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74화 (72/141)

< 파라엔진-24 >

회의실 분위기는 밀림처럼 어두웠다.

먹고 먹히는 비즈니스 세계에 엄청난 포식자가 나타났다.

바로 굿데이였다.

요빅으로 원자재 시장을 되새김질한 괴물.

그 괴물의 다음 먹잇감은 어느 섹터일까?

프로메타 제약회사의 고위 임원 다섯 명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늑대를 마주한 토끼였다.

토끼들이 회의한다고 해서, 늑대를 피할 수 있을까?

그것도 눈앞에 있는 늑대를?

비상 회의는 늑대 입 냄새를 표현하는 행위예술에 불과했다.

비밀회의 - 공식적으로 임원들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단체 관광 중이었다.

만병통치약 파라엔진이 시장에 풀리는 순간, 헬스케어 섹터는 폭삭 주저앉을 것이다.

감기약도, 진통제도, 어쩌면 피임약도 안 팔릴 것이다.

“법률팀에서는 이미 대책을 세워뒀습니다. 우리의 특허 기술을 거치지 않고, 파라엔진으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디비더 법률이사는 팔꿈치를 원형 테이블에 올렸다.

모두가 둘러앉은 원형 테이블이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특허장벽은 돈 많은 제약회사가 사랑하는, 굳건한 성벽이었다.

평소라면 디비더 법률이사의 발언으로 회의가 끝났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굿데이는 딥루트 타입의 숏포지션을 취한 적이 있습니다. 금값 하락에 올인 했었죠. 페루 샤나이슈카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된 시기였죠. 모두 굿데이처럼 숏포지션을 취했죠. 그러다가 상황이 바뀝니다. 미다스 그룹에서 샤나이슈카 지역의 채굴 시기를 미뤘고, 샤나이슈카 지역에 묻혀 있는 게 금이 아니라, 황철석이라는 루머도 돌았죠. 금값이 꼴린 듯이 올랐죠. 딥루트 포지션에 걸린, 굿데이는 큰돈을 날리거나, 황금 300톤을 구해와야 했죠. 이 이야기의 결말은 모두 아시죠? 굿데이는 요빅의 똥으로 불리는 황금 300톤을 가져옵니다. 요빅 경제 생태계의 시작이었죠.”

미래전략실장 헤리가 양 팔꿈치를 원형 테이블에 올렸다.

디비더 법률이사는 개가 꼬리를 감추듯 팔꿈치를 내렸다.

헤리의 표정은 굶주린 호랑이였다.

헤리는 프로메타 제약회사의 어둠을 담당했다.

타락천사 - 헤리.

그는 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 가장 젊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을 괜스레 주눅이 들게 하고, 겁먹게 했다.

회의실에 있는 임원은 같은 생각을 했다.

누군가 굿데이를 막아낸다면, 분명 헤리일 것이다.

“금에는 특허가 없습니다. 그건 천연물질이니깐요. 하지만 파라엔진은 프로메타의 작품입니다. 누구도 훔쳐갈 수 없지요.”

디비더 법률이사는 팔짱을 하며 몸을 의자에 기댔다.

그는 회의를 빨리 끝내고, 스마트 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굿데이가 파라엔진 제조법을 모조리 밝혀내기만 해도 프로메타는 버티지 못합니다. 국제법 적용을 받지 않는, 제3 국가에서 파라엔진이 팔릴 테니깐요.”

“그렇다면 ···. 우리가 먼저 제품으로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굿데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겁니다.”

“파라엔진은 이미 팔리고 있습니다.”

헤리는 옆에 놓인 커피를 마셨다.

맞은편에 앉은 임원이 헤리를 노려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파라엔진이 팔린다고? 파라엔진은 완성품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 실용화가 되려면 최소 몇 년은 ···.”

“이곳에 계신 분들도 파라엔진을 사셨습니다. 블랙마켓에서 스키마로 불리는 물건이죠.”

스키마는 블랙마켓에서 값비싸게 거래되는 의료서비스였다.

회의실 임원들은 동시에 침을 삼켰다.

그 비싼 스키마가 파라엔진이었다니!

몇 년 치 연봉을 털어서 산 물건인데 ···.

“프로메타 제약회사의 목적은 그분을 위해 돈을 버는 겁니다. 파라엔진을 공개하고 정식으로 판매하면, 프로메타의 다른 사업라인이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블랙마켓을 통해, 스키마라는 이름으로 판매해왔습니다. 그분의 이익을 최대로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어쩐지 ···. 이름이 낯익더니만 ···.”

디비더 법률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고액연봉을 받고 회사에 다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가지를 쓴 꼴이었다.

“스키마 방식이라면 ···. 정식 판매를 하는 게 좋겠군요. 헤리 실장도 알겠지만, 스키마를 이식받으면 하루 한 알씩 알파벳을 먹어야 합니다. 알파벳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프로메타 제약은 알파벳만 팔아도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겁니다.”

“그런 게 영감들의 한계라는 거죠. 굿데이가 파라엔진을 만들면, 그들은 알파벳이 필요없는 완제품을 개발해낼 겁니다. 한 번 이식으로 평생 유지되는 스키마죠.”

임원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들은 엄청난 값을 치르고 스키마를 샀다.

덕분에 불치병과 같았던 관절염과 당뇨, 고지혈, 위염, 비염이 치료되었다.

스키마를 유지하려면 매일 알파벳을 먹어야 했고, 알파벳 가격도 높았다.

프로메타에서 번 돈으로 알파벳을 사고 있었다.

프로메타가 알파벳과 스키마를 몰래 만들어 파는 것이라면 ···. 임원들은 프로메타에서 받은 돈을 다시 프로메타로 돌려주는 꼴이었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했다 ···. 굿데이가 파라엔진을 만들면, 알파벳 추가 비용을 끝낼 수 있다!

헤리에겐 그들의 생각이 빤히 보였다.

굿데이를 끝없이 욕하던 임원들이 어느덧 굿데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디비더 법률이사는 풍부한 법률 지식으로 프로메타 제약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프로메타는 굿데이 때문에 망한다. 망하기 전에 최대한 챙기고 싶었다.

“역시 ···. 늙은이들은 쓸모가 없어.”

“그게 무슨 말인가!”

디비더 법률이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알파벳을 먹지 못하면, 스키마가 당신들을 먹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알파벳을 구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헤리 실장. 더는 참지 않겠네. 자네는 우리에게 스키마를 팔았어. 그건 범죄라네.”

“효과 보셨잖아요.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몸이었는데, 지금은 멀쩡하시잖아요. 규정 때문에 비상 회의를 한 것뿐입니다. 프로메타에 위기상황이 닥치면, 임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해야 하거든요. 여러분들은 오늘 멋지게 해내셨어요.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맘껏 뽐내셨죠. 그동안 공짜로 부려 먹는 맛이 있었는데, 이제 굿데이가 파라엔진에 손을 대면, 여러분에게 꽂은 빨대도 뽑히겠죠. 확실하게 쓸모가 없어졌는데 ···. 살려두자니, 프로메타와 저를 욕하고 다닐 거 같고 ···. 자 그렇다면, 이 물건의 효과는 어떨까요?”

헤리는 볼펜을 들어 올렸다.

끝에 자수정이 박혀 있었다.

강한 보라색 빛이 반짝거렸다.

보라색 빛이 임원에게 이식된 스키마에 전달되었다.

스키마 폭식이 시작되었다.

임원들은 급성 뇌염으로, 뇌가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그들은 몸을 떨며 바닥에 쓰러졌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헤리의 부하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임원을 치웠다.

“효과가 확실하군.”

헤리는 만족스러웠다.

*

케냐 국립병원으로 이송된 프로메타 임원들은,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급성 뇌염으로 진단받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망했다.

그들의 유언에 따라 시체는 케냐 국립의대에 기증되었다.

수잔은 불카누스에 있는 토끼굴에서 뉴스를 봤다.

스탠리 가문 법률회사가 총력을 다해서, 그녀를 스노우 교도소에서 빼냈다.

무죄가 밝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토끼굴에서 지낼 수 있었다.

“뇌염 바이러스 무섭네. 파라엔진이 있으면 진드기에 물려도 끄떡없는 거지?”

로켈이 옆으로 다가왔다.

“저걸 믿어요? 프로메타 핵심 멤버 다섯 명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병에 걸려서 죽었어요. 이게 뭘 의미하겠어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아니에요! 저들은 쓸모가 없어진 거예요.”

“교도소에서 그런 걸 배웠어? 쓸모가 없어지면, 뇌염에 걸려서 죽는다?”

로켈은 위아래로 수잔을 쳐다보았다.

“준에게 말해야 해요. 분명 음모가 있어요.”

“수잔 ···.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준이라고 하면 안 돼. 나는 준짱이라고 부르고, 카이는 준 형아, 유진 악마는 준느님 그리고 에바와 기타 등등은 준 회장이라고 부르지.”

“세이턴은요?”

“멍 ···. 개소리를 따라 할 게 아니라면, 호칭을 정했으면 좋겠어.”

수잔은 눈을 깜빡거렸다.

토끼굴에 온 지 삼 일이 지났지만, 아직 준을 만나보지 못했다.

준은 방에서 삼일 연속 뉴런 독서를 했다.

에바가 가끔 들락거렸는데, 수잔의 눈에는 뭘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역시 소문대로 ···. 그렇고 그런 걸까?

“직접 만나서 결정할래요.”

“나 여기 있다.”

준이 불쑥 나타났다.

“칵아아아악!”

깜짝 놀란 수잔이 길고 지루한 비명을 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로켈을 보내시어, 저를 구원해주신 ···. 저의 목숨과 몸은 ···.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녀는 기도하는 소녀처럼 무릎을 꿇고, 준의 발에 입맞춤하려 했다.

굿데이 직원들의 눈썹이 일제히 올라갔다.

그동안 그들에게 보였던 수잔의 모습은 차갑고 도도한 여자였다.

준을 만나면, 나이를 따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준을 만난, 수잔은 평소와는 너무나 달랐다.

“엄청난 아부쟁이가 오셨군.”

에바는 여우 눈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이제 준의 반응이 중요했다.

로켈, 호세, 디아나, 토크, 카이, 노가다 부대원들과 세이턴까지 준을 지켜보았다.

준은 그의 발에 키스하는 수잔을 말리지 않았고, 발을 빼지도 않았다.

수잔은 준의 발목을 잡고, 다시 키스했다.

“오! 주인님!”

그녀는 점점 몰입했다.

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스노우 교도소에서 부질없이 늙어갔을 것이다.

평생 준의 노예가 되어도 좋았다.

진심으로 우러러 나오는 아부는 너무 찬란했다.

보는 사람이 힘들 정도였다.

“수잔.”

“네! 주인님.”

그녀는 고개를 들어 큰 눈망울로 준을 올려보았다.

“잘해보자.”

“네.”

“가슴이 아프구나.”

“주인님. 왜요?”

“남자는 쉬아하면 ···. 발등에 조금 튄다. 이유는 묻지 마라. 그냥 알고만 있어라.”

“네.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다. 시작하기 전에, 세수하고 와라.”

“뭘 시작하나요?”

준이 설명하려 할 때, 에바가 끼어들었다.

“준 회장님. 노바처방을 허락해주십시오.”

“이미 허락했다. 기다려라. 세수하고 오면 처방해라.”

“아! 시작이라는 게 ···.”

“그렇다. 노바처방이다. 이해하자. 카이도 그랬고, 수잔도 그렇다. 둘 다 힘든 환경에서 살다 보니, 그런 거다.”

“네. 온 힘을 다해서 처방하겠습니다.”

수잔은 영문을 몰랐지만, 대화내용을 보니 몸에 무척 이로운 것 같았다.

그녀는 세수하고 화장도 고치고, 립스틱도 다시 했다.

에바에게 싸다귀를 맞은 수잔은 밝은 빛을 보았다.

영혼을 인도하는 거룩한 빛이었다.

빛이 전하는 진리는 간단했다. - 까불면 맞는다.

“수잔.”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잔은 간신히 준에게 초점을 맞췄다.

“아직도 내가 주인님으로 보이니?”

“아뇨.”

“그럼 무엇이냐?”

“준 ···.”

수잔의 독특한 고집이 작동했다.

그녀는 로켈이나 카이 그리고 유진 악마를 따라 하기 싫었다.

에바는 더 싫었다.

“ ···. 대표님. 준 대표님이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