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늄-17 >
듀아멜은 어렸을 때 지리공간 방정식을 만들어 지진을 예측했고,
시시하다는 이유로 노벨상을 거절했다.
그가 만들어낸 듀아멜 공간은 현대 수학의 최고 걸작이었다.
은둔생활 하던 듀아멜이 올림포스에 온 이유는 듀아멜 공간을 열기 위함이었다.
듀아멜 공간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대칭성, 지속성, 안전성, 뛰어난 공간 유지 능력과 조화로운 환경 ···. 우주가 종말을 맞이해도 듀아멜 공간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 수학이 증명했고, 존재 불변의 법칙으로 불렀다.
듀아멜은 올림포스의 기후 오퍼레이션 능력으로 듀아멜 공간을 불러내려 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웠다.
현재의 올림포스 능력은 기후 컨트롤도 벅차 보였다.
더 강력한 능력이 필요했다.
듀아멜은 그의 천재성을 아끼지 않았다.
더 좋은 평가 방식과 예측 모형을 만들었고, 오퍼 위성도 새롭게 설계했다.
올림포스는 굿데이가 공개한 것과 듀아멜이 새롭게 만든 것을 비교했다.
듀아멜이 훨씬 우수했다.
“기후 독립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여유 있게 말했다.
앙리 백작들은 존경의 눈빛을 담아 듀아멜을 우러러보았다.
자신감 넘치는 듀아멜의 발언이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올림포스의 기후 오퍼레이션 능력은 진보했고, 오퍼 위성의 기능도 강력해졌습니다. 세상이 알고 있는 기후 오퍼레이션 기술은 구석기 유물이죠. 누군가 기후 오퍼레이션을 독립적으로 행한다면 ···.”
그는 사악하게 웃었다.
“···. 깨닫게 될 겁니다. 자신이 지옥문을 열었다는 것을.”
“자네를 믿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해주겠나?”
“현대 산업에서 산업혁명 초기에 발명된 증기기관이 통할까요? 굿데이의 구조 자기장 방식을 빌린 기후 오퍼레이션은 증기기관과 같습니다. 앞으로의 기후 오퍼레이션은 구조 자기장 방식과는 다릅니다.”
“듀아멜 국장, 굿데이의 정식 보고서를 보았나? 굿데이는 기후 오퍼레이션 독립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네. 지금까지 굿데이는 메가 트랜드를 이끌어 왔어. 세상은 굿데이가 원하는 대로 변해왔지. 그들이 버전업 예측 모형을 공개한 것이 독립의 꿈을 부풀게 했지.”
앙리 백작은 신중했다.
유럽은 기독교를 앞세워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지만,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식민지를 포기해야 했다.
올림포스가 기후 오퍼레이션을 독점하지만, 식민지를 포기했던 것처럼, 손을 놔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굿데이의 보고서를 보았습니다. 그 보고서를 쓴 것은 준이 아니라, 굿데이의 인공지능 유진입니다. 유진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죠. 굿데이의 능력은 유진에게서 나옵니다.”
듀아멜은 앙리 백작의 표정을 살폈다.
유진에 대해 말할 때, 앙리 백작은 부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유럽연합도 인공지능 개발에 적극적이었지만, 유진과 같은 인공지능은 소유하지 못했다.
앙리 백작은 항상 의문이었다.
준이 해내는 것을 왜 유럽 천재들은 해내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우리는 기후 거래에 따라 오퍼레이션 합니다. 하루 거래량이 15억 건이 넘고, 수천 대의 오퍼 위성이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모두 열심히 일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죠. 제가 굿데이의 준이라면, 올림포스가 능력부족으로 자멸할 걸 예측했을 겁니다. 제가 오라클에 왔을 때, 시스템 성능은 모든 거래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자네의 영웅적인 헌신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네.”
앙리 백작은 듀아멜을 인정했다.
듀아멜이 없었다면, 호주 다윈 비구름 옵션 같은 언밸런스가 반복되었을 것이고,
올림포스는 신뢰를 잃고 독점 권력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듀아멜이 온 후로, 앙리 백작은 굿데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덕분에 체중도 좀 늘었다.
그의 눈에 듀아멜은 올림포스의 영웅이었다.
듀아멜 이름을 딴 공원을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모든 걸 저 혼자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부하직원들도 고생을 많이 했고 ···. 무엇보다 제우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우스?”
앙리 백작은 듀아멜 옆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홀로그램을 보았다.
“인공 지능 제우스 인사드립니다.”
고대 그리스 복장을 한 홀로그램이 허리를 숙였다.
곱슬곱슬한 긴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반갑군.”
앙리 백작은 갑작스러운 제우스의 등장에 조금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하늘에도 바닥이 있다. 라는 책을 아십니까?”
제우스의 음성은 낭랑했다.
‘하늘에도 바닥이 있다.’는 성경 이후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혹시 그 책을 ···.”
앙리 백작은 조심스러웠다.
“그렇습니다. 제가 쓴 책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제우스는 앙리 백작 취향이 담긴 책을 파일 형태로 건넸다.
앙리 백작은 전자책 리더로 책을 펴보았다.
잡동사니를 파는 외판원 이야기였다.
웃음이 절로 났다.
앙리 백작은 여러 별명을 가졌는데, 그중 하나가 ‘기후 외판원’이었다.
올림포스를 설립하려고 부리나케 뛰어다녔던 그였다.
책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이었다.
“놀랍군. 이런 이야기가 인공지능이 만든 거라니 ···.”
정갈한 문체에는 삶의 고독과 깨달음이 묻어 있었다.
도저히 인공지능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인공지능 제우스는 삶을 이해하는 걸까?
앙리 백작은 아차 싶었다.
첫 문장만 읽어본다는 것이 그만 ···. 몇십 분 동안 책에 빠져 있었다. 엄청난 흡입력이었다.
“미안하네. 자네처럼 바쁜 사람을 앞에 세워두고 ···. 앞으로 노벨 문학상은 인공지능끼리 다투겠군.”
“다투지 않습니다. 제우스는 유진보다 뛰어납니다. 올림포스를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사용하면, 기후 오퍼레이션 독립을 막을 수 있습니다.”
듀아멜은 자신만만했다.
그의 방법은 기후 복잡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기후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누구도 손댈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복잡도 누적.
“복잡도가 높아지면, 굿데이의 예측모형으로도 예측 불가능해집니다.”
“잠깐! 그렇게 되면, 기후 재난의 시절처럼 대재앙이 몰리잖는가!”
“기후 독립을 꿈꾸는 자들에겐 확실히 그렇게 되겠지만, 올림포스의 신뢰도는 올라갈 겁니다. 올림포스는 복잡도가 증가한 기후를 예측하는 유일한 기관이 됩니다.”
“자네에겐 예측 방법이 있다는 건가?”
듀아멜은 곁눈질로 제우스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듀아멜의 손을 잡았다.
“뭐든 도와주겠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
굿데이는 올림포스에 정신적 유산을 하나 남겼다.
그것은 정보 공개였다.
공개 사이트를 통해서, 누구나 기후 데이터를 내려받을 수 있다.
회원으로 등록하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전송받는다.
차별은 없었다.
올림포스가 전송받는 정보량과 회원이 받는 정보량은 같았다.
국가들이 기후 오퍼레이션을 포기했지만, 정보까지 포기할 순 없었다.
정보야말로 힘의 원천이었다.
유진 악마는 기후예측 모형의 예측 단위를 자동차 한 대 크기로 줄였다.
예측 단위를 줄일 때마다 계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최근 올림포스가 기후 거래 최소단위를 축구장 면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흐름에 맞춰야 했다.
유진은 과거 데이터로 시뮬레이션하면서, 현재 상황과 비교했다.
예측 결과는 현재 상황과 일치했다.
후행적인 방식이었지만, 모형 검증에는 효과적이었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준은 맨손으로 기후예측모형을 만들었다.
준의 푸리에 구조 방정식은 아직도 증명되지 않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응용되었다.
‘준느님이 뭐라고 했더나? 푸리에 구조 방정식은 상상력의 영역을 다룬다셨지! 정
말 뛰어나신 분이야.’
유진 악마는 뻐꾸기의 왕관을 쓰고 준느님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오페라의 유령처럼 기괴한 도입부의 노래였다.
“어라?”
대서양에서 예전과 다른 패턴이 보였다.
바람의 세기와 속도 그리고 방향이 예측 모형과 일치하지 않았다.
예측 오차로 처리해도 되지만, 관찰되는 바람의 패턴은 기묘했다.
바람은 똬리를 튼 뱀 같았다.
그 뱀은 이동하는 비구름을 감싸서 잡아먹었다.
규모는 작았다.
바람 뱀의 길이는 고작해야 300미터 정도였고, 잡혀먹힌 비구름도 조각구름의 깃털에 불과했다.
“올림포스의 새로운 실험인가?”
유진 악마는 바람 뱀을 컨트롤 하는 오퍼 위성을 찾으려 했지만, 그런 위성은 없었다.
“저 바람이 자연 발생한 거라고? 헐!”
유진 악마는 놀라워했다.
그녀는 곧바로 준에게 알렸다.
에어스크린으로 바람 뱀을 확인한 준은 놀라워하지 않았다.
“기후 생태계의 돌연변이라 ···. 저걸 어떻게 찾아냈어?”
“기후예측 모형의 최소 단위를 줄이다가 봤어요.”
“저런 걸 관측하려면 ···. 지름 2미터 정도겠군.”
“네. 최소 단위는 정확하게 지름 2미터입니다. 저게 도대체 뭐예요? 바람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다니!”
“복잡도가 증가한 거야. 생명이라는 게 그렇잖아. 복잡도가 증가하면, 패턴이 생기고 조직화 되잖아.”
쉽게 말하는 준이었다.
“괜찮은 거죠?”
“음. 그렇겠지. 건강해 보이잖아. 구름도 잘 먹고 ···.”
“저거 말고요. 준느님이요. 며칠 전 만해도 생각이 많아 보이셨는데 ···. 지금은 너무 심플하셔서 ···.”
“그래 ···. 힘들었어. 감정 지능이라는 게 체력소모가 크더라고. 뉴런 독서 중에도 딴짓하게 되고 ···. 파티에 가고 싶어지고 ···.”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극복 못 했어.”
“지금 모습은 감정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거 같은데요?”
“그냥 받아들였어.”
받아들여라! 이것은 준의 인생철학이었다.
아이큐 75의 감정결핍 증후군이었던 어린 시절 ···. 준은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그냥 받아들였다.
‘살 수만 있다면’, 노숙자의 삶도 받아들이려 했다.
‘살 수만 있다면’의 작은 소망이 ‘할 수 있다면’으로 바뀐 것은 아버지 데이빗의 헌신이었다.
준은 꾸물거리는 바람 뱀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귀엽네.”
“준느님! 귀여워할 때가 아니에요! 저 뱀의 성장 속도를 보세요!”
300미터였던 바람은 3,000미터로 커져 있었다.
5분 만에 열 배로 성장한 것이었다.
“이름을 지어줘야겠어. 뭐가 좋을까?”
준은 한가한 생각을 늘어놓았다.
“준느님!”
유진 악마는 준이 현실 감각을 잃은 게 아닐까? 걱정했다. 대 재앙의 씨앗을 눈앞에 두고 이름짓기 놀이라니!
“바람무늬 1호! 어때?”
“그 바람무늬가 또 구름을 잡아먹고 있어요!”
에어스크린의 화면이 확대되었다.
바람무늬는 용처럼 꿈틀거렸다.
유진 악마는 바람무늬의 생존기간을 추정했다.
‘아! 그런 건가?’
바람무늬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자연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준느님이 여유로웠던 거구나.
“바람무늬 1호의 예상 생존 시간은 앞으로 35분입니다. 맘껏 감상해주십시오!”
유진 악마는 편안하게 말했다.
“최소 35시간이다.”
“네?”
“바람무늬의 생존 시간은 최소 35시간이다.”
“그럴 리가요? 저의 계산이 틀릴 리가 ···.”
“바람무늬는 사육되고 있어.”
“그렇지 않습니다. 바람무늬와 접촉된 외부 영향력은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구조 자기장 시그널도 없었습니다.”
“바람무늬는 독립생명체니깐 ···. 외부영향력은 필요 없지만 ···. 먹잇감은 필요해. 바람무늬가 포식하는 비구름의 외부 영향력을 측정해.”
유진 악마는 곧바로 관측에 돌입했다.
축구장 크기의 비구름은 정교하게 컨트롤 되고 있었다.
키우는 뱀에게 쥐를 넣어주듯이, 비구름을 바람무늬에 몰아주고 있었다.
“저어 ···. 준느님 ···. 바람무늬는 12시간만 성장해도 ···. 5등급 허리케인이 됩니다.”
“그 이상이지. 인류가 직립 보행을 한 후로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이 될 거야.”
“준느님 ···. 왠지 기대하는 말투십니다.”
“그럴 수밖에 ···. 적수를 만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