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62화 (61/141)

< 파라엔진-12 >

에바에겐 독특한 호기심이 있었다.

그 호기심은 그녀를 에바답게 했다.

제인에게 꽃다발을 받았을 때, 그녀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 폭탄은 어떤 맛일까?

몹쓸 호기심이었지만, 살다 보면 풀어야 할 문제를 만나게 된다.

에바에게 자미에 대통령의 딸, 제인이 그랬다.

그녀는 제인의 손을 잡았다.

제인을 ‘연주’한다면 미녀와 야수처럼 드라마틱하고, 타잔과 제인처럼 다이나믹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스타일리쉬할 것이다.

“남자에게 유혹받은 적 있니?”

“네.”

제인은 눈을 내리깔았다. 유혹받은 정도가 아닌 듯했다.

그녀는 권력자의 딸이었고, 외모에 상관없이, 일종의 트로피였다.

독특한 호기심은 에바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랄 맞은 남자들이 가진 탐험심 - 얼어 죽을지도 모를 높은 곳을 오르거나, 사하라 사막처럼 삭막한 곳을 지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였다.

에바는 남자들을 저주하고 증오했지만, 그들의 탐험심만큼은 아주 조금 인정했다.

그들의 ‘미친 짓 유전자’가 없었다면, 불을 사용하지도 못했을 테고, 도시를 세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인을 넘보는 남자들의 정신세계는 깊은 바닷속에서 심해어를 연구하는 것과 같은 걸까? 0.3% 정도는 그럴 것이다. 나머지 99.7%는 ···. 발동걸린 남자들은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 에바가 남자를 짐승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좋았니?”

“모르겠어요.”

둘의 눈이 부드럽게 맞물렸다.

답을 구하는 여자와 답을 아는 여자의 만남이었다.

에바는 보석세공업자가 다이아몬드 원석을 굴리듯이, 제인을 살폈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여자로 살 필요는 없다.

“남자는 동반자나 파트너가 아니야. 여자의 경쟁자야. 너에게 이익이 아니라면, 남자에겐 ···. 주지 마.”

“미안해요.”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너에게 미안해해.”

“하지만 저는 원숭이예요. 아빠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남자들이 눈길도 주지 않았어요. 평생 기회가 없을까 봐, 무서웠어요.”

“여자에게 유혹받은 적은 있니?”

제인은 대답 대신 눈을 깔았다. 순종의 뜻이었다. - 지금 이 순간 에바의 뜻대로 ···.

에바는 제인의 옷을 벗기려 했다.

제인은 그동안 진실한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다.

오르가슴을 느낀 여자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더 자신만만해지고 당당해진다···. 처녀와 아줌마의 차이라고나 할까? 최소한 남자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기회가 없을까 봐 무서워하지 않는다. - 오르가슴을 가진 여자는 남자를 평가한다.

제인은 저항하지 않았다.

에바의 손길이 제인의 가슴에 닿았을 때, 에바는 깨달았다.

‘제인은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야.’

절망에 가까운 당혹감.

에바는 제인을 맛보고 즐기고 농락할 수 있었지만, 제인에게 오르가슴을 주진 못한다.

오르가슴이 열리려면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너무 시시하거나 진지해도 안된다.

오르가슴의 포인트는 블랙홀의 시작처럼 정확한 지점이 있다.

에바는 여자를 다루는 전문가였지만, 여자들에게 명함 주듯이 오르가슴을 주었지만, 제인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녀의 람보르기니가 통과할 수 없는 ···. 매몰 터널 같은 느낌이었다.

‘어떡하지? 오르가슴을 못 느끼면, 평생 남자에게 끌려다니고, 자기혐오에 갇히고 대물림할 텐데 ···.’

제인은 수줍은 얼굴로 에바를 보고 있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제가 많이 부족하죠?”

“잘못된 거 없어. 부족한 건, 나야 ···. 너에겐 처방이 필요해.”

에바는 풀었던 제인의 웃옷 단추를 다시 끼웠다.

‘나에겐 불가능하지만 ···. 준이라면 ···.’

그녀는 준에게 연락했다.

“준 회장님. 내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 했죠?”

“그랬지.”

“지금 이곳으로 와주세요.”

“왜?”

“제인을 열어주세요.”

빙하기가 온 것처럼, 얕은 호흡의 침묵이 이어졌다.

“에바 ···. 그게 중요해?”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에바는 준이 방해받지 않도록 애써왔다.

굿데이의 심볼도 직접 만들고, 준을 귀찮게 할 투자자도 상대하고, 거의 모든 업무를 그녀 스스로 해냈다.

준은 에바에게 말만 하면 됐다.

그녀는 준의 지시에 따라, 갈라파고스에 표류하던 호세를 구했고, 요빅이 될 유조선도 찾아냈다.

돈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임모디피아의 카이를 데려온 것도 그녀였다.

에바는 카이를 데려오면서, 가디날을 처형했었다.

마녀 히파티아를 처리한 것도 그녀였다.

준의 명령이라면, 준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치 않는 여자였다.

그녀에겐 원칙이 있었다.

첫째, 준을 따른다.

둘째, 준을 방해하지 않는다.

첫 번째 원칙은 한 번 무너졌다. - 제인이 준에게 꽃다발을 전해줄 때였다.

이제 두 번째 원칙이 무너지려 한다.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그렇단 말이지 ···.”

준은 고밀도 지식 생태계를 풀가동했지만, 알 수 없었다.

의문만이 남을 뿐이었다.

‘제인을 여는 것에 왜 중요하지? 차원의 문이라도 되나?’

준의 고밀도 지식 생태계는 블랙홀을 증발시킬 수 있었지만, 레즈의 논리와 마음은 다른 차원의 세상이었다.

책으로는 절대 알 수 없고, 직접 열어봐야 한다.

“준 회장을 처음 봤을 때, 전율을 느꼈어. 그동안 느꼈던 모든 오르가슴을 합친 것보다 더한 거였지. 몇 분 동안 정신을 잃고 멍하게 서 있었어. 그 후로 나는 전과 같을 수 없었어. 내가 굿데이에 지원한 이유를 궁금해했지? 그건 준 회장, 네가 존나 강해서야. 널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길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제인에겐 네가 필요해. 그녀를 열어줘. 나에겐 정말 중요한 일이야.”

“에바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제인을 통해서 ···. 네가 존나 강하다는 걸 확인할 거야.”

“이해가 안 되지만 ···. 약속대로 희생을 헛되이 하진 않겠다 ···. 지금 간다.”

*

테이블 위에 페이퍼가 쌓였다. 숫자와 숫자 그리고 또 숫자가 적혀 있었다.

“좋은 호세가 되는 건 어렵네요.”

호세는 이를 악물었다.

버려진 벌목지역과 광산을 복구하는 건 어려웠다.

의미가 있는 일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사업체들은 이미 파산해서 빚잔치를 끝낸 후였다.

모든 부담은 페루 시민들이 짊어져야 했다.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자미에 정부가 환경 보호 기금을 모으려고 국채를 발행했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금리도 낮고, 솔직히 원금 회수도 의심스러워. 다시 자연으로 만들면, 그냥 자연으로 남는 거야. 그곳에서 수익이 나진 않아. 돈이 벌 수 없는 곳이 되는 거지.”

누네즈가 설명했다.

페루 정부에 돈이 많다면 돈으로 발라버리면 되지만, 공무원 월급 주는 것도 버거웠다.

호세는 지도의 좌표를 읽고, 최적화된 침입 루트를 계획할 순 있었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와 같은 문제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다른 곳에 돈을 빌립니까? 중앙은행에서 필요한 만큼 돈을 찍어내면 안 돼요?

‘솔’을 마구 인쇄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되잖아요.”

솔은 페루의 화폐 단위였다.

“그렇게 했던 적도 있지. 솔이 너무 많아져서, 아무도 솔을 원하지 않았어.”

“솔을 원치 않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누네즈는 호세가 믿을 수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누네즈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했지만, 의미 전달이 충분하지 않은 인플레이션은 그저 단어에 불과했다.

인플레이션은 많은 돈을 찍어낼수록 돈이 더 부족해지는 기묘한 현상이었다.

누네즈는 ‘화폐가치 하락’이라고 쉽게 말했지만, 호세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뭔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경제학은 인간과 돈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이지만, 인간도 돈도 과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경제학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진리처럼 떠받들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가장 안 통하는 분야가 바로 경제학이었다.

남아도는 식량, 썩어나는 곡물, 그러나 굶주리는 사람들. - 이 방정식을 풀려면 제정신을 버려야 하고, 이해하려면 스스로 미치광이가 되어야 한다.

기원전 45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철이 금보다 8배나 더 비쌌다.

1980년대 베트남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는데, 기상이변이나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논에는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 갔고, 대풍년이었다.

그러나 농부들은 추수하지 못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산주의 교육을 받아야 했고, 학교에서 빠져나가 농사일을 하면 반동분자로 몰려서 맞아 죽었다.

경제는 정치의 사생아다.

미치광이 아버지를 둔, 자폐증 아들이 바로 경제의 본모습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돈이 있으면 된다는 거죠? 자연은 돈이 되지 않지만, 자연을 지키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동안 돈 때문에 자연을 파괴했던 거고요?”

“호세. 그동안 불법 금광을 단속했잖아. 모든 게 금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잖아. 왜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사람처럼 말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때는 임무수행 중이었고 모든 게 분명했죠. 하지만 이렇게 큰 그림으로 보니깐, 모르겠어요. 결국, 돈 때문인데 ···. 그놈의 돈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누네즈 전 장관님. 정말 돈이라는 게 뭡니까?”

“나는 호세가 누군지 모르겠어. 지금 호세의 모습 너무 낯설어.”

누네즈가 기억하는 호세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병사였다. 질문하지 않고 임무에만 집중하던, 호세가 돈이 뭐냐고 물어보다니!

“너무 멍청해서 죄송합니다.”

“호세 ···. 돈이 뭔지 알게 되면, 알려줘. 사실 나도 돈이 뭔지 몰라.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건 알아. 굿데이가 돈이 많다는 것도 알고.”

호세는 아쿠타미 부대를 소집했다.

부대원들은 요빅 상륙 작전처럼 활동량 많은 작전을 기대했다.

“스물두 곳의 버려진 벌목지대와 폐광이 있다. 2인 1조로 팀을 짜서 각 지역의 복원 방법을 알아온다.”

“네?”

부대원들은 경례하듯이 일제히 눈동자가 커졌다.

“우리는 뛰어난 군인이고 탁월한 전사이자, 훌륭한 일꾼이다. 그리고 이 땅의 주인이다. 아마존에는 상처가 남아 있다. 우리가 치료방법을 찾는다.”

“저어 ···. 호세 특무상사님 ···. 그런 건, 에바 님이 알아서 해주지 않나요? 우리는 명령대로 ···.”

“에바 님은 바쁘다.”

호세는 그럴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준 회장이 에바의 일손을 덜어주려고, 자신에게 일을 맡겼으리라.

“이 땅의 주인으로서 달려라!”

“네!”

아쿠타미 부대는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대원들이 사라지만, 호세는 주위를 힐끔 살피고 나서, 호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기초 경제학.

그가 존경하던 누네즈도 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랐다.

불법 채굴업자를 찾아내던 실력으로 돈의 정체를 밝힐 결심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자만 봐도 머리가 아팠던 호세였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라는 게 이런 뜻이었을까?’

책장을 넘겼다.

*

제인은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에바와 준이 그녀 앞에 있다.

에로틱한 분위기.

지금 당장 태양신의 제물이 되어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도울 일은?”

에바가 준에게 물었다.

“없다.”

준은 제인의 어깨에 손을 댔다.

손을 통해 그의 체온이 제인에게 전해졌다.

두근두근 ···.

제인의 세포는 준의 체온에 반응했다.

인류 최강의 남자 - 준.

제인의 옥시토신 채널이 개방되었다.

그녀의 몸이 떨렸다.

“간다.”

준은 손을 떼고, 문으로 걸었다.

“준 회장님. 아직 ···.”

“이미 열었다.”

제인은 양손을 포개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준이 손을 한번 댄 것뿐인데 ···. 끝없는 쾌락이 흘러넘치고, 기쁨의 바다를 이뤘다.

피와 간에 쌓여 있던 콜레스테롤이 DHEA로 꽃 피어났다.

피가 맑아지고, 체지방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제인의 체중은 순식간에 2kg이나 빠졌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그녀는 더 예뻐지고 아름다워졌다.

그녀는 - 오르가슴 - 확실하게 느꼈다.

제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준이 가고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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