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늄-2 >
잔느는 오렌지 색 죄수복을 입고 호송차에 올라탔다.
수갑이 원칙이었지만, 손목에 수건 덮는 것으로 대신했다.
핵터의 배려였다.
그는 호송차 안에서 스노우캣 초코릿을 잔느에게 권했다. 이 역시 규정 위반이었다.
“요즘 핫한 메뉴야. 발효 카카오 닙스와 카카오 버터 그리고 초코릿 열매로만 만들었어. 설탕을 쓰지 않았는데, 단맛이 아주 기가 막혀! 요즘엔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아.”
햇살 같은 단맛이었다.
“고마워.”
그녀는 맛을 음미하며 미소 지었다.
스마일 펀치로 불리는 그녀의 미소는 수많은 남자를 녹아웃 시켰었다.
준에 대한 원한만 없었다면, 그녀는 오렌지 색 죄수복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호송차가 멈춘 곳은 킹스덤 바이러스 연구소였다.
킹스덤 바이러스 연구소는 생물안전 5등급으로 에볼라 바이러스 배양과 돌연변이 실험까지 가능했다.
건물 밖에서 연구실까지 가려면, 15개의 체크포인트를 거쳐야 했다.
잔느는 폭풍처럼 강력한 에어샤워를 하고, 일회용 전신 안전복을 입고 실험 테이블에 섰다.
테이블 위 유리통에는 쉬파리 몇 마리가 날아다녔다.
그녀는 앞에 있는 카메라와 교수 그리고 연구원들을 보았다.
그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5분이면 됩니다.”
잔느의 친절한 뉘앙스였지만,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중세시대의 자물쇠처럼 변했다.
5분 안에 멀쩡한 쉬파리를 기생파리로 만든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잔느는 경멸에 가까운 찡그린 얼굴들을 보며, 닥터 칼라니티가 겪었을 부당함을 어렴풋이 느꼈다.
닥터 칼라니티가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개발할 때마다, 세상은 저런 눈빛으로 칼라니티를 노려봤을 것이다.
닥터 칼라니티는 블랙마켓으로 간 것이 아니라, 블랙마켓으로 쫓겨난 것이리라.
세상은 온갖 거짓말과 기만술을 감당해내지만, 닥터 칼라니티가 캐낸 작은 진실은 참지 못했다.
잔느는 미리 준비된 초미세 판타지늄 분말을 소형 토카막 챔버에 넣었다.
토카막 챔버는 세탁기 크기였다.
토카막 챔버는 핵융합 연구용으로 개발되었지만, 닥터 칼라니티는 생체 금속 정보량 조합기로 사용했다.
토카막 에어 스크린에 항공사진 같은 도표가 보였다.
토카막 챔버 전문가가 자리에 있었지만,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기생파리를 만드는 건, 원 사이클이면 충분해요.”
잔느는 능숙하게 토카막 챔버 작동을 멈추고, 추출기로 초미세 판타지늄을 모아서, 쉬파리가 윙윙거리는 유리병에 넣었다.
다음 절차는 연구원이 넘겨받았다.
그는 유리병에 실험용 마우스와 소고기 생고기를 넣었다.
쉬파리는 새끼를 알로 낳지 않고, 구더기로 낳는다.
쉬파리가 좋아하는 산란장소는 생고기나 죽은 짐승의 점막부위였다.
자연적인 환경이었다면, 쉬파리는 실험용 마우스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했을 것이다.
쥐는 구더기를 잡아먹는다.
쉬파리가 타고난 본능을 따른다면, 생고기 위에 구더기를 깠겠지만 ···. 쉬파리는 변했다.
쉬파리는 살아 있는 실험용 마우스 등에 구더기를 쐈고, 구더기는 능숙한 스쿠버다이버처럼 가죽을 뚫고 마우스 몸속으로 들어갔다.
잔느는 교수와 연구원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 눈앞에서 생체 금속 정보량의 기적을 보였건만, 그들은 어설픈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집문서를 털린 것처럼, 불쾌해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생체 금속 정보량은 그들이 쌓아온 학문과 진리의 근간을 뒤흔든다.
지진으로 빌딩이 무너지듯, 그들이 설 자리가 사라진 셈이었다.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정상적인 쉬파리를 기생파리로 바꾸려면, 최소 몇 개월은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준비와 실험 테크닉이 갖춰져야 가능했다.
관계자 중에서 미소 짓는 타입은 딱 한 부류였다.
국가 안전국에서 옵저버로 참석한 관료였다.
카메라를 통해 이를 지켜본 누군가도 미소 짓고 있으리라.
“훌륭하군요.”
핵터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군요.”
다른 관계자도 마지못한 표정으로 인정했다.
“기생파리를 다시 쉬파리로 바꿀 수 있나요?”
“거기까지는 몰라요.”
잔느는 모르는 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했는데,
그녀의 당당함은 알지만 가르쳐주지 않겠다! 라는 쌀쌀함으로 해석되었다.
잔느는 이제 친절할 이유가 없었다.
방금 보여준 쇼만으로도 확실하게 사면받을 수 있다.
“생체 금속 정보량으로 인간 정신도 조종할 수 있나요?”
“파리와 인간이 많이 다른가요?”
잔느가 되물었지만, 그녀도 알고 관계자들도 알았다.
유전자 수, 작동 원리, 구조까지 너무나 닮았다.
인간은 70% 파리였고, 파리는 30% 인간이었다. 그런 이유로 가끔은 파리가 더 인간다울 때가 있었다.
*
듀크는 전자우편과 손글씨 엽서를 끊임없이 굿데이로 보냈다. 내용은 같았다.
‘이 아빠는 널 사랑한다. 이 아빠를 도와다오.’
생명의 빚과 같은 추상적인 표현은 피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구구절절하게 썼다.
매달 10만 달러 이상 생활비 보조.
최고 변호사 선임과 그 비용.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해줄, 천만 달러 상당의 빌딩과 부동산.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준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돈과 물질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 그것이 모두 준의 이익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준은 듀크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
준은 듀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준이 듀크를 만난 것은 듀크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실증적 DNA 관점에서 현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준 회장님. 답장하실 건가요?”
“에바 생각은 어때?”
“듀크는 언론사와 출판사에도 편지를 보냈어요. 준 회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팔고 있어요. 계약금으로 받은 금액만 백만 달러가 넘습니다. 스탠리 변호사에게 말해서 ···.”
“그럴 필요 없어. 환경을 이용해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듀크가 ···.” 준은 아버지라고 하려다가, 그냥 이름을 쓰는 게 적당하다고 느꼈다. “ ···. 나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건, 그의 자유다.”
“그냥 두고 보시게요? 듀크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을 거예요. 관심 종자처럼 세상이 솔깃할 헛소리를 마구 늘어놓을 거예요. 준 회장님, 저에게 맡겨주세요. 그가 정신 차리도록 하겠어요.”
“그럴 가치가 없다.”
*
앙리 백작은 시계를 힐끔 보았다.
이제 결정해야 했다.
굿데이는 호주 다윈 비구름 옵션거래에 투자파산 등급을 매겼다.
투자파산 등급이라니! 투자금을 몽땅 잃는 것도 아니고, 투자했다는 이유로 재난 피해 소송에 휘말려서, 파산할 수 있다는 ···. 정말로 해괴망측한 등급이었다.
인류 경제 역사상 이런 등급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검증은 해봤나?”
그의 질문은 예리한 화살처럼 이네즈에게 꽂혔다.
“오라클의 공식 의견은 ···. 재검토 요청이었습니다.”
“의견을 물어본 게 아닐세. 검증 결과가 알고 싶네.”
“모든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거래는 지극히 정상적이었습니다. 굿데이 신용 평가와 같은 재난은 없었습니다.”
“이네즈 ···. 내가 다시 묻지 않게 확실하게 대답해. 결론이 뭔가?”
앙리 백작은 금방이라도 이네즈를 잡아먹을 것처럼 험악해졌다.
“굿데이가 틀린 것 같습니다. 투자파산 등급이 나올 정도의 파괴적인 재난의 징후는 없습니다.”
“사하라 숲 프로젝트 때에도 그런 말을 했었지 ···.”
“그때는 생물학 재난 가능성을 너무 낮게 ···.”
“됐네. 변명을 듣자는 게 아니야.”
앙리 백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5분 후에는 굿데이의 기후 신용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24시간 후에는 다윈 비구름 옵션거래를 처리해야 했다.
“유럽 연합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발전 속도에 밀려, 늙은 중진국이나 이 빠진 후진국으로 몰락할 운명이었어. 자네 같은 평민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나 같은 귀족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지. 유럽연합이 예전과 같은 힘을 유지하려면 확실한 돌파구가 필요했어. 우리 올림포스 기후거래소가 유럽연합에 이바지하는 경제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아나?”
“절대적입니다.”
“그래 ···. 이제 겨우 숨통이 틔었나 싶었는데 ···. 기후 거래는 기후 신용 평가 없이는 유지되지 않아. 올림포스 기후거래소가 설립되기 전에, 각국에서 제각각 기후 오퍼레이션을 했던 걸 기억하나?”
“네. 최근에 있었던 과거입니다.”
“정치가들과 기업인들은 기후 오퍼레이션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지. 날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40% 이상이야. 기후만 컨트롤 해도, 경제를 조절할 수 있어. 그들이 기후 오퍼레이션을 포기한 이유는 ···.”
“예측 불가능한 기상 재난 때문입니다. 예측할 수 없었기에, 대응하지도 못했죠. 기후 오퍼레이션으로 재난을 막으려면, 최소 일주일 전부터 기후 프로그래밍을 시작해야 하는데 ···. 예측 없이는 시작도 못 하죠.”
“미국은 제7함대를 잃었고, 중국은 급성 쓰나미로 홍콩 절반을 잃었지. 그런 공포가 없었다면, 우리 올림포스가 기후거래를 독점하지 못했을 거야. 사실 ···. 사하라 숲은 위험했어. 기생파리를 예측 못 한 건, 치명적인 실수야. 그 건수만으로도 북미연합과 동아시아 연합이 독자적인 기후 오퍼레이션을 요구할 수 있었어. 그들이 요구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 굿데이의 신용평가였지. 우리는 예측하지 못했지만, 굿데이는 훌륭하게 해냈어. 우리가 700억 탄소 달러 채권을 발행했던, 사하라 숲 프로젝트를 투자 부적합 등급으로 후려쳤으니깐. 오라클이 700억 기후 채권을 승인하고 발행했을 때, 세상 사람은 굿데이가 아닌, 우리를 선택했지. 그때 우리는
정말이지 멋지게 700억 기후 채권을 팔아치웠어. 굿데이가 틀리고 우리가 옳았다고 믿었지. 생물학적 재난이 생겨봤자, 최악이라고 해도, 에볼라 바이러스 수준이라고 생각했지.”
“네. 에볼라 바이러스라면 ···. 파라엔진으로 대응 가능했습니다.”
“그래 ···. 그런데 ···. 기생 구더기라니. 생각지도 못했어.”
앙리 백작은 시계를 다시 힐끔 했다.
결정할 시간이 지났다.
“굿데이의 홈페이지를 확인해보게.”
이네즈는 간단한 동작으로 에어스크린을 띄웠다.
“굿데이는 공개했습니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군.”
올림포스도 어쩔 수 없이 공개해야 했다.
“다윈 비구름 옵션거래를 취소하실 건가요?”
“유감스럽게도 그건 내가 결정하지 못해. 다윈 비구름 옵션상품 생산자는 호주 기후 중앙은행이야. 옵션거래를 할지 말지는 ···. 호주 기후 중앙은행에서 결정할 문제야. 이제 24시간 남았군. 준은 지금 어디 있나?”
*
준은 다윈 카카두 국립공원을 산책했다.
묘비 같은 흰개미 집이 수백 개 보였다.
유령 전사들의 무덤
나무 판떼기 모양으로 우뚝 솟은 것들이 흰개미 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
눈에 비치는 광경은 ···.
전투가 끝나고,
죽은 병사들을 묻고, 그 위에 묘비를 세운 것 같았다.
기묘한 형태의 바람이 준의 몸을 휘감았다.
3시 방향에서 무소음 헬기가 나타난 것이었다.
헬기 몸통에는 유니언 잭에 별모양이 그려진 호주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준의 눈앞에 통신용 에어스크린이 펼쳐졌다.
- 더글라스 비숍 수상님께서 만나시길 원하십니다. -
무소음 헬기는 거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흰개미 집을 무너트리며 착륙했다.
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헬기가 착륙할 너른 바위가 있었는데,
굳이 흰개미 집을 망치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유령전사 무덤에 착륙한 조종사의 판단이 아쉬웠다.
말끔한 공무원용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이 내렸다.
“같이 가주십시오.”
둘은 준의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당장에라도 억지로 끌고 갈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