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21화 (119/141)

< 판타지늄-21 >

듀아멜에겐 ‘능력 범죄’라는 가중 처벌이 이뤄졌다.

발목에는 위치추적 발찌,

이마에는 마인드 윈도우가 이식되었다.

마인드 윈도우는 판타지늄 구조자기 장치로 생각을 엿본다.

일반인의 생각을 엿보는 것은 사생활 침해지만, 범죄자인 듀아멜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듀아멜의 위치와 생각은 실시간으로 감시받았다.

학문적인 영역의 듀아멜 생각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반적인 영역은 ···. 좋아하는 음식이라든지, 줄서기, 지하철 자리 양보 같은 퍼스널티는 그냥 알 수 있었다.

“고급 와인을 좋아하고 ···. 인간성은 그냥 쓰레기군.”

실시간으로 듀아멜의 마인드를 감시하는 요원이 중얼거렸다.

마인드 윈도우는 깊은 곳의 무의식은 볼 수 없었지만, 기기조작 같은 정교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전두엽 생각’은 또렷하게 잡아냈다.

듀아멜은 범죄자 신분으로 오라클에서 일했다.

그를 대신할 실력자가 없었던 것이었다.

함께 일하는 올림포스 직원들은 듀아멜이 괴물을 불러낼까, 무서웠다.

“걱정 마라. 소환 능력은 차단당했다. 일이나 하자.”

듀아멜은 짧게 설명하고 업무에 집중했다.

달리할 게 없었다.

그의 이마에서 괴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피부밑에 ‘판타지늄 구조물’을 이식했기 때문이었다. ‘판타지늄 구조물’은 교육과정에서 박탈당했다.

판타지늄 증폭장치 없이 정신력만으로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듀아멜은 올림포스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었고, 그를 감옥에 가두는 것보다 써먹는 게 실용적이었다.

시온의 선지자가 가끔 들려서 듀아멜을 면담했다.

“요즘 잘 지내나?”

“네. 잘 먹고 잘 싸고 ···.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연구 활동은?”

청색 선지자는 부드럽게 물었지만, 듀아멜은 움찔했다.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지배자를 꿈꾸는가?”

듀아멜은 옆구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호흡이 엉켰다.

고강도 교육을 받을지라도,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마음의 독소를 다 빼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할 일이 아니다. 판결은 너의 행동에 대한 것이다. 네가 무엇을 꿈꾸든, 그것을 판결하지 않는다. 연구하고 탐구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지난번에 배웠던 것을 기억하느냐?”

“네. ‘준님을 생각하라.’ 였습니다.”

“준님께서 너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셨더라면 ···. 우리가 어찌 되었겠느냐? 아마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준이 듀아멜과 같은 생각을 했다면, 일찌감치 세상은 멸망했다.

“우리는 너를 고대 그리스 교육법으로 가르쳤지만, 고전 윤리학을 강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준님의 기준에 따라 살펴라. 듀아멜 공간을 열든, 괴물을 불러들이든, 괴수와 짝짓기를 하든, 준님을 생각하거라. 그것만이 살길이다.”

시온 선지자의 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었다.

준에겐 세상을 파멸할 기회가 수천 번은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런 준이 세상을 보존키로 했다면, 그 뜻에 따라야 한다. 시온 선지자가 가르치는 것은 철저한 힘의 논리였다.

예전에는 왕의 명을 거역하면 죽음이었다.

시온이 인정한 이 세상의 왕은 준이었다.

시온 선지자들은 만장일치로 준에게 마스터 등급을 주었다.

그림자 기사가 씨앗을 지켜주는 것이라면, 마스터는 시온을 지켜주는 레벨이었다.

무지막지하게 명예로운 등급이었지만, 준에게 비하면 형편없을 정도로 초라해 보였다.

마스터 등급이 낙엽처럼 보일 정도로 준은 강했다.

더 놀라운 것은 준이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리미트리스 준.

시온은 교육을 통해 능력자에게 딱 한 가지만 가르쳤다.

강자에게 복종해라!

그리고 이 세상에서 준이 제일 강하다.

그 논리는 밥도 안 주고 패는 교육을 통해 듀아멜 뼛속 깊이 새겨졌다.

듀아멜은 준을 떠올릴 때마다 뼈가 시렸다.

청색 선지자의 눈에는 듀아멜의 마음속이 환히 보였다. 마인드 윈도우를 볼 필요도 없었다.

청색 선지자도 듀아멜과 같은 과정을 거쳤었다.

“억울하냐?”

“네.”

“원망스러우냐?”

“네.”

“하아! 내가 그 이유를 안다.”

청색 선지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괜스레 듀아멜도 울컥했다.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줄 알고 살아왔는데 ···. 준은 너무나 큰 벽이었다.

듀아멜은 종교는 믿지 않았지만, 능력은 믿었다. 능력 위주의 사회야말로,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였다. 그런 세상이 열린다면, 당연히 왕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 갱생 교육이 필요한 범죄자였다.

“듀아멜, 울지 마라. 너의 억울함은 눈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매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

청색 선지자가 소매를 걷었다.

“아! 잠깐만요! 이제 억울하지 않습니다!”

“믿는다. 그러나 ···. 조사팀에서 네가 은둔생활을 할 때, 괴물들을 불러내서 살인한 증거를 찾아냈다. 죽은 그 사람들은 엄청 억울했을 거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인데 ···.”

“네 말이 다 맞다. 지금 맞는 것도 금방 지나간다. 지금은 아프겠지만, 성장통이라고 생각해라.”

청색 선지자는 깨우침을 주는 권능을 가졌다.

듀아멜은 죽은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좌절과 분노 두려움을 똑같이 느꼈다. 아니 이자까지 더해서 강렬하게 되받았다.

그가 능력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었다면 수백 번 넘게 죽었을 것이다.

교육받은 듀아멜은 또 달라졌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 같았다.

루이스 상원의원은 딸 잔느를 잃었지만, 준을 원망하지 않았다. 잔느는 앙심을 품고 닥터 칼라니티와 한패가 되어 기생파리를 이용하려 했다.

그녀의 눈먼 복수에서 세상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준이었다.

준의 어머니가 미아시스로 죽을뻔한 사건을 생각하면, 준은 정말이지 신사답게 행동했다.

그는 잔혹하게 잔느를 응징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엄청난 자제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루이스 상원의원은 선거 사상 가장 압도적인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메이드 인 굿데이 ···. 루이스 대통령을 표현하는 수식어였다.

메이드 인 굿데이는 루이스가 직접 만든 표어였다.

그는 모든 정책을 굿데이와 의논하겠다고 공약하면서, 메이드 인 굿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보통 상황이라면, 줏대가 없고 가치관이 불분명하다는 비난을 받았겠지만, 굿데이는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앞섰다.

유권자들은 굿데이 없는 미국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굿데이가 미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간다면 ···. 그냥 끔찍했다.

백악관에 입성한 루이스 대통령은 첫 번째 초대 손님으로 준과 굿데이 직원을 불렀다.

굿데이 직원은 모두 노벨상 수상자였고, 세계 운명을 좌우할 권력을 가졌다.

굿데이는 티타임을 겸한 직원회의에서

‘듀아멜 공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다가올 능력자 시대의 대응.’

‘기후거래소의 독립 시기.’

‘생체 금속 정보량의 발전 방안.’

‘판타지늄 테크닉이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

‘영생의학 시장 개방.’

‘파라엔진 버전업 계획.’ 따위를 논의했다.

주제 하나하나가 인류 미래를 결정하는 내용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하는 것보다 굿데이를 누가 경영하느냐? 가 더 중요했다.

루이스 대통령이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준을 껴안았다.

그 사진 한 장만으로 미국 주가가 미친 듯이 오르고, 달러 강세가 되었다.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증거였다.

“따님이 보셨으면 기뻐했을 겁니다.”

준은 아주 간단하게 루이스 대통령을 울렸다.

“고맙소. 준 회장님.”

미국 대통령은 기업가들을 이름으로 부르거나, 공식 직함을 생략했지만, 예외적으로 공식직함과 존칭을 사용했다. 존경의 표시였다.

루이스 행정부는 아시아인을 많이 등용했다.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다양했지만, 주로 한국계였다.

아시아계가 국방부 장관에 오른 것도 처음이었다.

한국 이민 4세인 준을 바라본 결정이었다.

루이스 대통령은 국가 프로젝트를 준 앞에 펼쳤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가져가십시오.”

특혜가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굿데이가 맡아준다면, 엄청난 성과가 보장된다.

준의 눈에 프로젝트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기후독립 프로젝트.

준의 눈길을 읽은 루이스는 염원했다. 골라라! 집어라! 제발 잡아라!

굿데이가 기후독립 프로젝트를 맡아준다면,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북미연합이 기후거래소 동참을 요구할 때, 굿데이는 한 발 뺐다.

굿데이의 애국심을 의심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북미연합에는 그 후 기상재해가 한 건도 생기지 않았다.

준의 시선이 움직였다.

지켜보는 루이스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아무거나 하나만 잡아줘도 엄청난 정치선전이 가능했다.

두 번째로 준의 시선이 멈춘 프로젝트는 ···. 생체 금속 정보량.

루이스 대통령은 숨을 멈췄다.

굿데이가 미국을 위해 생체 금속 정보량을 연구해준다면, 기후거래소 따위는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었다.

올림포스는 굿데이 조약에 따라 모든 정보를 오픈해야 한다. 올림포스가 기후거래 수수료를 챙겨가지만 ···. 그 수수료로 유럽연합이 먹고 살지만 ···. 생체 금속 정보량은 생존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올림포스의 사하라 숲 프로젝트가 기생파리로 휘청거리지 않았던가!

루이스 대통령은 이를 악물었지만, ‘끄응’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준의 선택에 따라 미국의 미래가 결정된다.

루이스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에 뽑힌 이유를 정확하게 알았다.

잘 생겨서가 아니었다. 정치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쪽 정당 후보의 외모와 경험이 루이스를 앞섰다.

루이스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굿데이의 후광효과였다.

메이드 인 굿데이.

루이스는 이 수식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굿데이에 선택받았음을 자랑스러워했다.

준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판타지늄 프로젝트였다.

‘만능 연금술’로 불리는 판타지늄 기술에서 앞선다면, 생체 금속 정보량은 포기할 수 있었다.

판타지늄이야말로 진정한 원천기술이었다.

판타지늄이 없었다면, 듀아멜은 듀아멜 공간을 열지도 못했을 것이다.

판타지늄을 응용하면 모든 것이 가능했다.

한국의 영생의학도 판타지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오!”

루이스 대통령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손끝을 깨물며 준의 선택을 기다렸다.

미국의 미래가 결정되는 순간이었고, 이 순간에 준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준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루이스 대통령의 혈압은 최고 180과 최저 60을 넘나들었다.

준의 시선이 네 번째로 머문 곳은 ‘정보기관 체질 개선 프로젝트’였다.

최근 국가안전국의 정보 능력은 범죄조직보다 못했다. 심지어 X등급 사건을 처리하지 못해서, 시온의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파라엔진의 근본이 되는 스키마 프로젝트를 프로메타 제약회사에 넘긴 것도 안전국이었다.

안전국을 이끌던 케슬러 국장은 무리한 작전으로 엘리트 요원을 여럿 잃었고, 닥터 칼라니티에게 죽임을 당했다.

미국의 안녕을 책임지는 안전국이었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루이스 대통령의 가슴이 다시 쿵쾅거렸다.

준이 정보기관 체질을 개선해준다면, 제7함대가 전멸하는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 제가 요즘 바빠서 ···.”

준은 대충 예의를 갖추고, 굿데이 본부로 돌아가고 싶었다. 준의 스케일에서 볼 때, 맘에 드는 프로젝트는 없었다.

쿵!

루이스 대통령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준 회장님! 우리 미국을 가엾이 여겨 주십시오.”

쿵!

루이스 대통령은 이마로 바닥을 찧었다.

체면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준의 성격상 한 번 안 한다면, 평생 안 한다.

지금 못 잡으면 영원히 못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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