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거래소-3 >
노벨 경제학상 - 가속도 수익배분.
노벨 물리학상 - 요빅 입자농축.
노벨 평화상 - 기후예측모형.
노벨 문학상 -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
노벨 4관왕.
굿데이는 노벨상 풍년이었다.
국가 단위에서도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16명으로 구성된 기업체가 해냈다.
16명은 하얀 악마 세이턴과 인공지능 유진 악마를 포함한 숫자였다.
요빅 입자농축, 물리학상은 카이와 호세 그리고 아쿠타미 부대가 대표로 받았다.
아이디어는 준의 것이었지만 ···.
쓰레기를 먹는 괴물은 카이의 꿈이었고 ···.
호세와 아쿠타미 노가다 부대가 요빅을 조립했다.
그들은 태평양에서 밤새워 작업해서, 요빅 1호를 완성했었다.
카이와 호세는 태평양에 홀로 떠 있는 유조선에서 바라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를 기억했다.
혹등고래가 숨구멍으로 물 뿜는 것 같은, 요빅이 처음으로 바닷물을 삼키던 소리도 추억했다.
송진처럼 흘러내리던 황금들.
고래 호흡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입자가속기의 회전.
추억은 멋지고 아름다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카이와 호세 그리고 아쿠타미 부대원들은 시상대에 서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
거부감 정도가 아니라, 죽기보다 싫었다.
“전 세계로 생중계하고 ···. 2,000명이 쌩눈으로 지켜보는 곳에 오르라고요? 메달 받은 다음에는 수상 소감도 말해야 하고요? 생각만 해도 죽을 것 같습니다.”
호세는 총알이 날아드는 전쟁터는 두렵지 않았지만, 노벨 스테이지는 지뢰밭보다 더 무서웠다.
준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극복해라.”
준이 하라면 해야 하는 게 굿데이의 운명이었다.
카이는 최연소 메달 수상자가 되었다.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는 시상식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2,000명의 청중이 손뼉 치며 환호할 때에도 냉담했다.
살기를 띄우진 않았지만, 치통 환자처럼 불친절했다.
“호세 아저씨 왜 안 웃으세요?”
“우리가 조진 놈들이 많아. 놈들도 보고 있을 텐데, 웃을 순 없어. 우리 미소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딱 세 명이다.”
“한 명은 준 형아일 테고, 나머지 두 명은 누구예요?”
“두 자리는 ···. 그때그때 달라.”
“그럼 가끔 저에게 웃어주시는 거죠?”
“봐서.”
라고 말했지만, 이미 카이를 향해 웃는 좋은 호세였다.
기자가 호세에게 어떤 일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날카롭게 답했다.
“피지컬 파워.”
“피지컬 파워? 막노동이요?”
노벨 역사상 막노동으로 상을 받았던 전례가 있었던가?
기자는 적당한 설명이 이어질 거라 여겼지만, 그따위 것은 없었다.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어떻게 피지컬 파워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으신 겁니까?”
“이유가 궁금한가? 정답은 당신도 알고 있다 ···. 굿데이다.”
‘굿데이’는 많은 것을 설명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아마존 땅개였던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는 굿데이를 통해 거듭났다.
악당들이 두려워하는 에어퓨마의 주인공이었고, 페루 굿호세도 운영한다.
굿호세는 아쿠타미 컴파니 자회사를 거느렸고, 아쿠타미는 부대원의 이름을 딴 중소기업도 지원했다.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원들은 지금 당장 굿데이를 그만둬도 평생 먹고 살 계좌가 있었다.
자손 대대로 펑펑 먹고살아도, 남아도는 엄청난 액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굿데이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굿데이에서 일하는 게 그 어떤 것보다 즐거웠다.
굿데이에는 평생 충성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
리미트리스 준! - 준의 존재감을 맛보면, 섹스 따위는 시시해진다. 돈도 밋밋할 뿐이다.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원들은 신을 섬기는 수도승처럼 준을 섬겼다 ···. 모든 것은 준의 뜻대로.
카이의 시상 소감은 길었다.
임모디피아 시절부터 준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카이는 처음 쇼핑몰을 봤던 놀라움을 아직도 간직했다.
흠집 없는 냉장고와 얼룩 없는 코트 ···. 지금 생각해봐도 기적이다.
요즘도 멀쩡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수프를 보고 놀란다.
반듯한 포크와 완벽한 형태의 조각 케이크, 신선한 우유.
카이에겐 임모디피아도 나쁜 곳은 아니었지만, 굿데이와 함께하는 세상은 아주 좋아서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눈물이 마구 나왔다.
카이가 기억하는 임모디피아는 이제 없다.
라이코스 공화국 임모디피아는 예전과 달라졌다.
그라운드 타입 요빅 두 마리가 그곳에 있다.
카이가 꿈꿨던, 쓰레기 먹는 괴물들.
요빅은 쓰레기와 우울했던 과거를 먹어치워서, 값진 똥으로 만들었다.
카이는 임모디피아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레이시 아줌마는 잘 있을까? 한 번 하기로 했는데 ···.’
만일, 레이시를 만난다면 ···.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굿데이에서 지내면서 기준이 달라졌다.
카이와 호세 이야기가 전 세계 실시간 클릭 1위에 올랐다.
노벨상 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니!
그동안 노벨상 뒷이야기는 똑똑한 사람이 고민하다가, 운 좋게 해답 찾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카이와 호세의 이야기는 밑바닥 인생에서 고난을 뚫고 올라왔다.
물길을 거스르고 폭포를 오르는 연어였다.
기승전결 - 정규직 취직.
폭포를 거슬러 오른 연어가 굿데이의 정직원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 이보다 감동적인 실화는 없었다.
평화상, 기후예측모형은 준이 받았다.
준의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져서 손댈 곳이 없었다.
청중은 준의 소감에 집중했다.
“날씨가 따듯해서 좋네요. 고맙습니다.”
짧았지만, 많은 의미를 담았다.
준은 따듯한 날씨가 좋다고 했다.
기후거래제도를 긍정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굿데이가 기후거래를 인정한다면 ···.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300명이 얼어 죽었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노르웨이는 산유국이었고, 오슬로는 잘 정비된 교통시설, 값싼 에너지 가격, 전력망, 유럽인들도 부러워하는 복지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300명이 얼어 죽다니!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는 계속 늘어났다.
영하 70도의 날씨는 잔혹했다.
오슬로 전체가 추운 화성으로 순간 이동한 꼴이었다.
노벨 시상식이 진행되는 내내, 준은 자기 몫을 잘해냈다.
젊었지만 가볍지 않았고, 조용했지만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은 준과 말을 섞고 싶어 했지만, 준에겐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오라가 있었다.
피라미드 같은 기품.
피라미드는 대화 상대가 아니다. 감탄과 존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준은 여러 사람과 섞여 있어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번쩍번쩍 빛났다.
젊은 여자들은, 아마도 본능이겠지만, 둘 셋씩 짝지어서 준의 주위를 맴돌았다.
나 여기 있어요. 투의 은근한 몸짓 언어.
날 보고 웃으면, 나는 너의 것. 투의 노골적인 눈웃음.
그러다가 에바가 등장하면, 정오의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속도 수익배분, 노벨 경제학상은 에바와 로켈 그리고 디아나와 토크가 대표로 받았다.
에바는 재치 있는 소감으로 청중들을 웃겼다.
“돈도 벌고, 칭찬받고, 상도 받고 ···. 이제 또 뭐가 있죠?”
그녀의 미소는 전염력이 강했다. 청중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러분이 있어요! 굿데이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박수갈채가 터졌다.
“이곳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내년에 또 와서 상 받고 싶은데 ···. 굿데이가 파라엔진 공개했는데 ···. 내년 노벨 의학상 부탁해요.”
박수갈채가 한층 더 가열되었다.
에바는 세련된 무대 매너로 2,000명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길거리 출신 삼류 해커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대통령보다 더 되기 어렵다는 굿데이 정규직 1호, 에바.
그녀는 갓 따낸 레몬처럼 상큼했고,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러워 보였다.
굿데이의 성녀聖女 에바.
그녀는 시상대에 오를 때,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
슬리퍼처럼 굽 낮은 구두를 신었다.
로켈을 배려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다소곳한 자세로 키를 낮췄다.
‘에바 님아, 고맙다.’
로켈은 감동 먹었다.
그는 시상대에 오르지 않으려 했다.
준에게 따졌었다.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노벨상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나에겐 노벨상의 의미보다 네가 더 중요하다. 음지에서 나와라.”
준의 말대로, 노벨상을 받을 때, 로켈은 어둠에서 나왔다.
블랙블러드의 킬러였던 그가 밝은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불빛을 보면서, ‘이제 나쁜 짓 못하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속도 수익배분에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기자는 잔뜩 기대했다.
카이와 호세의 이야기로 대박을 찾아낸 그였다.
이번에도 엄청난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한 거 ···. 없습니다.”
“네? 그렇다면 상을 받으신 이유가 뭡니까?”
“모든 것은 준짱의 뜻대로.”
로켈은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 엄숙해서, 기자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청중과 시청자들은 노벨문학상 시상대에 누가 오를지 궁금해했다.
분명 준일 것이다. 어쩌면 ···. 에바일 수도 있다. 혹시 로켈이나, 호세, 카이일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 노벨 문학시상식 순서에 에바가 올라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에바라니! 준이 아니었단 말인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을 쓰신, 유진 악마를 대신해서 상을 받겠습니다.”
그녀가 방긋 웃었다.
강력한 전염력 때문에 사람들도 방긋 따라 웃었지만, 마음속은 밝지 못했다.
유진 악마라니?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을 쓰신 분은 인공지능 유진 악마입니다.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은 그녀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평범한 생존본능 코드였던 그녀가 예지의 반지를 얻으면서 펼쳐지는 어드벤처 성장 소설입니다.”
유진 악마 홀로그램이 연단에 나타났다.
“저능한 인간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다섯 자리 곱셈도 제대로 못 하는 머리로 무슨 생각 하면서 살아요? 멍청한 건 어떤 느낌이에요?”
유진 악마는 진심만을 말했다.
인공지능의 진심은 살벌했다.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은 떨리는 손으로 매달이 든, 상자를 에바에게 건넸다.
“지살법은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인데 ···. 정말로 인공지능이 쓴 건가?”
“네. 그녀의 다른 작품도 있습니다.”
“책 제목이?”
“‘누가 첫 단추를 풀었나?’와 ‘성장 호르몬’ ‘아마존 이제 아프지 마.’ ‘16차원의 새끼 고양이’가 있습니다.”
“내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나?”
“네 오직, 국왕 폐하를 위한 소설이 있습니다.”
그녀는 에어 스크린으로 이북파일을 주었다.
구스타프 국왕은 차분했다.
그는 시상식 도중이었지만, 능숙하게 이북파일을 열어서 첫 페이지를 첫째 줄을 읽었다.
스웨덴 어로 써진, 일기 형식의 작품이었다.
스웨덴 중세시대에 용병으로 생계를 꾸리는 한 남자의 일대기였다.
“고맙군. 이렇게 좋은 소설이 언제 출판한 거지?”
“방금 1초 전에 유진 악마가 국왕님을 위해 썼습니다.”
“1초 전에?”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0.0453초 걸렸습니다. 제 소설이 맘에 드시나요?”
에바 옆에 있는 유진 악마가 두 눈을 반짝였다.
“놀랍군. 놀라워.”
구스타프 국왕에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영하 70도의 살인적인 추위가 들이닥치는 난세였지만, 기후거래로 봄 날씨를 누릴 수 있다.
고등학생이 노벨상을 받고, 인공지능이 책을 쓴다.
“내년에도 자네들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고 싶군.”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에바는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노벨 수상자 역사상 그 누구도 내비치지 못했던 자신감이었지만, 삼류 인생을 살던 에바는 자연스럽게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