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30화 (128/141)

< 테라마인드-5 >

로켈은 강철을 위아래로 보았다.

강철은 영생자 계열 능력자였고, 그 스펙트럼은 닥터 칼라니티의 강화 생물학 계열 능력자와 달랐다.

강하다!

시온의 기준으로 강철을 평가하면, 로켈보다는 약했지만, 선지자를 뛰어넘는 닥터 칼라니티 수준이었다.

“당신처럼 초법적인 영생자가 빈집에 숨어드시다뇨! 너무 없어 보입니다.”

로켈은 강철을 현관으로 안내했다.

강철은 로켈을 따라 바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런 거였군요.” 로켈은 머뭇거림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냈다. “준짱께서 영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손을 쓰시려 하셨군요.”

분명 그랬다. 강철은 준이 영생을 따르지 않으면, 제거하려 했다. 로켈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강철은 준을 처리했을 것이다.

강철은 로켈의 능력치를 가늠했다.

로켈은 강철에게 들키지 않고 준 곁에 은신했다.

은신 능력만 본다면 강철을 앞섰다.

그러나 서로 목숨을 뺏는 전투 상황이라면?

‘로켈의 능력이 나보다 강할까?’

“나이가 있으신 분이라서, 예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십시오.”

살기!

로켈은 예의 바르게 살기를 뿜어댔다.

존재를 지울듯한 강렬한 살기였다.

“윽! 그렇게 하겠네. 고맙네.”

강철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로켈이 친절하게 살기를 뿜어대서 경고를 날리지 않았다면, 괜스레 건들어서 개박살 났을 것이다.

로켈은 강철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지붕 위에 있는 십이 징벌좌 용에게 신호했다.

용은 조용히 강철을 미행했다.

로켈이 준에게 돌아오자, 준은 요리기구에 우유를 붓고 블루베리를 넣고 있었다.

“블루베리 스무디?”

“준짱께서 만들어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바로 스무디를 만들어냈다.

준과 로켈은 식탁에 앉아 함께 마셨다.

“시온에게 영생자 교육을 맡기려고 했는데 ···.”

“네. 저도 느꼈습니다. 영생자 능력이 예상보다 강했습니다. 예전에는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

로켈은 강철보다 강했지만, 강철의 강함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영생자 그룹 내부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놀랐을 듯이, 그들도 놀랐을 거야.”

준의 예측은 합리적이었다.

강철의 임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준을 설득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설득이 실패할 경우 준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영생 위원회는 강철의 능력이면 충분하리라 확신했겠지만, 강철은 로켈보다도 능력 미달이었다.

영생 위원회는 굿데이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굿데이가 강철을 만나기 전에 영생자 능력을 낮게 평가한 것처럼 ···.

영생자는 매우 폐쇄적인 조직이었고, 정보 캐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영생의학 창시자가 준과 맞먹는 천재라는 점이었다.

영생의학 창시자 진은 준처럼 젊은 나이에 판타지늄을 발견하고 영생에 이르는 길을 텄다.

영생의학은 판타지늄 계열의 신기술이었고, 판타지늄은 굿데이가 주력하는 분야였다.

굿데이는 지난번 직원회의에서 영생의학을 다뤘다.

영생의학 시장에 진출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했었다.

굿데이는 모든 이가 부유하도록 세상을 이끌기로 했다. 인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모든 이가 잘 살아야 굿데이의 서비스를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 ‘소득 중심 시스템’을 완성하려 했다.

일자리 중심 시스템은 승자와 패자 그리고 소모적이고 야비한 경쟁으로 인간과 자연을 갉아먹지만, 소득 중심 시스템은 다른 사람의 소득을 위한 경제 활동을 추구하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협동과 배려가 우선된다.

소득 중심 시스템은 경제 생태계를 풍성하게 한다.

굿데이는 인간의 노동력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시대가 오기 전에, 소득 중심 시스템을 뿌리내리고 싶었다.

본격적인 로봇 시대가 시작되면, 일자리 중심 시스템은 인류에게 재앙이 된다.

로봇보다 더 못한 비참한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득 중심 시스템이라는 큰 그림에서 굿데이는 영생의학 시장에 진출하려 했다.

한국의 영생의학 주식회사보다 값싸고 좋은 영생을 개발해서 모든 사람에게 팔려고 했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기술을 발전시키고 가격을 낮춰도 영생유지 비용이 너무 일방적이었다.

영생자 한 명의 일 년 에너지 소비량은 도시 하나와 맞먹었다.

영생자가 번창하려면,

고대 로마 제국처럼 소수의 귀족과 그 밑의 노예 신분으로 이뤄진 세상이어야 했다.

굿데이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한국의 영생의학 주식회사가 영생자 수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지만, 영생 제국은 탄생은 시간문제였다.

준은 세계 평화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영생제국 때문에 굿데이의 수익이 떨어지는 건 반갑지 않았다.

영생의학 평가 보고서 발표를 하루 앞두고, 강철이 집에 숨어든 것이었다.

너무나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이 세상에 우연의 일치는 없다.

‘직원회의가 새어나간 걸까?’

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에바, 로켈,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 카이, 수잔 그리고 세이턴은 모두 믿을만했지만, 영생과 관련된 일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건 준만이 아니었다.

로켈은 깊게 생각해본 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준짱 ···. 저는 굿데이를 믿지만 ···. 강철의 등장은 어딘지 모르게 수상합니다.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철은 나에게 영생을 제안했어. 굿데이 평가 보고서 내용을 알았다면, 영생을 제안하지 않았을 거야. 보고서에서 영생을 헬게이트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영생을 받아들일 리 없잖아. 강철은 평가 보고서의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영생을 제안했던 거야. 굿데이의 배신자가 있었다면, 평가 보고서 내용도 넘겼겠지.”

“그렇다면 ···. 강철의 등장 타이밍은 어떻게 설명하죠?”

“통찰력. 영생자 중에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 어쩌면 그 존재는 나를 앞설지도 몰라.”

“헉!”

로켈은 너무 놀라 숨을 쉴 수 없었다. 준을 앞서는 존재라니! 인공 지능 유진 악마도 준을 앞서지 못하건만 ···.

유진 악마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준느님. 통화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유진, 그런 거라면 나와 에바님에게 먼저 알려야 하지 않아? 기본적인 업무 규칙이잖아.”

“미스터 마킷이십니다.”

미스터 마킷은 영생주식회사의 소유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 정도 인물이라면, 로켈과 에바의 허락 없이 곧바로 준과 연결 가능했다.

“자네가 준이군.”

마킷의 모습은 젊음으로 충만한 영생자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쇠약한 늙은이였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의료용 침대에 기댔다.

“미스터 마킷님 반갑습니다.”

“그럴 리가, 내가 반가울 리가 없을 텐데 ···.”

마킷은 가볍게 콜록거렸다.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한 그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사업을 시작했다. 그전에는 웨이터와 막노동을 전전하던 홈리스였다. 그의 성공은 너무나 놀라워서,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미스터 마킷이라는 호칭을 선사했다.

“강철이라는 분이 찾아오시긴 했습니다.”

“그랬군. 그래도 무사한 걸 보니, 날 도울 수 있겠어. 그래 주겠나?”

“어떤 도움을 원하시죠?”

“우선 강철을 보낸 건 내가 아닐세. 믿어주겠나?”

“믿습니다. 강철은 영생 위원회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영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영생 위원회뿐이니깐요. 마킷님은 영생의학 주식회사를 소유하고 계시지만 ···.”

“경영은 하지 않지.”

“네. 이제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그들이 나를 영생자로 만들려고 하네. 나는 누릴 만큼 누렸어.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네.”

“영생 위원회는 영생자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경쟁자가 생기는 거니깐요. 그런데 왜 마킷님을?”

“자네와 같은 이유겠지. 쓸모가 있으니깐. 빨리 와주게. 간호사가 놓고 간 스마트 폰으로 연락한 거라네.”

유진 악마는 마킷의 위치를 확인했다.

캐나다였다.

로켈은 캐나다에 있는 능력자와 정보원들을 마킷에게 먼저 보냈다.

블루 이글 헬기가 지붕에 착륙했고, 준과 로켈은 서둘러 헬기에 탔다.

“세상이 점점 험해지는군요. 예전에는 사는 것도 어려웠는데 ···. 이젠 죽는 것도 어려워졌네요.”

로켈은 혀를 찼다.

그는 준에게 인정받을 좋은 기회로 여겼다.

그의 부하들과 정보원들이 마킷의 신병을 확보하면, 영생자와의 신경전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마킷은 그 누구보다 영생과 영생자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아는 인물이었다.

로켈의 기대는 마킷이 있는 저택에 도착하기 전에 허물어졌다.

정보원들에게 연락이 끊겼고, 부하들의 생명반응도 사라진 것이었다.

그들은 상황보고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단숨에 깔끔하게 당한 것이었다.

블루 이글이 저택 잔디밭에 착륙하자, 하얀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다가왔다.

살기와 적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의 미소였다.

“함정인가?”

로켈은 바짝 긴장했다. 지금 당장 죽어도 두렵지 않았지만, 준짱이 다칠까 걱정이었다.

“환영합니다.”

사내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영생자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능력자였다.

“미스터 마킷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준과 로켈은 남자의 안내를 받아, 3층으로 갔다.

마킷은 3층에서 고급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에어스크린 통신으로 봤던 죽기 일보 직전의 늙은이가 아니었다.

마킷은 광택이 날 정도로 화려하게 젊었다.

그는 인사를 생략하고, 짧게 말했다.

“늦었군.”

“그런 거 같군요.”

“자네 탓이 아니네. 간호사가 스마트 폰을 놓고 간 것부터 계획된 거였어. 내가 자네에게 연락하고 나서, 바로 영생을 이식받았네.”

“원하신 겁니까?”

“내 모습을 보게 ···. 원했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죽음을 도둑맞은 기분이 어떠세요?”

“굿데이의 첫 번째 원칙이 ‘받아들어라.’라고 하던데 맞나?”

“네.”

“나는 ···. 받아들였네. 두 번째는 뭔가?”

“적응해라.”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네.”

“그다음도 있습니다.”

“말해보게.”

“뛰어넘어라.”

“자네가 영생자가 된 다음에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도우려고 왔는데, 도와 드릴 일이 없어졌네요.”

“아까도 말했듯이 ···. 자네 탓이 아니네. 영생의학과 영생자에 관한 평가 보고서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굿데이의 평가 보고서 공개가 전쟁 선포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전쟁이라 ···. 공개를 막으려고 실력행사를 한 게 평화를 위한 일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받아줬으면 고맙겠네. 우리는 굿데이와 자네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네. 요빅 생태계, 기후 예측 모형, 최근엔 기후 독립까지 하나하나가 예술처럼 훌륭하네. 자네도 늙으면 영생을 원하려 할지 모르잖나? 사람의 생각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바뀐다네. 그날을 위해 여유를 가지게.”

마킷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준은 마킷을 영생자로 만든 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킷을 통해서 준에게 경고를 날린 셈이었다.

준은 대충 타협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마킷의 저택에는 능력자들이 포진해 있었고, 강철 수준의 영생 능력자의 기척도 느껴졌다.

강철보다 더 강한 능력자도 있는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이곳이 준과 로켈의 무덤이 될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준과 로켈은 원치 않게 영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

마킷처럼, 영생자가 되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고 만다.

“내가 자네라면, 하찮은 죽음이라도 소중히 지키겠네.”

마킷은 손을 조금 더 준에게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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