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19화 (117/141)

< 판타지늄-19 >

앙리 백작은 듀아멜에게 이네즈를 붙여주었다.

가우스우먼 이네즈는 굿데이 전문가로 통했다.

올림포스 시민과 직원 중에서 이네즈만큼 굿데이와 친한 인물도 없었다.

에바와의 관계가 결정적이었다.

이네즈는 듀아멜이 못마땅했지만, 앙리 백작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네즈와 듀아멜은 오렌지 시티로 떠나기 전, 특수 교육을 받았다.

강사는 프로파일러 래리였다.

래리는 실버 드래곤이 의뢰로 준을 분석했었고, 그 경험으로 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준과 굿데이에 관한 강의를 했다.

“준은 독특한 성격을 가졌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준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준이 되어보는 거죠. 이제부터 여러분은 감정결핍 증후군이고 아이큐가 75인 어린아이입니다. 엄마는 아름답지만, 바람둥이예요. 아빠는 못생겼지만 헌신적이죠. 당신은 엄마 뱃속에서 나왔지만, 아빠의 친아들은 아닙니다. 자! 지금 느낌이 어떠세요?”

준을 설명할 때, 래리가 항상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처지 바꿔 생각하기.

이네즈는 슬프다고 말했고, 듀아멜은 ···.

“더럽네.”

래리는 듀아멜을 빤히 쳐다보았다.

듀아멜은 몸을 뒤로 뺐다.

“느낌을 말한 건데, 왜?”

“압니다. 지금까지 여러 느낌이 나왔지만, 듀아멜 국장님처럼 리얼한 건 없었습니다. 감정결핍 증후군은 결벽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죠. 극도로 청결하거나 정리정돈에 신경을 많이 쓰죠.”

“준이 결벽증이라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바로 그겁니다. 준에게도 결벽증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지금은 당신이 준입니다. 당신에겐 모든 것을 깨끗이 하고 정리정돈 하려는 욕구가 강렬합니다. 어떻게 이 욕구를 극복하시겠습니까?”

래리는 점차 열정적으로 변해갔다. 다른 사람에게 준을 이해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듯 보였다.

이네즈와 듀아멜은 대답하지 못했다.

“준은 그냥 세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노숙자의 삶까지 연습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찾아 먹기도 했죠. 준의 일대기를 이야기할 때, 아버지 데이빗의 역할이 강조됩니다. 데이빗이 없었다면, 수학 천재 준도 이 세상에 없었겠죠. 하지만 ···. 저는 준의 최고 전환점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언론에 비친 준의 모습과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윈 대홍수 이후 준은 변했습니다. 킹스덤 중앙 도서관에서 여러 사람에게 커피를 사줬는데 ···. 상황을 종합해보면 감정적인 판단입니다. 이제 준은 감정결핍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확률이 높습니다. 두 분은 준을 만나서 뭘 하실 거

죠?”

“우리와 한팀이 되도록 설득할 겁니다.”

이네즈는 눈이 반짝했다. 준과 한팀이 되는 것!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랬다.

“그런가요?”

래리는 듀아멜에게 물었다.

듀아멜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어. 준을 만나봐야 뭘 할지 알 수 있겠지. 지금은 준에게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지. 그가 뭘 가졌는지도 모르거든.”

래리는 듀아멜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듀아멜의 말을 분석해보면, 듀아멜은 스스로 준과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그는 준보다 뛰어나다고 믿고 있어!’

아직도 저런 사람이 남아 있구나! 놀라웠다.

뭘 먹으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했다.

“평소라면 제가 해드릴 도움말은 딱 하나입니다. 준을 믿으라는 거죠! 하지만 듀아멜 국장님을 보니, 이번에는 다른 어드바이드를 해야겠군요. 아주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한 말인데 ···. 너 자신을 알라.”

“내가 준보다 못하다는 뜻인가?”

“노숙자의 삶을 목표로 하던, 준은 파루시아 투자로 평생 먹고살 돈을 벌었습니다. 당신이 준이라면 뭘 하시겠습니까?”

“초월 ···.”

“네?”

“모든 것을 초월할 ···. 그 무언가를 탐구하겠지.”

래리는 폐 속 공기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듀아멜은 준과 같은 부류가 확실했다.

세상엔 준 말고도 준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아는 것 같군.”

“듀아멜 국장님은 솔루션 판매로 자수성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 아직도 탐구 중이십니까?”

“탐구는 끝났고 ···. 실행 중이지.”

“그 실행이라는 게 ···. 준이 방해됩니까?”

“만나봐야 알겠지. 자! 나에게 어떤 도움말을 줄 거지?”

“제가 ···. 할 말이 없습니다. 제 충고가 필요한 사람은 ···.” 래리는 이네즈를 쳐다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보통 사람이죠.”

이네즈는 발끈했다. 가우스우먼으로 불리는 그녀였다.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래리가 덧붙였다.

“이네즈처럼 재능을 타고난 ···. 위대한 보통사람도 있지만 ···. 준 밑으로는 다 같은 보통사람입니다. 아닌가요?”

그는 이네즈에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양해 구하는 몸짓을 했다.

“듀아멜 국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요?”

이네즈는 확인해야 했다.

그녀는 듀아멜에게 밀려났다.

듀아멜이 보여준 능력은 그녀보다 뛰어났지만, 준과 대등할 정도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건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만 ···. 듀아멜 국장님과 함께 준을 만나실 거죠? 직접 보시면 되시겠네요.”

듀아멜과 이네즈는 비공식적으로 굿데이에 방문했다.

늘 그랬듯이 세이턴은 이네즈를 반겼다.

이네즈에게 꼬리 치던 세이턴이 듀아멜에게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나도 맘에 안 들지만, 손님이야. 물고 싶으면, 내가 보지 않을 때 물어. 지금 물면 내 입장이 곤란해.”

에바였다.

그녀는 듀아멜이 반갑지 않았다.

굿데이 직원회의에서 바람무늬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했다.

바람무늬는 기후 생태계에서 자연 발생했지만, 바람무늬에게 먹잇감을 나른 것은 올림포스였다.

올림포스와 바람무늬 사이에 있는 강력한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듀아멜이었다.

준이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그 파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이 사실을 알면, 올림포스가 뒤집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은 기후 재난으로 제7함대를 잃었고, 그 분노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분노가 올림포스와 유럽연합으로 향하는 날, 세계 3차 대전이 시작될 것이었다.

듀아멜이 헛기침했다.

“험! 지리공간 방정식을 만든 후로 오늘 같은 푸대접은 처음이군.”

“익숙해질 거예요.”

에바는 듀아멜은 준의 서재로 안내했다.

준은 조각상처럼 책을 읽고 있었다.

“준 회장님. 우리가 토론했던 개자식이 왔습니다.”

에바는 슬랭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재산 피해를 따지지 않더라도, 에어 드래곤으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듀아멜에게 있는 힘껏 욕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준은 책에서 시선을 떼고 듀아멜은 보았다.

듀아멜은 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아냈다.

“비공식 미팅이지만, 올림포스 대표로 찾아왔어. 성의를 보였으면 좋겠군.”

“들어오다가 하얀 개에게 물렸나요?”

“아니.”

“그럼 성의를 다한 겁니다. 오셨으니깐 가실 일만 남았는데 ···.”

“잠깐, 나는 빠질 게!”

분위기를 파악한 이네즈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에바는 이네즈와 함께 서재를 나왔다.

서재 문이 닫힐 때, 듀아멜은 갇힌 느낌이 들었다.

준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벽에 손을 댔다.

벽은 가볍게 회전하면서 미니바로 변했다.

“당신이 만든 듀아멜 공간은 저에게 좋은 안식처였죠. 날뛰는 공허감과 두려움을 그곳으로 보내, 길들였죠. 당신도 그랬나요?”

준은 듀아멜에게 85년산 자이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찬란한 포도 향이 방을 메웠다.

듀아멜은 한 모금 맛보며, 준이 한 말을 음미했다.

“듀아멜 공간에 공허감과 두려움을 보낸다? 재밌겠군. 시간이 나면 나도 한 번 해보지.”

“그곳에 다녀온 두려움이 얌전해졌는데, 처음에는 차원이동으로 깨달음을 얻은 줄 알았죠.”

“알겠어! 너의 두려움은 그곳에서 엄청 무서운 걸 본 거야. 너무나 무서운 걸 봐서, 현실 세상이 더는 무섭지 않은 거지.”

그는 자신이 한 말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며, 와인을 마셨다. 상표와 연도를 외우며, 똑같은 와인을 주문할 생각이었다.

“그 공간을 열면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지 아시겠군요. 쿠바를 휩쓴 에어 드래곤은 실지렁이 수준이에요. 인류가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당연히 감당하지 못하지. 인류는 나약하고, 부조리하고, 형편없어! 그들에게 지구는 너무 아까워.”

“당신도 인류 중 한 명이 아닌가요?”

준은 인류를 관찰자 관점에서 말하는 듀아멜이 신비로웠다.

“내가 말하는 인류는 나약하고, 부조리하고, 형편없는 것들이지만, 나는 달라. 너라면 알겠지?”

듀아멜은 한껏 기대했다.

준은 듀아멜 공간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

듀아멜 공간을 수학적으로 다룬 게 아니라, 경험적으로 다뤘다는 증거였다.

듀아멜 공간을 경험하면 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그것을 깨달음이든 해탈이든 초월이든 ···. 뭐라고 표현하든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다.

준이 가진 힘의 원천도 분명 듀아멜 공간에서 얻은 것이리라!

준은 듀아멜이 한 말을 곱씹었다.

인류는 나약하고 부조리하고 형편없는데 ···. 듀아멜은 다르다?

모든 인간은 인류라는 집합의 부분 집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 그게 아니라는 건 ···.

“가엾은 것. 당신은 부모 형제도 없군요.”

준의 대범한 결론에 듀아멜은 눈 밑이 떨렸다.

준은 검은색 사인펜을 손에 들었다.

“듀아멜 ···. 당신의 배꼽을 보여주세요. 엄마를 통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탯줄을 자르지도 않았을 테니, 개구리처럼 매끄럽겠죠? 포인트가 허전할 테니, 검은 점을 찍어드리죠.”

“치욕적이군.”

“익숙해질 겁니다.”

“듀아멜 공간을 경험했다면, 잘 알지 않나? 이 세상 너머에는 진짜가 있다는 것을!”

“듀아멜 공간에는 그 조건에 맞는 게 있죠. 그곳에서는 그것이 진짜겠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죠. 재앙.”

“듀아멜 공간이 두렵나? 그렇겠군. 너의 두려움이 그곳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더랬지. 나는 듀아멜 공간을 발견하고 나서, 삶이 시시했어. 노벨상도 필즈상도 의미가 없었지. 세상만사 모든 것이 유치했지. 사랑, 권력, 행복 ···. 모두 반감기가 짧은 즉흥극에 불과해. 너의 굿데이가 승승장구하지만, 결국 역사의 흐름에 파묻히게 될 거야. 남는 게 뭐가 있을까? 한국의 영생의학 주식회사에서 영생을 이식받으면 ···. 아니지. 너라면 굿데이 버전의 영생을 개발할 수도 있겠지. 천년만년 산다 한들 ···. 듀아멜 공간의 완벽함에 비하면 허무할 뿐이야.”

듀아멜은 잔을 모두 비웠다.

준은 그를 이해했다. 준도 듀아멜과 같은 것을 경험했다.

완벽함을 비교 기준으로 삼으면, 이 세상은 정말이지 너무 형편없다.

고백하자면 듀아멜과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기후예측도 제대로 못 하는 세상이 너무나 우스웠다.

그러나 ···.

“이 세상에서 당신의 허무함을 채울 방법이 있습니다.”

“불가능해. 나라고 안 해봤겠나?

“불가능한 방법을 사용했으니, 불가능했겠죠.”

“가능한 방법이 뭐가 있다는 거지?”

“단세포도 할 수 있는 거죠 ···. 의미 부여. 당신은 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죠?”

“의미부여라? 감정결핍 애송이가 할 말은 아닌데 ···.”

듀아멜의 눈매가 면도날처럼 예리해졌다.

래리가 옳았다.

준은 타고난 감정결핍을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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