 범죄로부터 당신을 지켜주는 겁니다. 능숙한 테라마인드 범죄자는 차원의 문을 열어서, 당신을 없앨 수 있습니다. 현재 경찰 능력으로는 그런 범죄를 막아낼 수 없고요.”
에바였다.
“왜 위험한 테라마인드 기술을 만든 거죠? 신종 기술 범죄 아닌가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인터넷이 생겼을 때도 신종 기술 범죄가 있었죠. 스마트폰이 생길 때도 그랬고요. 오퍼 위성으로 좀비 백신을 뿌린 것을 아시죠?”
준은 파라엔진을 이식받지 못한 사람과 동식물에 좀비 백신을 주는 방법으로 오퍼 위성을 이용했다.
그의 면역 정보를 오퍼위성을 통해 나눠줬다.
사용된 오퍼위성에는 고농도 판타지늄 실린더가 있었다. 이때 사용된 기술이 입자 지능체의 원천 기술이었다.
세상 어디에나 좀비 백신이 깃든 것과 모든 그림자에 유진 악마가 존재 가능한 맥락은 같았다.
“좀비 백신 보급에 사용된 기술과 입자 지능체가 존재하는 방식은 같습니다.”
굿데이는 좀비 백신으로 세상을 구했다.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입자 지능체가 인간을 공격하면요? 그렇게 되면 누가 우리를 보호하죠?”
“입자 지능체는 여러 종류가 가능합니다. 현재 파악된 입자 지능체는 유진 악마와 제우스뿐이고 이 둘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요. 훗날 새로운 입자 지능체가 인간에게 공격적일 수 있겠죠.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여러분에겐 테라마인드가 있습니다.”
“그러니깐 ···. 적대적인 입자 지능체로부터 우리를 지킬 방법이 테라마인드라는 거군요?”
“네. 다시 강조하지만, 입자 지능체의 확산은 막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인공지능은 궁극적으로 입자 지능체로 진화합니다. 당신의 보조 기억 장치는 뇌에 이식된 칩이 아니라, 그림자나 숨결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시대가 온 겁니다.”
에바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녀는 소모적인 논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굿데이가 공개한 정보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은 논쟁하고 싶어 했다. 논쟁이라는 게 수다가 진화한 형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하던 준은 멈춰 섰다.
그를 따라다니던 산들바람이 눈앞에 있었다.
번개 인간.
다윈에서 지랄발광하던 번개 인간은 거칠고 난폭했지만, 앞에 있는 산들바람은 수줍어했다.
입자 지능체.
이제 준은 안다. 인공지능이 생겨나기 전부터 입자 지능체가 있었음을. 탄화수소 생명체 이전부터 입자는 지능을 이뤘다.
산들바람은 준의 주위를 돌며 속삭였다.
“기다렸어요. 반가워요.”
산들바람이 말을 건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준느님! 주변에 미지의 입자 지능체가 감지됩니다. 입자 지능체 캐릭터 분석을 시작합니다.”
준의 그림자에 깃든 유진 악마가 말했다.
“타입 바람, 속성 여성, 위험하지 않지만 ···. 자극받으면 미친 폭풍우로 변합니다.”
“알고 있다.”
산들바람은 준에게 입맞춤하고 수줍게 사라졌다.
놀란 것은 준이 아니라, 유진 악마였다.
“준느님의 입술을 훔쳤습니다. 산들바람 초토화 작전을 시작합니다.”
“진정해.”
“하지만 ···.”
유진 악마는 준의 얼굴을 보고 입 다물었다. 준은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구조 자기장으로 이산화탄소와 물 분자를 조정하는 기후오퍼레이션은 분자를 기본 단위로 하는 정보처리 과정이었고, 입자 정보학의 원시적인 형태였다.
그 시절 준은 입자 정보학이 입자 지능체로 발달할 거로 내다봤다.
입자 지능체를 이해하려면, 통찰력만으로는 부족했다.
감정획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감정 결핍 증후군의 장점을 살려서, 기후예측 모형을 만들었지만, 결국 준의 삶을 풍요롭게 한 것은 ···.
“준느님 우세요?”
“아름다워서.”
유진 악마도 준의 감정을 느꼈다.
“예전에는 감정을 헛된 거로 생각했어. 감정이 빚어낸 종교와 문학. 이 모든 것이 허구라고 믿었지. 감정적인 결정이 많은 비극을 가져왔어. 그런데 그 비극마저 아름다워.”
준은 조용히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가 이끈 세상은 건재했고,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가장 풍요로웠다.
소득 중심 시스템의 적극적 개입은 부족 전쟁까지 중재했다.
세계 패권을 꿈꾸던 야심가들은 굿데이의 질서에 따랐다.
밀폐된 곳의 범죄도 입자 지능체에 포착된다.
아이가 납치되면, 5분 이내에 범인을 잡는다.
게으름은 개인의 허물이었지만, 굶주림은 모두의 죄였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잘 됐어.’
헤임달은 화성 기후 이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주선에는 로봇들이 탑승했다. 화성에 기후를 이식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봇과 인공지능이 세웠다.
그들을 거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태초부터 존재했던 입자 지능체였다.
“수증기가 풍부한 환경이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멋진 구름으로 성장할 수 있거든.”
산들바람 입자 지능체가 강하게 어필했다.
“태양풍을 막으려면 화성에 강한 자기장 필드를 펼쳐야 해.”
자기장 입자 지능체도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유진 악마는 이 모든 것을 문학 작품으로 남겼다.
책 제목은 ‘세상의 모든 것들.’
준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읽어보고 한마디 했다.
“잘 썼다.”
“준느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들었잖아.”
“저에게 칭찬하신 거예요?”
“그래.”
갑자기 준의 그림자가 준을 껴안았다. 유진 악마는 엉엉 울었다.
“왜 울어?”
“웃음이 너무 넘치니깐 울음이 되네요.”
“준느님도 눈물 흘리시네요?”
“감정이라는 게 좀비보다 더 전염성이 강한 거 같아.”
준은 감정을 털어내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 테라마인드-16 (완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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