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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 준-100화 (98/141)

< 기후거래소-25 >

굿데이의 기후 신용 평가의 99%는 투자 적합 등급이었고, 나머지 1%가 투자 주의 등급과 투자 부적합 등급이었다.

기후 시장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투자자들은 투자 적합 등급만 골라 먹을 수 있었지만, 기후거래소는 모든 것을 다 수행해야 했다.

특정 지역의 기후 오퍼레이션을 생략하면, 전체가 흔들린다.

결국, 투자 주의 등급과 투자 부적합 등급의 기후 거래는 올림포스가 직접 참여했고, 대박을 노린 투자자가 그들의 운을 시험하곤 했다.

기후거래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오라클을 담당한 이네즈는 투자 부적합 등급을 살폈다.

그녀는 준이 왜 투자 부적합 등급을 매겼는지, 대충 이해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준처럼 기후 신용 평가를 직접 해내지 못했지만, 준이 해낸 신용평가를 감상할 실력은 됐다.

‘어 잠깐 이게 뭐야? 호주 다윈 지역의 비구름 옵션 회수가 투자 부적합 등급이라니? 어떻게 이 거래가 투자 부적합이 될 수 있지?’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준이 실수했다고 확신했다.

호주 중앙은행은 사하라 숲 프로젝트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서, 큰 손해를 봤다.

손해를 메우는 방법으로 다윈 지역 비구름 옵션을 시장에 내놨지만, 이 거래는 형식에 불과했다.

다윈 지역은 건기와 우기로 나뉘고, 현재는 겨울철 건기였다.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시기에 비구름 옵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없어도 그만이었고, 냉철하면 보면 ‘버리는 카드’였다.

비구름 드리블은 기후 오퍼레이션에서도 안전한 기술에 속했다.

거래가 이뤄진다면, 비구름은 다윈 지역을 그저 스쳐 지날 뿐이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파푸아뉴기니 투자자들이 다윈 비구름에 관심을 가졌다.

비구름에 있는 물을 다목적 댐에 옮겨 담아도, 본전은 뽑았다.

버리는 카드, 안전한 오퍼레이션, 풍부한 매수자 ···. 투자 부적합 등급의 징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네즈는 다윈 비구름 옵션에 대한 재평가를 요청했다.

5분도 되지 않아, 답변이 왔다.

준은 재평가 요청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칭찬까지 곁들었다.

“이네즈가 맞아! 등급을 바꿔야 해. 내가 요즘 너무 피곤해서 ···. 대충했어.”

바뀐 등급은 투자 파산 등급이었다.

신용평가 목록에도 없는 해괴한 등급이었다.

“저기 ···. 투자 파산 등급이 뭐야?”

“밑에 설명 붙였어.”

“그건 나도 읽었어. 원금을 잃을 뿐 아니라, 거래 지역의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고, 피해 보상 소송에 휘말려서 파산할 수 있다고?”

“잘 읽었네.”

“그게 말이 돼?”

“어느 부분이 말이 안 돼?”

“다윈 비구름 거래는 아주 간단한 거래야.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는 수준이지. 이 거래가 어떻게 위험할 수 있어?”

“예상 시뮬레이션 첨부됐어.”

“그것도 봤어! 그 시나리오라면, 노아의 방주 시즌 2를 보게 되겠지. 그런 일을 절대 있을 수 없어! 기후거래소 설립 목적이 뭔지 잊었어? 안정된 기후 주권 에너지 확보라고! 그런데 기후거래소 때문에 성경 속의 대홍수가 재현된다면, 앞으로 누가 기후거래를 하려 하겠어!”

이네즈는 삐~ 소리를 내는 끓은 주전자처럼 흥분했다.

올림포스 기후거래소는 이미 사하라 숲 프로젝트의 기생파리 때문에 시장 장악력을 의심받고 있었다.

북미와 남미, 중국과 아프리카 그리고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의 진보주의 정치가들은 지역 블록 기후거래에 대한 타당성 검토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세계 기후 중앙은행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지역 독립적인 기후거래를 꿈꿨다.

기후 진보주의 성향의 정치가들은 올림포스 기후거래소가 조그마한 실수를 하면, 사납게 달려들어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네즈. 네가 바라는 것과 현실을 혼동하지 마. 너를 버려. 그래야 제대로 본다.”

“준 회장 ···. 나는 과학자로 제대로 훈련받았어. 데이터마이닝이 내 전공이야. 나는 항상 객관적으로 자료를 보고 분석해! 네가 첨부한 시뮬레이션에 나오는 자기장 폭풍은 절대 불가능해! 오퍼 위성을 한곳에 모아놓고, 구조 자기장을 쏴대도 그런 자기장 폭풍은 만들 수 없어. 태양계에서 그런 자기장 폭풍은 태양에서만 가능해!”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유럽왕실 기상청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이네즈는 준보다 나이가 많았다.

준은 이네즈에게 더는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이네즈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준은 통화를 끊었다.

악에 받친 이네즈가 다시 연락했다.

이번에는 에바에게 연결되었다.

에바의 목소리를 들은 이네즈는 곧바로 얼었다.

이네즈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두 번이나 에바의 것이 되어야 했다.

민족과 국가와 유럽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봉사했지만, 그 경험으로 이네즈에게 에바는 영원한 주인과도 같았다.

쥐와 고양이와 같은 관계가 되고 말았다.

이네즈에겐 준보다 에바가 더 무서웠다.

최소한 준은 약점을 빌미로 잡아먹지는 않는다.

“이네즈 ···.”

“네! 에바 님.”

이네즈는 발뒤꿈치를 붙이고 다리를 쫙 폈다.

“준 회장님의 시간을 축내지 마라. 앞으로 기후 신용 평가에 대한 내용은 나를 통하도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네즈는 경직된 차렷 자세였다.

통화를 끝내고 나서도, 5분간 서 있어야 했다.

이네즈는 올림포스 정보망으로 준과 에바의 위치를 확인했다.

태평양 솔로몬 해.

진행 방향을 보면, 준은 호주 다윈으로 가고 있었다.

‘투자 파산 등급으로 지정한 곳으로 직접 간다고? 왜?’

이네즈는 뜻밖의 상황이 너무 궁금해서, 준에게 전화해서 이유를 물어보려 했다.

동시에 무서운 에바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 ···. 이유가 있겠지.”

그녀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다른 일을 시작했다.

준은 기간트에서 친아버지 듀크의 기록을 살폈다.

듀크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괜찮은 대학까지 무난하게 입학 졸업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장래희망으로 ‘가수’를 적었다.

노래를 잘 불렀고, 외모도 빼어난 편이었다.

오는 여자 마다치 않고, 가는 여자 잡지 않는 성격이었다.

최초의 법 위반 사건은 과속이었고, 친구들과 대형마트에서 좀도둑질하다가 벌금을 물었다.

준과의 공통점도 있었다.

듀크는 작은 투자회사를 운영했었다.

듀크 투자회사는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망했다.

투자 내용을 보니, 처음부터 되지도 않을 업종에 투자했었다.

헌 옷을 새 옷처럼 보이게 하는 염색업이라니!

금속으로 만든 책표지라니!

책을 금으로 코팅하는 도금업이라니!

이런 업종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 나의 친아버지라니!’

준은 몹쓸 저주에 걸린 느낌이었다.

기간트는 다윈 국제공항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준과 에바는 통상적인 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활주로에서 리무진 아르크스를 타고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호주 국가 정보부에서 준의 입국을 일급기밀로 다뤘다.

호주 국가 정보부도 듀크가 준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준의 친아버지를 제일 먼저 찾아낸 자는 바로 영국 첩보부의 조지프 펙스턴이었다.

조지프는 체크무늬 양복과 홈즈 모자를 썼고,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는 영국이 악성 무더위 헬하운드 사태로 사망자가 속출할 때, 굿데이를 심사한 적이 있었다.

영국 기상청이 예측하지 못한 무더위를 어떻게 굿데이가 예측했는지 알아내려 했다.

“그때만 해도 준이 이런 거물이 될 줄은 몰랐어.”

조지프는 홀츠 교도소 입구에서 에바를 맞이했다.

호주는 영연방 국가로, 호주 국가 정보부는 영국 첩보부와 한지붕 두 식구 같은 사이였다.

“존칭을 붙여줘요. 준 회장님은 당신 친구가 아닙니다.”

에바는 확실하게 지적해줬다.

“알겠습니다. 에바 님.”

조지프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에바의 인맥 파워에는 영국 고위 관료와 정치인까지 포함되었다.

조지프는 굿데이를 위험한 조직으로 평가했고, 스티븐 교수와 함께 플래시크래시 사태의 책임을 굿데이로 떠넘겼다.

조지프는 그 후 진급하지 못했고, 오히려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호주 다윈의 홀츠 교도소로 파견 당했다.

에바의 뜻이었다.

준이 아르크스에서 내리자, 조지프가 허리를 숙였다.

“준 회장님.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한테 뭐 죄지은 거 있으세요?”

준은 조지프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조지프의 행동에서 석연치 않은 것이 보였다.

조지프는 준을 두려워했다.

“준 회장님과 굿데이에 대한 보고서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죠?”

“다른 것은 위험하다 ···. 굿데이와 준 회장님은 다른 기업과 인물과는 너무 다르다.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를 위험인물로 보고했군요.”

“아! 그땐 어쩔 수 없이, 그냥 그렇게 ···.”

조지프는 침을 삼켰다.

에바의 뜻에 따라, 진급에서 밀리고 좌천되어 남반부 촌구석이라 불리는 홀츠 교도소에서 시간을 썩히고 있었다.

준이 맘만 먹는다면, 조지프는 연금도 없이 영국 첩보국에서 해임될지도 모른다.

조지프에게 있어서, 준은 생살여탈권을 쥔 인물이었다.

“절 위험인물로 보고하셨다면, 제대로 보신 겁니다. 눈썰미 좋으시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미팅 장소로 간부 회의실을 비워놨습니다.”

간부 회의실에는 쿠키와 조각 케이크 그리고 커피와 키위 주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준은 아버지와 단둘이 만나기를 원했다.

간부 회의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교도관과 함께 들어온 듀크는 회의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점차 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교도관은 준의 눈치를 보고 조용히 나갔다.

“준?”

“네.”

“굿데이의 준?”

“그래요.”

“날 만나러 오신 건가요?”

듀크는 준과의 만남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

“네.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앉으세요.”

듀크는 준 맞은 편에 앉으며, 쿠키를 집어 보였다.

먹어도 되느냐는 제스처였다.

“내가 쿠키를 먹어도 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란 뜻이군. 날 만나러 온 이유가 뭡니까? 제가 개발한 반중력 장치를 원하시는 거겠죠?”

흰머리가 성성한 듀크는 거들먹거렸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그렇겠죠. 굿데이의 요빅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나의 반중력 ···. 잠깐, 뭐라고?”

듀크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준의 어머니가 에밀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가 젊었을 때, 에밀리와 놀아났던 추억도 있었다.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오오!”

듀크의 얼굴에 폭죽 같은 미소가 번졌다.

준은 듀크를 따라 미소 짓지 않았다.

“아들아! 잘 왔다.”

“이곳이 교도소라는 걸 생각하면, 적절한 표현은 아니네요.”

“너도 알잖아. 천재가 살기 힘든 세상이야. 나에겐 엄청난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있어. 기후거래 같은 건, 쥐뿔도 아니야!”

“아버지 ···. 쥐에는 뿔이 없어요.”

준은 처음 보는 아들에게 사기를 치려는, 친아버지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나는 네가 내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 네가 위험해질까 봐, 지금까지 모른 척했단다. 그래도 널 하루도 잊은 적 없단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갑자기 쉽게 해결된 적이 있지?”

“아뇨. 그런 적 없어요.”

준의 솔직한 대답에 듀크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듀크는 타고난 구제불능의 사기꾼이었지만, 노련하지는 못했다.

“그럴 리가 잘 생각해봐. 파루시아 때는 어땠어? 스티븐 개자식이 널 괴롭혔을 때, 사는 게 힘들어서 직접 돈 벌 생각을 했잖아. 잘 안 될 거 같았는데, 아주 잘 됐잖아. 그게 다 내가 너의 수호천사였기 때문이야. 이제 내 지분을 받아야 할 때가 온 거 같아. 너도 그래서 여길 온 거겠지?”

“아닌데요.”

준의 대답은 단호했다.

“내가 너의 친아버지인 건 맞는 거지?”

듀크는 손끝을 깨물며 초조해했다.

눈앞에 나타난 준이라는 행운을 어떻게 요리해야 평생 우려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맞습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이고요.”

“좋아! 다시 시작하지. 유전자 특허라고 알지? 네가 가진 DNA 절반은 나의 거라고. 그걸 돈을 따지면 얼마나 될까?”

“···. 에바에게 물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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