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95화 (93/141)

< 기후거래소-20 >

올림포스 라운드는 아카데미 축제였다.

최고의 지성과 엘리트, 성공한 기업인과 관료 그리고 정치가들이 토픽형식으로 발표했다.

그들의 꿈, 열정, 그리고 최신 동향까지 다양한 주제와 컨셉이 무대에 올라왔다.

“지구에 생명이 있는 이유가 뭘까요?"

무대에는 선데이 잔느가 섰다.

올림포스 라운드에는 검증된 사람만 자격을 준다.

그녀가 기생파리 발생 원인을 찾고, 해결법을 개발했다는 소문이었다.

청중은 그녀에게 집중했다.

올림포스 라운드에 초대받은 사람은 발표자처럼, 최고의 지성과 엘리트 그리고 기업인과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한 조직이나 기업 나아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인물들이었다.

굿데이도 참석했다.

“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죠.”

잔느는 깜찍하게 말했다.

그녀의 포돗빛 원피스는 절로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누구나 아는 쉬운 내용에서 시작해서, 어려운 내용까지 쉽게 이어가는 법을 알았다.

청중이 똑똑해도, 쉽고 재밌게 전달해야 했다.

어렵고 지루한 발표는 발표자가 무능하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최소한 다섯 번은 웃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녀의 세련된 발표 매너로 무대가 빛났다.

청중들은 단숨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녀를 탐내는 자가 많았다.

그녀의 몸을 탐내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녀의 능력을 탐냈다.

이유가 어쨌든, 그녀는 선데이를 단시간에 굿데이와 견줄만한 기업으로 키워냈었다.

선데이 파산으로 사라졌던, 그녀에게 올림포스 라운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복귀 무대였다.

“화성도 지구와 비슷한 조건이지만, 그곳 지표의 물은 모두 증발했죠. 화성 내부에 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구 표면처럼 바다를 이루는 물은 없어요. 촉촉한 지구와 메마른 화성, 무엇 때문일까요? 뭐 물론 이곳에 계신 분들은 그 이유를 아시겠지만, 이 자리에 없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할게요.”

그녀는 타이밍 좋게 윙크했고, 청중들은 웃었다.

대형 에어스크린에 지구 자기장 모형이 나타났다.

“지구에는 있고, 화성에는 없는 것 ···. 바로 자기장입니다. 태양에서 나오는 태양풍은 강력하고 아주 아주 건조하죠. 태양풍은 사막 바람보다 더 건조해요. 피부에도 안 좋고요. 지구 자기장은 방어막을 만들어 물과 공기를 지켜내지만, 화성은 방어막이 없어요. 지구 자기장은 보습 효과가 뛰어난 로션이죠. 자기장 보습 화장품을 만들어도 멋질 거라고 생각되네요. 화성에도 지구와 같은 바다가 있었죠. 화성 사진을 보면, 거대한 강줄기 자국이 남아 있잖아요. 화성의 물은 헤어드라이어기 같은 태양풍으로 증발했어요. 지구에 생명이 태어나고 진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자기장이에요. 기묘하지 않으세요? 올림포스 기후거래도 미세 구조 자기장을 이용하잖아요? 자기장으로 뜨거운 공기를 식히거나, 차가운 공기를 데우잖아요?”

잔느는 유머러스한 손동작으로 청중을 웃겼다.

그녀는 능숙했다.

에바가 아니었더라면, 잔느는 굿데이 직원 1호가 됐을 여자였다.

그녀는 VIP 좌석에 앉은 준을 보았다.

모두가 웃어댔지만, 준은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했고, 그 곁에 있는 에바도 미소 짓지 않았다.

준과 눈동자가 마주친 잔느가 눈웃음을 보냈지만, 준은 무심했다.

준은 예의상 고개를 조금 끄덕였을 뿐이었다.

“기생파리가 기후오퍼레이션 구조 자기장과 관련 있다는 증거는 많아요.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은 싫어하시겠죠? 다들 기후거래로 한 몫 잡거나 한자리하신 분들이시잖아요. 불편한 부분은 그냥 뛰어넘고, 기생파리를 없애는 방법을 공개할게요.”

스크린에 굿데이의 로봇 말벌이 나타났다.

“훌륭한 방법이죠. 3D 프린터 여왕벌이 로봇 말벌을 무진장 만들어내죠. 올림포스에서도 드론이 피자를 배달하죠? 우편물도 드론이 나르고요. 드론은 우리의 친구죠. 로봇 파리잡이는 탐지 기능이 탑재되어 있고, 탐지된 기생파리를 백 퍼센트 확률로 말살하죠. 에너지 보충도 스스로하고, 감염자까지 식별해서 통제 본부에 알려주죠. 이곳에도 로봇 말벌이 있어요. 안전 조치로 350마리의 말벌이 활동하고 있거든요. 누구든 몸속에 구더기를 키우는 것보다, 곁에 로봇 말벌을 두고 싶어 할 거예요. 하지만 이건 어떤가요?”

스크린에 브라질의 아마존 숲과 아프리카의 사하라 숲이 나왔다.

울창한 초록이었다.

“기생파리는 도시에만 있는 게 아니죠. 로봇이 밀림과 정글에 있는 기생파리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진에는 로봇 말벌을 공격하는 찌르레기가 나왔다.

잔느의 예상대로 청중은 웃음을 터트렸다.

“로봇 말벌을 먹고 소화 불량에 걸린 텃새도 많아요. 로봇 말벌 사용금지에 대한 청원을 올린 야생동물보호협회도 있죠. 자 이건 또 어떨까요?”

흙무더기가 보였다.

사진 이미지가 확대되면서, 흙 속에 있는 기생파리가 보였다.

“파리잡이 로봇의 탐지능력으로도 흙 속에 숨어 있는 기생파리는 찾아내지 못해요. 하늘을 나는 기생파리는 쉽게 탐지해서 잡아내지만, 숨어 있는 기생파리는 탐지하지 못하는 거죠. 로봇 말벌은 아주 비쌉니다. 굿데이가 최적화된 설계와 생산방법을 공개했지만, 아직도 개당 비용이 5달러를 넘어요. 인기 있는 장난감보다는 싸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로봇 말벌은 구더기 타입에도 무력합니다. 흙 속에 있는 기생파리 유충을 건들지도 못하죠. 로봇 말벌은 도움이 되지만, 완벽하지 않아요. 이제 좀 더 쉬운 이야기를 하죠. 여러분은 모든 기생파리가 해롭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기생파리 암컷은 여러분의 몸에 구

더기를 밀어 넣지만, 수컷은 어떤가요? 수컷이 여러분 몸에 정자를 밀어 넣으려고 애쓰던가요?"

잔느는 요령껏 야한 포즈를 했고. 청중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섹시하고, 매혹적이어도, 기생파리 수컷은 여러분에게 관심 없어요. 아닌가요? 몸냄새가 지독하다면, 조금 관심 끌 수도 있겠네요. 자 이제 상상력을 발휘할 시간이에요. 이 세상 모든 기생파리가 수컷으로 변한다면 어떨까요?”

화면에는 인공위성처럼 생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팔루스 바이러스예요. 팔루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남근을 뜻해요. 바이러스 생김새가 모자이크한 그거랑 비슷하잖아요?”

청중들은 웃으며 손뼉 쳤다.

화면의 바이러스는 기생파리에 들어가, DNA를 주입했다.

“팔루스에 감염된 암컷은 수컷이 되죠. 그리고 팔루스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낳는 모든 알은 모조리 수컷이 되고요. 암컷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수컷이 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컷과 짝짓기를 해도, 수컷만 낳게 되죠. 보르네오 섬 이야기를 들으신 분이 계신가요? 56만 명이 미아시스에 감염되었죠. 한 시간에 다섯 명의 환자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신규 발병자가 단 한 명도 없어요! 로봇 말벌이 있어도, 하루 한두 명의 환자가 생겼지만, 팔루스 바이러스를 살포한 후로는 환자가 사라졌습니다. 한 달 동안 보르네오 섬은 기생파리 홀아비의 천국이었지만, 지금은 단 한 마리의 기생파리도 없어요. 완전박멸됐죠!”

사람들이 일어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휘파람을 불기도 했고, 잔느의 이름을 반복해서 외치기도 했다.

다음 무대에는 가수를 겸한 코미디언이 올라와 콩트를 선보였다.

“준 회장님 괜찮으시겠어요? 예정대로 제가 발표하겠어요.”

에바는 걱정이었다.

콩트가 끝나면, 굿데이의 차례였다.

기후 신용 평가에 관한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에바는 당연히 그녀가 발표할 줄 알았는데, 준이 직접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준은 기자 인터뷰를 해본 적은 있지만, 올림포스 라운드처럼 큰 무대에 선 경험은 없었다.

잔느와 비교될 것이 뻔했다.

“에바.”

“네. 준 회장님.”

“클래스를 보여주겠다.”

준이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준 회장이다!’

‘준이다!’

‘그가 직접 나왔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는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보시겠어요? 아무도 없으시네요. 그럼, 제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운이 좋으시네요. 저를 모르시는 분이 계시면, 30분 정도 제 소개만 하려고 했거든요.”

나이트로 반응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바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준 회장님이 저런 유머를?’

“여기 올라오기 전에, 앙리 백작님이 그러시더군요. 기후 신용 평가에 대해서, 간단하고 쉽게 설명해달라고요.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그러자 앙리 백작님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게 가능한 일이냐며, 저를 나무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화를 냈습니다. 제 아이큐가 75라서 무시하시는 거냐고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준은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앙리 백작님은 왜 제가 하지 못할 거로 생각하신 일을 부탁했을까요? 아이큐 75의 좌절감을 보고 싶으셨던 걸까요?”

청중들이 너무 웃어서, 더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사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후 신용 평가를 이해하는 건, 저도 할 수 있고,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기후 거래 이전에는 기후 신용 평가라는 게 없었습니다. 혹시 있었는데, 제가 몰랐을 수도 있겠군요.”

준은 놀랍도록 노련했다.

그는 요리사가 음식 재료를 정리하듯이 청중들을 다뤘다.

“기후거래로 이뤄지는 기후는 건축물과 같습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건축물이 맞습니다. 그 건축물은 얼마나 오랫동안 모양을 유지하고, 효과를 발휘할까요? 건축물은 안전평가를 받습니다. 기후도 역시 똑같습니다. 안정평가 대신, 기후 신용평가라는 단어를 씁니다. 건축물 비유는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후도 제품입니다. 자동차보다 훨씬 크고 대륙보다는 좀 작죠. 여행을 많이 하신 분들은 인도와 중국의 건축물이 다른 걸 아실 겁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건축물이 아주 달랐지만, 요즘은 어떻죠? 아시아의 150층 빌딩과 중동의 150층 빌딩이 비슷하지 않나요? 옛날 건축물들은 비바람을 간신히 막아줬지만, 요

즘은 어떤가요? 에어컨이 있고, 하여튼 과거보다 많이 쾌적해졌죠.”

사람들은 준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손뼉 치며 즐겁게 웃던 그들이 어느새 진지해졌다.

“사하라 숲 프로젝트의 기후 평가를 할 때, 많은 데이터를 넘겨받았죠. 굿데이는 사하라 숲에 투자 부적합 판정을 내렸어요. 오라클에서는 굿데이의 평가를 무시하고, 700억 탄소달러 어치의 기후 채권을 발행했죠. 여기에 계신 분 중에서도 손해 보신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기후거래소의 기후 오퍼레이션 능력은 완벽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굿데이의 기술을 사용하거든요.”

다시 한 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굿데이는 사하라 숲의 생물학적 재난을 예측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예측이 가능했는지 궁금하신가요?”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는 손톱 끝을 물기도 했다.

준의 발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요소요소에 긴장감이 아름답게 박혀 있었다.

추리소설처럼 스릴감 넘치는 발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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