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거래소-21 >
“굿데이가 사용하는 기후 신용 평가 모형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신용 평가 모형과 기후예측 모형이 비슷하죠. 둘 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이 기본이고요. 저는 아직도 푸리에 구조 방정식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증명하신 분 계신가요?”
끝 부분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곧바로 강렬한 무대조명이 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준 뒤에 있는 대형 에어 스크린은 그 사람 모습으로 꽉 찼다.
그 남자는 필사적으로 광대 같은 미소를 만들어냈다.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미소였다.
참으로 보기 안쓰러웠다.
장난삼아 손들었는데,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끌 줄 몰랐다.
“그 기분 이해합니다. 여기 있는 저의 속마음도 그렇거든요.”
준은 씽긋 웃어 보였고, 그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세상을 방금 창조한 신이 지을 법한, 자비롭고도 매력적인 미소였다.
객석 여인들의 심장이 동시에 쿵 내려앉았다.
그녀들은 동시에 침을 삼켰다.
삼키지 않았으면, 입술 사이로 침이 흘렀을 것이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은 회귀분석 오차항을 커버하려 만들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아실 이유는 없지만, 회귀분석 오차항은 정규분포를 사용합니다. 국제 표준 수학 교과 과정을 보면, 고등학교에서 정규분포를 가르치죠. 아! 갑자기 이야기가 재미없어졌죠? 이게 바로 정규분포의 문제점입니다.”
사람들은 웃어댔다.
기후 신용 평가라는 묵직한 주제였지만, 개그 콘서트 같은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무대 있는 인물은 요빅 생태계의 창조자 준이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파라엔진을 이식받은 ‘파라 휴먼’이었다.
파라엔진의 건강 지능은 최근 업데이트되어서, 미아시스까지 진단해내고, 체내 구더기 활동을 억제하는 티록신을 분비했다.
강연장을 지키는 말벌 로봇도 굿데이 제품이었고. 기후 오퍼레이션 핵심 기술도 굿데이의 것이었다.
올림포스 라운드에 있는 모든 이들은 굿데이와 준의 덕택으로 건강도 챙기고, 일자리도 얻고, 성공까지 거머쥔 사람들이었다.
앙리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굿데이가 없었더라면, 기후거래제도는 최소 몇십 년 늦어졌을 것이다.
구세주를 대하는 눈길로 준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했다.
준이 ‘웃어라.’ 라고 짧게 말해도, 폭소를 터트릴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고, ‘울어라!’ 라고 말해도 오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준은 마술쇼 같은 강연을 보였다.
그들은 왠지 모를 뜨거운 감동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정규분포는 사하라 숲 재앙을 예측 못 합니다. 재미도 없고, 예측력도 떨어지는 거죠. 정규분포가 생명을 얻어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 대칭이거든요. 정규분포인간에겐 작은 문제가 있는데요 ···. 앞뒤도 같아요.”
카리스마가 곁들어진 유머의 위력은 엄청났다.
사람들은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었다.
신을 찬양하는 광신도 같았다.
무대 뒤편에서 모니터로 준을 지켜보던 잔느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준이라는 남자 ···. 보면 볼수록 탐났다.
퀴블러 가문의 여자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한다.
중세시대에는 퀴블러 가문 여자 때문에 크고 작은 전쟁이 여러 번 있었다.
잔느는 가문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퀴블러 가문은 항상 승리자였다.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그녀의 원한은 날카롭게 벼른 검이었다.
복수는 그녀의 것이었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녀는 준에게 복수하려, 닥터 칼라니티를 섬겼다.
기생파리도 닥터 칼라니티의 작품이었다.
강화 생물학의 아버지, 칼라니티의 기술은 자연의 어머니를 능가했다.
세계 보건기구의 과학자들과 여러 연구소의 학자들도 기생파리의 유전자 지도에서 인위적인 조작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정도로 칼라니티의 기술은 정교했다.
“원래 이 자리는 에바가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에바를 대신해서 나온 이유는 ···. 푸리에 구조 방정식을 증명했다고 해야 할까?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느꼈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진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사하라 숲 재앙을 예측한 것도 푸리에 구조 방정식입니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은 좌우 대칭도 아니고, 앞뒤가 같지도 않습니다. 데이터를 조금만 줘도, 수많은 미래를 떠들어댑니다. 입력된 데이터보다 더 많은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자연계에서는 흔한 현상입니다. 태양을 보세요. 태양은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는 핵융합 현상이죠. 태양은 부지런하게 핵융합을 해대지만, 언젠가는 물질팽창을 거쳐 차갑게 식을 겁니다. 핵융합 에너지 일부는 물질로 변하는데, 이 물질이 쌓이는 거죠. 동맥경화 정도로 생각하셔도 되겠네요. 커진 태양은 지구를 잡아먹고, 화성과 토성까지 먹어치울 겁니다. 인류가 계속 살아가려면 그전에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죠. 갑자기 인류 운명이 위태로워졌죠? 이게 푸리에 구조 방정식의 매력이죠.”
모두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준을 지켜보았다.
웃음이 넘쳐났지만, 한편으로는 최후의 결전을 앞둔 병사들처럼 비장했다.
방금, 준은 푸리에 구조 방정식을 증명했다고 했다. 아니, 증명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무엇이라고 했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이 참일 경우, 성립되는 독특한 차원 방정식이 몇 개 있었다.
그 차원 방정식에 따르면, 정신과 물질은 교환 가능해지는 기묘한 세상이 가능해진다.
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준의 발표는 강렬한 재즈 공연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이 빠져든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은 매우 다루기 어렵습니다. 기후 예측 모형이 출력하는 수만 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단 하나만이 미래 사건이죠. 수만 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논리적인 접근 방법이 없습니다. 있었다면, 알고리즘으로 만들었겠죠. 푸리에 구조 방정식에 잘못된 데이터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미래를 예측할까요? 이에 대한 논문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메타분석에 따른 최종 결론은 ‘예측한다!’ 입니다.”
사람들은 숨소리를 줄이며, 준에게 집중했다.
준이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준은, 모두에게 느낌을 주는, 강렬한 존재였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이 다루는 영역은 데이터 과학이 아닙니다. 상상력의 영역이죠. 푸리에 구조 방정식이 그토록 강력했던 이유도, 상상력을 다루기 때문이죠. 누군가 푸리에를 증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수학은 현대수학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상상력 그 자체를 다뤄야 할 테니깐요. 상상력에 논리가 있던가요? 패턴이 있나요? 푸리에의 결과 해석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학적인 방식으로는 필터링 되지도 않고, 해석되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굿데이에서는 푸리에 결과를 해석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합니다. 예술의 좋은 점은 수학과 달리,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이제, 다시 사하라 숲 재앙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선데이 잔느
는 팔루스 바이러스로 모든 기생파리를 저 같은 수컷으로 만들 겁니다. 충분한 솔루션이 됩니다. 기생파리가 창궐했을 때, 굿데이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여론이 있었죠. 로봇 말법과 티록신 요법, 파라엔진의 건강 지능을 업그레이드했지만, 기생파리를 퇴치한 것은 아니죠.”
기묘한 뉘앙스였다.
마치 방법이 있었지만, 일부러 찾지 않았다는 식으로 들렸다.
굿데이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기생파리로 수많은 사람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다.
만일, 할 수 있었는데도, 솔루션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 엄청난 비난을 피할 수 없으리라.
“올림포스 기후거래소는 사하라에 안정적인 기후를 공급했고, 예상대로 울창한 농경지와 숲이 탄생했죠.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낸 겁니다. 당연히 엄청난 기후 자금도 투자되었죠. 만일 여러분이 파리라면 갑자기 나타난 파라다이스에서 뭘 하시겠어요? 네! 번식이죠. 그런데 알은 어디에 낳죠? 어제만 해도 모랫바닥인 곳이 강으로 변하는 환경에서 안전한 곳을 찾게 되겠죠. 알을 낳아야 하는 파리에게 사하라 숲에 있는 인간이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인간은 거친 강물과 세찬 바람을 피합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속에서 안전한 장소를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죠. 하지만 기생파리가 이 모든 것을 알 정도로 똑똑하던가요? 망고 파리의 뉴런은 2,500개 정도입
니다. 망고파리가 평생 배우고 느끼는 내용을 글로 쓴다면, 250페이지 중단편 소설이 되죠. 그 소설 내용 속에 인간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담겨 있을까요? 누군가 가르쳐 준다면 가능하겠죠. 지식은 DNA를 통하지 않습니다.”
준은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화면을 통해서 준을 보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준과 눈이 마주쳤다.
잔느가 그랬다.
그녀는 기생파리의 원인을 생략한 채, 해법만 보였다.
원인 규명은 삼류들의 몫이었다.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든, 선데이와 닥터 칼라니티의 연관성은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확신이 없었다면, 잔느는 무대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준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용의 주인 트리탄과 악몽의 암살자 랜달 회장도 준에게 당했다.
닥터 칼라니티는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강화 생물학의 아버지 닥터 칼라니티가 준보다 더 강할까?
지금까지 잔느는 그렇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확신이 흔들렸다.
세계적인 과학자들도 밝혀내지 못한 것을 준과 굿데이가 알아낼 수 있을까?
준이라며, 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정이 안 좋으시군요.”
로켈이었다. 잔느는 흠칫 놀랐다.
“로켈 ···. 오랜만이에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준짱이 잘하고 있는 건가?”
“탐이 날 정도예요.”
“내 친구 중에 왕리라는 녀석이 있는데, 나보다 키는 세배쯤 더 크고, 눈은 콘도르처럼 날카롭고, 타고난 싸움꾼인데... 본 적 있어?”
왕리는 로켈을 이기는 힘을 얻으려고, 닥터 칼라니티를 찾았었지만, 문지기에게 된통 당하고 알뜰한 구더기 밥이 되었다.
잔느는 만신창이가 된, 왕리를 닥터 칼라니티에게 안내했었다.
그녀 입술은 입속으로 숨듯이 가늘어졌다.
로켈의 등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로켈 님, 인사드리겠습니다. 문지기 아르코입니다.”
바닥을 울리는 낮은 저음.
왕리를 격파했던, 아르코였다.
그는 러시아 특공 무술 시스테마 달인이었다.
아르코는 닥터 칼라니티를 모시면서, 엄청난 강화능력을 이식받았다.
그가 왕리를 쉽게 꺾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르코, 못 보던 사이에 더 멍청하게 변했군.”
“로켈 님도 더 작아지신 것 같습니다.”
화면에서는 준의 발표가 이어졌다.
“지식은 DNA를 통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전자 지도에서 인위적인 흔적은 없었지만, 기생파리의 행동은 어떻죠? 충분히 의심스럽지 않나요? 그 의심을 증명할 증거가 유전자 지도에 없을 뿐입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준의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 말했듯이 원래는 에바가 발표하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푸리에 구조 방정식이 상상력의 영역을 다룬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고, 기생파리의 알파와 오메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시겠지만, 이런 겁니다. 비가 그치고 나서, 파인 땅에 돌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돌은 쥐라기 시기 공룡 뼈인데, 아무도 못 알아보죠. 누군가 와서 ‘이것은 공룡 뼈입니다.’ 라고 말하면, 그제야 사람들 눈에 그 뼈가 보일 겁니다. 제가 이곳에 올라온 이유가 그런 겁니다. 기생파리는 ···.”
준은 다시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카메라를 통해서, 잔느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