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엔진-23 >
뚱녀는 시속 150km의 속도로 콘크리트 바닥에 충돌했다.
그녀는 넘쳐나는 지방층을 자랑했지만, 가속도가 따라 붙는 충격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충돌에 따른 공기 진동. - 크고 두꺼운 물풍선 터지는 소리가 났다.
뚱녀 위에 올라탄 수잔에겐 세찬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사방으로 퍼지면서 무뎌졌다.
뚱녀의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찔렀다.
위장과 창자도 터졌다.
수잔이 올라탄 곳은 이중 충격으로 걸레가 되었다.
“넌 좋은 쿠션이었어.”
수잔은 입안 가득 피 머금은 뚱녀의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
뚱녀는 피를 토했다.
숨쉬기가 조금 편해졌지만, 통증은 더 심해졌다.
“넌 죽을 거야. 폐에 구멍이 났고, 내출혈로 배가 부르고 있어. 내가 널 돕는 이유는 ···. 죽기 전에 고통받길 바라서야.”
수잔은 뚱녀의 반지를 뺐다.
반지를 빼려면, 부러진 뚱녀 손가락을 대충 맞춰서 펴야 했다.
골절 부위가 덜거덕거릴 때마다 뚱녀는 움찔거렸다.
“너 지금 오줌싸고 있어. 정말 많이 아픈가 봐?”
수잔은 뚱녀의 반지를 뚱녀의 이마에 박고 비틀었다.
“지옥에 가면 내가 보냈다고 해. 잘해줄 거야.”
피와 오줌을 쏟는 뚱녀는 수잔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수잔의 얼굴은 말끔했다. 멍든 자국도 보이지 않았고, 긁힌 자국도 없다.
수잔이 떨어진 곳은 교도소 뒤편이었다.
주차장의 가느다란 배수로처럼, 교도소 영역의 빈공간 같은 곳이었다.
감시탑과 카메라가 보였다.
인공지능 카메라가 이상 신호를 컨트롤 타워로 보냈지만, 영상을 확인하고 경비원과 교도관이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교도관 - 카트리나의 사냥개들.
교도관 모두가 사냥개는 아니었지만, 카트리나 교도소장의 뜻을 거역하는 교도관은 없었다.
카트리나가 그러길 바란다면, 수잔은 죽음 목숨이었다.
수잔은 숨을 곳을 찾았다.
몸집 작은 그녀는 고양이처럼 작은 구멍에도 들어갈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교도소를 탈출하는 것이었지만, 철창을 넘을 수 없었다.
높은 철창 밑으로는 탈출 방지 차단막이 3m 깊이로 박혀 있다.
수잔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숨으려 했다.
숨는 건 자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좁은 집안에서도 그녀가 숨으면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었다.
문고리를 돌렸지만, 전자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그녀는 뚱녀의 카드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려 했다.
전자자물쇠가 카드를 인식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얼굴인식 센서가 뚱녀가 아님을 구분해낸 것이다.
비상벨이 울렸다.
수잔은 마른 침을 삼키고 뚱녀에게 다시 갔다.
뚱녀의 카드를 그녀 주머니에 넣어 두고, 이마에 박혀 있는 반지를 손가락에 다시 끼웠다.
뚱녀의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출혈 때문에 인공호흡이 의미 없는 단계였다.
수잔은 뚱녀의 눈을 바로 보았다.
“많이 아프지? 그랬으면 좋겠어.”
그동안 뚱녀에게 당했던 몹쓸 기억이 마구 올라왔다.
생각 같아서는 뚱녀가 죽기 전에 마구 때려주고 싶었지만, 모든 것은 CCTV로 촬영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뚱녀에게 말할 때, CCTV를 등졌다.
경비원과 교도관이 몰려왔을 때, 수잔은 두 손을 머리 뒤로 하고, 무릎을 꿇은 자세를 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경비원은 샷건으로 수잔을 겨눴다.
“살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것도! 절 구해줄 사람을 기다렸어요!”
“어디로 가려 했지?”
“안전한 곳이요. 독방이라도 좋아요! 카트리나 교도소장이 절 죽이려 해요!”
수잔은 악을 썼다. - 모두가 확실하게 들을 수 있도록.
그녀가 반복했다.
“카트리나 교도소장이 절 죽이려 해요!”
뚱녀의 상태를 확인하던 교도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차미안을 왜 죽였어!”
교도관이 윽박질렀다. 차미안은 뚱녀의 이름이었다.
“그녀가 4층에서 저를 떨어트렸어요. 저는 살려고 붙잡았고요. 그러다가 같이 떨어진 거예요!”
“4층에서 떨어졌는데, 너만 멀쩡하다고?”
“CCTV를 확인해봐요! 다 찍혔을 거예요.”
수잔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수줍어할 여유가 없었다.
교도관들과 경비원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카트리나 교도소장 눈 밖에 벗어나면, 사는 게 고달파진다.
“모두 비켜!”
폴리나 부소장이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업무용 에어스크린을 띄우고, CCTV 영상을 불러들였다.
떨어지는 장면은 찍혔지만, 4층 난간은 화면에 없었다.
뚱녀가 수잔을 밀쳐냈던 곳은 CCTV 사각지대였다.
폴리나 부소장은 영상을 멈췄다.
허공에서 뚱녀를 올라탄 수잔이 양팔을 펴고 균형 잡는 모습이었다. - 돼지를 낚아챈 작은 독수리가 연상되었다.
“다들 뭘 해! 차미안 교도관과 3398번을 의료실로 옮겨!”
*
준은 노벨상 시상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빠지겠다고? 왜요?”
에바는 반쯤 우는 얼굴로 되물었다.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굿데이가 구시대 전통을 존중하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굿데이는 혁명이었고, 혁명을 반기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었다.
구시대 갑부들의 눈에 굿데이는 그들 몫을 탐내는 악마처럼 보였다.
요빅으로 영원토록 변치 않을 것 같았던, 금의 가치가 떨어졌다.
에너지 가격도 밑바닥이어서, 산유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명줄을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는, 유진 악마가 요빅으로 번 돈으로, 에너지 가격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준의 뜻대로 ···. 유진 악마의 가격유지는 준느님의 뜻이었다.
유진 악마는 준의 뜻대로 플레이하면서, 천연가스와 석유 그리고 석탄 가격을 완만하게 유지하는 이유를 물었다.
“왜 손해 보면서 이런 일을 하죠?”
준의 대답은 짧았다.
“그들이 망하면 우리도 힘들어진다.”
준은 자비롭지도, 착하지도 않았다.
굿데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구시대 갑부들이 망했던가!
구시대 갑부들은 굿데이가 두려워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준이 노벨상 시상식에 가서, ‘고맙습니다.’ 한마디만 해도, 그들은 맘이 놓일 것이다.
준이 세상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들은 위안을 얻을 것이다.
돈을 잃은 그들에게, 위안은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준은 세상이 누릴 위안에는 관심 없었다.
그가 시상식에 가지 않는 이유는 ···.
“스웨덴은 춥다.”
“고작 그런 이유로 ···.”
에바는 눈 밑이 실룩거렸다.
“충분한 이유다.”
“전혀 충분하지 않아! 네가 좋든 싫든, 너는 굿데이의 회장이야! 너에겐 세상에 대한 의무가 있어! 노벨상 시상식에 가는 것도 너의 의무야! 거기 가서 준 회장이 직접 말해! ‘지살법’을 쓴 작가는 네가 아니라, 유진 악마라고! 세상은 진실을 알아야 해!”
“에바 ···.”
준은 흥분한 말을 달래듯이, 목소리를 깔았다.
준이 목소리를 깔면, 에바는 무조건 반사처럼 공손하게 변했다.
“네. 준 회장님.”
“네가 가라. 스웨덴.”
이것으로 끝이었다.
에바는 늘 그랬던 것처럼, 준의 명령을 그냥 받아들였다.
그녀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굿데이와 준을 최대한 홍보해야 했다.
세상이 느끼는, 굿데이에 대한 두려움을 누그러트려야 했다.
‘그런 게 가능할까?’
머리가 아팠다.
그녀가 준에게 시상식 참석을 강하게 주장한 이유도, 잘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노벨상 시상식이라니! 생각만 해도 떨렸다.
세상이 굿데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굿데이는 세상에 없던 것을 자꾸자꾸 만들어내고, 예전에 있던 것을 모조리 지웠다.
굿데이의 자회사 굿호세의 사업방식도 전에 없던 것이었다.
‘굿호세 지역’에서는 물건을 신청하면, 물건과 함께 현금을 지급했다.
현금은 - 물건을 신청해줘서 고맙다는 의미였다.
파차마마가 프린팅한 물건이 지역주민에게 배달될 때에는, 항상 나뭇잎 모양의 엽서가 전달되었다.
‘자동차를 신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의 의미로 현금 3500솔을 드리겠습니다.’
굿호세는 공장형 3D 프린터, 파차마마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지만, 대부분 수익을 굿호세 지역민들에게 뿌려댔다.
지역민들에게 집도 주고, 자동차도 주고, 책도 주고, 화분까지 주면서, 돈까지 얹어주었다.
현대 경제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일자리라고 하지만, 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늘었지만, 정보화 시대로 넘어오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신기술이 발달할수록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준은 어렸을 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이제는 그 걱정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너무나 잘 안다. 경제 포커스를 일자리에 맞추는 건 자살 행위이거나, 빈민층과 중산층 학살 행위였다.
경제학 이론대로 세상이 무난하게 흐르면, 일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세상이 된다.
돈을 내고 일하는 세상이 온다. - 전 세계적으로 치솟는 교육비가 그 증거였다.
포커스는 일자리가 아니라, 소득이어야 했다.
일자리가 없어도, 소득이 있으면 경제는 돌아간다.
일자리는 유진 악마와 요빅 그리고 불카누스와 파차마마에게 몽땅 몰아주고, 인간은 우아하게 소득만 챙기면 된다.
굿호세의 사업방식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소득을 넘겨주느냐.’였다.
일자리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굿데이 직원들은 똑똑히 봤다.
그들은 준이 진리라는 것을 알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에바는 심호흡했다.
그녀는 열심히 일했지만,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녀는 굿데이와 준 때문에 세상이 망하겠지만, 옛날보다 좋아질 거라고 설명해야 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녀는 거울 속 그녀에게 물었다.
*
카리 형사와 경찰들은 개선문을 지나듯이, 스노우 교도소 출입문을 통과했다.
카리는 엄청나게 빠른 진급으로 총경 직위였지만, 형사 업무를 계속했다.
그의 뒤에는 굿데이의 로켈이 있었다.
카리의 전설적인 진급 속도는 로켈 덕이었다.
카리는 ‘시체들의 숲’ 사건으로 로켈과 인연을 맺었다.
시체들의 숲 연쇄살인 사건은 엠벨라 족 살담 카메조가 범인이었다.
모든 것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카트리나 교도소장은 그녀의 사무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폴리나 부소장이 카리 형사를 안내했다.
“누구를 먼저 보시겠습니까?”
폴리나 부소장이 카리 형사에게 묻자, 카리 형사는 슬쩍 뒤에 있는 로켈의 눈치를 살폈다.
“카리 총경님은 카트리나에게 직접 진술받고 싶으실 겁니다.”
로켈의 말에 카리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경은 카리의 직위였고, 형사는 카리의 업무였다.
카리 형사가 카트리나를 만나는 동안, 로켈은 의무실에 있는 수잔을 찾았다.
“운이 좋더군. 15m에서 떨어지고도 멀쩡하다니.”
“쿠션이 좋았어요.”
“차미안은 레슬링 선수였어. 세계 대회에서 5위를 했었지. 자네보다 체중도 다섯 배는 더 나가지. 차미안이 너를 내던질 때, 아무리 매달린다고 해도, 그녀와 함께 떨어지는 건 불가능해.”
“불가능은 없어요.”
“왜 키 작은 사람들은 그 말을 즐겨 할까? 나폴레옹도 그렇고 ···.”
“폴리나 부소장이 그러던데 ···. 카트리나 소장이 구속될 거라면서요?”
“그렇게 될 거야. 증거가 너무 많아서 창고를 빌려야 할 정도야. 카트리나 소장이 왜 널 죽이려 한 거지?”
“아시잖아요.”
“직접 듣고 싶어.”
“제가 말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보고 계시잖아요.”
그녀는 턱을 들어 보였다.
뚱녀가 교도소장 사무실에서 수잔을 끌어낼 때, 주먹으로 수잔의 얼굴을 망가트렸다.
불과 몇 시간 전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수잔의 얼굴은 마시지 팩을 한 것처럼 깔끔했다.
“당신이 그랬죠? 굿데이의 도움을 받고 싶으면, 굿데이가 탐낼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보여줬어요. 맘에 드세요?”
“별로 ···.”
“네?”
수잔은 화들짝 놀랐다.
가치 증명을 위해, 나름 목숨을 걸고, 사건을 만들었는데 ···. 별로라니!
“그 파라엔진인가 뭔가 하는 것도 ···. 키는 그대로네.”
로켈의 한숨은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