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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 준-67화 (66/141)

< 파라엔진-17 >

왕따 당하던 초등학교 시절, 준은 노숙자로 살 결심을 했다.

아이큐 75, 감정결핍, 이해력 부족, 허약한 체력 ···.

자연스럽게 노숙자로 이어질 운명이었다.

어린 준은 굶는 연습도 하고 쓰레기통도 뒤져봤다.

준에겐 노숙자의 삶도 커다란 도전 과제였다.

노숙자가 된다 해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리얼타임 노숙자로 지낸 적도 있었다.

스티브 교수에게 찍혀서, 체계적이고도 조직적인 놀림감이 되었을 때, 일주일 정도 길거리에서 지냈다.

언제든 돌아갈 강의실과 집이 있었지만, 그는 정처 없이 공원을 떠돌며 밤하늘을 지붕 삼았다.

파루시아로 직접 돈 벌려 했던 것은 ···.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나를 놀리고 조롱해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

준이 준을 살렸다.

기뻤다.

노숙자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

준은 아마존에서 홀로 지내며, 노숙자가 얼마나 편안한 삶인지 깜짝 놀랐다.

아마존에는 쓰레기통도 없었고, 공원 벤치처럼 안전하게 쉴 곳도 없었다.

혼자였다.

작은 방심, 사소한 실수는 곧 죽음이었다.

독사, 독충, 독초, 독버섯,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준을 노렸다.

준은 곧바로 적응했다.

그의 세포는 아마존화 되었다.

면역시스템은 기생충과 세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위험감지 능력이 아마존 전체로 확장되었다.

준의 몸에서는 모기 쫓는 체취가 풍겼다.

황열병과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도 준에게 달라붙지 않았다.

준의 피부는 악어가죽만큼이나 질겨졌다. 병정개미가 깨물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가장 위험한 것은 퓨마도 아나콘다도 아니었다.

잉카원숭이.

잉카원숭이를 직접 본 사람은 없었지만, 아마존의 주인으로 받들어졌다.

잉카원숭이의 심장이 황금이라는 소문 때문에, 수많은 스페인 탐험대와 군대가 사냥에 나섰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준은 잉카원숭이의 존재를 분명하게 느꼈다.

돌연변이인지 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놈은 강했다.

멀지 않은 곳에 놈이 있다.

준은 이미 아마존에 적응했다.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잉카원숭이의 존재는 흥밋거리로 남겨두면 된다.

잉카원숭이도 준을 관찰할 뿐,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준은 적개심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잉카원숭이의 번식방법이나 생존방식 그밖에 모든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잉카원숭이는 인간에게 관찰당할 만큼 허술한 존재가 아니었다.

잉카원숭이는 침팬지와 오랑우탄과 다른 새로운 종일까? 아니면 돌연변이 고릴라?

준은 잉카원숭이가 있었던 곳에 도착했다.

숲의 지붕 캐노피에 나뭇가지로 만든 잠자리가 있었다.

침팬지 둥지와 비슷했지만, 훨씬 정교했다.

침팬지 둥지는 듬성듬성해서 비를 막지 못한다.

침팬지들은 비가 오면 몸을 웅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잉카원숭이의 둥지는 촘촘했고, 오동나무 나뭇잎으로 틈새를 가렸다.

놈의 작품은 비만 막는 게 아니라, 바람까지 막았다.

별거 아닌 차이였지만, 침팬지들에겐 최소 오백 년이 지나야 가능할 둥지였다.

‘보통 침팬지보다 오백 년을 앞선 침팬지라 ···. 미래에서 온 녀석인가?’

준은 둥지의 냄새를 맡았다.

모기와 벌레를 쫓는 방향족 화합물 냄새가 났다.

식물이 내뿜는 향이 아니었다.

짐승의 것이었다.

동물은 호흡하면서 이산화탄소와 기타 노폐물을 내뿜고, 모기들이 이러한 것들에 이끌린다.

몸냄새로 모기를 쫓는 동물은 없다.

모기 쫓는 몸냄새는 ···. 준의 세포가 아마존화하면서, 자연계에 없는 새로운 방식을 획득한 것이었다.

잉카원숭이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준은 둥지를 살폈다.

준이 찾아낸 둥지는 잉카원숭이가 잠깐 머물려고 만든 일회용이었다.

육각형처럼 실용적인 구조.

해탈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쁨과 두려움, 분노와 슬픔이 생략되어 있었다.

준은 잉카원숭이의 정체를 바로 알아냈다.

감정결핍 증후군 침팬지였다.

모든 감정결핍 증후군 침팬지가 잉카원숭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노벨상을 받는 게 아닌 것처럼, 감정결핍 증후군 침팬지 중에서도 깨달음에 이르른 존재만이 잉카원숭이가 된다.

아마존의 주인, 잉카원숭이는 ···. 준과 같은 감정결핍 증후군의 특이적 존재였다.

흔적을 살펴보니 녀석은 무리를 이끌지 않고, 혼자 지냈다.

동쪽에서 숨 가쁜 기척을 느껴졌다.

암컷 침팬지였다.

동물의 세계는 다 비슷한 걸까?

잉카원숭이에게 이끌린 암컷이 여럿 있었다.

암컷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잉카원숭이를 찾아온 것이었다.

모두 발정기의 소중한 암컷들이었다.

임신 가능한 난자를 만드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암컷들은 가능하면 좋은 정자를 받아들이려 했고, 잉카원숭이보다 뛰어난 수컷은 없었다.

애석하게도 잉카원숭이는 짝짓기에 무관심했다.

놈을 따라다니는 암컷들은 침팬지 세계에서 영화배우와 모델급 수준이었는데, 잉카원숭이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준은 데자뷔를 느꼈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캐노피 아랫부분은 어두웠다.

준은 잉카원숭이의 아침 식사를 찾아냈다.

길이 9m가 넘는 아나콘다였다.

입을 벌리고 죽은 아나콘다는 웃는 광대처럼 보였다.

흔적을 토대로 상황을 재현했다.

아나콘다는 카카오를 따 먹는 잉카원숭이를 발견하고, 덮쳤다.

침팬지는 아나콘다의 주된 먹잇감이었다.

잉카원숭이의 능력이라면, 쉽게 피할 수도 있었지만, 아나콘다를 죽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준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살점 뜯긴 아나콘다는 웃는 데스마스크로 이렇게 전했다. - ‘여기까지. 더는 쫓지 말 것.’

준은 오래간만에 흥분을 맛봤다.

폭포 꼭대기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서 잉카원숭이를 만났다.

수천 년을 살아온 아카시아 나무줄기는 뿌리처럼 울퉁불퉁했다.

처음에는 잉카원숭이가 보이지 않았다.

잉카원숭이는 컨실슈트처럼 빛을 산란했다.

숨은그림처럼 보이지 않던 잉카원숭이가 모습을 드러낼 때, 준의 입꼬리 미소도 함께했다.

준에게 보이는 잉카원숭이의 털은 황금색이었다.

잉카원숭이는 경고의 눈빛을 날렸다.

‘꺼져라.’

인간은 침팬지의 상대가 안 된다.

침팬지와 인간이 동등하게 몸싸움하면 인간은 트럭이 치인 것처럼 처참해진다.

최소한 보통 침팬지와 보통 인간의 관계는 그랬다.

“너를 연습문제 23번으로 명한다.”

준은 덤비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며칠 아마존에서 지내면서, 필요한 생존기술을 마스터 했다.

그의 몸이 아마존화되었고, 그의 정신과 감각도 그러했다.

생존기술과 아마존 지수는 잉카원숭이보다 준이 훨씬 높았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전투력이었다.

수컷의 몹쓸 승부근성.

잉카원숭이는 준을 얕잡아봤다.

준이 아나콘다의 뺨을 때리고, 재규어에게 꿀밤을 먹인 것을 안다.

준의 레벨은 아마존에서만 통한다.

잉카원숭이는 아마존을 초월했다.

잉카원숭이는 준이 귀찮았다.

종일 추적당하는 것도 싫었고, 준이 내뿜는 감각도 기분 나빴다.

그냥 두면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 기어이 찾아오다니.

‘죽어라!’

잉카원숭이는 돌개바람처럼 준을 휘저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준의 예상을 저 멀리 뛰어넘는 스피드와 정확도였다.

“시야가 좁구나.”

준의 예상은 뛰어넘었지만, 준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준은 베게 배듯 편안하게 잉카원숭이 등에 기대었다.

놈의 몸에서는 소나무 향이 났다.

그리고 ···.

“네 엉덩이도 빨갛구나.”

원숭이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잉카원숭이는 더 빠르고 더 세차고 더 독하게, 공격했다.

놈은 독개구리처럼 온몸에서 독가스까지 내뿜었다.

놈의 털은 바늘처럼 딱딱해졌고,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예상 밖의 공격 방식이었다.

연습문제 23번은 다채로웠다.

풍부한 악랄함과 숨겨진 포악함이 드러나고, 잔인함이 넘쳐 흘렀다.

잉카원숭이의 압정 같은 털이 준의 몸을 들쑤셨고, 금강석 같은 송곳니가 준의 목에 박혔다.

벌새의 날갯짓 같은 손등 공격이 준의 등과 허벅지에 마구 꽂혔다.

“마사지 기계보다 낫다.”

준은 마사지 기계의 스위치를 끄듯이 잉카원숭이의 이마를 짚었다.

고밀도 지식 생태계의 깊고 웅장한 진동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발광했던 잉카원숭이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에는 고귀한 암컷 침팬지가 곁에 있었다.

암컷은 잉카원숭이의 흐트러진 털을 골랐다.

사랑이 수컷의 패배를 위로했다.

잉카원숭이는 정성스럽게 DNA를 내주었고, 암컷은 소중하게 받아주었다.

잉카원숭이는 자신이 침팬지가 아니라고 느꼈었다.

홀로 지내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침팬지를 뛰어넘었다는, 존재 인식.

그러나 ···. 준이 깨우쳐주었다.

준 밑의 침팬지는 잉카든 피카든 파카든 모두 침팬지라는 것을.

*

준이 사라졌다.

준은 원주민들도 들어가지 않는 악마의 밀림으로 갔다.

미스 페루 작전 엘리트, 이야는 배낭을 챙겼다.

그녀에겐 좋은 기회였다.

준은 밀림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준을 구해준다면,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야는 생존 도구와 함께 ‘처녀 증명서’도 챙겼다.

호세와 스트레스를 푸는 사이였지만, 아무래도 남자는 처녀를 선호한다.

페루에서는 수많은 남자를 거치고 아이를 낳아도 처녀 증명서가 있으면, 처녀로 인정받았다.

그녀가 밀림 부츠를 신을 때, 메시지가 반짝였다.

그녀의 동료가 보낸 것이었다.

‘에바가 너 나오래.’

에바라고? 이야는 침을 삼켰다.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었다. 살인기술을 익힌, 페루 첩보국의 흑장미였다. 그런데도 에바가 무서웠다.

그냥 무시할까? - 이런 생각을 할 때,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 나오면 죽음. 5초 이내로 식당으로 뛰어올 것.’

식당에는 모든 엘리트가 모여 있었다.

묘한 풍경이었다. 미스 페루 작전의 모든 여성 요원들이 한자리에 있다니.

더군다나 이 자리를 만든 것은 정보국장 그레고리가 아닌, 제삼자에 불과한 에바였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엘리트 중 한 명이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그녀들은 모두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같은 마음이었다.

에바가 떨리도록 무서웠다.

“너희가 일하는 거 뭐라고 안 해. 하지만 ···.”

에바가 날카롭게 쏘아보자, 엘리트의 얼굴에서 웃음이 증발했다.

“카이는 꼬시지 말자. 걔는 아직 고등학생이야.”

“죄송해요. 언니. 제가 나쁜 년이에요.”

엘리트 중 한 명이 양손을 들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에바는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솔직히 죄를 고백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 앞으로 잘해라.”

“네. 언니 고마워요.”

“그리고 ···. 너희 그러는 거 아니야.”

“이번엔 우리가 또 뭘 잘못했나요?”

“로켈은 왜 안 건들어? 걔는 남자 아니야? 로켈 직급이 호세보다 높아. 고급 정보

도 훨씬 많이 알고 ···. 그런데 아무도 관심 없지. 왜 그러는 거야? 키 작다고 사람 무시하면 안 돼.”

“죄송해요. 오늘부터 당장 작업 들어갈게요.”

“믿는다.”

“네. 언니 걱정 마세요.”

엘리트는 약속을 지켰다.

로켈도 약속을 지켰다.

그는 약속대로 그녀를 .... 에바에게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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