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83화 (81/141)

< 기후거래소-8 >

이네즈는 오렌지 공원에서 가까운 빌라에서 지냈다.

굿데이가 제공한 자택이었다.

자동차와 카드도 받았다.

그녀는 한동안 휴가 같은 ‘초대’를 즐겼다.

오렌지 시티를 돌아다니며, 준이 자주 간다는 킹스덤 대학 중앙도서관도 구경했다.

친구도 사귀었다.

이웃, 카페 주인, 가게 종업원, 대학생 ···.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네즈 박사님이시군요! 탄소 자기장 이론은 정말 멋졌습니다! 이곳은 어쩐 일이세요?”

굿데이의 초대를 받아서 왔다고 말하면, 모두 엄지를 추켜세워줬다.

그녀는 상대의 동작으로 그대로 따라 하며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죠?”

“이곳에서는 다 이렇게 해요. 굿데이에 대한 말을 하면, 무조건 반사랄까? 이렇게 엄지를 들게 되죠.”

굿데이가 워낙에 대단한 건 알았지만, 사람들이 대화할 때마다 엄지를 추켜들 정도라니!

이네즈는 일부러 지나가는 사람에게 굿데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봤다.

모두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오렌지 시티 사람은 굿데이를 숭배했다.

파루시아 시즌과 헬하운드 시즌에 이어 파라엔진 시즌으로 오렌지 시티 사람들은 엄청난 배당금을 받았다.

몸으로 일해서 버는 돈보다, 굿데이에 참여해서 받는 돈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투표 - 굿데이에 참여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제대로 투표하는 게 더 중요했고, 추가 근무하는 것보다 굿데이에 참여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오렌지 시티에서는, 돈 때문에 일하는 건 정말 유치한 짓이었다.

복수를 신에게 맡기듯이, 돈은 굿데이에게 맡기면 된다.

“지금 은퇴해도 먹고살 돈이 계좌에 있어요. 돈이 충분해지니깐, 확실하게 알겠더라고요.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뭘 주문하셨죠?”

노천카페 웨이터가 미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네즈는 이해한다는 투의 미소를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굿데이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없이 몰입했다.

“스노우캣 커피요.”

“아! 그랬죠. 그 스노우캣 커피 이야기 아세요?”

스노우캣 커피 이야기는 신데렐라의 웨이터 버전이었다. 웨이터에게 유리구두와 마법 마차를 선물한 것은 ···. 굿데이였다.

“이곳에는 그런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저도 그런 이야기의 하나가 되고 싶어요. 당신은 어때요?”

웨이터는 아이처럼 웃었다.

놀라운 미소였다.

이네즈는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오렌지 시티처럼 환한 미소가 흔한 곳은 처음이었다.

독일 스타일의 투 버튼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이네즈와 눈이 마주친 그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앙리 백작님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돌아와 주십시오.”

“아직 준을 만나지 못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초대는 충분히 즐기셨습니다.”

“준을 만나서, 기후예측 비법을 알아내겠어요.”

남자는 고개를 가로 저였다.

그에겐 앙리 백작의 명령이 먼저였다.

“제가 직접 앙리 백작님과 통화하겠어요.”

이네즈가 스마트 워치 다이얼을 돌렸다.

‘이네즈. 아직도 오렌지 시티에 있군.’

앙리 백작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는 허락도 없이 굿데이의 초대에 응한 이네즈를 죽일 생각도 했었다.

이네즈의 목숨을 남겨둔 이유는 아직은 그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앙리 백작님. 오늘 저녁 준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유럽을 떠난 지, 한 달이 다되도록 준을 만나지 못했다니. 굿데이의 손님 대접이 소홀하군.’

“저 때문입니다. 준을 만나기 전에 몇 가지 조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는 다 끝났나?’

“네. 이제 굿데이와 준의 정체를 압니다. 굿데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기후예측 분야에서 우리가 최고였습니다. 이제 다시 그 자리를 되찾을 차례입니다.”

‘이네즈 ···. 너를 잃을까 봐 두렵다.’

“앙리 백작님께서는 산골짜기 말괄량이 같은 저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오직 백작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준이 너에게 청혼한다 해도 ···.’

이네즈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흔들렸다.

준의 청혼이라는 말만 나오면, 그녀도 모르게 정신이 아찔했다.

“네. 준이 저에게 청혼한다면, 그를 유럽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이네즈 ···.’

“네.”

‘예쁘게 차려입고 가라.’

*

수잔은 파라엔진 건강지능을 수집했다.

파라엔진은 숙주의 건강 데이터를 굿데이로 보내왔다.

건강의 의미와 기준은 사람마다 달랐다.

바이러스 감염 같은 문제는 적합 항체 생성으로 커버링하지만, 좀 더 미묘한 문제 머리카락 굵기라든지, 색깔, 체온, 심박수처럼 개인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데이터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정확하게 처리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했다.

늦은 밤이었다.

수잔은 헛것을 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출입문에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이네즈?”

“준은 어디에 있죠?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

“준이라면 ···. 사무실에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네즈의 복장이 ···.”

“아름다운 밤이잖아요.”

그녀는 절벽 같은 하이힐을 신고 준의 사무실로 걸어갔다.

에바가 그녀에게 라텍스 장갑을 건넸다.

“필요할 거예요. 아침에 말했듯이 오늘 밤은 아주 뜨거울 거예요. 준 회장님을 잘 부탁해요.”

“각오하고 있어요. 제 옷을 보면 아시잖아요.”

등과 가슴이 과하게 파인 파티 드레스였다.

에바는 의미가 잘 못 전달되었다고 느꼈다.

지금이라도 옷을 갈아입으라고 할까?

“준 회장님은 기후예측 모형의 출력결과를 살펴보실 거예요. 수만 개의 결과 중에서 미래에 일어날 단 하나를 고르는 거죠. 그게 어떤 일인지 아시나요?”

“네.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지만 준 회장님은 해내셨어요. 오늘 밤, 당신은 준 회장님 곁에서 작업하는 걸 보실 겁니다.”

“뜨겁다는 의미는?”

“작업 환경이 쾌적하지 않아요. 데이터양이 증가하면 방안이 더워져요.”

이네즈는 에바의 설명이 와 닿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작업하길래 ···.

그녀가 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준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시작한다.”

사무실은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 모두 데이터 필름으로 코팅되었다.

발밑으로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가 나타났다.

지구의 공기층은 아주 얇았다.

지구가 사과라면, 기후현상이 일어나는 대류권은 사과껍질보다 얇았다.

기후는 카멜레온 몸 색깔보다 더 쉽게, 자주 변했다.

그 변화를 일정한 범위에서 묶어주는 것은 규칙적인 태양에너지였다.

밤과 낮의 존재.

이네즈는 머리 위가 따듯해졌다.

천정에는 태양 관측 결과가 이글거렸다.

‘그랬구나! 준은 기후모형 결과를 선택할 때, 태양 관측 결과를 참고했구나!’

조금씩 굿데이의 비밀이 보이는 것 같았다.

준은 손으로 태평양의 바다를 떠서, 맛을 봤다.

“이것은 미래가 아니다.”

준이 다음 데이터를 불렀다.

러시아에 큰 가뭄이 들고, 사하라 사막에 때아닌 큰비가 내렸다.

준이 사하라 사막을 확대하자, 사무실에 수증기가 가득 찼다.

천장의 태양은 더 느껍게 느껴졌다.

이네즈는 스마트워치로 온도를 확인했다.

46도. 습도도 너무 높아서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준은 데이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방안에 거센 바람이 일었다.

갑자기 추워지고, 흔들리고, 물이 쏟아지고, 다시 뜨거워졌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이네즈의 드레스는 걸레가 되었다.

브래지어와 팬티도 위험한 지경이었다.

“잠깐요!”

그녀는 있는 힘껏 외쳤다.

준은 양손을 들어 데이터 회전을 멈췄다.

10분 동안 온갖 기상 재난을 겪었지만, 준은 웅장했다.

“늘 이런 식인가요?”

“보통은 머릿속으로 커버하는데 ···. 너를 위해, 준비했다.”

“저도 머릿속으로 하겠어요!”

준이 검지 끝으로 기호화된 시뮬레이션 결과를 불러냈다.

“이게 뭐죠?”

“방금 겪은 기상 데이터다. 이 기호를 보고, 머릿속으로 그려지나?”

이네즈는 기호화된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뚫어지라 봤지만, 한 줄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머리가 나쁘면 ···. 몸이 고생해야 한다.”

“당신은 그냥 보인다는 거죠?”

“그래.”

“그런데 왜 사서 고생하는 거죠?”

“이네즈 ···. 너의 몸 높이에 맞춘 거다. 다시 시작한다.”

“왜 저에게 이런 걸 해주시는 거죠?”

“초대 손님이니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이네즈는 아련한 악몽 속에서 눈을 떴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은 정신을 잃었어요.”

에바가 다정하게 이네즈의 손을 잡았다.

“언제 ···.”

“남유럽 불볕더위 시뮬레이션 도중이었죠. 45도의 폭염이 왔어요.”

“그게 미래였나요?”

“아뇨.”

“다행이네요.”

“미래는 더 참혹했어요.”

이네즈는 아직도 잠에서 못 깬 듯 어리둥절했다.

45도 폭염이 왔을 때, 그녀는 3분도 견디지 못했다.

건조한 열파熱波는 영혼마저 증발시켰다.

“얼마나 참혹하죠?”

“56도의 열기가 한 달 동안 유럽에 머물 거예요.”

“시뮬레이션 결과는 공개할 건가요?”

“그걸 결정하지 못했어요.”

“왜죠? 중요한 일이잖아요.”

“인과율이죠. 기상 이변이라고 해도, 56도의 열기가 유럽을 휩쓰는 건, 극히 이례적이죠. 준 회장님은 그 원인을 찾으려 애썼어요. 그 원인 무엇이었을까요?”

“스톡홀름에 봄 날씨를 이식한 기후 오퍼레이션인가요?”

“그래요. 지금 기후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사나워졌어요. 유럽 왕실 기상청은 오퍼레이션이라고 하지만, 인과율을 따져보면, 기후를 훼손하는 거죠.”

이네즈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우스우먼으로 불리는 그녀였다.

내용은 충분히 이해했다.

“굿데이가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하면, 우리가 기후 오퍼레이션으로 그 ‘결과’를 피해가겠죠. 그러면 ···. 더 사나운 결과가 나타나겠죠? 어떤 결과인지 아시나요?”

“북미 대륙에 60도 폭염이 옵니다. 곡창지대가 사막으로 변하고요. 강과 호수가 마르고 ···. 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올 거예요. 이 모두가 40일 이내에 일어나죠.”

“왜 이런 걸 저에게 설명해주는 거죠?”

“알고 싶어 하지 않았나요? 원한다면, 기억을 지워줄 수도 있어요.”

“기후 오퍼레이션으로 최악의 상황을 대서양 한복판으로 옮길 수 있어요. 유럽의 헬파이어가 북미로 가지 않고, 대서양에 머물도록 할 수 있어요.”

“그다음요? 그 파장으로 아시아와 호주에서 재난이 일어난다면요?”

“그것도 오퍼레이션으로 극복해야죠.”

이네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디아나가 공항까지 바래다줄 거예요.”

에바는 순순히 놓아주었다.

“제가 뭐라고 말했어야 하죠?”

이네즈는 직감적으로 정답이 있었다고 느꼈다.

기후 재난 폭탄 돌리기 게임이었다.

멈추거나 주저하는 순간 터진다.

“이곳은 굿데이죠. 우리는 준의 뜻에 따르죠.”

“제가 만일 준의 뜻에 따르겠다고 대답했다면 ···.”

“아뇨. 당신은 그러지 못해요. 제가 뜨거운 밤이 될 거라고 말했죠? 어떻게 알았을 거 같아요?”

“경험했나요?”

“네. 우리 모두 준의 시뮬레이션을 경험했어요. 그 누구도 당신처럼 정신을 잃지도 않았죠. 좋은 팀원이 될 거로 생각했는데, 당신은 너무 약하네요.”

*

유럽연합을 강타할 헬파이어 시나리오가 공개되자, 세계가 술렁거렸다.

유럽연합은 기후 오퍼레이션을 강행하겠노라! 선언했다.

북미 대륙 국가와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일본은 기후 오퍼레이션이 기후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핵무기를 가진 자가 최강이었지만, 이제는 기후 오퍼레이션이 핵무기를 대신하려 했다.

남은 시간은 45일.

유럽 왕실 기상청은 오퍼위성을 재배치했다.

오퍼위성은 기후 오퍼레이션 엔진이었다.

유럽왕실 기상청은 그들의 기술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이례적으로 원리를 공개했다.

입자 자기장 원리.

자기장은 열교환 효과가 있다.

강력한 자석은 효율 높은 에어컨과 냉장고가 된다.

냉매를 사용하는 에어컨보다 조용하고, 절반 이하의 전력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

수명도 반영구적이었다.

환경론자가 기쁜 목소리로 노래 불렀던 자석의 시대는 10년 전 이야기였다.

자기장 열교환 효과를 최초로 상용화했던 곳은 유럽연합이었다.

기후 온난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그들은 미래의 재난을 막기 위해 모든 정치력과 과학력을 동원했다.

탄소배출권 제도에 이은 자기장 열교환 상품의 개발.

“탄소배출권과 자기장 열교환 상품이 지구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실 분은 없으실 겁니다. 전기자동차에도 자기장 열교환 장치가 들어갑니다. 기후 오퍼레이션도 자기장을 이용한 것입니다. 지구에 유익한 기술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톡홀름에서 증명했습니다.”

유럽 왕실 기상청 대표로 나온, 앙리 백작은 정성껏 설명했다.

각국의 실력자들이 모인 국제회의였다.

“벌목과 채굴과 같은 거죠. 우리는 요빅 생태계 이전에 땅을 파서, 금과 은을 캐냈습니다. 금과 은은 쓸모가 많은 금속이죠. 앙리 백작님이 말씀하신 기후 오퍼레이션은 기후 마이닝입니다. 미래의 기후에서 쓸만한 날씨를 미리 뽑아내는 격이죠. 기후는 자원입니다. 미래의 자원에 손을 대면, 그 미래가 됐을 때, 더 먼 미래에서 자원을 캐내서 메워야겠죠.”

반론을 펼친 것은 북미연합 대표 루이스 상원 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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