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거래소-14 >
데이빗은 세탁기에서 에밀리 속옷을 꺼냈다.
세탁 시작 전이었다.
분무기로 시약을 뿌려보니, 파란색 반응이 나왔다.
정액반응 양성.
데이빗은 점점 더 파래지는 속옷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에밀리는 밤늦게 들어왔다.
준의 어머니인 그녀를 유혹하려는 남자들이 많았다.
준과 같은 천재 아들을 얻으려는 정신 나간 놈팡이도 없잖아 있었지만, 대부분 ‘기념’ 삼아 즐기는 부류였다.
굿데이 준 어머니와 놀아났다는, 경험은 꽤 잘 팔리는 무용담이었다.
술자리와 모임에서는 ‘준은 세상을 정복했지만, 나는 그 새끼 어미를 정복했다.’
라는 자랑거리가 통했다.
가장 흔한 스토리는 굿데이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에밀리와 놀아났다는 내용이었다.
준은 돈도 벌어주고, 어머니도 바치는 참 좋은 ‘호구’였다.
에밀리는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고, 아름다웠다.
오로토칸만큼이나 젊어 보이진 않았지만, 섹스를 즐길 정도로 충분한 레벨의 육체 나이를 유지했다.
그녀 스스로 몸 관리도 했지만, 안티에이징 의학의 도움이 컸다.
데이빗과 에밀리는 예전보다 큰 집으로 이사하고, 정원사와 가정부도 있었지만,
가진 것에 비해서는 검소하게 생활했다.
사치스러운 삶도 잠깐 즐겼지만, 둘이 내린 결론은 ‘불편하다.’였다.
데이빗과 에밀리는 영화배우보다 더 유명했다.
오렌지 시티에는 7대 미스터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름답고 늘씬한 에밀리가 울퉁불퉁한 감자, 데이빗과 결혼한 일이었다.
결혼할 당시, 데이빗은 가진 것이 없는 평범보다 조금 더 못한 청년이었다.
에밀리는 집안도 괜찮고, 잘나가는 전문직 여성이었다.
그녀에게는 데이빗보다 좋은 선택과 기회가 널려 있었다.
기자들이 그녀에게 데이빗과 결혼한 이유를 넌지시 물으면, 그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그이를 사랑하니깐요.”
데이빗은 준이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녀의 사랑을 믿었다.
그녀는 데이빗에게 아들을 주었고, 데이빗은 그것을 받았다.
준을 키우는 건, 행복했다.
준은 무심하고, 담담하고, 맹맹했지만, 송곳 같은 집중력이 있었다.
그 송곳이 불가능을 꿰뚫었다.
준에게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유치원 시절에도,
데이빗은 준이 자신에게 빚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준을 평생 돌봐줄 생각이었고, 그것을 준이 갚아야 할 빚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데이빗은 준은 태어나서 일주일 만에, 부모에게 갚아야 할 평생 빚을 모두 갚았다고 말했다.
데이빗에겐, 준 자체가 기쁨과 행복이었다.
준을 부담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준의 성공은 데이빗에게 일종의 덤이었다.
데이빗은 아내의 ‘파란색’을 조금은 이해했다.
그에게도 몸 대주겠다고 덤비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여대생부터 그 여대생의 친구와 언니 그리고 어머니까지 ···.
데이빗도 유혹에 몇 번 빠졌었다.
그의 섹스 파트너는 결혼 전에는 4명이었지만,
그 네 명이 겹쳐졌던 시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한 여자에게만 몰입하는 스타일이었고, 에밀리를 만날 때에는 솔로로 지낼 때였다.
그러나 준이 굿데이로 성공을 거둔 후부터,
파트너 숫자가 다시 늘어났다.
그도 인간이었고, 섹스는 뭐랄까 ···. 인간답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할 일 없이 부유해진 사람에게 섹스는 일종의 스포츠와 같았다.
어차피 죽으면 없어질 몸뚱이였다. 즐기면서 산다고 해서 나쁜 걸까?
본능에 응답하는 게 인간답지 않을까?
‘나쁜 게 아니라면 ···. 마음이 왜 이렇게 불편하지?’
데이빗은 침대에서 곯아떨어진 에밀리를 내려다보았다.
깊숙하고 편안한 잠이었다.
그녀에게서 과일주와 민트향이 났다.
그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놈과 한창 할 때에도 그녀는 민트향 체취를 풍겼을 것이다.
안티에이징 제품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땀 냄새를 박하와 과일 향으로 바꿔주는 것.
“오! 시즈도어.”
그녀가 잠꼬대했다.
데이빗은 조용히 밖으로 나와, 전화했다.
*
에밀리가 잠을 깬 것은 해 질 무렵이었다.
TV에서는 기후거래소에 대해서 떠들었고, 기후신용평가를 굿데이가 담당한다고 알렸다.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에는 기후거래소 본부가 들어섰다.
기후거래소 본부의 이름은 ‘네오 올림포스’였다.
만년설이 쌓였던 산봉우리에 자리 잡는 네오 올림포스의 기후는 ‘적극적 오퍼레이션’으로 아열대 기후를 유지했다.
자연을 거스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세는 새로운 신화, 네오 올림포스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인간이 거둔 또 하나의 승리.
인간이 내디딘 또 하나의 발걸음.
TV에서 준의 얼굴이 나왔다.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준은 알고리즘 거래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폭락했던, ‘액셀레이션 패닉’ 이후에 처음으로 TV에 등장한 것이었다.
액셀레이션 패닉은 유진 악마의 대량 매도로 벌어진 플래시크래시였다.
굿데이와 유진 악마가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
TV 속, 기자는 준에게 기후 오퍼레이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길게 봤을 때, 오퍼레이션은 인류에게 꼭 필요합니다. 태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태양이 꺼진 후에도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하고, 그러자면 행성에 기후를 이식하는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데이빗은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로 벽면 TV를 보았다.
준이 아들이라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오! 우리 아들 나왔네.”
에밀리가 소파 뒤에서 데이빗의 목을 껴안았다.
그녀에게서 가벼운 장미 향이 났다.
“여보.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될까?”
데이빗은 그녀 손에 입맞춤했다.
“이렇게 사는 게 어떤 건데?”
“어젯밤.”
“내가 무슨 말 하는 지, 알잖아.”
“모르겠어. 어젯밤엔 캐더린의 파티에서 놀았는데 ···. 그게 뭐 나빠?”
캐더린은 요즘 에밀리와 한창 가깝게 지내는 이웃사촌이었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준에게도 좋을 게 없어.”
“아들 평판 때문에 파티에 가지 말란 말이야?”
“당신은 준의 자랑스러운 어머니잖아. 당신도 그게 좋지? 당신 같은 어머니가 있어서, 지금의 준이 있는 거야 하잖아. 우리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준이 있는 것보다, 우리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의 준이 된 게 당신도 좋지?”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오늘도 모임이 있어.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올게.”
*
프란츠는 여자 젖가슴 같은 반지 알을 만지작거렸다.
모세의 길잡이.
모세의 길잡이는 원래 블랙오팔이 박힌 금반지였지만, 금값이 떨어진 후, 판타지늄이라는 금속으로 바꿨다.
생체 합금 금속 판타지늄은 매우 비싼 금속이었다.
“이 반지는 방황하는 자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지.”
프란츠는 앞에 앉은 남자에게 반지 알을 보였다.
남자는 고분고분했다.
그는 프란츠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았다.
굿데이가 오렌지 시티의 빛이라면, 프란츠는 어둠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소중히 다뤄야 하지. 한번 스친 인연이라도, 여자의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네.”
“맞습니다. 프란츠 님.”
“시즈도어.”
프란츠는 입안의 사탕을 혀로 굴리듯이, 남자의 이름을 음미했다.
준의 아버지, 데이빗이 알려준 이름이었다.
데이빗이 전해준 에밀리의 속옷에서 나온 정액 DNA와 시즈도어 칫솔 DNA가 일치했다.
“준은 나이는 어리지만, 나의 친구야. 나는 친구의 명예를 중하게 생각하지. 친구 어머니의 정절이 안줏감으로 전락하는 건, 나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네.”
시즈도어 표정이 시체처럼 변했다.
놀란 그는 더듬거렸다.
“앞으로 절대 그녀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분에겐 뭐라고 할 거지?”
그분? 시즈도어는 그분이 누구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준일까? 아니면 에밀리일까? 혹시 에밀리의 남편?
“자네 떨고 있나?”
프란츠는 흔들리는 시즈도어의 무릎을 잡아줬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
“기다리게.”
프란츠는 스마트워치로 데이빗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데이빗은 처음부터 미팅을 지켜보았다.
그는 방안에 홀로 앉아, 파랗게 질린 시즈도어를 감상했다.
시즈도어는 데이빗보다 잘생겼고, 체격도 좋았으며, 젊었다. 어떤 여자든지 끌릴만한 남자였다. 게다가 그는 부동산중개업으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유머감각도 있고, 주변 평판도 좋았다.
“그년이 먼저 저를 유혹했어요!”
시즈도어가 울먹였다.
프란츠는 시즈도어의 따귀를 때렸다.
“여자의 명예를 지켜야 남자다. 한 번만 더 헛소리했다간, 네놈 혀로 넥타이를 만들어주마!”
“죄송합니다.”
“조용!”
프란츠는 검지와 중지를 관자놀이에 갖다 댄 채, 데이빗의 의견을 기다렸다.
상류사회에 에밀리의 난잡한 소문이 나돌 때, 프란츠가 나서서 소문을 진압했다.
준은 오렌지 시티에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였고, 프란츠에게도 필요한 존재였다.
프란츠는 준이 데이빗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준을 뒷조사할 때, 준의 DNA뿐만 아니라 부모의 DNA도 수집되었다.
데이빗은 원하는 바를 천천히 말했다.
‘프란츠.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네. 그녀의 결점까지도, 사랑하네. 소문만 나지 않는다면, 아내의 치정은 눈감아줄 수 있어.’
“그렇다면야 ···.”
프란츠는 데이빗에게 보내는 영상을 종료했다.
그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겁에 질린 시즈도어를 쳐다보았다.
“그녀를 섬겨라.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한눈팔지 않도록, 잘 섬겨. 그리고 이상한 소문이 나면 ···.”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분에게 소홀히 하지도 말고, 소문도 나선 안 돼. 필요하다면, 내 호텔을 이용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즈도어는 그녀를 성심성의껏 모시려고 했지만, 그게 잘되지 않았다.
공포심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었다.
“자기 오늘 왜 이래? 꼭 해파리 같아!”
에밀리가 투정을 부렸다.
그녀는 시즈도어와 몇 번 더 밀애를 가졌지만, 미역을 경험할 뿐이었다.
“너 남자 맞아? 예전엔 안 그랬잖아?”
시즈도어는 바보 같은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그녀는 더는 시즈도어를 만나지 않았다.
*
파라엔진은 혈액 기생충인 말라리아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다세포 기생충에는 효과가 없었다.
“파라엔진은 스키마라는 기생충에서 시작된 기술이야. 기생충에게 매우 관대해. 파라엔진 자체도 사실 ···. 지능적 기생충으로 볼 수도 있어. 기생충 약을 간에서 생합성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기생충만 녹이는 게 아니라, 뼈와 소화기관까지 녹여. 파라엔진은 훌륭한 건강 솔루션이지만, 완벽하진 않아.”
수잔이 소집한 비상회의였다.
에바와 로켈, 호세와 디아나 카이 아쿠타미 부대원과 세이턴까지.
모두 그녀에게 집중하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그게 뭐? 어쩌라고? 비상회의는 왜 하는 거야?’
“파라엔진은 근원적인 병에는 특효약이야. 당뇨와 같은 내분비 질환, 원발성 간염이나 소화불량, 암, 루게릭병과 파킨슨도 치료하지만, 기생충에는 아주 무력해. 이해됐지?”
그녀는 에어스크린을 열었다.
작은 날벌레가 보였다.
“머리가 노란색이라서, 망고파리라고 불러. 이 녀석은 생식을 즐긴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썩은 고기나 똥 주변에서는 망고파리 구더기를 찾을 수 없어. 망고파리는 살아 있는 동물 가죽에 알을 낳거든.”
에어스크린에 다음 슬라이드가 보였다.
화면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구더기증이라고 하는 건데 ···. 미리 말하는데 아주 역겨워.”
화면이 점차 밝아지고, 작은 여드름 같은 것이 보였다.
의사가 포셉으로 피부에 박혀 있던 구더기를 끄집어냈다.
다른 화면에서는 두툼한 입술에 있는 구더기를 잡아내는 장면이 나왔다.
오오 ···.
굿데이 직원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
“원인은 추적 중인데, 신종 망고파리가 나타났어. 여기에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