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68화 (67/141)

< 파라엔진-18 >

호세는 아마존 전문가였고, 아마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마존은 맨몸으로 깨진 유리조각 위를 구르는 것보다 위험한 곳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과 짐승에게도 그랬다.

아마존에서도 ‘악마의 밀림’은 헬 난이도의 위험지대였고, 그곳에 생존 장비 없이 홀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뜻했다.

물불 가리지 않는 불법채굴업자가 유일하게 건들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무수히 많은 탐험대와 전문가들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준이라고 해도 예외일 리 없다.

“걱정 안 되십니까?”

“전혀.”

에바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아주 쉽게 대답했다.

그녀는 세계에서 쏟아지는 주문을 정리했다.

요빅과 관련 부품 그리고 기술자문 따위가 실시간으로 누적되었다.

유진 악마가 알아서 분류하고 발송했지만, 처리속도보다 누적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누군가 우선순위를 정해줘야 했고, 그 일은 에바의 것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하루 일찍 물건을 받는 것은, 다른 이보다 하루를 앞선다는 뜻이었다.

에바의 평균 영향력은 UN 사무 차장과 맞먹었다.

주문접수, 제작, 발송 사이클을 한 달 이내로 맞추려면, 불카누스와 같은 3D 프린터가 더 필요했다.

“제가 가서 모셔오겠습니다.”

통보에 가까운 뉘앙스.

“안 돼!”

“이유가 뭡니까?”

“나쁜 호세가 되고 싶어? 준 회장님이 직접 내려주신 미션을 아직 완수하지 못했잖아.”

“미션이라 함은 ···. 환경복구?”

“준 회장님에게 페루정부 국채를 사자고 했지? 그런 솔루션은 쓰레기야! 굿데이에겐 굿데이만의 스타일이 있어.”

“가르쳐 주십시오.”

“준 회장님은 네게 없는 것을 달라고 하실 분이 아니야.”

“저는 머리가 나빠서 그런 말, 이해 못 합니다.”

“이해 필요 없어. 그냥 아는 거야. 기억해! 준 회장님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라 하셨어.”

에바는 대화 내내 업무용 에어스크린에 집중했다.

한나의 게스톤 스코프 관련 내용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게스톤 스코프는 구조 자기장 방식의 헬스케어 장비를 개발했다.

팔찌와 시계를 겸한 헬스 액세서리는 혈당과 체내 호르몬 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했다.

굉장한 물건이었다.

에바는 한나와 보냈던 밤을 떠올렸다.

한나는 에바를 섬세하게 섬겼고, 많이 아쉬워했다.

구조 자기장 영상 장치는 게스톤 스코프가 먼저 개발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를 낸 똑똑한 연구원을 내치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날 밤, 정치적인 연구팀장과 파트장을 해고하겠다고 별렀다.

게스톤 스코프에서 만든 제품을 보니, 새 술을 새 포대에 담은 게 분명했다.

호세는 에바 곁을 떠나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그의 상식으로 판단하건대, 준이 리미트리스 해도 악마의 밀림에서 살아남는 건 어려워 보였고 ···. 맘에 걸리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왜 아직 안 가고 있어?”

“에바 님 ···. 복구 방법을 알아보다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도살꾼’이라고 ···.”

“나 바쁜 거 안 보여? 이상한 소문은 로켈에게 넘겨. 로켈이 정보 담당이잖아.”

“그렇긴 한데 ···. 요즘 로켈은 어딘지 모르게 멍한 거 같습니다.”

“신경 쓰지 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고 보면 ···.”

에바는 작업을 멈추고, 호세에게 눈길을 돌렸다.

호세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세상 여자들은 돌고 돌아서 다 나에게 오는 거 같아? 안 그래?”

*

“도살꾼?”

로켈은 눈동자를 굴렸다.

도살꾼은 준을 죽이려는 청부살인 그룹이었다.

페루는 철, 금, 은, 구리를 캐내는 광산업이 발달한 곳이었고, 요빅으로 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폭력배와 범죄자 출신이었고, 그들 방식으로 앙갚음하려 했다.

“그런 소문은 듣긴 했지만, 페루 정보국 울타리는 튼튼해. 걱정할 거 없어.”

“준 회장님이 이곳에 있다면 그렇겠지만, 준 회장님은 악마의 밀림 속으로 ···.”

“나들이 가셨지. 악마의 밀림이 피 끓는 젊음에 딱 맞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

로켈은 준의 능력을 신봉했다.

준은 강화 능력을 이식받지 않고도, 트리탄을 묻었다.

악몽의 암살자 랜달도 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도살꾼들은 달라요. 누네즈 장관님의 남편을 납치하고, 살해한 놈들입니다. 전문 킬러라고요. 놈들에게 아마존은 홈그라운드입니다. 준 회장님은 악어 입속으로 들어가신 꼴입니다.”

“호세 ···. 준짱의 말씀을 잊었어? 트라우마를 극복해.”

“당신의 판단이 정확하길 바랍니다만, 만일 하나 ···.”

“호세 ···. 준짱이 준 문제나 풀어라.”

“환경복구 ···. 당신도 알고 있었나요?”

“그럼. 모두 알고 있지. 위험한 건 준짱이 아니라, 너야. 문제 못 풀면 너 잘릴지도 몰라.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우리는 좋은 호세를 잃고 싶지 않아. 내 생각에는 준짱이 너에게 시간을 주려고 일부러 나간 거 같아.”

“그게 무슨 ···.”

“굿데이 직원은 준짱의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했어. 세이턴 살릴 때, 생각해봐. 연구소 하나를 5분 만에 발라냈잖아. 준짱이 오기 전에 문제를 풀어놔야 할 거야. 못 풀면 ···. 뭐 이력서에 굿데이 근무 경력이 있으면, 어디든 취직되겠지.”

로켈은 충격받은 호세를 놔두고 슬며시 자릴 떴다.

호세는 악마의 밀림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준 회장에겐 멍청한 게 용납이 안 되는구나!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

트라우마를 극복해라 ···.

호세는 카이를 찾았다.

카이라면 준의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환경 복구요? 꼭 해야 하나요? 아시잖아요. 제가 살던 곳은 쓰레기장이었는데, 살만했어요. 왜 힘들게 복구해요? 그냥 냅두지?”

“카이. 내가 너처럼, 준 회장에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

“백 프로 잘립니다.”

*

이야는 전신 슈트를 골랐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슈트였다.

악마의 밀림은 악명 높은 말파리 서식지였다.

말파리는 종류는 여럿이었지만, 모두 동물의 피부를 뚫고 알을 낳았다.

알은 구더기가 되어 피부밑의 살과 뼈를 갉아 먹는다.

큰 말파리 애벌레는 손가락만 했고, 작은 말파리 애벌레는 머리카락처럼 가늘었다.

구더기가 뇌와 척수를 갉아 먹어서 멀쩡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일도 흔했다.

살아 있는 구더기 밥이 되지 않으려면, 전신 슈트는 필수였다.

‘준은 왜 이런 곳에 온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굿데이의 반응이었다.

호세를 뺀, 에바, 로켈, 카이는 준을 걱정하지 않았다.

준에 대한 충성도만큼이나 믿음 또한 강했다.

준의 이뤄낸 업적을 보면 이해되지만, 이곳은 악마의 밀림이었다.

에볼라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가득하고, 전설의 악마 잉카원숭이의 본거지였다.

‘뭐 어쨌든 좋아.’

이야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준은 악마의 밀림에서 길을 잃고, 다치고, 구조를 기다릴 것이다.

준을 구하는 것은 그녀의 인생을 레벨업하고, 페루를 구하는 것이었다.

아마존에서 준은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남자의 깨달음은 언제나 여자로 연결된다.

하루 한번 꼴로 소나기가 내렸다.

소나기는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이야는 그녀의 육감에 따라 움직였다.

발 빠르게 움직이던 이야가 멈췄다.

더운 날씨였지만,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추적당하고 있었다.

상대는 페루의 범죄조직이 직접 개발한 암살 슈트를 입고 있었다.

따돌려야 한다!

이야는 숨 가쁘게 몸을 날렸지만, 플라즈마 추진 부츠로 무장한 암살자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무를 등지고 단검을 들었다.

짙은 초록 어둠 저편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준이 있는 곳만 말하면, 그냥 보내주겠다.”

역시 놈들의 목적은 준이었다.

도살꾼들.

이야는 도살꾼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도살꾼들의 수법을 잘 알았다.

그들은 증인을 남기지 않는다.

“나는 페루 정보부 소속이야! 날 건들면 ···. 크윽!”

한 뼘 길이의 화살이 날아와 그녀 어깨에 박혔다.

통증 강화제가 코팅된 화살은 살상용이 아니라, 고문용이었다.

“준이 있는 곳을 말해라.”

“지옥이나 가라!”

휙-

다른 화살이 그녀 허벅지에 박혔다.

그녀의 몸은 화살에 못 박혀 등진 나무에 고정되었다.

“준은 죽었어!”

그녀가 소리쳤다.

되는대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도살꾼들은 아마존 최고의 추적자들이었다.

그들이 준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 아마존이 준을 삼켰기 때문이리라.

이야는 그녀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녀도 곧 준을 따라갈 것이었다.

‘남자 꼬시는 게 이렇게 위험한 일이었구나.’

몸이 떨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초록 어둠 속에서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이 배낭에서 곤충 상자를 열었다.

살을 파먹는 바퀴벌레가 가득 있었다.

“이 벌레는 마조히즘이야. 죽기 전에 모든 고통을 맛보게 해주지. 정말 영특해서, 먹잇감을 오랫동안 살려두며 잡아먹어. 맘에 들 거야.”

그는 상자 뚜껑을 열고, 이야에게 던졌다.

벌레가 삽시간에 그녀 몸으로 쏟아졌다.

전신 슈트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벌레들은 피 냄새를 맡고 화살이 박힌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이야는 쥐고 있던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고통스럽게 죽을 바엔, 차라리 ···.

그러나 도살꾼이 던진 채찍이 그녀의 손에서 단검을 떨어트렸다.

“준을 찾아 이곳에서 개고생했는데, 우리를 위해서라도 쉽게 죽으면 안 되지.”

그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이야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살아 있는 채로 벌레에게 파먹히다니!

“옛날 생각나네.”

이야의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준이었다.

준은 박쥐처럼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잉카원숭이의 털처럼, 준의 피부는 주변과 같은 보호색을 띠고 있었다.

이야와 도살꾼들은 준이 최첨단 컨실슈트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왕따여서 괴롭힘 받는 느낌 알지. 기분 더럽지?”

준의 말투가 너무 평이해서, 이야는 환상을 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도살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야가 거짓말했다는 사실에 화를 냈다.

“감히 우리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다니!”

도살꾼 한 명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그녀의 아랫배를 향했다.

준은 붙어 있던 나무줄기에서 세차게 떨어지며, 화살을 낚아채고, 화살을 쏜 도살꾼의 얼굴에 박아 넣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도살꾼들은 본능적으로 준과 거리를 벌리며,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지만, 자세를 잡기도 전에 준에게 당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빼앗겼고, 다시 돌려받았다.

그들의 무기는 그들의 가슴과 배 그리고 등에 단단하게 꽂혔다.

죽지는 않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이야에게 붙은 벌레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상처를 통해, 이야 몸으로 파고들었다.

준은 이야의 배낭에서 심폐소생기 꺼내, 그녀 몸에 갖다 댔다.

격렬한 전기 충격이 그녀를 흔들었다.

전기 쇼크 먹은 벌레들은 그녀 몸에서 떨어졌다.

“지난번에 가져 다 준 아이스 코코넛 잘 마셨어.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당신을 찾으러 왔어요.”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 반대였다.

그녀의 시나리오는 그녀가 준을 구하고, 준은 감격해 하는 것이었다.

“아! 미안. 내가 그때 자이언트 수달의 쓸개를 먹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여기 ···.”

준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냈다.

“팁을 줬어야 했는데 ···.”

준은 그녀에게 팁을 주면서, 그녀가 팁에 대한 집념이 정말 대단하다고 여겼다.

그녀는 화살 때문에 온몸이 아팠지만, 다행히 준의 전기 충격으로 통증이 완화되어 있었다.

이야는 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헛웃음이 나왔다.

“리조트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까 내가 죽었다고 말하던데 ···. 왜 그런 거야?”

“저 같은 꼴을 당하느니, 죽는 게 낫지 않아요?”

“그렇게 나약한 생각을 품고 있으니깐, 저런 놈들에게 당하는 거야.”

준이 가리킨 곳에는 도살꾼들이 꼼짝없이 벌레 밥이 되고 있었다.

그들은 끔찍한 신음을 냈다.

벌레들은 이야를 포기했지만, 새로운 먹잇감에 만족했다.

“준! 우리를 죽여다오!”

눈알을 파먹히는 도살꾼이 소리쳤다.

“그렇게 해주겠다.”

아마존의 기운을 듬뿍 받은 준은 자비로웠다.

도살꾼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작은 위안을 느꼈다.

그들은 지금껏 죽여왔던 희생자들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죽을 수 있었다.

“한 달 후에 와서도 살아 있으면, 그때에는 내 손으로 죽여주겠다.”

이야와 함께 리조트로 향하는 준의 귓가에 도살꾼들의 비명이 들렸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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