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35화 (132/141)

< 테라마인드-10 >

듀크는 맘 독하게 먹고, 굶었다.

그는 철장 밖의 중년 여자가 그를 해치지 못할 거라 믿었다.

‘그년이 원하는 건, 내 목숨이 아니라 정액이니깐.’

이틀을 굶은 듀크 앞에, 중년 여자가 맛깔스럽고 향기로 음식이 든 은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듀크는 철창 밖에 있는 음식을 보고 눈이 돌아갔다.

그의 독한 마음은 음식 앞에 화르르 불타 사라졌다.

침이 샘솟았다.

여인은 음식 쟁반을 철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았다.

“유기농으로 만든 것들이죠.”

“뭐든 좋아. 제발 ···.”

“드릴 거예요. 그전에 저에게 주실 게 있으실 텐데요.”

그녀는 빈 플라스틱 컵을 보았다.

“일단 먹고 나서 ···.”

“아뇨. 그게 먼저예요. 저는 세 번 결혼했어요. 남자가 어떤 짐승인지 잘 알죠. 그게 먼저고, 먹는 건 나중이에요.”

듀크는 어쩔 수 없었다. 갇혀있는데다 ···. 너무 배가 고팠고, 눈앞에 있는 음식은 너무나도 맛있어 보였다.

“잠깐! 내가 준다고 해도 ···. 다른 여자에게 내 거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지? 내가 직접 전달하는 게 ···.”

“그건 당신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녀가 대답할 때, 시선이 왼쪽 위를 향했다. 카메라가 숨겨진 위치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촬영해서 증거로 남길 계획이었다.

“내 아들 준이 복수할 거야! 내 맹세코 ···.”

듀크는 투덜거리며 정액을 넘겼다.

그리고 음식을 얻었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 했기에, 철장 안에 있는 러닝머신을 밟아야 했고, 명상도 해야 했다.

정해진 스케줄을 지키지 않으면, 어김없이 식사가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디톡스 과정이라고 했지만, 디톡스 당하는 듀크는 죽을 맛이었다.

“내 아들 준이 기필코 이 치욕을 갚으리라!”

로봇의 활약으로 좀비 역병은 진정국면에 들어섰지만, 굿데이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호흡기를 통한 좀비 감염 사례가 나타났다.

도쿄 지하철에서 갑자기 한 여자가 발작하다가, 좀비로 급변했다.

사람으로 꽉 찬 공간에서 좀비 역병은 빠르게 퍼졌다.

굿데이의 로봇 부대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도쿄 인구의 5% 이상이 좀비로 변한 후였다.

도쿄가 정리될 즈음, 러시아, 베트남, 인도에서 산발적인 좀비 발생이 보고되었다.

좀비가 되면 다시는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지만, 좀비에 감염되지 않는 백신은 개발 가능했다.

세계 보건기구와 영생의학 주식회사 그리고 굿데이가 백신 개발에 매달렸다.

영생자 진이 이끄는 영생의학 연구소가 진단 킷트를 만들어냈다.

킷트를 피부에 대면, 좀비 바이러스에 노출된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었다.

모든 인류가 잠재적 좀비였던 것이었다.

에바가 영생의학 연구소의 진단 킷트를 가져와서, 직원 검진을 했다.

“맙소사! 사실이네! 나에게도 좀비 바이러스가 있고, 로켈, 호세, 수잔 ···. 세이턴도 바이러스 양성이야!”

극단적인 결과에 모두가 몸서리쳤다.

어느 날 갑자기 좀비가 되어서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극심한 분노가 좀비 바이러스를 활성화한다는 연구가 있어. 최근 도쿄에서 일어난 최초의 좀비도 호스트바에서 일하던 여자였고, 인도에서도 사창가에서 좀비가 발생했어. 오늘부터 분노 금지! 그리고 ···.”

에바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분노와 섹스가 결합한 전문 용어가 있을 거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준짱의 결과는 어떻게 나왔죠? 준짱도 바이러스에 감염됐나요?”

로켈은 물으면서도, 준짱이 감염됐을 거라 짐작했다. 홍콩 뒷골목을 돌아다녔던 준이었다. 감염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네거티브.”

로켈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일제히 정지 상태가 됐다.

모든 인류가 양성 반응을 보였고, 키우던 붕어도 양성 반응이 나온다.

아마존 깊숙한 곳의 달팽이도 양성이다. 좀비 바이러스는 이 세상 곳곳에 퍼져 있었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홍콩 뒷골목을 누빈 준이 음성이라고? 준에겐 바이러스가 없다고? 이게 말이 돼?

“아 ···.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준짱에겐 바이러스가 없다는 거죠?”

“그래.”

“준짱 같은 경우를 뭐라고 하죠? 완전 면역체?”

“나에게 어려운 거 묻지 마. 수잔!”

생물학은 수잔의 전문분야였다.

“완전 면역체라는 걸, 불가능해요. 면역이 복잡한 거라서, 완전한 게 있을 수 없죠. 준 대표님은 ···.”

수잔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이 기묘한 문제를 한마디로 정리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수잔은 준의 유니크한 음성반응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문학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했다.

“···. 리미트리스 하잖아요.”

그녀는 표현이 너무 약하지 않나? 싶었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다들 ‘리미트리스’로 결론 보는 눈치였다.

사무실에 있던 준이 나왔다.

시선이 일제히 준에게로 쏠렸다.

인류최강 완전 면역체 리미트리스 준.

“표정들이 다들 왜 그래?”

직원들의 표정은 감탄과 경이 그리고 신비로움과 찬사가 뒤범벅된 환희에 찬 얼굴이었다. 수잔은 눈물까지 흘렸다.

유진 악마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황홀한 표정을 더했다.

준은 그들의 표정을 분석해서 끝끝내 생각을 읽어냈다. 그런 거냐? 고작 좀비 바이러스 음성 반응 때문이라니.

“인류 모두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모두 좀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준느님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신으로 등극하십시오.”

유진 악마가 멋들어지게 무릎 꿇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일어나라.”

“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유진 악마는 귀엽게 혀를 내밀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꿨다.

“잠깐만요. 중앙도서관 길버트입니다.”

유진 악마는 에어스크린을 띄웠다. 도서관에 좀비가 설쳤다.

중앙 도서관은 준의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좀비가 나타나다니!

지금까지 오렌지 시티를 좀비 청정지역이기도 했다.

“도서관이면 분노할 일이 없는 곳이잖아? 조용하고 사색적인 분위기에 웬 좀비?”

에바가 눈살을 찌푸렸다. 에어스크린으로 비친 도서관은 역동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직원들은 심드렁했다.

좀비가 흔한 세상이었다. 미친개보다 좀비가 더 많다.

좀비가 무서운 게 아니라, 좀비 따위가 준의 도서관에서 난장판을 친 게 용서되지 않았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호세가 재빨리 뛰어 나갔다.

1분도 되지 않아, 에어스크린에 호세의 모습이 보였다. 호세는 샷건으로 단숨에 좀비들을 처리했다. 피가 튀기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좀비는 더는 확산하지 않았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전염된 좀비의 숫자는 54명이었다.

킹스덤 대학은 이번 사건을 굿데이에게 의뢰했다.

소중한 학생들이 좀비가 되어 덧없이 죽었다.

누구든 좀비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준의 생활공간인 중앙도서관에서 좀비가 나타나다니!

수잔이 최초의 좀비를 조사했다.

누구나 좀비 바이러스를 가졌어도, 본격적인 좀비가 되려면 상당한 분노가 작용해야 한다.

이른바 ‘좀비 발현 이론’이었다.

좀비는 경영학과 학생이었다. 최근 수치 계량학을 배웠는데, 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했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굿데이의 조사 발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졌다.

“스트레스가 이렇게 그렇게 위험한 거였구나!”

사람들의 적응능력은 엄청났다. 그들은 좀비 세상을 무난하게 받아들였다. 좀비 관련 농담도 흔해졌다.

청소년들의 희망 사항 1순위는 좀비가 되지 않아서 죽는 것이었다. 희망 사항 2순위는 좀비가 되기 전에 연애하는 것이었다.

TV에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 프로그램들을 방송했다.

‘인생은 좀비 지뢰밭’이라는 노래가 유행했고 ···. 사람들은 준을 신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영생자도 예외 없이 좀비 바이러스 양성이었지만, 준은 유일하게 음성이었다.

좀비 역병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풍경은 로봇이었다.

특수부대도 대처하지 못한 좀비들을 헤임달의 로봇은 능수능란하게 제압했다. 그리고 일반인을 구해내는 활약까지 보였다.

굿데이의 로봇은 카페에서 주문받고 배달하고 음식도 직접 만들었다. 아이를 돌보는 보모 로봇도 보급되었다.

학교 선생님도 로봇이었다! 굿데이의 로봇은 인간을 이해하고, 가르치고, 돌봐줬

다.

애완용 로봇도 인기였다.

덩치 큰 도사견도 좀비가 나타나면 앞장서서 달아났지만, 애완용 로봇은 주인을 지켜주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사람들은 로봇에게 애정을 느꼈고, 제일 친한 친구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일자리를 빼앗기는 건 어쩔 수 없어도, 가족 관계와 친구 관계까지 로봇이 대신하는 것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로봇의 보급 기간은 좀비 역병만큼이나 빨랐다.

좀비 때문에 폐허가 된 곳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로봇들이었다.

굿데이의 로봇 테크닉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굿데이의 저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헤임달이 꾸준하게 로봇을 생산했고, 굿데이는 필요한 곳에 던져넣었다. 국가와 종교 이데올로기는 따지지 않았다. 기증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소득 중심 시스템’을 도입할 것!

일자리 중심 시스템에 로봇들을 마구 투입하면, 일자리를 잃은 인간은 그냥 굶어 죽거나, 로봇에게 빌어먹어야 한다. 로봇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가 진리처럼 통하던 시대도 있지만, 굿데이가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농담보다 못한 헛소리로 취급되었다.

“일하지 않는다면 뭘 해야 한단 말이오!”

최고 종교 회의의 종교학자가 따졌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일하는 것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신에 대한 찬양이기도 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인간답게 일하는 것은 신을 섬기는 행위였다.

“일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일자리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소득을 제공하라는 뜻입니다.”

“소득이 있는데 누가 일하겠습니까!”

“그 뜻은 일터로 내몰겠다고 소득을 주지 않겠다는 건가요?”

“인간은 일하면서 신과 가까워집니다. 당신네의 소득 중심 시스템이라는 건 ···.

악마의 발상이오!”

에바는 살짝 혈압이 올랐다. 소득 중심 시스템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스템이 보급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악마가 되거나, 일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고, 신 나게 놀기도 했다. 세상은 더 안전하고 풍족해졌고,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무엇보다 사는 것의 의미가 달라졌다.

돈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와 가치가 더 중요했다.

하루하루가 더 재밌어졌다.

엄청나게 게을러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삶을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대부분 게으름의 시기를 보내면, 뭔가를 하려고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에바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지만, 종교학자에게 강요할 순 없었다.

“사실 ···. 로봇이 충분하지 않아요. 열심히 일하세요.”

에바는 그곳을 떴다.

종교학자가 굿데이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자들과 함께 24시간 일하는 형벌을 받았다.

처음 그는 찬양가를 부르며 열심히 일했지만, 36시간이 지나자 맛 가기 시작했다.

아주아주 열심히 일하는 것과 아주아주 게으른 것 둘 다 나쁘지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친 노동이었다.

삼 일 후 굿데이로 전보가 도착했다.

“위대하신 종교학자께서는 그의 뜻대로 일하다 신의 곁으로 갔습니다. 그분이 옳으셨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신과 엄청 빨리 가까워집니다. 우리 종교회의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일찍 신을 뵐 준비가 되어있지 못합니다. 굿데이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에바가 은밀하게 알아본 결과, 종교회의는 종교학자에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진리를 다르게 적용했었다. ‘일해도 먹지 말라.’ 종교학자가 과로로 죽은 건지, 굶어 죽은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듀크가 갇힌 철장 안은 넓었다. 그는 기계처럼 생활했다. 뱃살도 사라지고, 근육질 몸을 갖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핼쑥했는데, 그가 맡은 임무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그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하루가 다르게 중년 여자의 배가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뱃속에 든 게 ···.”

“맞아요. 당신 아이죠.”

듀크는 철장을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저 마녀 같은 년이 내 씨앗을 품다니!’

혼란스러웠다.

듀크는 거짓 미소를 꾸며냈다.

“이제 날 풀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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