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69화 (68/141)

< 파라엔진-19 >

준은 이야 몸에 박힌 화살촉과 깃을 잘라내고, 빼냈다.

요령 있게 안 아프게 잘 빼냈다고 여겼는데, 그녀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가슴이 강조되는 에로틱한 동작이었다.

이야는 고강도 훈련을 받은 프로였다.

준과 단둘이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화살에 맞았지만, 치명상도 아니었고, 오히려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자의 아름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통을 에로틱하게 표현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준은 그녀 배낭에서 진통제와 항생제를 꺼냈다.

약초를 쓸 수도 있었지만, 현대 의학으로 만든 진통제와 항생제가 훨씬 우수했다.

“이건 뭐지?”

준이 비닐봉지에 든 페이퍼를 들어 올렸다. - 처녀 증명서.

“그냥 챙겨왔어요.”

이야가 얼굴을 붉혔다.

여러 남자를 다루고, 할 거 다했지만, 그녀는 증명서가 보증하는 처녀였다.

“이런 걸 ···. 왜?”

준은 아마존과 처녀증명서의 관계를 계산해봤다.

어원을 따지면 연관성을 만들 수 있지만, 의미는 없었다.

연결 가능한 변수를 추가했다.

샤나이슈카 리조트, 웨이트리스, 아이스 코코넛 ···.

“이게 있으면, 팁을 더 받아? 아까 내가 준 팁이 부족하면 ···.”

“그런 거 아니에요!”

그녀는 약간 매몰차게 준의 말을 끊었다.

남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은근히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준은 달랐다. - 그녀 태도를 보니, 뭐든 혼자 할 수 있어 보였다.

“간다.”

할 일은 다 했다. 성큼성큼 걷는 준은, 이야의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이야는 겁이 덜컥 났다.

도살꾼들이 처리되었지만, 이곳은 악마의 밀림.

응급조치했어도, 그녀의 데미지는 무거웠다.

혼자 힘으로 악마의 밀림을 빠져나가는 건, 목숨 건 사투였고, 최소 하룻밤은 지나야 리조트에 도착한다.

“혼자 가지 마요! 같이 가요!”

그녀가 목청 높여 애원했다.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나무 위에 있는 아나콘다였다.

아나콘다가 혀를 날름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10m 길이의 300kg이 넘는 초대형이었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달아났지만, 아나콘다는 빨랐다.

그녀가 넘어지고, 아나콘다가 덮쳤다.

이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재규어를 간식거리로 잡아먹는 아나콘다였다.

저항은 의미 없다.

아나콘다의 뱃속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하게 되리라!

이상하게 시간이 걸렸다.

실눈을 뜨자, 눈치 보는 아나콘다가 보였다.

‘냉혹한 파충류가 눈치를 살피다니!’

아나콘다의 차가운 눈동자에 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나콘다 왼쪽 뺨에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나콘다는 실없는 미소를 남긴 채 슬며시 사라졌다.

‘뭐지 ···. 아나콘다가 눈치를 살피고, 멍청하게 웃다니!’

사라지는 아나콘다는 개처럼 꼬리까지 흔들었다.

“아직 움직이는 건 무리군.”

준은 나무와 넝쿨로 간이침대를 만들었다.

이야는 준의 작업을 조용히 바라보며, 로맨틱한 손놀림이라고 생각했다.

“누워라.”

이야는 부끄러운 동작으로 누웠다.

준은 침대를 짊어지고 걸었다.

“고마워요.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팁 때문에 온 게 아니에요.”

“알아. 내 마음을 훔치러 왔지. 도살꾼들은 내 목숨을 빼앗으러 왔고. 다음부터 뭔가를 훔치려면 실력부터 쌓아.”

준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놀라운 체력이었다.

이야는 깜빡 잠들었다.

상처를 입고, 위험한 아마존에 있었지만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

준은 이야를 짊어지고 리조트로 돌아왔다.

에바와 로켈, 카이는 별 감흥 없이 준을 맞이했지만, 호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악마의 밀림에서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는 것도 기적이었는데, 여자까지 구해내다니!

이야가 전해준 내용은 더 놀라웠다.

암살 슈트를 착용한 도살꾼 다섯을 벌레 밥으로 만들다니!

“호세.”

준이 가볍게 불렀을 뿐인데, 호세는 감전된 듯 몸을 세웠다.

“네! 준 회장님.”

“답해라.”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호세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끝끝내 굿데이다운 환경복구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그랬다.

준은 호세가 답을 못 내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았다.

“호세.”

“네.”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던 이유가 있다.”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아마존을 위해 그곳에 간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갔다. 환경복구도 ···.”

“저를 위한 일이어야 하는군요.”

“그래 ···. 누군가를 위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착한 호세는 좋은 호세가 아니다. 강한 호세가 좋은 호세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생각의 중심을 바뀌자, 호세 눈에 무엇을 해야 할지 환히 보이는 기적이 일어났다.

장님이 눈을 뜬 것 같았다.

폐광지역과 벌목 지역은 경제적으로 몰락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굿데이의 요빅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곳도 월급이 아주 적게 나오거나 없었다.

굿데이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를 것 같지만, 사람들은 굿데이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굿데이를 존경했고, 대 놓고 찬양하기도 했다.

굿데이가 옳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굿데이가 터무니없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강한 것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자, 전통이었다.

굿데이가 망한 지역 경제를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그 지역에 ‘굿호세’를 세운 이유는 값싼 인력과 버려진 산업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돈벌이가 되었다.

호세와 아쿠타미 노가다 부대는 몸이 가루가 되도록 열심히 일했다.

3D 프린터 단지와 연구소가 세워졌다.

“내가 오해했군. 준 회장이 말한 환경복구는 자연을 되살리는 게 아니었어. 어쩐지 그런 성격이 아니지.”

호세는 3D 프린터로 찍어낸 종합병원을 조립하다가 허리를 폈다.

주변 자연은 흘러넘치도록 풍요롭고, 도시는 각설탕처럼 깔끔했다.

호세가 바라보는 모든 땅과 건물들은 굿호세의 소유였다.

“좋은 호세가 좋은 페루를 만든다 ···. 이런 뜻이었군.”

호세는 웃음이 넘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굿호세는 굿데이의 자회사였다.

실질적인 소유는 준의 것이었지만, 호세는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환경기금 따위의 국채를 사들였다면, 환경복구는 나무 몇 그루 심고 웅덩이 덮는 수준으로 끝났을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일자리도 없이, 빈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굿호세는 복구지역을 예전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더 부유하고 더 활기차고 더 깨끗하고 ···. 초기자본이 엄청 들어갔지만, 모두 요빅으로 벌어들인 현금이었다.

현금 ···. 굿호세에 돈을 쓰지 않았다면, 세금으로 뜯길 잉여현금이었다.

그레고리 정보국장이 누네즈에게 인사했다.

“이번 선거에 나가실 건가요?”

“그래야죠. 그게 굿데이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굿데이와 준은 그녀에게 종교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준은 누네즈의 딸 카멧을 구했고, 그녀 남편을 고문하고 죽인 ‘도살자’를 처단했다.

“준은 페루를 떠날 겁니다.”

“설마요? 그런 말 하지 않았는데? 준에게 직접 들었나요?”

“너무 놀라지 마시라고 알려드린 겁니다. 당신은 앞으로 페루의 대통령이 되실 분입니다. 굿데이와 준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은 삼가주십시오.”

“굿데이는 우리나라에 굿호세를 세웠어요.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 아시잖아요?”

“압니다. 고맙죠. 하지만 준의 캐릭터를 보면 ···. 우리를 위한 일이 아니라, 그를 위한 일입니다. 모두가 굿데이와 굿호세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균형을 잡아줄 분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누네즈는 그레고리 국장의 숨어 있는 말뜻을 찾아냈다.

그레고리는 누네즈에게 균형론을 호소했지만, 실제로는 ···.

자신의 보직을 지키고자 함이었다.

굿데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정보국이 필요했다.

“그레고리 국장. 당신의 자리는 내가 보장해주죠.”

“고맙습니다. 정보국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지만, 이번에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누네즈 대통령 각하.”

“그레고리 국장, 준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굿호세를 심었다고 해도 ···. 저에게 준은 영웅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정보국도 해내지 못한 것을 혼자 해내신 분이죠.”

“준은 이미 충분히 가졌어요. 그렇게 많이 가진 사람이 왜 골머리를 써가며 굿호세를 만들었겠어요? 저는 준을 믿어요.”

“저는 직업상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만 ···. 그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 준이 우리나라를 떠난다는 근거가 뭐죠?”

*

준이 킹스덤 도서관에서 빌린, 평면기하학.

내일이 반납일이었다.

준은 말린 열대과일과 쿠스코 카카오 한 봉지를 들고 기간트에 올라탔다.

페루에 머문 지 25일 되던 날이었다.

쿵!

로켈이 준 앞에 무릎 꿇었다.

키는 작았지만, 단단한 그의 몸은 울림이 컸다.

“준짱!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가 ···.”

“알고 있다.”

“어떻게 ···.”

“너의 몸짓이 모든 걸 말해줬다.”

“아! 이제 판결된 방치의 시절을 끝났습니다. 저는 시온의 그림자 기사단으로 옳은 일을 했지만, 굿데이 직원으로서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로켈은 비장했다.

준이 책을 건넸다.

“평면기하학?”

“그 책엔 파라엔진에 관한 수식이 적혀 있다. 낙서한 사람을 찾아라.”

“쉬운 임무입니다. 저를 먼저 꾸짖어주십시오.”

“준 회장! 이건 확실하게 해둬야 해.”

에바가 끼어들었다.

그녀도 로켈의 판결준수를 알고 있었다.

자미에 대통령의 딸 제인이 준에게 꽃다발을 건네준 것이 결정적인 힌트였다.

만일 그때 준이 되돌아갔다면, 굿호세는 없었을 것이다.

제인의 꽃다발은 로켈의 정보력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재난’이었다.

“굿데이는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 한가하게 시온에게 놀아나는 건, 용납해선 안 돼!”

에바는 강경했다.

절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준 회장님처럼 네 꿈에도 랜달이 나타나고, 제인에게 꽃다발을 받아봐야 해!”

“따르겠다.”

로켈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랜달은 이미 죽었고, 제인에게 꽃다발 받을 일도 없다는 것을.

“로켈.”

준이 말하자, 모두 숨을 멈췄다.

“제인과 사귀어라.”

로켈의 숨이 막혔다.

“그것만은 ···.”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

“말씀해주십시오! 화산 속으로 뛰어들라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인의 마음을 훔쳐라.”

“그게 ···. 그거잖아요.”

“그렇다.”

로켈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하늘을 나는 기간트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시속 200km로 추락했다.

그의 눈에 아마존이 빠르게 올라왔다.

그는 낙하산을 펴고, 리마광장에 내렸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로켈을 쳐다보았다.

로켈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까운 꽃집에서 꽃다발을 샀다.

그리고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제인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마음을 훔치라고!

좋아 그렇게 해주지!

까짓것 훔치면 되는 거 아니야!

로켈은 키는 작았지만,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마초 기질마저 엿보였다.

그가 맘먹고 여자에게 접근하면, 원하는 여자를 침대에 눕힌다.

그의 시야에 제인이 들어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준에게 열린 후로 제인의 외모가 놀랍도록 ‘인간화’되어 있었다.

처음 봤던 대놓고 침팬지는 아니었다.

“나의 정열과 사랑을 그대에게!”

로켈은 멋진 저음으로 무릎 꿇으며 제인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제인의 여자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로미오의 등장에 놀랐다.

로켈의 정보에 의하면, 제인은 못생긴 외모를 스스로 알고 있었고, 남자의 유혹에 쉽게 넘어왔다.

이 정도 공개 퍼포먼스라면 제인이 감동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제인은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미소 띤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로켈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제인은 준에게 열리고 뚫린 후, 존재의 자신감에 눈떴다.

그녀는 온 세상 모두가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재수 없어.”

로켈에겐 그 어떤 형벌보다 잔인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모든 것은 준짱의 뜻대로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