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늄-9 >
‘핫핫하하!’
음성 데이터에서 칼라니티의 웃음이 진동했다.
케슬러 국장은 실없이 칼라니티를 따라 웃었다.
그는 두더지 작전으로 최정예 요원을 잃었지만, 최대 관심사는 닥터 칼라니티의 맘에 드는 것이었다.
X등급 세상에서 사는 닥터 칼라니티 능력은 측정불가였다.
사하라 숲 기생파리 사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일반인의 기준에서 볼 때, 강화 능력자의 생태학적 위치는 신과 같았다.
“케슬러 국장 ···.”
“네!”
케슬러는 충직하게 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닥터 칼라니티가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음을 느꼈다.
기상 재해로 제7함대가 전멸했다.
국가 권력보다 권능의 권력이 앞서는 세상이었고, 닥터 칼라니티는 권능의 권력자였다.
블랙마켓의 서비스와 상품이 국가와 기업보다 우수했고, 닥터 칼라니티는 블랙마켓에서도 최고 레벨이었다.
굿데이가 파라엔진을 개발하기 전까지, 닥터 칼라니티의 스키마가 궁극의 묘약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잔느 사건으로 한층 명확해졌다.
국가는 권능 권력자로부터 시민을 지키지 못한다.
“굿데이 준이 왜 날 노렸지?”
“모릅니다. 저는 굿데이의 지시에 따라 ···.”
“헛소리!”
“네?”
“언제부터 국가 안전국이 굿데이의 지시를 따랐나? 그리고 굿데이가 뭐가 아쉬워서 너희 삼류에 일을 맡기겠나?”
“그건 ···.”
“허술하고 멍청하고 ···. 그야말로 구제불능이군. 너 같은 협잡꾼이 이유 없이 날 노렸을 리는 없을 테고 ···. 진실을 말해라.”
“당신은 잔느를 살해했습니다. 그녀는 루이스 상원 의원으로 딸입니다. 루이스 상원 의원은 군대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복수를 선언했습니다. ”
칼라니티는 옆구리를 찔린 고양이처럼 움찔했다.
루이스 상원 의원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내가 잔느를 죽였다고?’
“왜 내가 잔느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건 ···. 굿데이의 분석입니다.”
“잔느는 어떻게 죽었지?”
“아! 그게 ···. X등급 사건이라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
닥터 칼라니티는 느낌만으로 범인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마가크의 불안정한 행동이 생각난 것이었다.
‘마가크! 아둔한 나의 그림자!’
핵터의 통신기로 이뤄지는 통화였다.
칼라니티도 케슬러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뭔가 매끄럽지 않게 엉킨 부분이 있는 것을 느꼈다.
“닥터 칼라니티님! 저는 욕심이 없습니다. 지금 같은 삶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정년퇴직이 5년 남았는데 ···. 국가 안전국 국장으로 퇴직하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시면, 저도 닥터 칼라니티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방금 욕심이 없다고 말했나? 능력도 안 되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엄청난 욕심이지. 네놈 욕심 때문에 내 앞에는 15구의 시체가 있다. 이들은 너의 작전을 수행하다가 개죽음당했다.”
“네! 좋습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저는 무능하고 욕심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용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안전국 국장이 된다면, 그자가 당신을 돕겠습니까?”
케슬러 국장은 목숨을 걸었다.
작전은 실패했고, 닥터 칼라니티의 타깃이 되었다.
살아남으려면 이용가치를 강조해야 했다.
닥터 칼라니티는 일렉나이프의 원리에 정통했다.
일렉나이프에 맞으면 심장마비로 숨지고, 살해 흔적은 남지 않았다.
닥터 칼라니티는 핵터의 통신기에 몇 가지 장치를 더 했다.
일렉나이프이 원리를 응용한 보이스 나이프!
“케슬러 국장. 5년 후의 명예로운 정년퇴직은 너에게 과분하다. 과로사로 현장 순직으로 만족해라.”
판결이 떨어졌다.
케슬러 국장은 당장 모든 것을 굿데이에 보고하려 했다.
이제 굿데이만이 그의 희망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케슬러는 비상 채널로 굿데이에 접속했다.
통신용 에어스크린에 유진 악마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케슬러 국장님. 당신은 핫라인으로 굿데이에 접속하셨습니다. 원하시는 서비스를 선택해주세요.”
에어스크린에 다섯 가지 선택버튼이 나타났다.
1. 간단한 인사와 축하, 2. 세상을 아름답게 할 굿 아이디어, 3. 부정부패 고발, 4. 개인적인 고백, 5. 굿데이 찬양 공모전 응모.
케슬러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유진 악마가 상황을 알아차렸다.
“급성 심장발작으로 관찰됩니다. 가까운 곳에 도움을 줄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녀는 케슬러 국장의 경호원에게 응급상황을 알렸다.
경호원들이 케슬러 국장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러나 보이스 나이프가 심장에 박힌 케슬러에겐 아무 소용없었다.
“소생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 트랙 유언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유진은 케슬러 국장 눈앞에 글자를 띄웠다.
케슬러 국장은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면서도 눈으로 한 글자씩 골라냈다.
케슬러 국장은 심정지 되었다.
그가 최후의 숨결을 내뱉으면서 고른 유언은 ···. ‘작전 성공’이었다.
뭐가 성공이라는 건지 ···. 죽은 사람을 깨워서 물어볼 수도 없고, 유진 악마는 케슬러가 최후의 순간에 환상을 본 게 아닐까? 추측했다. 아니면, 아이 트랙으로 선택한 단어조합이 무작위로 고른 것이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굿데이 직원들은 누구나 느꼈다.
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준은 수잔에게 눈웃음을 보냈고, 에바에게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성희롱 같은 느낌이 아니라, 유대와 신뢰의 의미였다.
로켈을 격려했고, 호세를 칭찬했다.
카이의 숙제도 도와주었다.
표정도 풍부해졌다.
“준 회장님, 모두 불안해하고 있어요.”
에바가 모두를 대신했다.
준은 왼쪽 눈썹을 올렸다. 왜? 라는 제스처였다.
“회장님은 변하셨어요. 잔느 사건을 직접 조사하신 것도 그렇고, 요즘 우리를 대하는 것도 ···.”
“그게 싫어?”
“낯설어요. 당신이 진짜 준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에바는 준이 짚었던 그녀 어깨를 반대 손으로 감쌌다.
준의 손이 그녀 어깨에 닿았을 때, 그녀는 짜릿한 무언가를 기대했다.
준이 권능을 발휘했다면, 그녀는 오르가슴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따듯한 유대감만 느껴졌다.
“다윈에서 번개 인간을 만났을 때, 그와 소통하려면 감정을 극대화해야 했어. 제정신으로는 천둥벼락과 대화할 수 없잖아. 지금 내 상태는 예전보다 감정적일 거야. 그게 불편하면, 자제할 게.”
“불편하지 않아요. 그저 ···. 이유를 알고 싶었던 거예요. 준 회장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했어요. 준 회장님의 선택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입니다.”
“고마워. 늘 느꼈던 건데, 에바는 빨간색도 잘 어울려.”
“아첨하는 남자는 매력 없어요.” 라고 말했지만, 에바는 좋아하는 눈치였다.
세이턴은 강가 습지에서 악어 둥지를 찾아냈다.
갈대와 수초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지만, 악어 둥지는 주변보다 조금 봉긋했다.
흙으로 덮어진 둥지 안에는 악어 알이 수북했다.
알을 먹으려던 세이턴은 생각을 바꿔서, 알 위에 다시 흙을 덮어주었다.
개의 본능을 극복하는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세이턴은 굿데이 일원답게 고상하게 살기로 했다.
자제력을 키우고, 음식은 가능하면 익혀서 먹자.
세이턴의 눈길은 습지를 지나 강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희미했지만, 어둠의 느낌이 났다.
강 건너편은 굿데이의 영역이 아니기에 지켜만 봤지만, 심상치 않았다.
어둠 속에 몸을 섞은 마가크는 며칠 동안 굿데이에 침입할 기회를 엿봤다.
잔느를 죽인 것은 그의 단독 행동이었다.
감히 닥터 칼라니티님의 정보를 팔아넘기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잔느보다 더 용서할 수 없는 상대는 준이었다.
준은 올림포스 라운드에서 기생파리의 정체와 닥터 칼라니티를 까발렸다.
덕분에 칼라니티는 테러리스트 명단 맨 위에 올랐고, 각국의 첩보조직이 뒤를 쫓기 시작했다.
마가크는 준을 죽이고, 굿데이를 지울 계획이었다.
굿데이를 지우는 건 몇 명만 죽이면 된다.
그들이 죽으면 이 세상에는 그들을 대신할 인물이 없다.
그러나 굿데이에 침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며칠을 배회했지만, 세이턴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이턴은 동물적 감각을 뛰어넘는 초감각으로 마가크를 견제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최첨단 보안 시스템으로도 마가크의 꼬리를 잡지 못하는데, 고작 개 한 마리가 며칠 동안 마가크를 묶어 놓다니!
오동나무 그늘에 숨어 있는 마가크의 귓가에 촉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다 지쳐서 왔다.”
로켈이었다.
“직접 죽으러 와주다니 고맙군.”
마가크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칼라니티를 경호하는 네가 왜 잔느를 죽인 거지? 죽이려면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했어야지. 너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졌어.”
“이제 세상도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할 때야.”
“그래? 이 세상이 어떤 곳인데? 미친 살인마가 날뛰는 곳?”
“세상은 닥터 칼라니티님을 감히 평가하고,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어! 세상은 ···. 닥터 갈라니티님과 같은 권능자를 섬겨야 해. 그렇지 않으면 기생파리와 같은 역병이 어리석은 자를 모두 벌할 것이다!”
“역시.”
로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나와 생각은 같은 거냐?”
마가크는 로켈의 몸짓이 반가웠다.
“전혀 같지 않다. 다만 ···. 권능자를 섬겨야 한다는 발상이 낯설지 않아서 말이야. 시온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거든.”
“로켈 ···. 잘 생각해봐. 너도 나와 같은 강화 능력자다. 너의 능력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 그런데 잔느 같은 잡년이 설쳐서 사람들을 선동하면 ···.”
“어이! 그만. 준짱 밑으로 다 같은 인간이다.”
“말귀가 통할 줄 알았는데 ···. 그렇담 어쩔 수 없지.”
마가크의 형체가 흐릿해졌다.
사방에서 그림자 원반이 로켈에게 날아왔다.
잔느의 목을 날렸던 그림자 자르기 능력이었다.
로켈은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그림자를 피했다.
그의 펀치가 마가크의 얼굴에 적중했다.
마가크는 그림자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로켈! 실망이다. 내 앞에 당당하게 나타났길래, 뭔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육체 공격으로는 날 어쩌지 못해.”
마가크는 멀쩡한 그림자 형태로 왼쪽에서 나타났다.
그는 손가락을 쫙 펴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로켈의 그림자가 로켈의 몸을 휘감았다.
“문지기 아르코는 너와 같은 육체 능력자지만, 나는 육체를 초월한 존재! 로켈,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로켈의 그림자는 뱀처럼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졸랐다.
로켈은 위기에 몰렸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마가크와 같은 능력자들은 세상이 능력자에게 복종하고 떠받들어야 한다는 ‘권능자 사상’에 쉽게 빠진다.
실제로 세상 많은 것이 권능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오로토칸이 가진 탈로스의 고통을 채우려고 샤나이슈카 지역을 개발하려 했고,
프로메타 제약회사처럼 수많은 다국적 기업의 주주들이 권능자였다.
세상은 권능자를 위한 이익 창출 기계였다.
이 흐름을 바꾼 것이 바로 준과 굿데이였다.
“좋은 교훈이 되겠군.”
“뭐라고? 그게 너의 유언이냐?”
“그렇지 않아도, 시온을 인수했지만, 말 안 듣는 능력자들과 권능자가 많아서 골머리가 아팠는데, 네놈이 좋을 본보기로 삼아주지.”
“최후의 순간에 헛소리라니. 딱한 난쟁이군.”
“발광發光!”
로켈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졌다.
로켈을 조르던 그림자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빛나는 로켈의 주먹이 마가크의 가슴에 꽂혔다.
가슴에 꽂힌 주먹은 그림자 살과 뼈를 뚫고, 기세를 멈추지 않고 턱과 머리를 박살 냈다.
로켈이 마가크에게 해줄 말은 하나였다.
“굿데이를 건드는 자 박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