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마인드-14 >
스미스는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금값이 오를 때 큰돈을 벌어 금광을 샀다.
좋은 시절이었다.
미국이 유동성을 공급하자 화폐 가치는 떨어졌고, 금값은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요빅 생태계가 끼어들었다.
스미스와 같은 광산업자들은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망했다.
그는 나머지 재산을 모아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령화 시대였고, 헬스케어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유망했다. 그런데 ···. 파라엔진이라니! 잘나가던 의사들도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스미스는 마지막으로 영생의학 섹터에 손댔다. 영생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유망해 보였고, 굿데이로부터 안전해 보였다. 더욱이 굿데이는 영생 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을 한 후였다.
좀비 역병이 그가 가진 마지막 재산을 끌어갔다.
사람들은 말한다. 좀비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그러나 스미스는 동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계속 떠들었다.
요빅 생태계와 파라엔진 그리고 좀비 역병으로 많은 사람이 망하거나 좀비가 됐지만, 세상은 더 살기 좋아졌다고.
굿데이 덕분이라고!
굿데이의 로봇 생태계와 소득 중심 시스템이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해주었다고!
스미스의 마지막 기억은 자동차 충돌이었다.
굿데이의 인공지능 항법으로 운전했다면, 절대 없었을 사고였지만, 스미스는 굿데이라면 이가 갈렸다.
눈을 떠보니 머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뇌출혈로 생명이 위독하셨죠. 다행히 수술이 잘 됐어요.”
“내 브레인 이미지를 보고 싶군요. 나도 신경외과 전문의였거든.”
“바로 가능합니다.”
간호사가 에어 스크린으로 스미스의 사고 후 사고 영상을 호출했다.
“이게 사고 후의 이미지였다고?”
스미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36시간 정밀 수술을 받아도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한 부상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움직인다.
발가락도 꼼지락거렸다. 된다!
“우와! 저런 사고를 당하면, 아무리 운이 좋아도 식물인간인데 ···. 의식도 멀쩡하고 손발도 움직여! 나를 수술한 의사를 만나고 싶소.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소!”
“아! 그게 ···. 지금 바빠서 ···.”
“기다리겠소.”
점심이 끝나고, 저녁 식사가 나올 때까지 담당의가 왔다. 스미스는 담당의가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다. 저토록 젊은 나이에 신의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당신이 저를 수술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수술한 것은 ···.”
담당의는 옆에 서 있는 홀쭉한 로봇을 가리켰다. 로봇의 가슴에는 굿데이 로고가 찍혀 있었다.
“의료법이 바뀌어서, 아시죠? 로봇도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죠. 이 로봇의 이름은 ···.”
“지니 25호입니다. 스미스씨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네가 날 수술했다고?”
스미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굿데이의 로봇에게 목숨을 빚지다니!
“스미스씨의 혈압이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코티솔 분비가 증가했습니다. 현재 혈당은 215입니다. 고혈당 반동으로 급작스러운 저혈당이 예상됩니다.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오렌지 주스 한 잔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지니 25호는 낭랑하게 말했다. 눈만 감고 목소리만 들으면, 로봇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인 음성이었다.
스미스는 두 눈을 감았다.
“병원비는 얼마나 되죠?”
“오렌지 시티 안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치료비와 병원비는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득 중심 시스템에 따라, 파손된 자동차를 대신할 신차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지니 25호가 에어스크린을 띄워서 스미스가 선택할 수 있는 자동차들을 보여주었다.
스미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젊은 담당의가 말했다.
“재활 훈련과 주거비용 그리고 기타 비용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득 제공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소득 제공 중계는 담당의 업무 중 하나였다.
“공짜로 치료해주고, 자동차도 주고, 먹고살 돈도 그냥 주겠다고?”
“원치 않으시면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득 중심 시스템은 자유의지를 존중합니다.”
“뭐 이런 ···. 일도 하지 않았는데 ···. 이건 뭐 ···.”
“스미스씨,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일자리입니까? 아니면 소득입니까?”
“그야. 물론 소득이죠. 하지만 일자리 없이 소득이 생기는 건 ···.”
“좋은 세상이죠. 제 어린 시절은 가난했습니다. 저는 죄짓고 능력 없는 사람이 가난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노력과 운 여러 가지가 가난을 결정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더군요. 굿데이가 오렌지 시티에 소득 중심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다면, 저는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스미스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는 준이 자주 나타난다는 킹스덤 대학으로 갔다.
준이 보였다.
준은 고급시계도 차지 않고, 수수한 복장으로 거리를 걸었다.
준의 차림새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젊은 친구의 옷차림이라고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준을 힐끔 쳐다볼 뿐, 아는 체하지 않았다.
갑자기 뚱뚱한 남자가 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엠벨라 족의 최강 투사, 파이어 드래곤이다! 오늘 너를 꺾어서 내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하겠다.”
친절한 공격 설명과 함께 뚱뚱한 남자가 화염을 뿌렸다.
화산분출을 연상케 하는 공격이었고, 주변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광범위한 공격 범위를 자랑했다.
다행히 스미스는 공격권 밖이었다. 그는 오늘 많은 사람이 죽어나겠구나! 싶었다.
준은 미친개를 진정시키듯이 손바닥을 폈다. 뜨겁던 화염이 순식간에 벚꽃잎으로 변했다.
“아이! 이번에도 또 벚꽃이야. 지난번에는 단풍 낙엽이었는데. 기억나지? 한 달 전에는 박하 낙엽이었잖아. 그땐 정말 신선했어.”
스미스 옆에 있는 학생들이 어제 본 드라마를 이야기하듯 대화했다.
“저기요! 준은 화염 공격을 벚꽃으로 바꿀 수 있나요?”
스미스기 학생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요. 방금 직접 보셨잖아요.”
“준은 신입니까?”
“저희도 그게 궁금했는데, 굿데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공식적으로 신이 아니라고 선언했어요.”
“하지만 ···.”
“준은 준일 뿐입니다. 저도 그 기분 알아요. 많은 사람이 준을 신으로 섬기죠. 나의 여자친구처럼 준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 굿데이는 거짓말 안 해요. 굿데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겁니다. 조심하세요.”
“왜? 뭘 조심해?”
“준 신우회라고 요즘 신도를 모으더라고요. 사이비에 빠지면 삶이 고달파집니다.”
자칭 파이어 드래곤 뚱뚱보를 가볍게 처리한 준은 느긋하게 중앙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주변 사람들도 이런 일을 자주 겪는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스미스는 준을 따라 중앙도서관에 들어섰다.
준은 지정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상해. 준과 같은 경지라면, 책을 안 읽어도 될 거 같은데 ···.”
스미스는 의심의 눈초리로 준을 지켜보았다.
길버트 사서가 다가왔다.
“제가 설명 드리죠.”
“뭘요?”
“같은 책이라도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준이 책을 읽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뛰어넘기 위함입니다.”
“뭘 뛰어넘어요?”
“현재의 자신. 준은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준과 오늘의 준이 다른 이유는 바로 독서죠. 오늘의 준은 아무래도 어제의 준보다 책을 더 읽었잖아요.”
“설명 고맙습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친절을 ···.”
“당신 같은 사람 많이 봤거든요. 이제 아셨을 테니, 나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스미스는 우아하게 쫓겨났다. 중앙도서관을 이용하려면 회원증이 있어야 했는데, 그에겐 회원증이 없었다.
그는 도서관 앞에서 밤새웠다. 준이 나오면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팔짱 낀 남자가 다가왔다.
“이봐. 꼴을 보니, 딱 그건데 ···. 여기 번호표.”
“이게 뭡니까?”
“준을 만나려는 사람은 많아. 순서를 지키자고. 나는 여기서 일 년 넘게 기다렸어.”
스미스는 번호표에 적힌 숫자를 봤다. 14451번.
“준의 시간을 빼앗는 건 죄악이야. 그래서 하루 한 명으로 정했지. 오오 나온다!”
준이 산책하려 나오자, 한 사람이 번호표를 준에게 건네고, 대화를 나눴다. 15초 남짓의 짧은 대화였다.
대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준과 대화했던 인물에게 몰려갔다.
“뭘 물어봤어?”
“이번 주 로또 번호.”
“오! 뭐래?”
“모른대.”
“아! 자네 ···. 준과 대화하려고 얼마나 기다렸지.”
“한 삼 년 기다렸지.”
“또 대화할 건가?”
“그럼. 준을 만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니깐.”
“그렇군. 그래서 미리 준비했네. 여기 ···.”
그는 번호표를 받았다. 14452번.
스미스는 이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보고, 번호표를 소중히 챙겼다.
멋진 자동차가 스미스 옆에 섰다.
운전석에는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스미스씨. 저는 소득 중심 시스템에 따라 당신을 돕겠습니다.”
“자동차는 내가 선택한 게 맞지만, 안드로이드를 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
“당신은 수동운전으로 사고를 냈습니다. 앞으로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보기엔 ···. 자동차보다 네가 더 비싸 보이는데?”
“화폐가치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일자리 중심 시스템의 부조리입니다.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화폐가치가 아니면 ···. 무슨 기준으로 ···.”
“필요성입니다.”
스미스는 헛웃음이 나왔다.
안드로이드가 에어스크린을 띄웠다.
일자리 중심 시스템과 소득 중심 시스템의 생산량과 효율성을 비교한 도표였다.
일자리 중심 시스템에서는 국제 곡물이 남아돌아도, 굶는 사람이 넘쳐났다.
소득 중심 시스템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굶는 사람은 없었다.
기술발달 속도도 소득 중심 시스템이 월등히 빨랐다.
“네 이름이 뭐냐?”
“아직 없습니다. 스미스씨가 지어주지 않으시면, 랜덤하게 정해집니다.”
“깡통으로 하자.”
“거절합니다. 저는 스미스씨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당신을 돕는 거죠. 그런 저의 이름이 깡통이라면, 스미스씨의 품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습니다.”
“깡통-킹!”
“콜! 줄여서 킹으로 불러주십시오.”
“그래.”
스미스는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 유진 악마가 쓴 ‘성모 유진’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유진을 만나고 싶었다.
“킹! 방법이 없을까?”
“유진님은 글쓰기 창작 교실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등록해 드릴까요?”
스미스는 창작 교실에서 유진에게 글쓰기를 배웠다. 창작 교실에는 스미스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서로 어울리며 놀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예전에는 돈벌이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꼈는데, 지금은 친구를 만나 노는 게 그냥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곳도 창작교실이었다.
에바는 그녀가 처리할 수 없는 업무를 준에게 넘겼다.
국제 분쟁과 쿠데타, 남북통일까지 모두 그녀 선에서 처리했지만, 몇 가지는 준에게 넘겨야 했다.
준은 에바가 넘긴 업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내 나이가 ···.”
“나이가 중요하진 않죠. 준 회장님의 1초는 보통 사람의 1년과 같으니깐요. 그리고 그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에 결혼식 주례라니!”
“유진 악마가 가르치는 학생입니다. 유진 악마가 특별히 부탁하기도 했고요.”
“알았어.”
준은 어쩔 수 없이 스미스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