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97화 (95/141)

< 기후거래소-22 >

‘준이라고 해도, 절대 알 수 없어.’

잔느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기생파리는 닥터 칼라니티 님의 작품이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기술이었다.

수십 년 동안 닥터 칼라니티가 구축한 강화 생물학의 세계는 깊고도 오묘했다.

지금 당장 잔느가 무대에 서서 비밀을 밝힌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며, 이해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잔느의 마음이 조용해졌다.

‘준! 네 맘대로 떠들어! 네 녀석의 한계를 확인해 주겠어!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칼라니티 님에겐 한참 부족해!’

그녀는 독한 눈빛으로 화면 속 준을 노려보았다.

“기생파리가 항상 사람과 동물 몸에 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파리처럼 쓰레기통에도 알을 까죠. 우리가 아는 기생파리는 예전에는 위험한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과 동물 몸에 알을 까지 시작한 거죠.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죠. 혹시 여기 이유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준은 객석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모두 바짝 긴장했고, 무료로 제공된 생수를 연거푸 마시는 사람도 많았다.

기생파리는 사하라 숲에서 최초로 보고되었다.

사하라 숲은 거대한 기후거래 프로젝트였고, 정황상 기후거래의 자기장과 연관되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올림포스는 기후거래소의 중심이었고, 기후거래로 먹고사는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기후거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분석에 상당히 민감했다.

발표자가 준일지라도 그랬고, 준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준이 기후거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발언을 하면, 그 파장은 거셀 것이다.

기생파리 발생 원인의 진실에 대해,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앙리 백작님이 말씀하신, 기후 신용 평가를 쉽게 설명하는 건, 이미 끝났습니다. 기후 신용 평가는 건축물 안전 평가 같은 거죠. 푸리에 구조 방정식을 사용하는데, 푸리에는 상상력의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해석이 어렵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기생파리의 발생 원인을 밝히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힌트를 주자면, 기후거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때아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앙리 백작도 열렬하게 갈채를 보냈다.

‘기생파리는 기후거래와 관계가 없다!’ -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었다.

무대 뒤, 스크린으로 지켜보는 잔느의 눈매가 더 가늘어졌다.

“근심 걱정이 많은 눈빛이군.”

로켈은 통로 쪽 벽에 느긋하게 몸을 기댔다.

잔느가 밖으로 나가려면, 로켈을 지나야 했다.

“로켈 님. 용무가 끝나셨으면, 자리를 비켜주시죠. 이곳은 잔느 님의 개인 공간입니다.”

문지기 아르코는 로켈을 압박했다.

“여길 오면, 닥터 칼라니티를 만날 줄 알았는데? 녀석은 어디에 있지?”

“그분은 선지자이십니다. 존칭을 붙여주십시오.”

“존칭은 개뿔 ···. 준짱 밑으로 모두 다 그냥 인간이다. 칼라니티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어. 그 양반 평소에도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일은 준짱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그 말투. 참으로 거북합니다.”

아르코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을 뿐이었는데, 큰 북소리가 났다.

공기를 진동시켜, 상대를 공격하는 수법이었다.

로켈이 기댄 통로 쪽 벽이 종잇장처럼 울렸다.

아르코는 바쿠무의 마스터 왕리를 해치운 실력자였다.

그가 닥터 칼라니티에게 받은 은혜로운 강화능력은 인간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로켈이 기댔던 자리에 큰 구멍이 뚫렸다.

쇠망치로 벽을 내리친 것 같았다.

로켈이 아니었더라면, 창자가 끊어졌을 것이다.

그는 요령껏 충격파를 피하고, 아르코의 품으로 뛰어들어가, 속사포 펀치를 먹였다.

로켈이 다시 간격을 벌리고, 아르코와 마주 섰을 땐, 아르코의 가슴과 몸통에 무수한 펀치 자국이 새겨졌다.

“문지기는 선빵 안 날린다고 알았는데 ···.”

로켈은 그가 기댔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의 머리가 있던 부위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있었다.

아르코는 먼지 털 듯이 펀치 자국을 털어냈다.

로켈이 성심성의껏 새겨 넣은 펀치였지만, 아르코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닥터 칼라니티 님은 나에게 데빌 보디를 주셨지. 인간의 공격력으로는 내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해. 내 앞에서 칼라니티 님을 ···. ‘목욕한 자는 살아갑지 못한다.’ - 쿨럭.”

아르코의 말끝 부분이 묘하게 꼬이며, 격한 기침을 했다.

“뭐? 칼라니티를 목욕한 자는 살갑지 못하다고? 뭔 소리야?”

로켈이 되물었지만, 아르코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 내 몸은 칼라니티 님께서 친히 하사하신 데빌 보디인데 ···. 총알도 튕겨내는 초고강도 보디를 ···.”

아르코의 몸은 타들어 가는 고기조각처럼 지글거렸다.

“기술력의 차이다. 굿데이의 파라엔진과 블랙마켓의 스키마의 차이랄까?”

“이 배신자 ···. 시온의 명을 어기고, 굿데이에 빌붙었지! 내가 아니더라도 시온의 척살대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찌그러지면서도 내 걱정을 해주다니, 감동이군. 시온은 변했어. 그들은 준짱을 해치려 했다. 내가 보호하는 씨앗을 짓밟으려 했다.”

아르코의 몸 전체가 지글거렸다.

그는 무릎 꿇었다.

“ ···. 사 ···. 살려다오.”

“저 벽에 뚫린 구멍을 봐라. 넌 날 죽이려 했다. 잔느의 경호원으로 따라온 거 같은데 ···. 만나서 더러웠다. 다시 만날 일 없다 생각하니, 마음이 다 편하네. 버둥거리지 말고, 조용히 빨리 가라.”

로켈은 아르코의 이마를 쳤다.

아르코는 절망 속에서 뒤로 넘어갔다.

지글거리던 아르코의 몸은 부글거리며 거품으로 변했다.

잔느는 놀란 눈으로 아르코가 사라진 자리와 로켈을 보았다.

문지기 아르코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방금 직접 봤지만, 믿기지 않았다.

“잔느 ···. 너무 놀라지 마. 내가 존나 강하긴 해도, 아르코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능력은 없어. 닥터 칼라니티는 아무도 믿지 않아. 아르코가 배신할 때를 대비해서, 물거품 자폭 기능을 심어놓았겠지.”

“당신 ···. 날 잡으러 왔나요?”

“그럼? 사귀러 왔겠어?”

로켈의 대답에 잔느는 강한 모욕감을 느꼈다.

키 작은 남자에게 대놓고 무시당하다니!

“너는 나에게 ‘목욕값’을 줬어!”

그녀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발음이 헛나왔다.

발음은 헛나왔지만, 그녀의 손끝에서 미세한 독침이 우수수 쏟아졌다.

갈륨으로 만든 독침은 그녀 감정 상태에 따라, 액체와 고체 사이를 오갔고, 형태도 변했다.

“나쁜 연놈은 보고도 배우지 못하는구나!”

로켈은 탄식했다.

아르코가 당한 걸 봤으면, 조용히 처분을 기다릴 것이지. 어디서 지랄 떠는 건지 ···.

로켈은 겉옷을 벗어, 날아오는 독침을 단숨에 동이어 묶었다.

“이제 날 어떻게 할 거죠?”

“모든 것은 준짱의 뜻대로 ···. 좀 기다려봐. 준짱께서 아직 발표를 끝내지 않으셨잖아!”

그는 턱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 속의 준은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듯이, 조용히 화면을 응시했다.

그는 로켈, 잔느, 아르코의 상황이 끝나자마자, 다시 말을 이었다.

“···. 기생파리의 발생 원인은 금속입니다.”

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발표용 에어스크린에 인燐 결정체가 나타났다.

“인은 대표적인 생체 금속이죠. 에너지 대사에 주성분이고요. 이 금속은 DNA의 구성 성분이기도 합니다. DNA가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건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금속은 어떨까요? 금속도 유전자처럼 어떤 정보를 전달할 순 없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기생파리의 뉴런에는 일반 파리보다 더 많은 양의 인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인에 새겨진 정보는 DNA를 빌려 유전되지만, 유전자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화면에 있는 결정체는 기생파리의 뇌에서 추출한 다변량 정보량입니다.”

결정체 옆으로 간략한 설명이 붙었다.

운동성, 온도, 촉감의 항목이 나열되고, 허용 범위가 나타났다.

모든 항목의 허용범위를 만족하는 조건은 동물이었다.

“저 정보에 따라, 기생파리는 알을 까고, 그 정보를 이어받은 구더기는 몸속을 파고듭니다. 혹시 방금 보신 생체 금속 정보량을 알고 계신 분 계신가요?”

아무도 없었다.

“정확하게 몰라도, 연구하려 했던 분은 안 계신가요?”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렇군요. 기생파리의 발생 원인은 누군가 생체금속 정보량을 이용해서, 기생 지식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누굽니까?”

객석에서 날 선 목소리가 날아왔다.

“누군지가 궁금해요? 생체 금속 정보량의 원리가 궁금한 게 아니고요?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왜 여기 있는 분들은 모르시는 건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준의 사고방식은 일반인과 달랐다.

그는 누군지 보다, ‘왜?’ 그리고 ‘어떻게?’가 더 중요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쏠렸다.

잔느였다.

그녀가 무대에 올라왔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 올라왔을 때와 전혀 달랐다.

처음 올라왔을 때에는 갓 피어난 꽃처럼 화사했지만, 지금은 꽉 막힌 굴뚝 같았다.

“닥터 칼라니티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자가 ···.”

그녀는 준을 쳐다보았다.

준은 허락의 의미로 턱을 끄덕였다.

“생체 금속 정보량을 조작해서, 기생파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관람석 전체가 웅성거렸다.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닥터 칼라니티 옆에서 직접 봤습니다.”

“당신이 칼라니티를 도왔습니까?”

잔느의 대답이 막혔다.

그녀는 막다른 여자의 비밀 무기인 눈물을 보였다.

“왜 지금에서야 밝히는 겁니까? 좀 더 일찍 밝혔더라면 ···.”

“더 큰 재앙이 왔겠죠.”

준이 말을 이어받았다.

준에게는 모든 것이 환히 보였다.

굿데이가 기생파리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면, 세상 모두가 굿데이를 의심했을 것이다.

준은 의심받는 것이 두렵지 않았지만, 그다음 사건은 피하고 싶었다.

굿데이가 무슨 솔루션을 개발하든, 닥터 칼라니티는 그것을 빌미 삼아 더 큰 재앙을 설계했을 것이다.

현재 닥터 칼라니티의 기술력은 미지수였다.

이 세상에서 생체 금속 정보량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는 인물은 단 두 명이었다.

준과 닥터 칼라니티.

수많은 사람이 구더기 밥이 되어 목숨을 잃어도, 더 큰 희생을 줄이고, 소모전을 피하려면,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준은 잔느가 기생파리 솔루션으로 팔루스 바이러스를 내세울 때, 결심했다.

지금이라면, 끝낼 수 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최고의 지성들입니다. 오늘 참석하지 않았어도, 올림포스 라운드의 초대를 받은 분들까지 합치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계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일에 몰두하신 적이 있나요? 너무 쉬운 질문이라면, 다른 질문도 하겠습니다. 최근 일 년 동안 여행을 하거나 일주일 이상 휴가를 보낸 적이 있습니까? 닥터 칼라니티는 평생 강화 생물학을 연구했고, 지금도 연구에 몰두해 있을 겁니다. 그는 생체 금속 정보량을 알아냈고, 지금은 정교하게 조작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닥터 칼라니티는 또 무슨 일을 꾸밀까요? 그때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 할 수 있을까요?”

끄응 - 객석에서 힘겨운 신음이 들렸다.

“잔느.”

준이 말하자, 포돗빛 원피스 그녀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네! 준 회장님.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고생했다.”

잔느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엉엉 울었다.

힘겨운 날들이었다.

굿데이 면접시험에서 떨어진 후로, 원한을 품고 실버 드래곤에 취직했지만, 회사가 파산했다.

에바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선데이 랜달 회장을 도왔지만, 클래스는 굿데이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블랙마켓의 닥터 칼라니티를 섬겼다.

이번에는 준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놀아날 거라고 여겼는데 ···.

오히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은 준이 아니라, 잔느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준의 자비만을 바라며, 펑펑 울어댔다.

“몸을 아껴라.”

준은 자비로웠다.

“고맙습니다! 준 회장님! 모든 것은 ···.”

“그래 안다. 체력을 잘 아껴라. 교도소 생활은 힘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