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13화 (111/141)

< 판타지늄-13 >

선지자들의 기본 마인드는 일반인이 능력자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능력자가 일반인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그대로 이어져서, 그들은 로켈의 충실한 부하가 되었다.

로켈의 능력은 선지자보다 월등했다.

로켈은 암살 분야의 육체 능력자였는데, 굿데이의 아카데믹한 분위기와 준의 모범적인 본보기로 지적 능력까지 월등해졌다.

로켈이 깨달음은 한가지로 요약되었다.

준짱이 진리다!

교육과정을 끝낸 선지자들은 오색찬란 회의를 다시 열고, 닥터 칼라니티를 심판했다.

교육받기 전, 그들은 닥터 칼라니티에게 ‘관찰’을 판결했었다. 재심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교육입니다.”

만장일치였다.

“그렇다면 ···. 교육 내용을 아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데 ···.”

로켈은 오색 선지자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세상에서 교육 내용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지시한 준과 그 지시에 따라 선지자

를 가르친 로켈 ···. 그리고 교육받은 선지자들뿐이었다.

다섯 선지자라면 닥터 칼라니티의 상대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너희가 다녀와라.”

“저희가요?”

선지자들은 두려움을 숨기지 못했다.

닥터 칼라니티의 능력은 선지자들보다 뛰어났다.

“교육 성과를 확인하고 싶다.”

“그러나 ···. 닥터 칼라니티는 ···.”

“교육이 부족하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아닙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선지자들은 서둘렀다.

닥터 칼라니티 교육을 졸업시험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닥터 칼라니티의 섬으로 알려진, 비키니 섬으로 갔다. 섬 어디에도 닥터 칼라니티는 보이지 않았다.

국가안전국 타격대가 습격한 후로, 닥터 칼라니티는 비키니 섬을 떠났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본거지를 들통 난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선지자들은 기뻐했다.

닥터 칼라니티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가능하다면 평생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곳을 압니다.”

시온의 십이 징벌좌 중 한 명이 보고했다.

십이 징벌좌는 로켈의 명령에 따라 닥터 칼라니티를 감시하고 있었다.

오묘한 만남이었다.

십이 징벌좌는 시온의 명령에 따라 로켈을 죽이려 했지만, 오히려 로켈에게 포섭되어 로켈을 위해 일한다.

선지자와 십이 징벌좌 모두 로켈을 없애려 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 로켈을 떠받들고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인연이었다.

굿데이와의 인연, 준과의 인연 ···. 인간관계가 상황을 뒤집은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선지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닥터 칼라니티를 잘 교육해서, 준과 미치도록 친하게 지낼 계획이었다.

인연이 강화되면 권력도 강해진다.

거미 섬에서 지내는 닥터 칼라니티는 울창한 수풀 뒤에서 그를 살펴보는 기척을 느꼈다.

익숙한 시선이었다.

십이 징벌좌의 토끼였다.

강화 생물학의 아버지 닥터 칼라니티는 시온의 능력자에게 능력을 이식해주었고,

십이 징벌좌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의 몰락은 굿데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준이 올림포스 라운드에서 기생파리와 생체 금속 정보량을 밝혔고, 그 후 시온이 굿데이에 인수되었다.

그가 위기에 몰리지 않았더라면, 그의 그림자 경호원 마가크도 단독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미 섬 바위에 블루 이글 헬기가 착륙했다.

헬기에서 오색 선지자가 차례로 내렸다.

그들은 십이 징벌좌 토끼의 안내를 받아, 닥터 칼라니티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오호! 다섯 선지자가 모두 움직이다니!”

닥터 칼라니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온의 선지자들은 자존심이 강했고,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 강건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싫어해서, 함께 움직이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시온 역사상 다섯 선지자가 동시에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닥터 칼라니티님을 뵙습니다.”

선지자들은 깍듯하게 인사했다.

닥터 칼라니티는 시온의 기둥과도 같았다.

굿데이와 준이 없었다면, 세상은 그의 뜻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너희 다섯을 모두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군.”

“교육의 힘입니다. 굿데이는 ···. 단순한 이익 추구 기업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이기도 합니다.”

술술 나왔다.

말하는 청색 선지자도 놀랄 정도였다. 정말이지 교육의 힘은 엄청났다.

닥터 칼라니티도 놀랐다.

오만했던 청색 선지자가 저런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칼라니티는 왼손으로 청색 선지자의 이마를 짚었다.

“뇌 수술을 받거나, 뇌가 바뀐 건 아닌데 ···. 어떻게 멀쩡한 사람이 단시간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거지?”

“그게 다 교육의 힘입니다.”

적색 선지자가 나섰다.

“그래 ···. 그런 거 같다. 너희가 온 이유가 뭐냐?”

“당신을 교육하러 왔습니다.”

흑색 선지자가 밝게 웃었다.

흑색 선지자의 미소는 닥터 칼라니티도 다른 선지자들도 인생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멸滅!”

닥터 칼라니티가 소리치자, 바닥과 벽 그리고 천정에서 거미줄 같은 넝쿨이 뿜어져 나왔다.

선지자들은 꼼짝없이 넝쿨에 에워싸였다.

고치가 된 번데기 같았다.

“나를 교육하겠다고?”

강화 생물학의 창시자이자, 아버지이자, 시온의 기둥인 닥터 칼라니티였다.

모멸감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는 평생 블랙마켓 뒤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세상은 닥터 칼라니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기생파리를 만든 것도 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된 것이었다.

그가 가진 신지식이라면, 그동안의 모든 죄를 탕감받고도 남는다.

그런데 교육이라니!

“흥분하셨군요.”

복도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켈이었다.

“난쟁이도 오셨군. 키가 너무 작아서, 보지 못했어.”

칼라니티의 거미줄 같은 넝쿨들이 로켈을 향해 치달렸다.

“거미줄과 뱀의 본능을 가진 넝쿨이군요. 생체 금속 정보량이 이렇게도 사용되는군요.”

로켈은 한 손으로 넝쿨을 물리쳤다. 기세 좋게 뻗던 넝쿨은 로켈을 건들지 못했다.

로켈이 앞으로 걷자, 넝쿨들이 슬며시 물러나며 길을 열었다.

“굿데이의 기술이냐?”

닥터 칼라니티의 눈매가 실처럼 얇아졌다.

“알아보시네요. 최근 개발한 감정 지능 구조 자기장입니다. 감정 구조 자기장은 생체 금속 정보량에 영향을 주죠. 기술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 내가 여길 왜 왔더라? 아 맞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준도 마찬가지다. 굿데이의 신기술로 얼마나 많은 자가 파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아느냐? 발전과 변화란 그런 것이다. 네놈이 여기에 온 것은 ···. 내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네놈에게 힘이 있기 때문이다. 너에게 힘이 없었다면, 감히 내 앞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 네놈의 힘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직접 교육해주지.”

칼라니티의 목소리는 쇠망치처럼 로켈의 몸을 때렸다.

로켈이 평범한 능력자였다면, 그의 몸은 석고조각처럼 깨졌을 것이다.

로켈은 멈춰 섰다.

닥터 칼라니티의 능력은 로켈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금까지 강화 기술은 소수의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인터넷만큼이나 흔해질 겁니다. 거리에 당신 같은 능력자들이 넘쳐나겠죠. 그것은 진보일까요? 아니면 파멸이 될까요? 지금 당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나에게 결정권이 있다면, 왜 무릎 꿇지 않느냐?”

“갑질에 너무 익숙해지셨군요. 저는 당신의 결정과 상관없이 판결에 따라 당신을 심판할 겁니다. 아까 한 말은 저의 조언입니다. 부탁이나 명령은 아니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운 거죠.”

“헛소리! 옳고 그름은 없다. 강하고 약함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어떤 논리를 들이대도, 변하지 않습니다.”

“나불대는 난쟁이여! 죽어라!”

공기 중에 있던 미세한 거미들이 콧구멍과 귓구멍 그리고 땀구멍을 통해 로켈의 몸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거미들이 로켈의 몸을 갉아 먹었다.

“작은 거미에게 먹히는 느낌이 어떠냐? 난쟁아!”

“영양제 주사를 맞는 느낌입니다. 활력이 넘칩니다. 혹시 키 커지는 약은 없나요?”

로켈은 태연했다.

닥터 칼라니티는 허풍이라 생각했지만, 로켈의 활력 징후는 건강 충만 그 이상이었다.

“너무 놀라시니깐, 제가 다 부끄럽네요. 제 몸에는 생체 금속 정보량에 대한 항체가 있습니다. 미세 거미든, 전갈이든, 제 몸에 들어오면 단백질 탄수화물과 같은 영양분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질병과 치료로 세상을 가지려 하셨죠. 당신의 그 알량한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하겠습니까?”

“과연 ···. 시온을 인수할만했군.”

닥터 칼라니티는 걸치고 있던 웃옷을 벗었다.

마사이 전사와 같은 몸매가 드러났다.

“살다 보니 ···. 닥터 칼라니티와 치고받고 싸울 일이 생기네.”

로켈은 손을 흔들어 손목을 풀었다. 닥터 칼라니티는 강화 생물학의 창시자이자,

강화 전투술의 창안자이기도 했다.

닥터 칼라니티는 먹잇감을 덮치는 독사처럼 움직였다.

그는 로켈과 합을 겨룰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빨리 로켈을 죽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로켈의 목을 쳤지만, 손이 허전했다.

‘피한 건가? 내 공격을?’

로켈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는 데이터 룸에서 한 달 후의 기후를 예측하는 체력 훈련을 했다.

수만 가지의 변수들이 종합해서 미래에 예측하는 것은, 눈앞에 공격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닥터 칼라니티의 공격 패턴은 수천 가지였지만, 기후 변화 패턴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기후 예측은 짧은 시간 내에 끝내야 했다.

시간을 줄이려면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했고, 데이터 룸에서의 수련을 통해 로켈의 속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그의 눈에 닥터 칼라니티의 움직임은 농약 먹은 두꺼비 같았다.

“크윽!”

닥터 칼라니티는 왼쪽 가슴에서 극렬한 통증을 느꼈다.

곧이어 아랫배와 등 그리고 이마와 허벅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로켈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쿠-쿵.

정신을 차려보니 무릎 꿇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떨궜다.

“이제 날 어찌할 셈이냐?”

로켈은 칼라니티 앞에 책 한 권을 던졌다.

초등학교 정식 교과서 바른 생활.

“자아! 문제 나간다. 네가 차를 타고 질주하고 있는데, 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어떻게 할 거지?”

“액셀을 밟는다. 스피드를 높이면, 차에 피 묻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런 건가? 내가 너무 앞서 가려 했군.”

로켈은 책을 바꿨다. 유치원용 바른 생활이었다.

“다시 문제 들어간다. 네게 빵이 많은데, 배고픈 사람이 왔다. 어떻게 할 거지?”

“죽인다. 살려두면 배고픈 사람이 내 정체를 알고, 다른 놈들과 합심해서 내 것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과연 닥터 칼라니티였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관점을 바꿔보자. 네가 배고픈데 ···. 누군가 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할 거지?”

“죽여서 뺏는다!”

“그냥 뺏으면 안 되고 꼭 죽여야 해?”

“살려두면, 내가 빵을 가진 것을 다른 놈들에게 알려서 패거리로 내 것을 빼앗을 것이다. 빵을 지키려면 죽여야 한다.”

“우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나만 더 묻겠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배가 고프고, 너에겐 빵이 많다 ...”

“죽인다! 내 사랑이 배고픔도 느끼지 않고, 내 빵도 지킬 수 있다.”

닥터 칼라니티는 2박 3일 동안 맞았다.

때리는 로켈은 자신에게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3일 후에 로켈이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의 열정이 지나쳤음을 ···.

닥터 칼라니티는 맞아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넝쿨에 번데기처럼 갇혀 있던 선지자들이 모든 것을 지켜봤던 것이었다.

닥터 칼라니티의 죽음은 선지자들에게 참으로 큰 교육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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