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마인드-13 >
“준을 마킷처럼 영생자로 만들면 어떨까?”
야마토 덴노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마킷은 영생의학 주식회사의 회장이었지만, 영생자 편은 아니었지만, 영생을 얻은 후로는 영생자와 한편이 되었다. 영생이란 그런 것이었다.
준이 영생자가 된다면, 영생자 백신을 만들 것이었다.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신급 능력자를 잃었죠.”
“나에겐 뛰어난 조직이 있네. 그들이라면 준의 몸에 영생 주사기를 꽂을 거야.”
야마토 덴노의 눈이 반짝였다. 진은 그에게 단검 모양의 주사기를 주었다.
“이틀 드리겠습니다. 아시죠. 제가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 이틀 동안 이곳에 계신 분들은 다른 곳에 가실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 가시면, 아무래도 절 해치울 계획을 꾸미실 거 같아서 ···.”
진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건물의 문과 창문이 닫혔다.
“진! 그럼 이 물건을 흑룡회에 어떻게 전해주나!”
야마토 덴노가 진이 준 주사기를 흔들었다.
“나의 비서 테레사 당신의 손발이 될 겁니다. 당신은 핫라인으로 흑룡회에 지시만 해주십시오.”
영생자들이 갇혔다곤 하지만, 럭셔리한 건물이었다. 영생자들에게 스위트 룸이 쥐어졌고, 판타지늄 캡슐도 제공되었다.
통신 검열을 받았지만, 외부와의 연락도 자유로웠다.
이틀이 지나자 흑룡회의 연락이 왔다.
조직 붕괴.
흑룡회의 살아남은 간부와 닌자들은 시온 특별 교육과정을 밟아야 했다.
“쉽게 말해서 ···. 덴노께서 자랑하시던 흑룡회가 굿데이에 흡수된 거네요.”
“그게 참 ···. 쉽게 흡수될 애들이 아닌데. 태어날 때부터 표창을 던지면서 태어난 야수들인데 ···.”
‘준 영생자 만들기 작전’은 흑룡회의 마지막 임무가 되었다. 덴노에게 전달된 마지막 작전 최종 보고서는 점점 준을 찬양하는 서사시처럼 변해갔다.
‘관대한 준님께서는 하찮은 우리를 살리사, 시온에게 배울 기회를 주시며, 이에 우리는 크게 깨우쳐 준님을 위한 새 삶을 누리니 이 어찌 영광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온 교육이라는 게 작가 교육이야! 뭐 이렇게 거창해?”
보고서를 읽던 덴노가 투덜거렸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눈빛에서 빛이 났다.
보고서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작전 성공!
흑룡회의 모든 조직이 전력투구한 작전이었다. 수천 명의 닌자와 능력자들이 굿데이를 습격해서, 기어이 준의 몸에 주사기를 꽂았다.
“만세! 준은 영생자가 됐어! 내 이럴 줄 알았어! 흑룡회는 단 한 번도 작전을 실패한 적이 없다고!”
침묵을 지키던 과묵한 다른 영생자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준이 영생자가 됐다! 준이 영생자 백신을 만드는 건 시간문제였다.
“진! 흑룡회의 보고서는 맞는 건가요?”
스웨덴 왕족 샬롯 영생자가 물었다.
“확실합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흑룡회 보고서는 다 읽으신 거 같고 ···. 이제 저의 보고서를 읽어보시죠.”
영생자들은 진의 보고서의 내용이 준 영생자를 인증하는 형식적인 서류라고 생각했다.
진의 보고서는 영생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플했다.
단, 한 글자만이 서류에 적혀 있었다.
준은 영생 면역자.
“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준은 영생에 면역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깐, 영생이 무슨 B형 간염처럼 느껴지는군. 신성한 영생 앞에 면역이라는 표현을 붙이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라도 ‘영생 거부자’라는 표현으로 가자고. 내가 사업도 하고 정치도 해봤는데, 어감이 참 중요하더라고.”
“그래 그게 좋겠어.”
다른 영생자들도 표현에 민감했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었다. 마지막 희망은 사라졌지만, 패배를 아름답게 꾸밀 수는 있다는 것을.
“그리고 ···. 이제 5일인가? 진은 5일 남았지?”
영생자들이 진을 에워쌌다.
그들은 이미 준이 영생자가 되든 안 되든 진을 해치우기로 했다. 진은 혼자 곱게 소멸한 녀석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이 소멸하는 순간, 세상을 멸망케 할 것이다.
“나에게도 비밀 조직이 있어. 네가 숨겨 놓은 핵폭탄은 이미 모두 찾아냈지.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이 있으면, 해보게. 그 정도는 들어주지.”
“유언은 아직 때가 아닌 거 같고, 커밍아웃 하나 할 게.”
“너 호모구나!”
“아니야! 뭘 그렇게 기대하는 목소리야! 꿈 깨라!”
진은 야마토 덴노를 노려보았다. 덴노의 얼굴이 의미 없이 발그래졌다.
“커밍아웃 10초 준다.”
샬롯이 시간을 쟀다. 영생자들은 샬롯의 공격 신호만을 기다렸다. 진일지라도 영생위원회 영생자 모두를 상대할 수 없다. 동시 공격이라면, 숫자가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나의 하루는 너희의 일 년이다. 난 7년 남았고 ···. 너희는 모두 합쳐도 6년이 안 돼요. 커밍아웃 끝.”
“거짓말! 우리가 공격하려 하니깐, 시간을 벌겠다는 수작이지!”
“시간은 충분히 벌었지. 너희의 핵폭탄을 모두 찾아서 치웠으니깐. 영생위원회를 만들어서 영생 팀워크 발휘하면, 안전하게 목숨 유지하려고 했는데 ···. 기본적으로 영생이 안 되니깐, 우리 너무 쉽게 흩어진다. 이럴 바엔 하나만 남기고 끝내자. 하나만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가장 수명이 긴 내가 남아야겠지?”
닫혔던 빌딩 문이 열리고 진 홀로 걸어 나왔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테레사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애들 시켜서 빌딩 청소 좀 해라. 좀 지저분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
테레사가 손수건을 건넸다. 진은 쌍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준은 참 대단해. 좀비 바이러스 면역도 신통방통한데 ···. 영생에도 면역이라니. 마킷은 요즘 어떻게 지내?”
“어제 준 회장의 선물을 받고, 조용히 소멸하셨습니다.”
“아! 그랬구나. 어쩐지. 오늘 아침에 통화가 안 되더라고.”
“첩보에 의하면 준 회장이 진님에게도 선물을 준비 중이라고 ···.”
“주는 사람 성의를 봐서 안 받을 수도 없고, 참 난감하네.”
“진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테레사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진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가 월급 적게 줬어? 왜 남의 선물을 탐내고 그래? 없어 보이게.”
“하지만, 준 회장이 준비하는 선물은 ···.”
“알아! 비싼 거겠지. 준이가 은근히 고급 취향이더라고.”
로켈은 굿데이 천라지망으로 진의 동태를 단숨에 파악했다.
흑룡회의 습격으로 준의 몸에 주삿바늘 자국이 남았다! 진이 아이큐 신기록 보유자일지라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용서해라.”
도청 채널에 진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로켈은 모른 척했다. 진이 대충 넘겨 짚은 것일지도 모른다.
“넘겨 짚은 거 아니야. 누가 군사 감청 채널 주파수로 이렇게 진심을 담아 말을 하겠어? 준은 거기 있니?”
“없습니다. 여기는 ···.”
“작전 차량이구나.”
“네.”
“너, 준에게 허가받고 작전 지휘하는 거야? 준이가 날 죽이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능력자와 관련된 사건은 제 소관입니다. 당신은 영생자 능력자로 저의 관리를 받으셔야 합니다.”
“누구 맘대로?”
“제 맘입니다.”
“많이 컸네.”
진은 몰랐다. 로켈에게 키를 거론하는 것이 죽음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교차로에서 트럭 한 대가 나타나 앞길을 막았다.
동시에 길 양쪽에서 요원들이 나타나 작살로 승용차의 타이어를 고정했다.
진의 여비서 테레사가 핸드백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진이 테레사의 어깨를 잡았다.
“뭐하냐?”
“진님은 피하십시오! 제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시간이 개야? 끌면 끌리고 밀면 밀려? 품위 있게 기다려봐. 쟤들이 준비 많이 한 거 같은데, 문도 직접 열어 줄 거 같지 않아.”
“진님은 너무 멋지세요. 어쩜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도 여유가 넘치세요.”
“사소한 걸로 너무 멋있어하지 마. 네가 기절할까 봐, 내가 매력 발산을 제대로 못 하잖아.”
진의 말대로 요원들이 문을 직접 열었다.
“나오시죠.”
“기꺼이.”
진이 차에서 내리자, 요원들은 일제히 샷건을 겨눴다.
장전된 총알은 안티 판타지늄 합금으로 만든 것으로, ‘영생자 킬러’라는 닉네임으로 통했다.
“학생 모집을 뭐 이따위로 하냐? 너희는?”
“학생모집?”
요원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내가 교육받을 게. 시온 교육.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야?”
트럭에서 문이 열리고 로켈이 나왔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진 앞에 섰다.
“요원 교육이 부실하네. 테레사!”
진이 소리치자, 테레사가 로켈에게 의자를 갖다 주었다. 로켈은 자연스럽게 의자 위에 올라섰다. 그제야 진과 키가 엇비슷했다.
“정말이십니까? 교육받으실 겁니까?”
“그래.”
“그럼 실력 테스트부터 하겠습니다. 당신에겐 빵이 있는데, 옆에 굶주린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많이 배고파?”
“죽을 만큼요.”
“그래? 그럼 좀 기다렸다가, 그 녀석이 죽은 다음에 ···. 아니야! 그건 재미없겠어. 죽으면 가지고 놀 수도 없잖아. 좀비도 살아 있을 땐 만들어야 제맛이고 ···. 빵을 부순다!”
“네?”
“나의 정답은 빵을 부순다고!”
“그게 무슨 ···. 자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빵을 부수고 가루로 만들어서, 비둘기를 잡아먹겠어! 내 옆에 있는 녀석이 많이 굶었다면, 빵보다는 역시 고기지! 이왕 먹일 거 고기를 먹여야 하지 않겠어?”
“음 ···.”
로켈은 갈등했다. 진의 수준은 일반적인 테스트로는 결정되지 않았다.
‘이것이 아이큐 최고 기록자의 레벨인가?’
“로켈, 고민하지 말고 준 회장에게 연락해라.”
주도권은 진에게 넘어가 있었다.
“기다리십시오. 에바님에게 먼저 보고해야 합니다.”
에어 스크린에 에바의 얼굴이 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에바는 그녀가 판단할 스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곧바로 준에게 넘겼다.
에어스크린에 준의 얼굴이 나오자, 진이 먼저 말했다.
“찔린 곳은 좀 어때? 많이 아팠어?”
“푸리에 쉴드를 뚫더라고요. 놀랐어요.”
“내가 신경 좀 써서 만들었거든. 디자인도 유니크 하잖아. 그 주사기는 돌려줘. 기념으로 가질 게.”
“교육받기로 하셨다면서요?”
“그래. 내가 고3 때에도 학원에 안 갔는데 ···.”
“그런데 어쩌죠? 당신을 수준에 맞는 교육 과정이 없는데, 당신을 가르칠 능력자도 없고 ···. 그냥 막 저항하다가 소멸하시면 안 되나? 그게 우리도 편한데. 로켈이 원하는 그림도 그런 거고.”
“수준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말고, 날 가르칠 교육 과정이 없으면, 내가 만들 게. 앞으로 영생계는 내가 알아서 잘 가르칠 게. 부처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소리치며 태어났다는데, 자발적 능력자 교육 과정 한번 만들어 보자! 너 기억나지? 유네스코에 날 추천해주기로 한 거. 영생주식회사 망했지. 영생자들이 좀비 됐지. 그리고 끼리끼리 싸우다가 자멸했지. 이 세상에 제대로 된 영생자는 나뿐이야.”
“알아요. 그래서 선물도 준비했어요.”
“우리 사이에 무슨 선물을 주고받아. 애들도 아니고.”
갑자기 진의 여비서 테레사가 끼어들었다.
“준 회장님! 진님은 앞으로 7년밖에 살지 못하십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준짱 안 됩니다! 진과 같은 영생자는 결코 혼자 죽지 않습니다. 물귀신 작전을 써서 인류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놈입니다.”
“멸망 안 시킨다.”
진이 앞으로 나섰지만, 테레사를 빼고는 아무도 안 믿었다.
준도 긴가민가했다.
“이유는?”
“나는 종교는 없지만, 물질 순환은 믿거든. 내 몸이 죽어서 분자 단위로 분해되면, 그 분자가 돌고 돌아 언젠가는 나의 모습으로 다시 재조립되지. 그런데 인류가 망해버리면 ···. 다시 태어날 수 없잖아. 로켈 수준에 맞춰서 설명하자면, 물질 순환이 나의 종교고, 물질 순환을 방해하는 짓은 안 해. 너희를 위한 게 아니라, 날 위한 일이지.”
“헛소리!”
“상상력이 부족하면, 그런 식으로 비난하더라고. 내가 소멸하면 ···.”
진은 우수에 찬 눈길로 테레사를 쳐다보았다.
테레사는 얼굴을 붉혔다.
최후가 될지도 모를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실직자가 추가된다.”
“지금 제 걱정해주신 거예요?”
테레사는 무지막지하게 감격했다.
“걱정은 아니고 ···. 굿데이 수준에 맞춰 설명한 거야. 준, 어때? 설명 통했어?”
“그래. 너에게 교육 과정 제작을 의뢰하겠다.”
“콜. 이번 일은 공짜로 해주지.”
“그럴 필요 없는데 ···.”
“소멸하기 전에 있는 돈 다 쓰고 가려고. 지금부터 부지런히 쓰지 않으면 몇 푼 남을 거 같아.”
“그런 이유라면 ···.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