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65화 (64/141)

< 파라엔진-15 >

호세는 여자를 알았다.

그녀의 이름은 이야.

페루 국가 정보원에서 준을 낚겠다고 보낸, 엘리트였다.

리조트에는 그런 엘리트들이 수두룩했다.

여자도 호세를 알았다. 굿데이 소속 에어퓨마의 리더. 한때 아쿠타미 부대를 통솔했던 남자다.

둘은 서로의 몸을 격하게 탐했다.

성호르몬을 동반한 자연스러운 화학작용이었다.

격렬한 쾌락작용이 끝나고 ···.

이야는 호세의 강한 팔을 베고 천정을 보며, 머리맡에 둔 코카 잎을 씹었다.

그녀의 몸은 아직도 떨렸다.

준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호세를 통해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준은 어떤 사람이죠?”

앞으로 호세가 익숙해질 질문이었다.

호세를 거쳐 갈 여자들은 태초의 본능처럼 준을 궁금해할 것이다. 에바의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

호세는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준이 어떤 사람이냐고? 호세의 입가에는 밀크 크림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늘 궁금해.”

“굿데이에서 주로 무슨 일을 해요?”

“노가다.”

“농담하지 마요. 에어퓨마의 대장이잖아요?”

“그래 봤자 ···. 골목대장이지. 세상은 넓어.”

“겸손한 남자는 재미없어요. 하는 짓이 시시하거든요.”

“시시하다고? 꽤 단단하고 웅장하게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 아니었나?”

“단단하고 웅장했어요. 참 잘했어요. 하지만 ···. 겸손한 건 싫어요.”

“겸손한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야. 작전 수행 중에 부리는 허세는 죽음이거든. 섹스도 그렇지 않아? 허세를 깔고 시작하면, 마무리가 허술해지잖아. 그런 걸 뭐라고 하더라? 돌파작전 실패.”

“섹스를 군사작전에 비유하다니. 남자들은 원래 그래요?”

“아주 조금은 ···. 포격 교본에는 ···. 여자 젖꼭지나 배꼽 좌표 구하는 문제가 나와. 육군 장교는 여자의 그곳을 포격하는 곡사포 각도도 계산할 줄 알아야 하고 ···. 여자를 다루듯이 포탄을 옮기라는 구절도 있고 ···.”

호세는 이야가 좋아할 거로 생각하고 주야장천 떠들었지만, 그녀는 군대 이야기에 흥미가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준이었다.

“준은 어떤 여자를 좋아해요?”

“몰라.”

“준이랑 에바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데?”

“모르겠어.”

역시, 시시한 남자는 이런 게 문제다.

육체적으로 막힌 게 없이 뻥뻥 뚫렸어도, 간단한 대화가 막힌다.

“아는 게 뭐예요?”

“그가 내 생명을 구했다는 거. 누네즈 장관님의 딸, 카멧을 구했다는 거. 나에게 일자리를 주고, 삶의 목표를 심어주었다는 거. 그리고 그가 지금 페루에 있다는 거. 이야 널 도와주고 싶어. 네가 준 앞에서 옷을 벗고 싶다면, 그렇게 해. 너의 몸은 정말 아름답고 탐스러워. 너는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 섹스를 하는데 ···. 그게 아주 기가 막혀! 하지만 ···. 그 모든 것이 준을 위한 일이어야 해. 준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

“준은 운이 좋은 남자군요. 당신 같은 부하가 있다니 ···.”

“운이 좋은 건 나야. 나야말로 준을 섬길 기회를 얻었어. 그건 엄청난 행운이야.”

“호세.”

이야는 호세 위에 앉았다.

장난스러운 표정이었다.

“당신을 위해 한 번 더 해요!

*

페루 국가 정보국장 그레고리는 모든 업무를 부국장에게 맡기고, 준에게 집중했다.

페루 인근 국가들 - 브라질,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 볼리비아가 준과 접촉하려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준을 그들 국가로 모시려 했다.

준이 페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페루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주식 시장 상승, 국채와 채권 금리 하락, 행복지수도 오르고 국가 경쟁력 점수도 높아졌다.

준이 있는 곳은 페루의 국가 기밀로 분류되었고, 3등급 보안이 발동했다. 3등급 보안은 대통령 여름휴가에 적용되는 등급이었다.

“샤나이슈카 리조트로 관광 차량 두 대가 가고 있습니다.”

“차단해라.”

“아르헨티나 외교특권을 들먹이는데요.”

“조져라.”

“네.”

그레고리는 알파카 털실로 만든 조끼와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의 복장은 공작원보다는 어리숙한 농촌 아저씨 같았다.

현장 작전 지휘는 이십 년 만이었지만, 그의 감각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그는 리조트에서 조금 떨어진 농가에 작전본부를 세웠다.

준의 체온, 시선, 이동 경로, 취침 시간, 옷, 샤워할 때 사용하는 비누와 남긴 음식까지 분석되었다.

준은 그레고리의 예상보다 오래 머물고 있었다.

그레고리는 ‘제인 쇼크’ 때문에 준이 볼일만 보고 떠날 거로 예상했다.

그러나 준은 일주일 넘게 페루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덕분에 페루 금융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국채가 낮은 금리에 팔렸고, 주식 시장에 달러가 들어왔다.

호세와 그의 부하들이 폐광지역 복구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그 지역 땅값이 들썩거렸다.

굿데이는 페루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해내지 못한 것을, 놀고먹으면서 해냈다.

준이 페루를 좋아하는 걸까?

페루 언론과 정치인들은 굿데이가 페루를 사랑한다. 떠들어댔지만, 그레고리는 냉정했다.

준은 감정결핍 증후군이었다. 페루를 사랑한다는 건, 말도 안 되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휴가를 통해서, 굿데이의 가치를 높일 속셈일지도 모른다.

정보에 의하면, 루이스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굿데이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미스 페루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부하가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설마 ···.

그레고리도 덩달아 눈동자가 커졌다.

캐릭터 분석에 의하면 준은 책임지는 남자였다.

준에게 섹스는 갈증 해소 따위가 아니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개 한 마리 살리려고 우주정거장 연구소를 통째로 사들였다.

호세를 더 좋은 호세로 되살렸다는 풍문도 있었다.

국운을 건, 미스 페루 작전이 성공했다니!

그는 페루 축구팀이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것보다 더 기뻤다.

“엘리트가 해냈구나! 누구냐! 나라를 구한 여자가!”

“전원 모두입니다.”

“그룹 섹스를?”

“그게 아니라 ···. 준은 터치하지 못했지만,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를 낚았다고 합니다. 고급 정보도 얻었습니다. 호세가 버려진 산업지대 복원하는 방법으로 환경보호기금 국채 매입을 제안했는데, 준이 거절했답니다.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는 다른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콘도르를 잡으라고 보냈더니, 깃털만 주웠군.”

“국장님, 굿데이가 뭔가 하려는 거 같은데 ···. 에바에게도 여자를 보낼까요? 호세보다 더 고급진 정보가 나올 겁니다. 준을 노리고 엘리트를 아꼈지만 ···. 한 계단씩 오르는 기분으로 에바를 먼저 포섭하는 게 어떨까요?”

“에바를 포섭하려고 보냈던, 여자는 에바에게 포섭된다. 준이 에바를 굿데이 넘버투로 세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에바 터치는 가능하겠지만, 우리 요원만 빼앗긴다. 준에 대한 스케줄은 어때? 호세 쪽에서 나온 정보 없어?”

“호세가 준이 내준 문제를 풀기 전까지는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상식이겠지만 ···. 준은 상식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

그레고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CIA를 상대로 대등한 정보 게임을 했던 그였다.

일단 ···. 이번 선거에서 누네즈가 대통령이 되는 건 확실했다.

누네즈는 애도 낳고, 아이도 키우고, ‘아마존 어머니’다운 정치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아마존을 지키다가, 남편을 잃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페루 독립운동을 했던 가문의 후손이었다.

아마존 지하자원은 요빅의 등장으로 가치를 잃었다.

드디어 환경보호주의자가 대통령이 되어도 아쉬울 게 없는 세상이 된 것이었다.

그레고리는 인생경험을 총동원해서, 준의 머릿속을 읽으려 했다.

준의 꿍꿍이는 뭘까?

시퍼렇게 젊은 놈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도, 여자관계가 깨끗하다니. 그게 가능한가? 보통 남자라면 알면서도 여자에게 당한다.

정밀사진 분석을 보면 발기불능도 아니었고, 동영상 분석을 보면, 게이도 아니었다.

음식 정보 분석 결과가 올라왔다.

꾸이를 남김없이?

애벌레 구이와 전갈 튀김도 먹고?

홍학 혓바닥 한 접시를 다 비워?

아나콘다 토막 구이도 마다치 않고?

누네즈 장관의 카카오 치차를 좋아한다?

그레고리는 누네즈 카카오 치차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준은 킹스덤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독서 하고, 산책하며, 몰두의 시간을 보냈지만, 오직 식사만큼은 탐험정신을 발휘했다.

“준이 엑스트락도 마셨나?”

엑스트락은 개구리를 갈아 만든 주스였다.

“아침마다 마신답니다.”

“역시 ···.”

그레고리의 눈이 밝아졌다.

준은 처음부터 쿠스코 카카오를 먹겠다고 페루에 왔었다.

“내가 직접 준을 만나겠다.”

“네?”

부하는 깜짝 놀랐다.

그레고리는 아주 확실한 경우가 아니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레고리가 준을 만난다면, 아주 확실한 카드가 있다는 뜻이었다.

“타킬레를 준비해라.”

“네?”

타킬레는 매우 오묘한 술이었다.

잉카시대의 옥수수 발효 과학 최절정에 이르는 술이었지만, 구하기가 어려웠다.

타킬레는 ···. 마늘 크기의 삶은 옥수수를 처녀의 질에 일주일간 넣어두고, 발효해서 만든 술이었다.

준은 ‘평면 기하학의 탐구문제들’ 라는 책에 빠져 있었다.

준에게는 단어카드처럼 쉬운 책이었지만, 여백에 적혀 있는 낙서가 흥미로웠다.

흥미는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낙서를 한 사람이 누굴까?’

그 사람은 그가 휘갈긴 공식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그것이 의학계를 뒤흔들 마법이라는 것을?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난 천재’가 분명했다.

세이턴과 호세를 되살리면서, 생물학과 의학 지식을 탐독했지만, 엄청난 천재에는 미치지 못했다.

엄청난 천재가 세이턴을 되살렸다면, 세이턴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졌을 것이다.

엄청난 천재가 호세를 되살렸다면, 호세는 준이 내준 문제를 단번에 풀었을 것이다.

준은 굿데이로 ‘엄청난 천재’를 데려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안 봐도 환히 보였다.

엄청난 천재는 보통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거나, 천재성을 숨기고 보통사람 흉내를 내고 있을 것이다.

“책보는 모습이 인상적이군요.”

알록달록한 알파카 털실로 짠 조끼를 입은 남자가 앞에 있었다. 남자는 빨간색 모자를 썼는데, 이곳 남자들의 흔한 모습이었다.

“페루 국가 정보원 국장 그레고리입니다.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방해되었나요?”

“엄청.”

“아! 죄송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외지인들의 출입도 막고 있죠.”

그레고리는 진실하게 말했지만, 미스 페루들을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빨간색 액체가 든 병을 내놓았다.

전설의 알코올음료 ···. 타킬레였다.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레고리는 준의 표정에 집중했다.

무표정한 준의 얼굴에 작은 빛이 반짝였다.

누네즈 카카오 치차의 후유증은 페루 혐오음식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게 했다.

기본적으로 찌고, 튀기고, 굽는 건 괜찮았다.

그것이 개구리든, 달팽이든, 애벌레든 옥수수든 ···. 인간은 잡식동물이었고, 자연적인 재료를 자연적인 방법으로 요리하는 건, 받아들이기로 했다.

씹어서 뱉은 카카오 과육으로 카카오 치차를 만드는 건 ···. 누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룩과 효모를 다룰 수 있다면, ‘씹어 뱉은 카카오 과육’ 과정은 위생적으로 건너뛸 수 있다.

준이 카카오 치차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

“타킬레군요.”

준의 목소리에는 운 나쁘게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 체념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레고리는 눈치채지 못했다.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레고리는 기쁜 맘으로 건네주고, 자리를 떴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준은 뉴런이 방전되는 것을 느꼈다.

버리자니 아깝고 ···. 마시자니 못할 짓이었다.

타킬레 한 병을 만들려면, 백 명이 넘는 처녀가 필요하다.

“이거 뭐야?”

에바는 그레고리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누가 준 거다.”

“뭔데?”

“술.”

“그런데 왜 심각하게 노려봐?”

“그게 ···.”

“독이 들었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에바는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병마개를 따고 한잔 마셨다.

“오!!!!!! 딱 내 입맛인데!”

그녀는 감탄했다.

“다 마셔.”

“정말? 준 회장님도 한잔해야지.”

준은 타킬레의 제조 비법을 밝혔다.

에바는 ···.

무척 기뻐하며 모두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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