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거래소-15 >
사막은 항상 모래가 씹혔다.
공기 속에 섞인 모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천으로 입을 가려도 입과 코로 들어오는 모래가루는 막을 수 없었다.
기후거래소는 사하라 사막에 12개의 큰 강과 숲을 만들 계획이었다.
오퍼위성으로 바다 위의 촉촉한 공기를 사하라 사막으로 옮기는 일은 간단했다.
일만 년 전, 사하라 사막은 아마존 같은 숲이었다.
사하라 숲은 아주 강력해서,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도 강물이 흐르고, 호수는 창창했다.
사하라가 사막으로 ‘변질’된 것은 인간이 숲을 긁어냈기 때문이었다.
사하라 지역에서의 전쟁은, 부족이 가진 숲을 모두 불태우는 것이었다.
한 번 불탄 숲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물을 머금은 숲이 사라지면서 숲을 따라 흐르던 강도 메말랐다.
사하라 숲 프로젝트는 인간의 원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적극적이고도 기념비적인 사업이었다.
며칠 동안 부슬비가 내린, 사하라는 촉촉했고, 공기에도 모래가 섞이지 않았다.
작은 물웅덩이가 연결되면서 실개천이 되었고, 실개천은 몸집을 불리면서, 강으로 성장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놀랍고 감사했다. 사하라 사막에 파릇파릇한 잎줄기가 올라오다니!
국제 언론은 ‘청춘을 되찾은 사하라!’ 라는 제목을 뽑아냈다.
굿데이의 선택은 옳았다. 기후거래소는 아름다운 미래였다.
“사랑과 정절은 달라요!”
에밀리는 새빨갛진 얼굴로 소리쳤다.
데이빗은 아차 싶었다.
그동안 그는 에밀리의 부적절함을 모른 척 숨겨왔다.
어쩌다가 이런 대화를 하게 된 걸까?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리라.
“그래 ···. 그래 ···. 그래. 이제 그만해.”
데이빗은 눈감았다.
술기운으로 어지러웠고, 머리가 아팠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죠?”
에밀리는 그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속옷이 없어지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나 남자 친구 집에 그냥 놓고 온 줄 알았다.
속옷을 기념으로 챙기는 별난 놈들이 많았다.
몇 개는 가정부가 훔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확실한 증거를 잡으려고, 속옷에 추적용 소형 칩을 심어놨다.
속옷은 몇 군데에 흩어져 있었다.
데이빗의 서재와 정체불명의 건물.
건물에는 사설 법의학 실험실이 있었다.
“처음부터 모조리 다 알고 있었어. 준이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 어떤 것이 준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어. 준에게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군지 ···.”
“준이 당신 아들이 아니라고요?”
에밀리의 눈은 빠질 듯이 커졌다.
“유전자 감식도 해봤어. 준은 내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어.”
“당신 ···.”
에밀리는 심장에 칼이 꽂힌 기분이었다.
이제야 준을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데이빗이 머뭇거렸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데이빗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몰랐던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 사실을 준이 안다면 ···. 세상이 안다면 ···.
누군가의 유전자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가 앉았던 자리만 대충 둘러봐도, 머리카락이나 털, 상피세포를 수집할 수 있고, 마시다 버린 종이컵만 확보해도, 충분한 양의 유전자를 얻을 수 있다.
준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할 때, 극성스러운 사람들이 이미 유전자를 콜렉션 했을 것이다.
그녀의 것도, 데이빗의 것도, 준의 것도 ···.
세상은 비밀을 알고 있다!
“좀 쉬어요.”
데이빗은 자리를 비켜주려 했다.
“우리 이혼해요.”
에밀리는 극단적인 카드를 뽑았다.
“이미 지난 일이야. 그리고 나는 화나고 실망했지만 ···. 당신을 사랑해.”
“사랑과 결혼은 달라요. 이혼해요.”
“술이 깨면 다시 이야기하지.”
다음날, 아침 데이빗은 에밀리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집을 나갔다.
프란츠에게 부탁하면,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
데이빗은 늘 그랬듯이 속절없이 그녀를 기다렸다.
준의 엄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에게 영광스러운 순간들이었다.
며칠 후, 깡마른 체형의 사내가 찾아왔다.
“제 이름은 관심 없으실 테고, 저는 이혼 전문 변호사입니다. 여기 서류 ···.”
서류에는 에밀리의 자필 사인이 있었다.
“나쁜 조건은 없습니다. 제 의뢰인이 원하시는 건, 신속한 이혼입니다. 서명만 해주시면, 서류에 있는 조건 그대로 이행됩니다.”
데이빗은 서류를 뒤적거려서, 이혼 이유가 적혀 있는 페이퍼를 찾아냈다.
‘성격차이.’
데이빗은 헛웃음이 나왔다.
“구체적인 이유가 없군요. 그녀가 뭐라고 합디까?”
“제 의뢰인은 이혼을 원하십니다. 당신에게 나쁜 조건 ···.”
“젠장! 조건을 따지자는 게 아니야!”
데이빗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화를 냈다.
에밀리와 직접 할 이야기를, 이름도 모르는 변호사 놈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절할 정도로 짜증스러웠다.
변호사는 오랜 경력을 다지면서, 협박과 위협에 단련되어 있었지만, 상대는 굿데이 준의 아버지였다.
그도 굿데이의 홍보영상을 보았다.
요빅을 납치했던, 해적들을 쓸어버리는 에어퓨마의 활동을 보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죄 ···. 죄 ···. 죄송합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정보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서류는 놓고 가겠습니다.”
“에밀리는 어디에 있지?”
“저도 모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 같은 변호사는 ···. 의뢰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건을 수습 처리하고, 법원 결정을 받아내서, 수임료를 챙기죠. 그게 전부입니다. 도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사하라 숲 프로젝트에서 재앙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초파리처럼 작은 모래파리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녔다.
새살 돋듯이 싱싱한 대지에서, 모래파리가 알을 낳겠다고 선택한 포인트는 ···. 살아 있는 동물의 가죽과 인간의 피부였다.
모래파리는 초파리처럼 작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사하라 숲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구더기 밥이 되었다.
구더기는 피부를 뚫고 얌전히 자리 잡고, 조용히 살 파먹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이동하거나, 두더지처럼 직접 길을 만들어서, 뼈와 내장 그리고 뇌까지 영역을 넓혔다.
더 끔찍한 것은 ···. 구더기가 구더기를 낳았다.
몸이 구더기로 가득 찬 사람이 숨졌지만, 보건 요원은 감히 손대지 못했다.
의료진들도 그 시체를 두려워했다.
구더기의 전염성은 인플루엔자보다 강했다.
스치기만 해도 옮았고, 재채기 속에도 구더기가 섞여 있을 때가 많았다.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세계 곳곳에서 변종 파리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다.
기후거래 활성화가 되어, 지구 날씨가 온화해지면, 조류독감이나 말라리아 정도의 전염병 유행은 각오했었다.
다행히도 파라엔진은 바이러스 질병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파라엔진의 건강 지능은 림프구를 자극해서, 정확한 항체를 생성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구더기 증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살충제 시장이 때아닌 호황을 누렸고, 온몸을 감싸는 새로운 패션이 유행했다.
세계 보건 당국은 전쟁 상황에 버금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감염자가 속출했고, 사망자가 뒤따랐다.
보건당국은 촘촘한 방역망을 펼쳤지만, 여권 없이 날아다니는 날파리를 통제하지는 못했다.
오렌지 시티에도 신종 망고 파리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창문을 닫고, 촘촘한 방충망을 달고, 온몸을 가리는 비닐소재 옷을 입었다.
초파리 같은 먼지만 봐도 기겁을 했다.
도시 전체가 고농도 살충제로 증기찜 했다.
킹스덤 중앙도서관은 텅 비다시피 했다.
길버트 사서는 마스크와 보안경을 했고, 투명 가면까지 썼다.
윗주머니에는 소형 살충제 분무기가 들어 있었다.
그는 시간 맞춰 들어오는 준을 보고 반가워했다.
준은 평소와 다름없는 편한 복장이었다.
길버트는 준을 방해하기 싫어서, 좀처럼 말을 틔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망고 파리 뉴스 못 봤어?”
“봤어.”
“그런데 그런 꼴로 돌아다녀? 구더기 증에 걸리면,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수술을 받아도 모자라!”
준은 가볍게 턱을 끄덕여서, 메시지 접수를 표현했다.
그의 자리에 앉아, 뉴런 독서를 시작했다.
“우리 괜찮은 거야?”
줄리아가 다가왔다.
그녀는 히잡 패션이었고, 얇은 투명 가면을 쓰고 있었다.
노출된 피부는 없었다.
그녀는 준을 믿었다.
준이라면 기발한 해독제나 로션 같은 걸 만들어냈을 것이다.
비상벨이 울리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경상대 301호 강의실에서 망고 파리로 추정되는 곤충이 발견되었습니다. 모두 대피해주십시오. 방역팀은 신속히 301호 강의실로 와주십시오. 반복합니다 ···. 경상대 301호 강의실에서 ···.’
경상대 건물은 중앙도서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준.”
줄리아는 반쯤 울먹이고, 애원하는 뉘앙스로 이름을 불렀다.
“이곳은 안전하다.”
높낮이가 절제된 담담한 대답이었지만, 줄리아는 무릎을 꿇었다.
준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준이 여긴 안전하대!”
누군가 목청을 높였다.
중앙 도서관은 금방 찼다.
*
세계 보건기구는 관련 자료를 모두 오픈했다.
전 세계에서 수집된 기생파리의 종류는 19가지였고, 모두 변종 파리였다.
변종 파리들의 유전자와 생활습성이 실시간으로 공개되었다.
국가별, 지역별, 환자 발생 상황도 공개되었다.
수잔은 햄버거를 베어 물며, 에어스크린을 넘겼다.
끔찍한 영상과 이미지가 넘쳐났다.
요빅 생태계로 세계의 자원은 풍부했고, 재난 지역 피해자보다 더 많은 의료인과 지원부대가 파견되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다행이네.”
그녀는 콜라를 마셨다.
기생파리들은 인간과 동물을 가리지 않았다.
사람은 지원단체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았지만,
지원단체들도 짐승들까지 돌볼 여력은 없었다.
구더기증에 시달리는 짐승들의 모습을 끔찍했고, 감염이 의심되면, 살처분 되어 불탔다.
기생변종 파리들의 유전자 지도를 보면, 우연한 자연 발생적인 현상 같았다.
처녀림처럼 인간의 손길이 깃들지 않은 유전자 지도였다.
그러나 상황 자체는 너무나 인위적이었다.
일부 학자의 주장대로 기후거래제도의 자연적인 부작용일까?
이미 언론에서는 기생변종 파리를 기후 전염병이라고 떠벌렸다.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후 전염병은 사람의 눈길을 끄는 표현이었다.
“카이! 너 일루 와봐.”
수잔은 손가락 하나로 간단하게 카이를 불렀다.
“수잔 누나 왜요?”
“이것 좀 봐. 뭐 느끼는 거 없어?”
수잔은 구더기가 구더기를 낳는, 유아생식 섹터의 유전자 지도를 확대했다.
“생물학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 ···. 준 형아에게 물어보세요.”
“준 대표님은 이렇게 하찮은 일을 하실 분이 아니야.”
“하찮다뇨? 기생파리 때문에 난리고, 죽은 사람도 많아요. 어제는 콧속이 ···.”
“그 사진 나도 봤어. 말하지 마. 되새기고 싶은 이미지가 아니야. 음 ···. 저 안에 뭐가 있는데 ···. 뭔지 모르겠네.”
그녀는 다음 희생자를 고르듯이, 에바와 로켈 호세 그리고 아쿠타미 부대원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모두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사태가 심각해. 필리핀에서는 살충제 내성이 있는 기생파리가 나타났어. 번식률도 2.3 로그로 최고 기록이야. 구더기 한 마리에 감염되면 하루 만에 2.3마리로 번식한다고! 닷새 만에 ···. 몸 안이 구더기로 꽉 차는 거야!”
“수잔 ···. 중요한 일 하는 거 아는데 ···. 자세하게 설명하진 마.”
에바는 고개를 흔들었다.
“알겠어요. 이제 확실해졌네요.”
“뭐가?”
“이번 재난은 저와 준 대표님만이 해결할 수 있어요. 저와 준 대표님 단둘이 ···. 그런데 준 대표님은 어디 가셨죠? 밖은 위험한데?”
“도서관.”
“네? 준 대표님 혼자만 보낸 거예요?”
수잔은 당장에 밖으로 뛰어 나갔다.
“오. 용감한데 ···.”
로켈과 호세가 동시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