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늄-5 >
신의 도시 올림포스는 최적화된 기후와 자연환경 그리고 최첨단 도시 공학이 어우러진, 인류 최고의 보금자리였다.
올림포스 대학, 마트, 교통시스템, 문화센터와 공원은 유럽 역사를 통틀어 최고로 평가받았다.
기생파리가 난리 칠 때에도 이곳은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올림포스는 기후거래를 위한 계획도시였고, 거주민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청소부는 청소로봇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탑클래스 공학자였고, 거지도 고급 양복 정장을 입고 구걸했다.
올림포스는 인류가 신처럼 살아가는 최종 형태의 도시로 추앙받았지만, 한순간에 악의 도시가 되었다.
다윈 비구름 옵션거래에 따른 대홍수!
굿데이가 경고하고 호주 시민들이 거래 중지를 요구했지만,
호주 정부는 무능했고 올림포스는 오만했다.
올림포스는 그들의 권능이 굿데이를 앞선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올림포스는 준을 뛰어넘지 못했다.
다윈 비구름 옵션거래는 굿데이의 평가대로 투자파산 등급이었다. - 손대는 순간 망한다.
앙리 백작은 설핏 언 레몬차를 마시며 화를 가라앉히려 했다.
그가 있는 레인보우 빌딩은 다시는 기후 재난이 없을 것이라는 상징이었다.
올림포스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이며 약속했듯이,
레인보우 빌딩으로 처참한 기후 재난이 끝났음을 선언했었다.
올림포스 시민은 그 어느 도시보다 지역 충성도가 높았다.
대부분 기후거래소와 관련된 일을 했고, 올림포스와 운명을 함께하는 삶이었다.
그런 그들이 올림포스 지도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네즈는 목이 잘린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오퍼 위성 한 대는 영국 전체를 커버하는 기후 조절 능력이 있다.
다윈 지역에는 오퍼 위성 일곱 대가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윈지역 대홍수를 막지 못했다.
대홍수를 일으킨 나선형 먹구름은 한 번도 관측되지 않았던 새로운 재난이었다.
하늘과 바다가 뒤집어진 것처럼 비를 뿌려대는 나선형 먹구름은, ‘기후 소행성 충돌’ 혹은 ‘헬릭스 임펙트’로 불렸다.
더 처참한 것은 아직도 헬릭스 임펙트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준은 어떻게 이런 걸 어떻게 예측했을까?’
그녀는 준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울고 싶은 건, 앙리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올림포스의 아버지였다.
유럽 왕실 기상청을 이끌었고, 기어이 기후거래제도를 뿌리내려서, 올림포스라는 왕국을 세웠다.
그는 이미 교과서와 역사책에 실리는 실존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오라클을 준에게 맡겼어야 했어!”
그는 고통스럽게 말했다.
이네즈는 토 달지 않았다.
앙리 백작의 말대로 준이 오라클을 맡았다면 ···.
준이 기후 신용 평가만 하는 게 아니라, 기후 디자인과 기후 채권 발행까지 담당했다면 ···.
사하라 숲 기생파리도 예방했을 것이고, 헬릭스 임펙트도 컨트롤 했을 것이다.
“이네즈. 너는 소르본 대학교의 교수로 가라.”
“네?”
그녀는 이유를 물어보려다가, 험악한 앙리 백작의 얼굴을 보고 말을 삼켰다.
소르본 대학 정교수라면 ···. 그럭저럭 명예롭고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신분이었다.
많은 인재가 소르본 대학 정교수 자리를 인생 목표로 삼았다.
결코, 부끄러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이네즈에겐 유배지와 같았다.
“후임자로 누가 옵니까? 준인가요?”
준이라면 인정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준을 대신할 수 없다.
“알 필요 없어!”
“앙리 백작님 ···.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네즈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가우스우먼으로 불리는 천재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아니, 굿데이의 벽이 너무 높았다.
“이네즈 울지 마라.”
“죄송합니다.”
“너는 소르본에서도 올림포스의 일을 해라.”
“네?”
그녀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앙리 백작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올림포스의 비밀 무기가 되어라.”
“네? 그게 무슨 ···.”
“그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앙리 백작은 레몬차를 머금고 창밖을 보았다.
기하학적 자태를 뽐내는 네오 올림포스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유럽 연합의 최고 히트 상품 기후거래 ···. 그리고 그 거래를 담당하는 올림포스 ···.
올림포스는 말 그대로 유럽 연합을 먹여 살리는 핵심 기관이었다.
올림포스는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 압축된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북미 연합은 올림포스 설립을 반대했었지. 우리는 굿데이가 북미 연합에 붙을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 놀랍게도 준은 북미 연합에 붙지 않았어. 루이스 상원 의원이 엄청난 특혜를 내걸었지만, 준이 거절했지. 그때 준이 맘만 먹었다면 북미 지역의 기후 거래를 독점했을 거야 ···. 녀석이 욕심냈다면 올림포스의 주인이 되었겠지. 기후 에너지 주권을 외치던 북미연합이 지역 기후 오퍼레이션을 포기하고 올림포스 설립에 찬성한 이유를 아나?”
“결정적인 이유는 ···. 슈퍼 엔릴로 제7함대가 전멸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엔릴은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폭풍의 신’으로 돌발성 슈퍼 태풍을 뜻했다.
“파도 높이 500미터의 미친 태풍이었지.”
앙리 백작의 얼굴에 광기가 새어나왔다.
마음을 안정해준다는 차가운 레몬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들끓는 분노는 더 뜨거워졌다.
제7함대가 침몰했던 시기는 기후 재난의 시절이었다.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기후 오퍼레이션에 열을 올렸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못해, 처참했다.
예측 불가능한 기후 재난이 지구촌을 들쑤셨다.
그 시절 가장 태평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준이었다.
준은 놀라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충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냈다.
그 단단함이라니 ···. 준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마음이 진정될 정도였다.
투자파산 등급은 그런 준이 세상을 향해 소리친 경고였다.
“준은 알았던 거야. 기후거래소를 누가 맡든 ···. 오늘 같은 일이 생길 거라는 걸. 너는 소르본 대학으로 가서 ···. 에바와 굿데이 그리고 준과 가깝게 지내라. 그들과 하나가 되어 ···. 그들의 꿍꿍이를 알아내라. 날 욕하고 올림포스를 비난해서라도 굿데이와 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이네즈는 이를 악물었다.
‘첩자질을 하라고?’
그녀의 재능은 수학이었다.
가우스우먼이라는 별명은 첩자질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 그녀가 올림포스와 유럽왕실 기상청을 위해서 해낸 가장 큰 업적은 ···. 에바에게 몸 대주는 것이었다.
'유럽이 나에게 원하는 건, 나의 재능이 아니라, 그런 것이었나?'
“앙리 백작님 저를 믿으신다면 ···. 후임자로 누가 오는지 알려주십시오.”
“듀아멜 아가레스.”
듀아멜? 듀아멜 아가레스가 온다고?
듀아멜은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을 거절한 괴짜였다.
그는 12살 때, 지리공간 방정식으로 인도 뉴델리와 일본의 지진을 예측했고,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도 예측했다.
준이 6개월 후 날씨를 예측했다면, 듀아멜은 2년 후의 지진과 화산 폭발을 예측해냈다.
준의 기후예측모형의 결괏값은 해석하기 어려워서, 있으나 마나 한 애물단지였지만, 듀아멜의 지리공간 방정식은 누가 사용하든 같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모형 안정화라는 측면에서 듀아멜이 준보다 훨씬 뛰어났다.
준은 먹고 살려고 기후예측 모형을 만들어냈지만, 듀아멜은 수업시간에 심심해서 지리공간 방정식을 끄적거렸다.
그러나 듀아멜은 좀처럼 세상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 15세에 일류대학의 석좌교수직까지 제안받았다.
석좌교수는 강의 활동 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듀아멜은 가볍게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서 너무 멀어요.’
*
다윈 지역은 거대한 바다로 변했다.
물이 모두 빠지려면, 최소 3년은 지나야 했다.
천 년 동안 올 비가 일주일 사이에 쏟아졌지만,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25만 명 인구 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50명 남짓이었다.
다윈 대홍수는 예고된 재앙이었고 ···. 긴급 탈출 계획과 응급 구조 작전 등, 여러 대응책이 준비되어 있었다.
카카두 국립공원의 92%가 물에 잠겼지만, 준의 별장은 피해가 없었다.
폭풍우가 한창 휘몰아칠 때, 준은 지붕 위에 올라가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물고기가 빠져 죽을 정도로 거센 비바람이었고, 번개가 끊이질 않았다.
5만 년 전 원시인이 보았던 번개 인간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준은 번개 인간을 환영했다.
번개 인간은 과학과 논리 그리고 자연질서까지도 깡그리 무시한, ‘예외적인 존재’였다.
“오라! 악마여!”
준은 번개 인간을 환영했다.
말도 안 되는 저런 것이 진짜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맘에 들었다.
기상학자들이 만들어낸 ‘헬릭스 임펙트’라는 표현은 틀렸다. 미친 듯이 비를 쏟아내는 저 번개들은 ‘효과’나 ‘현상’이 아니다.
원시인이 보고 느꼈던 것처럼 저것은 ···. ‘생명’이다.
준은 푸리에 구조 방정식으로도 감히 도달하지 못했던 ‘번개 인간’을 직접 보려고 다윈 지역에 머물렀다.
직접 보고서야 이해가 됐다.
기상 과학으로는 저것을 다룰 수 없다.
올림포스의 오라클이 예측하지 못했던 이유는 ···. 나선형 비구름이 기상 현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순수한, 가장 오래된 생명의 형태.
“준 회장님! 위험해요! 어서 들어오세요!”
에바가 소리쳤다.
비에 젖은 그녀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리석은 것보다 위험한 게 낫다!”
준은 괴기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준이 웃는다고? 준 회장님이 웃었어! 그것도 미친 듯이 ···.
에바는 털컥 겁이 났다.
그러나 준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괴기스러운 그 소리는 가장 원시적인 언어였다.
언어는 웃음과 울음 속에서 시작된 정제된 메시지에 불과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준의 웃음소리에 대꾸하듯이 천둥소리가 리듬을 탔다.
준은 있는 힘껏 소리를 쳤고, 번개 인간도 그랬다.
둘은 아직 젊고, 이제 삶을 시작했고, 힘차고, 거침없다.
두 맹수가 서로의 존재를 알리며 뽐냈다.
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동질감을, 소속감을 느꼈다.
데이빗과 에밀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폭우 속에서 몇 시간이나 소리치던 준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에바가 준에게 목욕 타월을 건넸다.
“준 회장님 따듯한 물을 준비해놨습니다. 피곤하시면 제가 직접 씻겨 드리겠습니다.”
준은 요령 있게 물기를 털어냈다.
“배고파.”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 젖을 찾는듯한 순진한 표정이었다.
에바는 준을 왈칵 안을 뻔했다.
지금 준은 너무 귀여웠다.
배를 채운 준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뉴런 독서로 뇌 기능 활성화가 무한대까지 가능했지만, 준은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잠에 저항하지 않았다.
올림포스와 호주 정부, 여러 언론사와 기업 그리고 연구소에서 준과 통화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에바가 모두 차단했다.
준은 며칠 동안 방해받지 않고, 곱게 잤다.
그가 깨어났을 때, 에바가 곁에 있었다.
그녀는 항상 준 곁에 있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러고 싶었다.
“에바 ···.”
“네.”
“예뻐 보인다.”
울컥! 에바는 괜스레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참으며, 울컥한 마음을 삼켰다.
“고맙습니다. 준 회장님.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주무셨어요?”
“나 ···. 벼락 맞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