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늄-23 >
마약왕 엘차포는 아구아르디엔테를 마시며 분노를 음미했다.
아구아르디엔테는 콜롬비아의 독한 술이었다.
“보스 이번에도 실패했습니다.”
부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준을 노린 것은 여러 번이었다.
주로 독을 사용했다. 지나가면서 준의 손등에 독을 바르거나, 준이 앉는 자리에 독침을 세워두거나, 그가 마시는 커피에 독액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준은 멀쩡했다.
파라엔진 원천 기술을 가진 굿데이의 회장이라면, 몸 안에 특수한 장치가 있어서 모든 독에 면역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이번에는 이목을 끌더라도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저격.
조직이 섭외한 저격수 라이언은 지금껏 실패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도심에서 저격이었다.
숨어서 쏠 곳은 많았고, 사격 시야와 각도도 선택 가능했다.
그런데 실패하다니!
장갑을 꼈다곤 하지만, 총알을 잡아내다니!
“준이 죽는 걸 보고 싶다.”
엘차포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그의 조직은 준 때문에 너무나 큰 손해를 봤다. 중
독자들에게 마약을 공짜로 나눠주다니!
아직은 조직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마약은 불법이었고, 돈 많은 사람은 법 테두리에서 구할 수 없는 마약을 구하려 돈을 낸다.
구매자는 아직 많았다. 시장은 줄어들었지만, 수익은 충분했다.
그러나 굿데이의 마약 시장 압박은 계속될 조짐이었다.
굿데이는 파라엔진 업그레이드 계획을 발표했는데, 마약 중독 치료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었다.
그런 것이 가능할까?
가능했다. 굿데이는 이미 파라엔진에 금연을 돕는 기능을 넣었다.
담배의 니코틴은 생화학 대사를 거쳐서, 뇌의 도파민을 분비했고, 이 과정에서 강력한 중독 증세를 만들었다.
파라엔진은 도파민을 조절해서, 담배 피우지 않아도 같은 효과를 냈다.
수많은 담배회사가 파산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담배를 수출하던 선진국의 담배회사는 청산되었다.
“보스. 준을 죽여도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부하는 엘차포가 현실을 바라보길 바랐다.
그동안 엘차포의 방식은 잘 통했다.
말 안 듣는 정치인과 국회의원 그리고 시장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죽였다.
판사, 검사, 언론인, 경찰, 증인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잔인하게 죽였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누구도 엘차포를 건들지 않았다. 그는 공포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그의 왕국이 준이라는 애송이 때문에 흔들리지 시작했다. 엘차포는 기후예측, 요빅 생태계, 기후거래, 생체금속 정보량 ···. 이런 것은 관심도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바뀐다.”
“네?”
“준을 죽이면 바뀐다. 모든 게 바뀐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지?”
“아무 보도도 없습니다. 오렌지 시티 경찰청도 수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준이 죽을 뻔했는데, 조용히 넘어간다고?”
“굿데이가 직접 해결하려 하지 않을까요?”
“우리와 협상하려 하겠군.”
“저어 ···. 에어퓨마의 교육 영상을 보셨습니까? 해적들이 요빅을 탈취했을 때, 굿데이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네 말은 그들이 여길 쳐들어온다는 거야?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는데? 우릴 찾아낼 수 있을까? 그놈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준을 독살하려 했을 때, 이미 ···.”
유리창이 깨지면서, 엘차포의 말도 끊겼다.
철갑탄을 막아내는 특수 방탄유리는 조각나지 않고, 철판처럼 찌그러지며 창틀에서 떨어져 나갔다.
엘차포는 테이블 위에 둔 매그넘 권총을 집어들고 쏴댔다.
강화슈트를 입은 호세는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강화슈트를 맞고 튕긴 총알이 엘차포 부하의 머리를 관통했다.
찰칵찰칵.
엘차포의 권총이 쇳소리를 냈다.
엘차포는 권총을 던졌다.
“날 죽여라! 이 개잡놈들아!”
그는 호세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고, 그 욕은 호세의 아련한 추억을 자극했다.
아마존 정글에서 반정부군과 밀렵꾼을 상대했던 호세였다.
“왜 준 회장님을 노렸지?”
“그 새끼가 내 맘에 들지 않아서!”
호세는 통신을 껐다.
지금까지 호세의 시야와 행동은 굿데이로 전송되었지만, 앞으로 호세가 할 일은 공유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그가 할 일은 굿데이와 상관없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었다.
호세는 샷건으로 엘차포의 발목을 날렸다.
비명을 지르는 엘차포 머리에 헬멧을 씌웠다.
“조용하지 않으면 반대쪽 발목도 날려주겠다.”
엘차포는 호세의 무서운 목소리를 듣고, 고통을 참았다.
“음 역시. 참을만했군.”
호세는 샷건으로 반대쪽 발목을 날렸다.
그는 엘차포를 쉽게 죽이지 않았다.
엘차포가 저지른 사건 파일을 봤을 때부터,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세상엔 쓰레기가 너무 많다.
“쓰레기통에 가만히 있었으면, 될 텐데 ···. 감히 준을 넘보다니!”
“나에겐 친구들이 많다 ···. 그들이 복수해줄 거다.”
엘차포는 피를 흘리며, 저주를 퍼부었다.
호세가 그에게 스마트 폰을 넘겼다.
“네가 믿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내 이름을 말해줘라.”
“기꺼이 ···.”
엘차포는 브라질의 동업자에게 전화했다.
처음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아준 동업자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누구라고? 누가 네 앞에 있다고? 굿데이의 호세?”
“그래. 그 새끼가 날 죽이려 하고 있다. 친구! 복수를 부탁하네.”
“미친 새끼! 죽으려면 혼자 죽지! 나한테 전화는 왜 해! 야 이! 개새끼야! 호세 바꿔!”
“나 호세다. 말해라.”
“아! 저는 까밀로라고 합니다. 마약도 취급하고, 매춘도 알선하고 있습니다. 맹세합니다. 오늘부로 사업을 접겠습니다. 불법적인 모든 사업을 접고, 합법적인 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엘차포는 진짜 인간쓰레기입니다. 정말 좋은 일 하시는 거예요!”
“알았다. 다음 주에 확인하러 간다.”
“아! 네 기다리겠습니다.”
호세는 휴대폰을 다시 엘차포에게 넘겼다.
“누구든 좋다. 어디든 좋다. 전화해라. 단 한 명이라도 널 구하러 오면, 널 살려주겠다.”
엘차포는 친구와 부하, 그리고 가족에게도 전화했지만, 반응은 모두 같았다.
그들은 엘차포에게 욕하고 저주하며, 호세에게 엘차포를 빨리 죽이라고 재촉했다.
엘차포는 믿기지 않았다. 믿었던 아내에게도 배신당하다니!
“결론이 난 것 같군.”
“잠깐! 아직 한 명 더 남았다.”
엘차포가 마지막으로 택한 사람은 준이었다.
‘준이라면 날 살려줄지도 몰라! 아까 호세가 통신을 끄는 거 같던데 ···. 준이 날 살려줄까 봐, 그랬겠지!’
엘차포는 험한 범죄 세상에서 왕이 된 인물이었고, 머리 회전이 대단히 비상했다.
“준! 나는 널 죽이려던 엘차포다! 너에게 부탁이 있다! 내 앞에 호세가 날 죽이려 한다. 너라면 날 살릴 수 있다!”
“호세를 바꿔라.”
담담한 준 특유의 목소리.
엘차포는 희망을 보았다.
친구와 동료 그리고 가족에게도 버림받았지만, 준에게 구원받는다면 그것이 더 확실했다.
능력도 없는 친구의 도움보다 준의 말 한마디가 더 믿을만했다.
“호세 ···. 왜 엘차포가 아직도 살아있지?”
“죄송합니다.”
“이번 임무에 특별 수당은 없다.”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어디까지 했더라?”
호세는 만신창이가 된 엘차포를 내려다보며 샷건을 들었다.
*
로켈은 그의 사무실에서 시름에 잠겼다.
저격을 미리 알아내지 못한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범죄조직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그의 업무였다.
준이 며칠 전부터 특수 장갑을 가지고 다니는 게 이상했었는데, 인제 보니 준은 저격을 예상했던 것이었다.
준의 능력이라면 저격을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특수 장갑을 끼고 직접 총알을 잡은 것은 혹시 모를 2차 피해를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준이 피한 총알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자동차에 구멍을 낼 수도 있다.
그는 준을 찾아가 무릎 꿇었다.
“준짱! 저를 벌해주십시오. 준짱의 위험을 미리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계획이었고, 네가 신경 쓰는 능력자는 연루되지 않았어.”
“엘차포는 준짱을 독살하려 했는데, 저는 그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평범한 독이었어.”
“준짱은 아셨군요. 준짱에게 독을 쓴 사람을 찾아서, 대가를 치르게 하겠습니다.”
“독으로 흥한 자, 독으로 망했다. 모두 죽었어. 한 명은 내가 독이 든 커피를 마시고 멀쩡하니깐, 내 커피를 직접 마시다 죽었고, 나머지 두 명은 독살에 실패하고, 엘차포에게 죽임을 당했어.”
“세상에!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저에게 아무 말도 안 하신 겁니까? 저는 씨앗을 지키는 그림자 ···.”
그림자 기사라는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로켈이 몰랐을 뿐이지, 준은 수없이 많은 암살 위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준은 그 모든 위기를 묵묵히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냥 살아남은 게 아니라, 세계를 바꾸고 있었다.
“준짱 ···. 혹시 최근에도 제가 모르는 일이 있습니까?”
“음. 다 말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 지금도 킹스덤 중앙 도서관 화장실에 킬러가 한 명 숨어 있어. 수법은 전기 올가미를 사용하는 자인데, 내가 일을 볼 때 목에 올가미를 걸 계획이야.”
“제가 직접 가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없습니까?”
“저격수가 한 명 더 있어. 방은 잡았고 날짜는 아직 안 잡은 거 같은데 ···.”
“제가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혹시 또 있습니까?”
“암살자는 아니고 ···. 감시자가 있는데 ···.”
“말씀해주십시오.”
“괜찮겠어. 내가 다 말하면 자존심 상할 텐데.”
“이와 중에도 제 생각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로켈은 조용히 물러나서, 에바를 찾아갔다.
그녀는 손이 하얘질 정도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니깐 ···. 준 회장님께서 온갖 암살 위기에 시달렸는데 ···. 우리가 몰랐다는 거지?”
“죄송합니다. 능력자 레벨은 꽉 잡고 있지만, 일반인이 꾸미는 음모는 아직 ···.”
“유진!”
에바가 부르자, 유진 악마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유진 악마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에바와 로켈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유진은 알고 있었어?”
“몰랐어요. 우리 준느님이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유진, 진정하고 깊게 분석해봐. 유진은 여러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잖아. 분석력도 최고잖아!”
“한 명 찾아냈어요. 일주일 전에 오렌지 시티에 온 남자인데, 여권에 있는 이름과 CCTV에 찍힌 얼굴을 분석한 결과가 달라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용병이에요.”
유진 악마는 오렌지 시티의 모든 보안 카메라와 영상장치에 접속하고, 개인 스마트 폰과 경찰 데이터베이스까지 털었다.
암살 용의자 명단이 길게 출력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
에바는 혀를 찼다.
준이 다니는 코스를 중심으로 암살 용의자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칼잡이, 독 전문가, 총잡이, 일렉나이프 전문가도 있었다.
“이렇게 독한 놈들 사이를 오가면서, 아직도 살아 있다니!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이네요.”
“감탄할 때가 아니야. 로켈. 내일부터 리스트에 있는 자들을 면담해.”
“내일이라뇨! 지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그전에 ···.”
로켈은 킹스덤 도서관 화장실 천정에 숨어 있는 킬러를 찾아내서, 개박살 냈다.
킬러의 솜씨는 별거 없었고, 준짱은 절대 이런 녀석에게 당하지 않겠지만 ···. 화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로켈은 수첩을 꺼내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누가 시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