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마인드-8 >
블랙마켓의 최고 인기 상품은 스키마와 강화 능력이었다.
스키마는 생체 반응과 면역반응을 조절하고, 노화반응도 늦추는 꿈의 의료기술이었지만, 굿데이가 파라엔진을 보급하면서 낡은 구식이 되었다.
강화 능력은 주로 닥터 칼라니티가 생산했는데, 닥터 칼라니티가 굿데이의 교육을 받은 후로 생산이 거의 중단되었다.
현재 블랙마켓에서 유통되는 강화능력은 예전보다 품질이 낮았다.
블랙마켓에서 또 다른 인기 상품이 나타났다.
바로 영생이었다.
“대부분 할부 형식이에요.”
유진 악마가 상품 내용을 에어 스크린에 띄웠다.
블랙마켓에서 판매되는 영생은 일시금으로 살 수도 있지만, 매우 비쌌다. 일시금으로 영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001%에 불과했다.
블랙마켓의 영생은,
먼저 영생을 받은 후, 일하면서 갚는 방식으로 많이 팔렸다.
“하루 평균 판매량이 150건이 넘습니다.”
테이블 가운데 떠 있는 에어스크린에 지역별 판매량이 나타났다.
준과 굿데이 직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일 평균 판매량 150건은 작은 숫자이긴 했지만,
구매자가 없는 게 아니라 팔 물건이 부족한 것이었다.
영생 상품은 나오자마자 빠르게 팔렸고, 하루가 다르게 판매량이 늘었다.
물건만 충분하다면, 한 달 내로 영생자 천만 명 시대가 온다.
“영생자의 법적 권리는 보통사람과 같습니다. 다수결로 정해지는 민주주의에서 영생자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되는 건 시간문제죠. 그렇게 되면 세상의 규칙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변합니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영생자는 존재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비했지만, 그들의 숫자가 늘면 주류가 될 것이 분명했다.
“진이 영생의학 기술이 뚫렸다고 했지만, 그의 진짜 목표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요?”
에바는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영생자는 판타지늄 캡슐을 계속 먹어야 하는데, 사람의 피가 캡슐을 대신할 수 있죠. 영생자 입맛에 사람의 피가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 신입 영생자를 중심으로 살인사건이 빗발칠 거예요.”
수잔이 걱정거리를 더했다.
“영생자의 능력도 문젭니다. 육체 능력은 기본적으로 앞서고, 가끔 강화능력을 얻기도 합니다.”
로켈도 걱정을 늘어놨다.
“영생하겠다는 걸 말릴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이 문제.”
카이는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준을 보았다.
준은 모든 문제의 솔루션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었다.
직원들은 진즉부터 준의 말만 기다렸다.
“받아들인다.”
직원들에겐 준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받아들인다고? 영생자 월드를?
“영생자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있는 걸 없다고 할 순 없지.”
“하지만 ···.”
로켈은 입술이 떨렸다. 영생자는 젊고 젊은 인간의 형태를 띠지만, 정신세계는 짐승보다 못했다.
“유진! 판타지늄 판매량은?”
준이 말하자, 테이블 중앙 에어스크린에 그래프가 나타났다. 판타지늄 판매량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최근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가팔랐다.
“블랙마켓에는 영생의학 정보까지 나돌고, 그 정보만으로도 영생을 만들 수 있어. 증가한 판타지늄의 10%만 영생 제조에 사용되어도, 생산 가능한 영생 분량은 오백만 명이 넘어.”
준의 담담한 설명에 직원들은 소름이 돋았다. 영생자 오백만 명이라니!
“만일 ···. 생산량을 늘리려고, 질 나쁜 판타지늄을 사용하거나 판타지늄 함량을 줄이면 ···.”
준의 생각은 그대로 에어 스크린에 투사되었다.
좀비 같은 언데드와 늑대인간 그리고 굶주린 뱀파이어의 형상이 가득했다.
“끔찍하네요.”
수잔이 몸을 떨었다.
“완벽함은 유일성을 추구하지만, 불완전한 것은 증식하고 전염되지.”
화면이 다시 바뀌며 세계 지도가 나타났다. 지역별 판타지늄 소비량이 나타났다.
일주일 동안 홍콩이 가장 많이 판타지늄을 소비했다.
홍콩의 일주일 소비량은 중국 전체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홍콩이 짝퉁 천국인 건 알지만 ···. 설마 아니겠죠?”
호세는 아니길 바랐다. 홍콩지역에서 사용된 판타지늄은 짝퉁 영생자 삼십만 명을 만들고도 남는 양이었다.
*
밑져야 본전이라는 기분으로 영생을 샀다.
딜러는 효과가 없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만일 진짜 영생이라면, 넘치는 젊음과 강한 힘 그리고 엄청난 기회를 챙길 수 있다.
80세가 넘고 병든 그에겐 나쁜 거래가 아니었다.
엄청난 고통의 파도가 지나간 다음, 세상이 달라 보였다. 힘이 넘쳤고, 허기가 느껴졌다.
양로원의 그의 친구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영생을 얻은 그의 모습은 영광스러웠다.
보이는 모든 것이 예전과 다른 의미를 가졌다.
그를 쓰레기처럼 바라보던 간호사의 눈길도 달라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기회를 뜻했다.
딜러가 준 판타지늄 캡슐로 공허감을 달랬지만, 금방 바닥났다. 캡슐을 먹지 못하면 피부가 흉측하게 변했다.
“캡슐이 필요해.”
“돈을 가져와.”
그는 8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자를 꾀고, 사기를 치고, 도둑질하고, 살인도 저질렀다.
돈이 필요했지만, 범죄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사람들의 절망감이 보기 좋았다.
죽음의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하는 눈동자도 맘에 들었다.
그는 딜러에게 영생을 팔아주겠다고 제안했다.
그의 친구 중에서 영생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너무 늦었어.”
그의 친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영생을 사지 않겠다고?”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영생이 진짜라는 게 확인되면, 그때부터 할부로 갚는 조건이었다.
지금껏 이런 조건을 마다한 늙은이는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샀어. 너보다 더 싸게 팔던데.”
홍콩은 껌 사는 것보다 더 쉽게 영생을 구할 수 있었다.
“망할!”
그가 욕하고 뒤돌아설 때, 친구가 입에 거품을 물며 몸을 떨었다.
“지랄 ···.”
그는 친구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간호사나 꾀어서 푼돈이나 뜯어볼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바닥에서 몸을 떨던 친구가 벌떡 일어나,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친구는 평소 틀니였지만, 목에 박힌 이빨은 대못처럼 길고 강했다.
영생을 얻은 그의 몸은 단검으로도 상처를 낼 수 없는 몸이었다.
“이게 무슨 ···.”
그는 친구를 밀어내고, 왼손으로 목을 감쌌다.
피부와 살 그리고 혈관이 찢겼다.
친구 눈동자는 붉었고, 손에는 긴 손톱이 돋고, 살점을 물고 있는 송곳니는 수술용 드릴 같았다.
그는 간신히 친구의 머리를 으깼다.
숨이 가빴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몸이 떨렸다.
그의 눈동자 전체가 검어졌고, 송곳니가 길어졌다.
10분도 되지 않아, 양로원의 노인과 간호인 그리고 직원들은 좀비로 변했다.
1시간도 되지 않아 양로원이 있던 동네 전체가 전염되었다.
중국 정부는 갑작스러운 좀비 역병에 홍콩을 격리 조치했다.
군대가 투입되었지만, 좀비 숫자만 늘렸다.
중국 정부는 세계에 도움을 청했지만, 좀비 역병의 원인을 아는 곳은 없었다.
중국 과학자들이 좀비를 잡아서 연구했지만, 원인체를 분리하지 못했다.
생체 금속 정보와 판타지늄 분석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었다.
마카오와 광저우에서도 좀비가 발생했다.
좀비는 완전무장한 전투원과 맞먹는 공격력을 가졌고, 영생자 계열 좀비는 이보다 훨씬 강했다.
중국 정부는 핵폭탄까지 고려했다.
중국 총서기 왕치산이 모든 일을 제쳐놓고 굿데이로 달려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태산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굿데이로 뛰어든 것이었다. 수행원도 고작 몇 명이었다.
“도와주십시오!”
그는 다짜고짜 늘어졌다.
에바가 그를 진정시켰다.
“총서기장님.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왕치산에게 녹차를 건넸다. 그는 냉수 들이켜듯 녹차를 마셨다. 굿데이에
왔다는 안도감에 목이 말랐다.
데이터 룸에서 준이 나왔다.
왕치산의 눈에 준의 모습은 구원자와 같았다.
“준 회장! 당신의 예언이 옳았소!”
왕치산이 벌떡 일어섰다. 굿데이는 영생의학 평가 보고서를 계속해서 공개했다.
지난주 보고서에는 변형된 영생 기술이 신종 전염병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에 긴급조치를 주문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굿데이의 보고서를 삼류 소설로 평가절하했다.
긴급조치보다 무시하기가 훨씬 쉬웠기 때문이었다.
“왕치산 총서기장님! 당장 중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건 ···.”
왕치산은 겁에 질려 있었다.
“에바. 가볍게 처방 부탁한다.”
“네!”
에바는 왕치산의 뺨을 때렸다.
“ ···. 고맙군. 덕분에 정신이 들었어. 내가 중국을 비우다니! 잠시 미친 것 같군. 그런데 이건 뭔가?”
정신이 든 왕치산은 에바가 건넨 손수건을 가볍게 흔들었다.
“코피가 ···.”
“아!”
왕치산은 요령 있게 코피를 닦았다. 에바에게 따귀 맞을 때, 영감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 정도로 에바의 따귀는 매서웠다.
“호세가 모셔다 드릴 겁니다.”
준은 다시 데이터 룸으로 향했다.
“준 회장!”
왕치산 총서기장이 소리쳤다. 준이 우뚝 멈춰 섰다.
“중국을 두고 어딜 가시는 건가!”
“저도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그전에 끝낼 일이 있습니다.”
“고맙네. 좀비 역병을 막아내면, 자네를 중국인으로 인정해주겠네.”
준은 힐끔 에바를 쳐다보았다. 에바의 처방이 조금 지나쳐서, 왕치산이 살짝 미친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에바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뇌파 통신으로 준에게 목소리를 날렸다.
‘원래 그런 분입니다. 중국인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으시죠.’
‘중국인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 중국인은 누가 만든 거지?’
‘중국인이죠. 기승전결 중국인. 이것이 왕치산 총서기장님의 확고한 믿음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슈퍼노바를 처방하면 고칠 수도 있습니다만 ···.’
‘냅둬라.’
준은 조용히 발걸음으로 데이터 룸으로 옮겼다. 데이터 룸에서는 카이와 수잔이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중국 정부의 협조로 좀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좀비 역병의 전염경로는 상처를 통한 감염이었다.
좀비의 체액에서 원인체를 가려내려 했지만, 후보 물질이 너무 많았다.
“영생 시장에 진출하지 않아도, 연구는 계속했어야 했는데 ···.”
준은 주먹을 움켜줬다. 수잔과 카이는 곁눈질로 서로 쳐다보았다.
‘방금 준이 후회한 거야?’
준이 후회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인류 멸망도 가능했다.
유진 악마가 홀연히 나타났다.
“준느님. 마킷이 통화를 원하십니다.”
“연결.”
에어 스크린으로 마킷의 젊은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인사를 생략하고 바로 용건을 찔렀다.
“자네 짓인가!”
어이없게도 마킷은 좀비 역병을 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준은 뚱한 표정으로 마킷을 노려보았다.
마킷이 움찔했다.
“좀비 때문에 영생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어. 이미지 마케팅을 해서 영생 호감도를 높이려는데, 자네가 광고 모델이 되어주면 고맙겠네. 모델료는 원하는 대로 주겠네!”
마킷은 중국이 망하든 말든 관심 없었다. 그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영생의학이었다.
준 곁에 있는 수잔과 카이는 이 세상에 준이 없다면, ‘망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요.”
놀랍게도 준은 짜증 내거나 화내지 않았다. 영생자를 상대로 짜증 내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드물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감정에 무감각했고, 준은 그 느낌을 너무 잘 알았다.
감정결핍 증후군일 때, 준은 영생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준의 굿데이 경영 원칙은 세계 평화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익 창조’였다.
그 원칙에 따라 요빅 생태계와 기후거래 시장에 뛰어든 것이었고, 영생 시장 진출을 포기했었다.
통화를 끝낸 준은 다시 데이터에 집중했다.
“데이터가 너무 부족해.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