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엔진-14 >
루이스 상원의원은 독점금지법으로 굿데이를 쪼개려 했다.
그럴듯한 발상이었다.
굿데이가 금융거래로 버는 돈은 유진 악마라는 인공지능이 해냈고, 유진 악마는 굿데이가 독점하고 있다. 요빅도 그랬다.
루이스 상원의원의 말을 들으면 그럴 싸 했지만 ···. 실제로는 억지스러운 법 적용이었다.
독점금지법의 다른 이름은 공정거래법 ···. 담합과 ‘지배적 소유 구조’를 견제하는 법률이었다.
굿데이는 업체들과 짬짜미하지 않았고, 지배적 소유 구조를 꾀하지도 않았다.
인공지능 거래는 다른 곳에서도 널리 사용되었고, 유진 악마의 성능이 뛰어날 뿐이었다. 요빅의 설계와 원리도 공개했다. 한마디로 기술 판매에 적극적이었다.
굿데이는 유럽연합과 여러 기업에 요빅을 팔았고, 유럽연합은 사들인 요빅을 개량해서 보물섬으로 만들었다.
오만왕국에서도 요빅으로 바다에 유출된 석유를 거둬들였다.
요빅을 보유한 국가와 기업은 많았고, 앞으로 더 많아질 터였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와 여러 국가가 요빅을 운용하거나, 개발 중이었다 ···. 그들은 단순 개발이나 운용이 아니라, 사활을 걸었다.
입자 가속기를 이용한 입자농축은 농경시대를 뛰어넘어, 에너지와 물질 경작 시대를 열었다.
세계가 굿데이의 기술력에 감탄하고 환호할 때, 루이스 상원의원은 냉정을 유지했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기에, 화려한 과학기술에 시선을 빼앗기고, 정치의 중요성을 쉽게 잊는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현란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했다.
진리는 단순했다. -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보다 강하다. 정치는 경제에 우선한다.
열심히 일할수록 더 가난해진다면, 그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였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인간은 사막에서도 살아남는다.
정치논리로 법 적용이 결정되면 굿데이는 별수 없이 따라야 했다.
루이스는 굿데이의 지분을 다른 곳에 나눠주면, 더 많은 굿데이를 가질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의회는 루이스의 안건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더 많은 굿데이 ···. 매력적인 청사진이었다.
굿데이 하나는 요빅을 만들어냈다. 그런 굿데이가 두 개 있다면 ···.
선데이는 요빅과 닮은 야빅을 만들어냈다. 야빅은 필터형 해양 담수화 시설이었다.
기술력은 굿데이의 요빅에 미치지 못했지만, 좋은 선전 거리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루이스는 꼭 짚어서 선데이를 추천했다.
선데이의 외형은 굿데이를 능가하는 듯 보였고. 전쟁주식 회사 블랙스타와도 거래했었다.
요빅이 해적들에게 납치되고 파괴될 때, 선데이의 노하우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선데이의 야빅은 한 대도 피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회에서는 굿데이와 선데이를 하나로 묶는 방안과 서로의 지분을 교환하는 협정 따위가 검토되었다.
에바와 스탠리는 길고 긴 법정 싸움을 준비했다.
정치가 개입된 법리 해석 ···. 진흙탕 싸움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면,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에바와 스탠리도 어느 정도의 출혈은 각오했다.
그러나 준은 아주 간단하게 루이스 상원의원과 의회의 의지를 꺾었다.
페루로 놀러 간 것이었다.
자미에 대통령의 딸 제인이 꽃다발을 전해줄 때, 준만 놀란 게 아니었다. 의회도 화들짝 놀랐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은 준과 제인을 껴안은 에바의 사진.
일명, ‘준의 결심’으로 불리는 이 사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준이 이곳을 떠나 페루로 간다면 ···.’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루이스 상원의원은 입을 다물었다.
선데이에게 우호적이던 의원들도 침묵했다.
요빅 사냥을 계획한 랜달도 죽었다.
뉴스에서는 짝퉁데이가 핫이슈였다.
짝퉁데이는 무늬만 굿데이였고, 속을 들여다보면 부실 덩어리였다.
짝퉁은 가을 낙엽 지듯이 우수수 떨어졌다.
선데이는 투자금과 프로젝트 자금으로 유지되었다. 투자금이 끊기면, 폭삭 망하는 구조였다.
잔느는 영리하게 빠져나왔지만,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그녀에겐 아주 좋은 방패가 있었다.
모든 것을 랜달의 탓으로 돌렸다.
“랜달 회장님은 굿데이가 할 일을 대신했습니다. 그분에겐 꿈이 있으셨습니다. 굿데이와 함께 세상을 풍요롭고 ···.”
잔느의 눈물 - 그녀의 변명은 통했다.
그녀의 아버지 루이스가 충고했다.
“선데이의 파산은 너의 상처로 보여야 한다. 너는 희생자이고 피해자이어야 한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면, 기회는 언제든 있다.”
“네. 아버지.”
“그리고 ···. 굿데이는 보내줘라. 우리 상대가 아니다. 굿데이는 좁은 사무실에서 금융게임을 하던 벤처가 아니다. 에바에게 포섭된 의원들도 많아. 그들 중에서 차기 대통령이 나올 거다.”
“아버지는요?”
“나도 이제 ···. 포섭되어야지. 정치의 본질은 투쟁이 아니라, 협력이거든.”
“퀴블러 가문의 여자는 원한을 잊지 않아요. 가질 수 없으면 파괴할 거예요.”
“음 ···. 한 가지만 명심해라. 준의 파괴가 너의 성장이어야 한다. 원한이든, 저주든, 준을 밟고 올라서는 게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함께 추락하거나 파괴되는 건 퀴블러 가문 스타일이 아니다.”
“아버지, 준과 굿데이는 제가 가는 길에 있는 계단과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네가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
루이스 상원의원은 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잔느는 레이피어 단검처럼 예리하고 단단했다.
그녀는 얼간이 랜달을 선데이 회장으로 세웠다.
얼간이를 드리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준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냈다고 생각하세요? 랜달을 생각해봐요.”
“준이 랜달처럼 블랙마켓에서?”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겠어요?”
루이스는 다른 방법을 상상하려 했지만, 그 어떤 상상도 블랙마켓을 대신하지 못했다.
듣고보니 그러네.
*
준이 페루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준 회장님아 ···. 쿠스코 카카오 때문에 온 거 맞아?”
에바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굿데이를 둘러싼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있었다.
킹스덤 대학 합창부는 ‘돌아오라 굿데이여!’라는 노래를 불러댔고, ‘굿데이를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수필이 발표되었다.
굿데이를 소홀히 했던 정치인들과 학계도 굿데이 지원방안을 남발했다.
“맞다.”
준에게서는 짙은 초코릿 냄새가 났다.
그는 누네즈가 준 카카오 치차를 즐겨 마셨다.
카카오 치차는 누네즈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카카오 술이었다.
페루에 온 후, 준은 카카오 치차에 빠져 살았다.
뉴런 독서에 단련된 준의 뇌세포는 카카오 알코올에 강한 저항성을 보였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에바는 항상 조마조마했다.
준은 손바닥 체온으로 제인을 열었다. 그가 술기운이든 아니든 진심으로 여자를 상대한다면 ···.
에바는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준 회장님아 ···. 모든 게 우연의 일치라는 거지?”
“따지지 말자.”
“그런데 ···. 여기서 얼쩡거리던 여자들은 다 어디 갔지? 내가 올 때마다 숨어 있는 거 같아?”
“맞다. 그녀들은 ···. 꼭꼭 숨는다.”
“바로 이런 게 여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야. 같은 여자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데, 남자에게만 의존하고 지랄이야!”
에바는 팔짱 끼며 눈을 치켜떴다.
“세팅하겠습니다.”
웨이터가 음식을 깔았다. 평소에는 여자가 서빙을 했는데, 에바가 오면 남자로 바뀐다. 에바에게 어필하는 게 아니라, 에바에게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스타터는 따듯한 치즈에 고추 기름과 퀴노아 빵 조각을 띄운 수프였다.
미식가인 에바의 입맛에 딱이었다.
에바는 아쉬웠다.
‘옆에 여자 하나 끼고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메인 요리는 기니피그를 화덕에 구운 꾸이였다.
기니피그는 특유의 잡내 때문에 요리를 잘 못하면 맛을 버린다.
박하와 같은 향초를 속에 넣고 구운 꾸이는 원형 그대로였다.
기니피그 특유의 발톱과 앞니가 그대로 있었다.
에바는 머뭇거렸지만, 준은 망설임이 없었다.
싹싹 발라먹었다.
혀도 뽑아 먹고, 뇌도 빨아 먹었다. 심지어 잇몸도 ···.
에바의 눈에 준은 너무나 ···. 멋져 보였다.
‘우아! 저 남자는 별 이상한 짓을 해도 멋지구나!’
“에바, 감자요리로 바꿔줄까? 페루인 중에서도 꾸이를 혐오하는 사람이 많아. 억지로 먹을 필요 없다.”
“준 회장님은 왜 억지로 드세요?”
“억지로 먹은 거 아닌데?”
“ ···.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 거예요?”
“충분한 자료를 얻을 때까지.”
“어떤 자료죠?”
“우리에 대한 자료.”
“준 회장님. 눈높이 설명 부탁합니다. 뭐하시면 ···. 뇌파로 쏘셔도 됩니다.”
“뇌파는 무리야.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
“준 회장님도 술에 취하시는군요. 기니피그 잇몸을 먹을 던, 건 ···. 역시 술기운이었군요.”
“아닌 ···.”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 준은 선언했다.
“거절한다. 갓 구운 기니피그 잇몸은 맛있다!”
에바는 준이 정말로 무서운 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보통 남자였다면 실실 쪼개며 술기운이었노라, 둘러댔겠지만, 준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에바는 3초 동안 소름이 돋은 후에, 소름의 반작용처럼 갑자기 설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진실을 알게 될까?
그녀도 진리 탐구에 게으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준 회장아! 그만 처먹고 말해봐. 우리의 자료라는 게 뭐야?”
“우리가 이곳에 온 후로 국제정세가 변했다. 그동안 우리는 금융시장과 경제에만 치중된 플레이를 했다. 요빅이 사냥당한 것은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것 중에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
“언제쯤이면 그걸 알게 될까요?”
“에바.”
“네! 준 회장님!”
“네가 할 일이다.”
“아!”
에바가 식사를 마치고 떠나자, 호세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는 피로해 보였다.
뒷주머니에는 경제학 포켓북이 있었다.
“준 회장님. 구멍을 메울 방법을 알아왔습니다.”
그는 비장하게 말했다.
준이 페루에 온 첫날, ‘좋은 호세는 좋은 페루를 만든다.’라고 명했다.
그 말뜻은 요빅으로 망한 폐광산과 버려진 벌목지역을 복구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카카오 치차를 거하게 마셨던, 준은 ‘구멍을 메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호세 ···.”
“네. 준 회장님!”
“네. 부하들의 인기척이 사방에서 느껴진다.”
“그들도 이곳에 있습니다.”
“위치가 ···. 왜 룸이냐?”
“아 저 그게 ···.”
호세는 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호세의 가슴에는 여자 머리카락이 묻어 있었다.
준을 타겟팅 하는 여자들이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를 유혹한 것이었다.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는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깃털처럼 룸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냥. 넘어가자.”
“고맙습니다! 구멍을 메우는 방법으로 ···. 표현이 좀 그런데 바꾸겠습니다. 자연 복구에는 비용이 들어갑니다. 페루 정부에서 환경 기금으로 국채를 발행했습니다. 그 국채를 사주면 됩니다.”
“돈질?”
“그렇습니다. 모두 돈을 벌려고 벌인 짓입니다. 마무리도 돈으로 해야 합니다.”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군.”
준을 씁쓸했다.
호세는 완전히 헛짚고 있었다.
준과 굿데이가 돈을 벌려고 했다면, 요빅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호세는 준의 눈치를 살폈다. 에어퓨마의 리더이자, 더 좋은 호세가 된 그였지만, 준은 여전히 어려운 존재였다.
“우리 호세가 말한 것은 페루 정부의 해결방법이다.”
‘우리 호세?’ 준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호세는 감격했다.
“호세에겐 호세의 방법이 있고, 더 좋은 호세에겐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준이 말하고 있을 때, 천정에서 리드미컬한 진동이 울렸다.
굉장히 원색적인 리듬이었다.
“죄송합니다.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
“호세 ···. 오늘은 안 되겠다. 너도 빨리 끝내고 와라.”
“아셨습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준의 말대로 호세의 눈이 원초적 본능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준은 탁자 위의 카카오 치차를 마시려 했다.
잔이 비어 있었고, 병도 비어 있었다.
카카오 치차는 누네즈 가문의 비법에 따라 제조된 술이었다.
준은 리조트를 뒤로하고, 누네즈 집으로 갔다.
“카카오 치차를 벌써 다 마셨어?”
누네즈는 놀라워했다.
단맛만큼이나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준의 몸에서 짙은 초코릿 냄새가 나긴 했어도, 술 취한 기색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영웅은 술을 좋아한다더니! 이참에 내가 비법을 알려줄게.”
누네즈는 쿠스코 카카오를 반으로 잘라 과육을 씹다가 뱉었다.
“이렇게 뱉어서 발효하고, 끓이면 카카오 치차가 되는 거야. 삶은 옥수수와 퀴노아를 조금 넣고 ···. 준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 카카오 치차는 늙은 여자가 씹어서 뱉은 것을 최고 상품으로 쳐! 준 어디 아파? 아까보다 얼굴이 더 창백해졌어?”
그녀는 카카오 치차가 비상약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기억났다. 급한 대로 카카오 치차를 한잔 따라 건넸다.
준은 말없이 그동안 열심히 마셨던 카카오 치차가 든 잔을 바라보다가, 누네즈가 씹다 뱉은 카카오 과육 더미를 보았다.
“어여, 마셔!”
누네즈가 준의 입술에 잔을 갖다 댔다.
같은 맛, 다른 느낌.
그날 밤 술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