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107화 (105/141)

< 판타지늄-7 >

잔느는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은 채로 거실을 돌아다녔다.

미니바가 설치된 거실은 그녀가 갇혔던 감방보다 훨씬 넓었다.

그녀는 생체 금속 정보량 기술과 닥터 칼라니티에 대한 정보를 넘기고, 자유 그 이상을 얻었다.

그녀의 선데이가 국가안전국과 협력해서, 생체 금속 정보량 개발을 맡게 되었다.

흔한 파리를 기생파리로 만드는, 생체 금속 정보량의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했다.

“굿데이에도 제안 했어?”

그녀는 핵터에게 올리브를 넣은 마티니를 건넸다.

핵터도 팬티 차림이었다.

생체 금속 정보량의 정체를 밝힌 것은 준이었다.

국가 안전국에서 뭔가 제대로 하고 싶다면, 당연히 굿데이와 접촉해야 한다.

최고의 굿데이를 놔두고, 떨거지 같은 선데이와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

“안전국에서 굿데이를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아. 준은 돌발행동을 하고, 굿데이 직원들의 경력도 정상적이지 않아. 결정적으로 굿데이는 우리와 함께하는 기후거래소 설립에 응하지 않았어! 굿데이가 우리에게 힘을 실어줬다면, 올림포스에는 북미 연합 깃발이 펄럭였겠지.”

“풋!”

“왜 웃어?”

“진짜 이유는 따로 있잖아.”

“진짜 이유라니?”

“안전국은 굿데이를 믿을 수 없는 게 아니라 ···. 굿데이와 함께 일할 실력이 없는 거야. 이 사실이 알려지면, 고위 간부들이 보직해임 될 테니, 이 사실을 숨기고 굿데이를 믿을 수 없는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거 아니야?”

“그런 탑 시크릿을 알고 있다니, 위험한데 ···.”

핵터는 짓궂은 표정으로 다가 와 열렬한 키스를 했다.

“최종적으로 굿데이와 함께 일해야 해. 굿데이는 메가 트랜드야!”

잔느는 핵터의 애무를 받으며 말했다.

그녀는 아주 잠깐, 그녀 몸을 주무르는 남자를 핵터가 아닌 준이라고 상상해봤다.

그 상상만으로 그녀 몸은 훨씬 가파르게 타올랐다.

핵터는 멈칫했다.

잔느의 상상이 어렴풋이 전해진 것이었다.

핵터는 다시 계속했다.

‘어쩔 수 없지. 누구나 최고를 꿈꿀 권리는 있으니깐 ···.’

그도 다른 여자의 몸을 통해 잔느를 꿈꿨다.

그는 오히려 준이 고마웠다.

준이 아니었더라면, 잔느는 위기에 몰리지도 않았을 테고, 그랬더라면 핵터에게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핵터는 샤워하고, 새 셔츠와 양복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국가 안전국 소속이었고, 스케줄에 따라 근무해야 했다.

핵터가 탄 소형 프라임 전기차는 저택 내부 도로를 따라 1분 넘게 달렸다. 그제야 출구가 보였다.

잔느가 머무는 그녀의 저택은 첨단 보안시스템과 사설 경호시설 그리고 국가 안전국에서 파견 나온 요원들이 지켰다.

국가 차원에서 그녀는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생체 금속 정보량에 정통한 인물은 닥터 칼라니티와 준 그리고 그녀뿐이었다.

기후거래는 유럽연합이 한발 빨랐지만, 생체 금속 정보량까지 양보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잔느는 굿데이가 공개한 생체 금속 정보량에 대한 내용을 천천히 읽어갔다.

원리와 작동 방식이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준은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닥터 칼라니티도 힘겹게 얻어낸 궁극의 지식이었다.

생체 금속 정보량의 기본 물질은 판타지늄으로 불리는 정신감응 금속이었다.

판타지늄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형태와 분자 구조가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판타지늄으로 영생의학이라는 새로운 의학도 만들어냈다.

환자에게 맞는 조직 적합성 판타지늄을 설계해서, 몸에 넣어주면 그 환자는 놀랍도록 젊어졌다.

영생의학으로 얻은 생명을 유지하려면, 고가의 판타지늄 복합 알약을 복용했고,

이 때문에 영생의학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행해졌다.

판타지늄 영생의학이 번창했지만, 그 원리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와중에 닥터 칼라니티가 생체 금속 정보량이라는 개념으로 기생파리는 만들어낸 것이었다.

잔느는 판타지늄과 생체 금속 정보량 관련 자료를 에어스크린에 띄었다.

그녀가 서 있는 거실은 금세 에어스크린으로 차고 넘쳤다.

같은 실험 다른 결과가 너무나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판타지늄과 생체 정보량은 최근에 생겨났다. 이 물질을 다루는 연구원 중에 숙련자는 그야말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미숙한 경험이 미숙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메타 분석 시행.”

메타 분석은 수많은 논문을 검색해서,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만 추려냈다.

금속화합물 구조식, 방정식 그리고 여러 그래픽이 주제에 맞춰 정렬되었다.

잔느가 봐도 모르는 내용이 많았다.

그녀의 전공은 경상계열이었다.

그녀는 주제 내용보다 끝 부분에 주석처럼 적힌, 연구원의 신상정보를 확인했다.

이 분야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을 스카우트해서 ···.

“배신자.”

음침한 목소리였다.

잔느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목소리는 그녀 뒤에 있는 웅크린 그림자에서 나왔다.

웅크린 그림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늪지 괴물의 몸에서 진흙이 흘러내리듯이, 그의 몸에서 뭉친 그림자가 흘러내렸다.

닥터 칼라니티의 그림자 경호원 마가크였다.

잔느는 닥터 칼라니티의 실험을 도우며,

조수 역할을 했지만,

마가크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닥터 칼라니티님이 보냈어?”

“더러운 입으로 존귀한 분의 이름을 담지 마라.”

마가크의 모습만큼이나 어둠 찬란한 음성이었다.

마가크의 목소리는 깊은 석탄 탄광 같았다.

잔느는 그가 폐암 말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조용히 마가크를 지켜보았다.

최첨단 보안 시스템과 사설 경호원 그리고 안전국 요원들 ···. 이것들은 뭘 하고 있을까?

“네년은 그분을 팔아넘겼어.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겠지?”

유다는 목메달아 죽었다.

잔느는 마가크의 분노가 매우 개인적이라고 느꼈다.

닥터 칼라니티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라면, 구태여 유다를 들먹거릴 이유가 없다.

마가크는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잔느는 그 이유를 주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해. 그분을 위해서라면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위, 아래, 옆, 바닥이 보였다.

쿵.

작은 소리였지만, 머리 전체가 울렸다.

그녀는 그녀 발뒤꿈치와 복사뼈를 보았다.

그녀의 목이 잘린 것이었다.

보안 시스템에서 잔느의 생체 신호 이상을 감지하고, 알람을 울렸다.

사설 경호원과 안전국 요원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거실 한복판에 서서 피 분수를 뿜는 머리 잘린 잔느의 몸뚱어리를 보았다.

과학 수사대가 현장을 인수했다.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죽기 전 섹스를 했고, 그녀 몸에서 정액이 나왔다.

“제 겁니다.”

핵터는 숨기지 않았다.

그는 슬픔과 분노로 위태로워 보였다.

수사를 지휘하는 카리 총경이 불편한 표정으로 핵터를 쏘아보았다.

보거나 말거나 핵터는 뻔뻔했다.

“범인을 찾는 쓸만한 단서는 없습니까?”

그는 안전국 요원들이 그러하듯이 경찰을 얕잡아봤다.

관할 우선권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맡고 있지만, 전화 한 통이면 안전국으로 넘어올 사건이었다.

잔느를 죽인 것은 국가에 대한 테러와 같았다.

“질에서 나온 정액이 최고의 단서였소.”

“그건 제 거라고 했잖아요. 다른 걸 찾아봐요.”

“그전에 ···.”

카리 총경은 핵터에게 빈 종이컵을 주었다.

핵터는 종이컵 가장자리를 깨물어 잇자국을 남겼다.

종이컵의 잇자국은 잔느의 몸에서 발견된 흔적과 비교 감정될 것이고,

종이컵에 묻은 침으로 핵터의 유전자와 잔느의 몸에서 나온 정액도 비교될 것이었다.

“협조 고맙소.”

카리 총경은 종이컵을 수사관에게 넘겼다.

“당신이군요. 굿데이가 키운다는 경찰견이.”

핵터는 뒤늦게 카리 총경의 배경을 떠올렸다.

카리 총경은 굿데이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한 경찰이었다.

“자네가 화난 건 알겠어. 하지만 ···. 그따위 개소리가 수사에 도움이 되겠나?”

카리 총경이야말로 핵터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다.

잔느는 루이스 상원 의원의 딸이었고, 최근 사면을 받아 제2의 인생을 펼칠 찰나였다.

그런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서, 병마개처럼 목이 잘리다니!

“범인을 잡을 증거가 없는 거죠?”

핵터는 노골적이었다.

“증거는 널려 있어 ···. 그걸 추적할 능력자가 없는 거지. 국가 안전국에는 그런 능력자가 있나?”

“있죠!”

핵터는 보란 듯이 안전국 특수팀에 전화했다.

“X급 사건입니다. 수사 능력자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 능력자 공급이 불가능합니다.”

“루이스 상원 의원의 딸이 살해된 사건입니다.”

“핵터 요원 그쪽 사정은 우리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 외부 능력자 공급 계약이 바꿨어요. 그동안 시온에서 능력자를 공급받았는데, 최근 시온이 파산해서 운영시스템이 바뀌었어요.”

“누가 시온을 운영하죠! 연락처를 주면 내가 직접 ···.”

“굿데이가 시온을 인수했습니다.”

핵터는 뻘쭘하게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카리 총경이 혀를 찼다.

“지키던 핵심인물도 보호하지 못하고 ···. 범인 추적도 다른 조직의 힘을 빌리고 ···. 내가 이런 말까지 않으려 했는데 ···. 죽은 잔느의 몸에는 네놈의 흔적이 제일 많아! 도대체 넌 뭐하는 놈이고, 국가 안전국은 뭐하는 곳이야!”

*

루이스 상원 의원은 눈물을 흘리며 사건 내용을 들었다.

사랑하는 딸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범인은 누군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잔느를 설득하면, 잔느를 보호해주기로 했잖은가?”

국가 안전국 케슬러 국장은 입이 없는 하루살이처럼 침묵했다.

“작년 청문회에서 세계 최고의 정보망을 자랑했잖소! 테러리스트가 오늘 아침에 먹은 메뉴까지 다 알고 있다고 떠벌렸잖소! 그런데 내 딸을 죽이려는 계획은 몰랐단 말이오!”

“엠벨라 족을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곧 범인을 알아낼 겁니다.”

“엠벨라 족? 연쇄살인범 살담 카메조가 속했던 그룹? 살담 카메조의 범행을 누가 밝혀냈죠?”

“굿데이였습니다. 굿데이가 본거지를 옮길 때, 시체들의 숲을 찾아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시체들의 숲을 몰랐었죠?”

“네.”

“그렇다면 ···. 살담 카메조를 잡은 건 누구였습니까?”

“그것도 ···.”

“굿데이였죠.”

“네.”

“케슬러 국장! 내 딸은 애국자였소! 그런데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서, 목숨을 잃었소! 먼 외지도 아니라, 이 나라의 심장부에서!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너무 무능했기 때문이오! 사건 현장의 증거를 분석할 만한 능력자도 확보하지 못했다면서요!”

“그건 ···. 협력업체가 부실해져서 ···.”

“그 협력업체가 시온을 말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굿데이가 시온을 인수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 사실입니까?”

“지금까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

“정보는 개뿔! 굿데이는 스노우 교도소에 있는 수잔을 빼냈고, 프로메타 제약회사의 위협에서도 지켜줬어! 굿데이가 어렵지 않게 해낸 일을 국가 안전국이 흉내도 내지 못하다니! 당신의 무능이 내 딸을 죽인 거야! 굿데이가 수잔을 보호했다면 ···.”

루이스 상원 의원은 책상을 내리쳤다.

“꺼져!”

그가 소리치자, 케슬러 국장은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 나갔다.

루이스 상원 의원은 사무실에서 통곡했다.

겨우 감정을 정리하고 비서에게 말했다.

“굿데이로 연결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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