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거래소-24 >
루이스 상원 의원의 눈 밑이 부르르 떨렸다.
준의 친아버지?
분명 데이빗은 준의 친아빠가 아니라는 소문이 있었다.
루이스 상원 의원이 관리하는 정보조직에서 은밀하게 파헤친 결과,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루이스 상원 의원의 정보 수집은 딱 거기까지였다.
준의 친아버지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사사로운 건수로 준과 꼬이게 되면,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준과 굿데이는 오렌지 시티의 핵심이었고, 이미 국가를 초월한 초법적인 조직이었다.
괜스레 잘난 척, 아는 척했다가는, 된통 당할 뿐이었다.
“잔느 ···. 무슨 뜻이냐?”
“뜻은 없어요. 준의 친아빠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그걸 어떻게 알게 됐지?”
“DNA 매칭으로 확인했죠.”
“그 말은 ···. 네가 준의 DNA를 훔쳤다는 뜻이구나.”
“훔쳤다뇨? 사방에 널린 게 DNA예요. 길거리 개똥 주인을 DNA로 찾는 세상이에요.”
“네가 아는 걸 준이 모르고 있을까? 너는 준 때문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어. 이제 준을 잊어라. 준은 우리가 손댈 수 없는 거물이야. 레벨이 달라, 초법적인 존재야.”
“아버지 퀴블러 가문의 가훈을 잊으셨어요? 퀴블러 가문의 남자는 권력을 잡고, 여자는 남자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가지지 못하면 파괴한다.”
“네 모습을 봐라. 우리가 너무 준을 만만하게 봤어. 이제 퀴블러 가문의 가훈은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요?”
“퀴블러 가문은 ···. 준을 섬긴다.”
루이스 상원 의원은 교도소를 나와, 에바에게 전화했다.
잔느가 준의 친아버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래야 후환이 없을 것 같았다.
사실을 숨겼다가, 나중에 일이 꼬이면 ···. 정말이지 후환이 두려웠다.
내용을 전해 들은 에바는 침묵했다.
“루이스 상원 의원님 ···.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준 회장님의 부모님은 이혼 위기를 맞았지만, 지금은 잘 지내시고 계세요. 그런데 ···. 친아버지라니. 당황스럽네요.”
“사실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이상한 의도는 없습니다. 저와 퀴블러 가문은 굿데이와 준 회장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루이스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에바는 폭탄 돌리기 게임 술래가 된 거 같았다.
루이스가 에바에게 사실을 알려준 이상, 그녀는 준에게 보고해야만 했다.
내버려둬도 자연 소멸하는 사건도 있지만, 이번 건수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갈 문제였다.
에바는 킹스덤 중앙 도서관 입구에서 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열람시간이 끝나갔지만, 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준이 도서관에서 자주 밤샘했다.
열람실 마감 시간이 되면 문이 닫혔지만, 준에겐 골든 키가 있었다.
골든 키가 있으면 24시간 도서실 열람이 가능했다.
“준 능력자님께서는 ···. 오늘도 여기서 밤샐 거야.”
길버트는 에바에게 스노우캣 커피를 건넸다.
길버트는 굿데이 직원은 아니었지만, 굿데이에 투자한 덕에 빚도 청산하고, 집도 얻고 노후자금까지 준비해 놨다.
킹스덤과 오렌지 시티에는 길버트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
굿데이 덕분에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들 ···. 이름 하여 ‘굿데이의 신자’였다.
굿데이 신자들은 준을 ‘준 능력자님’으로 불렀다.
에바가 스노우캣 커피를 받자, 길버트가 덧붙였다.
“잘 모셔라!”
“빨리 퇴근이나 해!”
에바가 쏘아붙이자, 길버트는 배시시 웃으며 물러났다.
열람실 유리문이 닫혔다.
열람실에는 준과 에바뿐이었다.
그녀는 작은 배낭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배낭 안에는 치즈 샌드위치와 쿠키 그리고 음료수가 들어 있었다.
준이 책 한 권을 다 읽고 다른 책을 고르려 일어설 때, 에바가 나섰다.
“준 회장님, 잔느가 준 회장님의 친아버지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에바는 보았다.
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준은 감정 결핍증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뿌리에 대한 확인 욕구가 있었다.
비록 데이빗의 아들로 길러졌지만, 그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은 준의 심장에도 박혀 있었다.
“그래 ···. 그렇다면 만나야지.”
“준 회장님. 평소에도 친아버지를 만나실 생각이 있으셨습니까?”
‘그렇다.’
준은 말로 답하지 않고, 뇌파 통신으로 응답했다.
뇌파 통신에는 메시지뿐 아니라 감정과 관련 지식이 동시에 전달되었다.
준은 꽤 지쳐 있었다.
기후 신용 평가가 가능한 사람은 오직 준뿐이었다.
그는 하루 24시간 꼬박 기후 신용 평가를 하고, 다음날 쉬지도 않고 올림피아 라운드에 참석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48시간 동안 기후 신용 평가를 하고, 주말과 일요일 동안 킹스덤 도서관에서 뉴런 독서를 했다.
준을 곁에서 지켜본 굿데이 직원들은 준의 지독함에 혀를 내둘렀다.
로마 시대 노예도 준처럼 부려지지 않을 것이다.
“만나고 싶으셨다면 ···. 왜 직접 찾지 않으셨습니까? 준 회장님이라면 쉽게 ···.”
“아버지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준도 어쩔 수 없는 아들 중 한 명이었다.
아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대단한 존재이길 희망한다.
“스노우 교도소에 연락해서, 잔느와 면회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에바 ···. 우리는 굿데이다. 잔느의 도움 없이도 나의 친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
준의 말대로였다. 굿데이의 정보력이라면, 10초 이내에 준의 친아버지를 섭외할 수 있다.
준은 보았다.
에바가 눈동자를 돌리는 것을.
에바는 예전부터 준의 친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준을 편하게 지내도록 노력했고, 준의 약점이 될만한 것을 미리 다 파악해놨다.
그중에는 당연히 준 친아버지의 정보도 있었다.
“부끄러운 사람이냐?”
준의 물음에 에바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그분은 지금 ···. 사기죄로 복역 중이십니다.”
“아버지는 ···. 그러니깐 교도소에 있는 나의 친아버지는 나를 알고 있나?”
“아뇨. 하지만 그분에겐 준 회장님 이외의 다른 자식이 있습니다.”
“배다른 형제라 이거군.”
준은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아팠다.
기생파리의 발생 원인인 생체 금속 정보량보다 더 복잡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이름이?”
“듀크 프레데릭 프랑크입니다. 준 회장님. 제 의견은 ···. 그분을 만나지 마시라는 겁니다. 듀크가 준 회장님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으실 겁니다.”
에바는 그녀답지 않게 강하게 의견을 냈다.
그리고 감히 준의 친아버지를 듀크라고 존칭 없이 불러댔다.
그만큼 듀크의 성향은 타고난 사기꾼이었다.
그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였고, 기생충처럼 비열했다.
“배다른 나의 형제들은?”
“준 회장님에겐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습니다.”
“형제들의 어머님은?”
“5년 전, 위암과 갑상샘암으로 수술을 받으셨지만, 지금은 건강하시고, 식당 일을 하십니다.”
“어디에 사시지?”
“현 거주지는 호주 다윈입니다. 듀크가 수감 된 곳도 홀츠 교도소입니다.”
“어머니 ···. 그러니깐 나의 친어머니도 아셔?”
“에밀리와 데이빗 모두 모르십니다.”
준은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묘한 일이었다.
인류 최강, 리미트리스 준이 가족관계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다니!
그동안 잘 가꿔왔던, 고밀도 지식 생태계가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는 느낌이었다.
데이빗이 이혼 서류에 사인했지만, 에밀리는 서류를 법원에 넘기지 않았다.
이혼 사건은 중년 부부의 사소한 부부싸움처럼 조용히 넘어갔다.
데이빗은 여전히 에밀리를 사랑했고,
에밀리는 ···. 반성을 좀 많이 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채로, 구더기 밥이 될 뻔했고, 죽음의 순간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하룻밤 쾌락은 정말이지 부질없는 짓이었다.
끝까지 남는 건, 가족이었다.
이 간단한 진리를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깨달았다.
데이빗과 에밀리는 아침에 함께 식탁에 앉아, 그날 하루 뭘 하고 놀까? 연구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준은 멍한 시선으로 친아버지 듀크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이제 겨우 사이가 다시 좋아진, 에밀리와 데이빗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잔느도 에바와 같은 내용을 알고 있어?”
“지금 확인해볼까요?”
에바는 스마트 워치를 가슴 높이로 가져갔다.
잔느가 있는 스노우 교도소 폴리나 교도소장은, 에바의 도움으로 승진한 인물이었다.
에바가 전화하면, 새벽이라도 일을 처리할 것이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에어스크린에 잔느의 얼굴이 나타났다.
잔느의 머리가 짧았지만, 엘리트다운 면모는 여전했다.
“에어스크린 통신으로 보니깐 느낌이 또 다르네?”
잔느는 상큼한 미소를 보였다.
그녀는 그녀가 가진 정보의 힘을 믿었다.
“나의 친아버지 이름은?”
“인사도 없이 바로 물어보는 거야? 많이 급한가 보네. 너의 친아빠 이름은 듀크 프레데릭 프랑크이야.”
바로 통신 종료되었다.
잔느는 회색으로 변한 에어스크린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내심 밀고 당기는 심리전을 기대했는데, 이건 뭐 ···.
“죄수 번호 3840, 방으로 돌아가라.”
뚱뚱한 간수가 현실을 일깨워줬다.
준은 열람실을 나와, 킹스덤 캠퍼스를 걸었다.
물리학부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는 학생들이 보였다.
준은 저런 단체 행동이 항상 서툴렀다.
킹스덤에 입학했던 이유는 일자리를 얻기 위함이었다.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대학에 온 것이었다.
대학은 세상에 나아가서 모든 것을 다 가져라! 소리치지만, 실제로 가르치는 것은 비굴한 순종이었다.
잘하는 것보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최고로 평가해줬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처단했다.
준도 순교자가 될 뻔했다.
스스로 먹고살 길을 만들지 못했다면, 부적응자로 분류되어서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만든 세상이었지만,
준은 그 사람들과 좀 달랐고,
이제 준이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준은 응용디자인학부의 떡갈나무를 지나면서, 중얼거렸다.
“호주로 간다.”
곧바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준 바로 앞에 에바의 핑크 람보르기니가 멈춰 섰고, 불카누스 격납고에서 기간트가 머리를 내밀었다.
로켈은 정보망을 동원해서, 호주 상황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준짱, 호주 다윈 지역의 기후 신용 평가가 낮네요?”
“호주 중앙은행이 사하라 숲 프로젝트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어. 손해 본 탄소달러만큼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 어려울 거 같아.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올림포스 기후거래소에서 옵션을 거둬들일 거야.”
“옵션이라는 게?”
“다윈 지역에 공급할 비구름을 다른 곳에 넘길 거야.”
“가뭄이 오겠군요.”
“거래소와 투자자들은 그럴 거로 생각하고 있어.”
대답하는 준의 눈빛이 멍했다.
준은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방황했다.
로켈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참았다.
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옮겨서, 카이 옆에 앉았다.
“요즘 열심히 하고 있지?”
“뭘요?”
“기후 신용 평가 ···. 언제까지 준짱에게 의지할 순 없잖아. 기후 신용 평가 때문에 잠도 못 주무시고, 식사도 거른다고.”
“해봤는데, 일치율이 15% 정도예요.”
“준짱을 상대로 15%라면 높은 거 아니야?”
“그게 ···. 컴퓨터가 해도 20%는 넘어요.”
“컴퓨터라면?”
로켈이 눈을 깜빡일 때, 맞은편 좌석에서 유진 악마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저예요!”
“그랬군. 유진 작가님이셨군. 역시! 준짱을 상대로 20% 일치율이라니! 대단해!”
“칭찬 고마워요. 준느님은 칭찬이 너무 인색하세요.”
“천재 중의 천재인 카이도 일치율 15%밖에 안 되는데, 일치율 20%는 정말 대단한 거 아니야?”
“대단한 거죠! 대단하고 말고요!”
유진 악마는 멋들어진 리듬과 박자로 추임새를 넣었다.
“준짱은 뭐라고 했어?”
갑자기 유진 악마 얼굴이 빨개졌다.
“뭐라고 했길래, 인공지능 얼굴이 빨개져?”
“준느님은 ···. 그러셨어요. 원숭이보다 낫다고. 로켈님 저는 언제쯤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