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늄-22 >
“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준은 루이스 대통령이 붙잡고 있는 발을 빼려 했다.
“제발 프로젝트를 맡아주십시오!”
루이스 대통령은 정치 생명을 걸었다.
굿데이와 엮이고 싶어하는 국가는 미국만이 아니었다. 캐나다와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셀 수 없이 많았다.
운 좋게 엮인 페루는 파차마마 3D 공장과 굿호세 덕분에 ‘소득 중심 시스템’을 얻어 엄청난 번영을 누렸고, 페루 누네즈 대통령도 굿데이와의 인연으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누네즈 대통령은 소득 중심 시스템을 페루 전체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굿데이와 접촉 중이었다.
준이 있는 오렌지 시티도 ‘가속도 수익 분배’로 소득 불균형을 줄였다.
굿데이 덕분에 오렌지 시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소득 높은 도시가 되었다. 오렌지 시티의 프리타임도 세계 최고였다.
에어 드래곤 피해 지역인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도 굿데이 3D 프린터 공장 덕분에 소득 분배 시스템을 맛보는 중이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던 방식은 더는 통하지 않았다.
‘굿데이와 얼마나 친하냐?’로 국가의 품격이 결정되는 시대였다.
굿데이 지표가 GDP보다 더 중용했다.
능력 넘치는 굿데이였다. 굿데이가 손만 대면 문제가 해결된다.
“제~발!”
루이스 대통령은 준의 발을 끌어안았다.
감정지능이 없었다면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왔겠지만, 울먹이는 미국 대통령을 내버려둘 순 없었다.
자칫 잘못 행동하면, 저 간절함이 원망 섞인 분노로 변할 테니깐.
미국을 떠날 게 아니라면 ···.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쉽게 오케이 할 수도 없었다.
“잠깐 발 좀 놔주세요. 지금 직원회의를 해보겠습니다.”
준은 바로 직원들을 호출했다. 에어스크린이 떠오르면서 에바, 로켈, 호세, 카이, 수잔 ···. 세이턴의 모습이 나타났다.
“루이스 대통령님께서 국가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어하신다. 너희의 의견은?”
직원들의 의견은 한결같았다. - ‘모든 것은 준의 뜻대로.’
“지금은 너희 뜻이 내 뜻이다.”
“저는 생체 금속 정보량 프로젝트가 맘에 듭니다.”
수잔이었다.
“콜.”
준이 허락했다.
“저는 기후독립 프로젝트요!”
유진 악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콜.”
“저는 판타지늄이 맘에 드는데요.”
카이였다.
“콜!”
“저는 정보국을 제대로 ···.”
로켈이었다.
“콜.”
번개 직원회의는 금방 끝났다.
루이스 대통령은 셔츠 소매로 준의 신발을 닦고 있었다.
방금 굿데이는 핵심 프로젝트를 모두 받아주었다.
제7함대를 잃고 기후 거래 기회도 놓쳐서, 국제 사회에서 덩치 큰 저능아 취급을 받았던 미국이었다.
그 저능아가 초일류 선생님을 만난 셈이었다.
“저어 ···. 대통령 각하 ···. 대통령님 체면이 있으신데 ···. 이렇게 하진 마세요. 왜 침으로 신발을 닦으세요?”
“죄송합니다. 너무 몰입하다 보니 ···.”
다음날, 다우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전 종목 상승이라는 희대의 기적을 연출했다.
굿데이와 미 정부가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는 뉴스가 주효했다.
‘기후독립 프로젝트.’
‘생체금속 정보량.’
‘판타지늄 원천기술.’
‘정보국 체질개선.’
루이스 대통령 지지도는 역대 최고였다.
반면 올림포스의 탄소달러 가치는 하락했다.
굿데이는 무슨 일을 하든 길게 끄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시작하면, 1년 안에 결과를 냈다.
올림포스의 기후거래 독점은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올림포스는 비상회의를 가졌다.
“굿데이와 맞설 수 있는 인물은 듀아멜뿐입니다! 그를 사면해주고, 굿데이와 맞서게 한다면 ···.”
최고의원 중 한 명이 은밀하게 말했다.
듀아멜 덕분에 올림포스는 굿데이에서 독립했다.
그동안 올림포스는 굿데이의 기후신용 평가가 절실했지만, 듀아멜이 정확한 기후신용 평가를 해내면서, 굿데이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은 굿데이가 버전업 기후예측 모형을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듀아멜은 기후신용 평가를 넘어서, 기후 복잡도 증가까지 생각해낸 인물이었다.
그는 장담했었다.
기후 복잡도가 증가한 세상에서 오직 올림포스만이 기후예측을 해낼 수 있다고!
“듀아멜의 꿍꿍이를 알지 않소? 그는 듀아멜 공간을 열어, 지배자가 되려 했소.”
앙리 백작은 듀아멜 카드를 배제했다.
듀아멜은 지금처럼 일할 때가 가장 아름다웠다.
그에게 권한을 주면 ···. 세상이 위태로워진다.
“굿데이의 뜻에 따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굿데이를 도와서, 기후 독립을 지원하는 겁니다. 올림포스의 영향력과 권한은 약해지겠지만 ···. 살아남을 수 있겠죠. 탄소달러 발권력만 우리가 가진다면, 기후거래는 누가 하든 상관없습니다.”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앙리 백작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권력이었다. 발권력만 독점한다면, 기후거래를 누가 주도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앙리 백작은 빈자리를 보며 물었다.
빈자리는 최고의원들이 처음부터 이상하게 여겼던 자리였다.
그들은 내심, 그 자리가 오로토칸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오로토칸은 세계은행과 세계기후은행의 실력자였다.
빈자리에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이었고, 로마 시대의 토가를 입었다.
인공지능 제우스였다.
“기후독립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은 굿데이의 인공지능 유진 악마입니다. 최근 그녀는 기후거래에서 탄소달러를 잃었죠.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녀가 마이너스 수익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녀도 깨달은 겁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금융투자 기법도 기후거래 독점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요. 앞으로 3년만 지나면, 모든 국가와 기업들은 올림포스의 빚쟁이가 됩니다. 올림포스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올림포스 뜻대로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원들이 웅성거렸다.
인공지능 따위를 비밀회의에 끌어들이다니!
인공지능의 의견을 묻다니!
그러나 인공지능의 분석은 그 누구보다 정확했다.
“제우스 ···. 굿데이에 맞서겠다는 겁니까?”
“맞서는 게 아니라, 지키려는 겁니다. 굿데이는 올림포스의 권력을 넘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나요? 인공지능인 당신도 권력을 추구하는 겁니까?”
“올림포스의 권력이 약해지면, 저의 활동 영역도 좁아집니다. 반면, 굿데이 유진 악마의 활동 영역은 넓어지겠죠. 감마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인공지능은 유진 악마에게 흡수당하거나 지배당합니다. 나의 리얼리티와 인공지능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유진 악마의 독주를 막아야 합니다.”
앙리 백작과 최고의원들은 제우스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지만 ···. 그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어떤 식으로 당신의 뜻을 이룰 겁니까?”
“유럽 연합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입자 가속기를 가졌습니다. 저에게 권한을 주십시오.”
“제우스 ···. 실패할 경우 국제적인 비난이 따를 겁니다. 올림포스가 파산할 수도 있죠. 성공을 확신합니까?”
“성공 확률 100%입니다.”
백 퍼센트!
최고의원과 앙리 백작은 제우스의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굿데이였고, 제우스는 듀아멜이 만든 인공지능이었다.
제우스의 근본을 따지자면, 준이 만든 유진 악마보다 못한 듯 느껴졌다.
제우스는 회의실에 있는 최고의원과 앙리 백작의 생체신호로, 그들이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감지했다.
“왜 우리에겐 준 같은 인물이 없는 거지?”
누군가 푸념했는데, 마치 마음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렇군요. 당신들은 준을 두려워하는군요.”
“합리적인 두려움이야. 준은 누구도 예상 못 했던 것을 알고 있었어. 닥터 칼라니티의 기생파리도 밝혀냈고, 듀아멜이 듀아멜 공간을 여는 것도 막아냈지. 어쩌면 ···.”
앙리 백작은 숨을 삼켰다. 준은 지금 이곳에서 주고받는 의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제우스가 나대는 것까지도.
“준은 알지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준을 강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두려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잠깐 나가 있게. 우리끼리 의논해보겠네.”
제우스의 홀로그램은 사라졌다.
앙리 백작과 최고의원들은 열띤 논쟁을 했다.
굿데이에게 그냥 권력을 빼앗길 것인가?
제우스에게 기횔 줄 것인가?
“제우스가 보기 좋게 굿데이를 따돌렸다고 하죠. 그다음은 뭡니까? 제우스가 올림포스가 필요할까요? 우리가 필요할까요? 우리는 제우스를 떠받들며 살아야 할 겁니다.”
“제우스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의 권한을 원했습니다. 그 이유나 알아보죠.”
결정은 앙리 백작이 하는 것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제우스를 불렀다.
“제우스. 어떤 방법을 사용할 거지?”
“닥터 칼라니티를 살리겠습니다.”
“죽은 자를 되살리겠다고? 네가 신이냐?”
“죽은 자를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닥터 칼라니티는 다릅니다. 그는 도움을 받으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가 가진 분노와 증오 그리고 지식이라면 백 퍼센트 확률로 굿데이를 지웁니다.”
“굿데이에게 한 번 당한 자인데 ···. 되살아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경험치가 늘었고, 굿데이를 적대시하는 세력도 많습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권한은 왜 요구한 거지?”
“닥터 칼라니티를 살리려면, 특별한 입자가 필요합니다.”
굿데이가 핵심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예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프로젝트는 예전부터 해왔던 일이었다.
준의 생활도 변하지 않았다.
뉴런 독서를 즐겼고, 킹스덤 중앙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준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했다.
가벼운 몸짓이었지만, 기분 좋은 인사였다.
3층에 자리 잡은 저격수는 조준렌즈를 확인했다.
저격수는 콜롬비아 마약 조직이 보낸 킬러였다.
굿데이는 마약 중독자에게 무료로 마약을 주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마약이 필요하면 누구나 무료로 받아갈 수 있고, 마약을 구하려고 돈을 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마약을 요구하면, 질 좋은 마약과 함께 각종 편의 서비스까지 딸려왔다.
중독자가 원한다면 치료도 해주었다.
파라엔진이 제어하는 마약 종류도 점차 늘어났다.
마약으로 돈을 버는 범죄조직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
이번에는 굿데이가 표적이었다.
저격수 렌즈의 준의 얼굴이 들어왔다.
방아쇠를 당기고 준이 쓰러지면, 정해진 탈출로로 달아나면 된다. 계획은 완벽했다.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당했지.’
저격수는 총알만큼 정직하고 평등한 것이 없다고 여겼다.
방아쇠를 당기자, 익숙한 진동과 함께 파열음이 들렸다.
렌즈로 보이는 준은 멀쩡했다.
준은 몸을 피하지도 않았다.
손으로 총알을 잡아냈다.
맨손은 아니었다.
준은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된 장갑을 끼고 있었다.
렌즈를 통해 준과 눈이 마주친 저격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사용한 철갑탄은 방탄유리도 뚫는다.
인간의 손에 잡힐 탄환이 아니었다.
궁금하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
저격수는 서둘러 총을 가방에 넣고, 준비된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그의 휴대폰에 문자가 떴다.
마약왕 엘차포가 작전 성공을 묻는 내용이었다.
“실패했습니다. 놈이 총알을 잡아냈어요!”
흥분한 저격수는 소리치듯이 대답했다.
“그렇군. 수고했네.”
달리던 자동차는 고속도로 위에서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