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늄-18 >
바람무늬의 성장과 형태 변화는 초현실주의 예술작품 같았다. 구름을 잡아먹고, 주변 에너지를 빼앗았다. 뱀 같던 모양은 문어처럼 변해갔다.
“이렇게 좋은 구경을 혼자 할 순 없지.”
준은 바람무늬 1호의 영상과 내용을 공개했다.
바람을 보는 것은 공기 밀도와 에너지 이동을 측정해야 함을 뜻했다.
블랙홀 관측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었다.
구조 자기장 영상과 적외선 영상을 조합하고, 특수효과를 써서 바람무늬에 색깔을 입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람무늬는 화려해 보였다.
바람무늬는 두께 30킬로미터 길이 500킬로미터의 거대괴물로 성장했다.
바람무늬의 내부 온도는 주변과 확실히 달랐다.
화려한 컬러를 입은 바람무늬는 열두 개의 머리가 달린, 용처럼 보였다.
“바람무늬보다 ···. 에어 드래곤이 더 어울리겠어. 에어 드래곤의 에너지양은 얼마나 되지?”
“히로시마 원자폭탄 다섯 개와 맞먹습니다.”
충격적인 수치였지만, 준은 놀라지 않았다.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양은 원자폭탄 10억 개 이상이었다. 수십억 중에 다섯 개가 바람무늬로 전환한 것뿐이었다. 어쩌면 예전에도 바람무늬 같은 생명체가 존재했을 지도 모른다. 번개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
“에어 드래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에어 드래곤의 고도가 점점 낮아집니다.”
유진 악마는 스포츠 중계를 하듯이 떠들었다.
그녀에게 에어 드래곤의 존재는 신비의 동물 사전처럼 지극히 비현실적인 사건이었다.
그녀의 데이터베이스 분류법에 따르면, 바람무늬는 문학이나 창작 카테고리에 속했다.
에어 드래곤은 강력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바람을 거스르며 점차 뜨거워졌다.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바닷물을 흡수하듯이 끌어 올렸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어선이 에어 드래곤에 말려 하늘로 올라갔고, 산산 조각났다.
어선에 있던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멍하니 보던 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차 싶었다.
바람무늬에게 정신이 너무 팔려있었다.
형태에 현혹되어, 그 파괴력을 잊고 말았다.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위험해.”
유진 악마는 국가 연락망으로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에 연락했다.
남은 시간은 2시간.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빠르게 행동했다.
굿데이가 준 정보였다.
그들은 슈퍼 허리케인에 따르는 피난 매뉴얼을 사용하려 했지만, 유진 악마는 핵폭탄에 따른 대응방법을 권했다.
“그 정도입니까?”
도미니카 공화국의 다닐로 장관이 에어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는 창밖으로 맑은 날씨를 보며, 의문에 잠겼다.
‘이토록 좋은 날씨에 갑작스러운 난리법석이라니!’
굿데이가 아니었다면, 코웃음 치고 무시했을 일이었다.
“그 이상입니다.”
준은 다닐로 장관이 보는 에어스크린 한쪽 구석에 에어 드래곤 실시간 영상을 삽입했다.
“저게 뭡니까?”
“관측 데이터와 분석 보고서가 공개되었습니다.”
준은 기후 생태계의 신종 생명체라고 말하려 했지만, 다닐로 장관은 그런 쪽으로 관심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닐로 장관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절실했다.
다닐로는 늙은 눈동자로 바다를 헤집고 다니는 에어 드래곤을 제대로 보려 애썼다.
“계속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원자폭탄 15개의 위력을 가진 괴물입니다.
저 괴물이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원자폭탄이라는 말에 다닐로 장관의 눈동자가 활짝 열렸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관광산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피난 경보를 울렸다.
일반인들도 스마트 폰으로 굿데이의 비상경보를 공유했다.
유진 악마는 에어 드래곤의 이동 경로를 계산하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냈다.
다행히 피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서,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바다에서 놀던 사람들이 높은 곳으로 피난했다.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쿠바에서도 군대가 나서서 피난을 도왔다.
에어 드래곤은 허리케인보다 강력했다.
돌로 지은 교회와 성이 무너졌고, 현대식 빌딩도 허물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에어 드래곤이 지랄 떠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섬에 상륙한 에어 드래곤의 수명은 짧았다.
에어 드래곤이 도미니카 공화국과 쿠바를 쑥대밭으로 만든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공기에서 태어난 에어 드래곤은 공기가 되어 사라졌다.
파루시아 시즌처럼 여러 곳에서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
준은 파루시아 시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시하게 몇억 달러 구호금을 내지 않고, 도미니카 공화국과 쿠바에 파차마마 같은 3D 프린터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무너진 건물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구조요원 중에서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안전하게 사람들을 구했다.
로봇으로 이뤄진 굿데이 구조대였다.
헤임달이 요빅 부대로 제작했던 로봇들이 피해 지역에서 맹활약했다.
헤임달의 로봇부대는 현존하는 로봇 기술보다 몇 년은 앞서 있었다.
굿데이는 피해 지역에 단 한 명도 오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에어 드래곤의 영상은 세계적인 이슈였다.
바람무늬에서 에어 드래곤까지.
세상은 좀 더 위험해졌고,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올림포스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발표는 맡은 인물은 듀아멜이었다.
앙리 백작이 올림포스의 기초를 세웠다면, 듀아멜은 올림포스의 부흥을 이끌었다.
세상은 준의 모습을 많이 보았지만, 듀아멜은 신비에 싸인 인물이었다.
노벨상과 필즈상을 거절한 일화 때문에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 되었다.
그가 올림포스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놀랐던가!
듀아멜은 매우 슬픈 표정이었다.
준보다는 나이가 많았지만, 훨씬 노련해 보였다.
“통칭 에어 드래곤으로 불리는 지난번 재앙은 기후 관측 역사상 처음 보는 사건입니다. 올림포스 조사단은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밝혀냈다고 생각합니다. 쿠바가 비밀리에 기후 오퍼레이션을 행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에어 드래곤은 기후 오퍼레이션 불균형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그 원인은 쿠바의 단독 기후 오퍼레이션 때문입니다.”
듀아멜은 덧붙였다. 기후 오퍼레이션은 매우 정교한 작업이고, 미세한 틈이 생겨도 예측할 수 없는 초대형 재앙이 생겨난다고 ···.
그는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기후 오퍼레이션은 올림포스만이 행해야 한다는 뜻을 확실하게 전했다.
비난의 화살은 쿠바 정부로 향했다.
듀아멜의 말대로 쿠바는 기후 에너지 독립을 위해, 비밀리에 기후 오퍼레이션을 해왔었다.
쿠바의 라울 행정부는 실각 위기에 처했다.
쿠바 시민들은 거리 행진을 했고, 유럽연합은 외교단절을 검토했다.
라울 행정부가 무너지면, 친 올림포스 세력이 정권을 넘겨받을 것이 뻔했다.
라울 행정부 위기를 보면서, 많은 국가가 뜨끔했다.
비밀스럽게 행해지는 기후오퍼레이션 실험은 거의 모든 국가가 군사무기 개발처럼 해왔다.
실험 내용을 보면 라울 행정부가 특별할 것도 없었다.
비밀 실험은 일종의 유행이었고, 라울 행정부는 그 유행에서 뒤떨어진 그룹에 속했다.
시답지 않은 실험 때문에 에어 드래곤으로 개박살 났다면 ···. 더 큰 규모의 실험을 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찾아올 재앙의 크기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듀아멜은 일종의 경고를 날린 셈이었다.
“지랄하네.”
준의 중얼거림이 아니었다. ‘지랄하네.’는 굿데이의 정식 보고서였다.
굿데이는 라울 행정부의 실험과 에어 드래곤 사이에는 인과율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기후 완충력과 자투리 효과.
기후가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5%의 완충 효과와 5%의 자투리 효과가 존재했다.
결국, 30%는 통제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기후 거래가 가능했다.
30%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실험은 기후 거래에 영향을 주지 않고, 바람무늬 현상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준은 열두 문장으로 ‘지랄하네.’ 보고서를 완성했다.
쉽게 읽히고, 주제에 충실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어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썼다.
유진 악마는 준의 보고서를 보고, 그녀와 준의 차이를 실감했다.
‘준느님은 진리야.’
듀아멜은 팔짱을 끼고, ‘지랄하네.’ 보고서를 수없이 읽었다.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논리 전개도 훌륭했다.
커피 한 잔을 사주고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기뻤다.
“준!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덕분에 삶의 즐거움이 늘었어.”
보고서는 너무 쉬워서, 쿠바에서 거리 행진하던 시위대들도 이해할 정도였다.
정치적 불안은 단숨에 진정되었다.
펜이 칼보다 강한 참 좋은 예였다.
외교 단절을 검토하던 유럽연합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누구도 ‘지랄하네.’를 반박하지 못한 것이다.
준의 말씀이었다. 그 말씀에 토 다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였다.
앙리 백작은 불안해했다.
준은 항상 제멋대로였지만, 올림포스 정책에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
에어 드래곤 사건으로 올림포스와 전혀 다른 포지션을 취했다.
그는 듀아멜을 불러들였다.
“굿데이의 반격을 예상했나?”
“물론입니다. 기후 난민과 기후 IMF 모두 예상했던 일입니다. 처음에는 올림포스가 위태로워 보였지만, 결국 올림포스의 통제력은 더 강해졌습니다.”
“쿠바를 타겟팅 한 이유가 있나?”
“쿠바는 악질이니깐요. 그곳에 친 올림포스 정치 세력을 심으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권을 갈아엎으려 했죠.”
“우리가 엎어질 판일세. 듀아멜 ···. 나는 준을 스카우트하려 했고, 준에게 노벨상을 추천한 것도 나야. 지금까지 준은 올림포스의 적이 아니라, 파트너였네. 기후 거래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일이 있으면, 준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렸어. 우리가 가정 먼저 준의 기후신용 평가를 확인했지. 그런데 ‘지랄하네.’ 보고서는 우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공개되었네. 굿데이는 한 번도 의지가 꺾인 적이 없네. 권투 선수로 따지면, 모든 경기를 KO로 이긴 거야.”
앙리 백작은 구구절절했다. 그는 굿데이를 무시할 수도 없었고, 듀아멜을 내칠 수도 없었다.
듀아멜이 없으면 올림포스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준과 듀아멜이 친하게 지내면 좋겠는데 ···.’
앙리 백작의 소박하고 솔직한 소망이었다.
듀아멜이 진심으로 올림포스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준과 ‘화해’해야겠지만 ···.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듀아멜 공간을 여는 것!
그가 보기엔 세상은 너저분하고, 미숙했다.
듀아멜 공간을 아주아주 살짝 열어서 키워낸 에어 드래곤은 지구의 그 어떤 생명보다 강력하고 화려했다.
듀아멜 공간에서 에어 드래곤은 실지렁이 같은 존재였다.
에어 드래곤은 듀아멜의 뜻대로 움직였다.
올림포스를 듀아멜 공간과 비교해보면, 정말이지 미미했다.
올림포스는 듀아멜 공간을 열기 위한 활용수단에 불과했다.
“굿데이는 라울 행정부에 면죄부를 주었지만, 에어 드래곤의 원인은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걱정이네. 굿데이의 말 한마디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어. 굿데이가 우릴 비난하면, 그것으로 끝이야. 듀아멜 ···. 준을 직접 찾아가게. 굿데이가 아직 에어 드래곤의 원인을 밝히지 않은 것은 ···.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네.”
듀아멜은 앙리 백작의 말에 따랐다.
어차피 준과 한번은 마주쳐야 했다.
준을 찾아오게 하려 했지만, 준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준에게 직접 가야 하는 상황이 못마땅했지만 ···.
게임은 이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