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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 준-60화 (59/141)

< 파라엔진-10 >

굿데이 홈페이지에 무언가가 오픈될 때마다 세상은 큰 홍역을 치렀다.

기후예측이 그랬고, 요빅이 그랬다.

이번에는 ‘스카렛 아이’였다.

스카렛 아이는 구조화 자기장으로 세상을 본다.

구조화 자기장이 세포 크기 해상력에 도달하면, 레드 시프트로 배경이 붉게 보였다.

스카렛 아이 영상장비는 초음파진단기, X선 촬영기, 뇌파 측정기와 MRI를 합친 것보다 뛰어났다.

스카렛 아이가 스마트 폰이라면, 현대 의료 영상장비는 1940년대 에니악이었다.

- 반도체와 진공관의 차이.

“구조화 자기장은 몇 년 전부터 우리가 연구해오던 주제였죠. 우리 회사의 미래였거든요. 굿데이는 언제부터 연구를 시작한 거죠?”

한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아랫배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의료영상 전문 기업 ‘게스톤 스코프’의 대표였다.

에바는 따듯한 박하 차를 권했다. 은은한 박하 향이 감돌았다.

“그리스 버드나무 껍질로 서브 칵테일 했어요.”

“맛이 각별하군요.”

“준의 레시피죠.”

“역시.”

한나는, 준에게 경배하듯이, 한 모금 더 마셨다.

박하의 청량감과 버드나무 껍질의 아릿함이 절묘한 하모니를 냈다. 분명 따듯한 박하 차였는데도, 시원한 진토닉을 마시는 것 같았다.

에바는 스케치하듯이 한나를 지켜보았다.

수많은 사람을 만난 그녀였다.

차 마시는 동작만 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바의 시선을 의식한 한나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한나 역시 많은 사람을 상대했다.

눈빛만 봐도 알파와 오메가가 보였다.

“에바 양. 저의 질문에 답을 안 주셨어요. 굿데이는 언제부터 구조 자기장 연구를 한 거죠?”

“아주 최근이에요.”

에바는 컨실슈트를 떠올렸다.

스카렛 아이는 컨실슈트 디텍팅 방법이었다.

“그렇군요. 스카렛 아이가 영상의학 시장을 휩쓸겠죠. 우리 같은 업체에겐 사망 선고예요. 요빅 쇼크를 먹은 광산업자가 이해가 돼요.”

“그러셨군요.”

에바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중립을 유지했다. 굿데이 넘버투였지만, 지금 굿데이의 입장을 설파하는 건, 사망선고 받은 환자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꼴이었다.

에바의 기준에서 봤을 때, 그건 좀 ···. 비겁하다.

신앙이 진리라면, 환자 상태와 관계없이 ···. 살릴 것이다.

한나는 좀 더 어필했다.

“정말 많이 당황했어요. 다람쥐만 살던 곳에 매가 나타났으니깐요.”

50대에 들어선 그녀였지만, 30대처럼 보였다.

당황했다고 고백했지만, 허둥대는 모습은 없었다.

체념이나 달관도 보이지 않았다.

우아한 동작으로 박하 차 한 모금을 마셨다.

“고조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U보트의 함장이셨죠. 우리 가문 사람은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굿데이는 의료 영상 사업에 진출할 건가요?”

“굿데이는 다람쥐를 잡아먹지 않아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죠.”

“그 말의 뜻은 ···.”

“이제 다람쥐도 날아야 하는 시대가 된 거죠.”

에바는 한나에게 살 길을 열어주었다.

한나는 굿데이와 로열티 계약을 맺었다.

게스톤 스코프의 유통망과 마케팅 능력이라면, 스카렛 아이 사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게스톤 스코프는 굿데이라는 날개를 얻은 셈이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한나는 며칠 동안 막혀 있던 숨통이 트였다.

“에바 양, 게스톤 스코프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요?”

한나는 은근하게 제안했다.

에바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길거리 출신, 시립대 중퇴, 삼류 해커, 그리고 남자 혐오증 레즈가 헤드헌터 1순위 스카우트 인물이 되었다.

그녀를 모셔가려고 줄을 댄, 다국적 기업 명단은 나날이 길어졌다.

준을 만나지 못했다면, 있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준은 진리야.’ - 에바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나가 다시 말했다.

“미안해요. 굿데이에 비하면 게스톤 스코프는 바다에 있는 물방울 같은 존재죠.

제 욕심만 부렸네요. 에바 양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서 ···.”

한나는 미소로 마무리 지으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 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

에바는 기회를 마다치 않았다.

그녀에게 쾌락은 죄악이 아니라, 당당한 기쁨이었다.

한나는 에바의 젊은 몸을 탐했고, 에바는 한나의 능숙함을 만끽했다.

일단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주인과 노예가 생겨난다.

페어플레이와 상관없이 고통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나뉘고, 고귀한 쾌락을 갖는 자와 비천한 기쁨에 머무는 자가 결정된다.

에바는 한나를 길들이면서, 섹스가 사회 계급의 원천이 아닐까? 싶었다.

한나는 성심껏 에바를 섬겼다.

게스톤 스코프의 흥망성쇠는 굿데이에 달렸다.

에바의 기쁨과 만족이 게스톤 스코프의 미래를 결정할 터였다.

거친 폭풍이 지나갔다.

나긋해진 에바가 침대에 눕자, 한나가 따라 누웠다.

“우리 연구원들이 몇 년 동안 매달려도 해내지 못한 것을 준은 어떻게 그토록 쉽게 해내지?”

늘 이런 식이었다. 일이 끝나면, 그녀들은 준에 대해 묻는다. 마치 지금까지 상대했던 사람이 에바가 아니라 준이라는 듯이.

어쨌든 좋다.

에바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고, 누리고자 했던 것을 맘껏 누렸다.

“왜 준이 쉽게 했다고 생각하지?”

“그건 ···. 그냥 준은 뭐든 다 잘하잖아? 안 그래?”

뭐든 다 잘한다 ···. 그런 소문이 있었다. 에바와 준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 한나는 당연히 에바가 준을 경험했다고 여겼다.

에바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에바의 입에서 작은 경탄과 함께 준의 이름이 나왔다.

에바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몇 번이고 준의 이름을 불렀다.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경험 ···. 한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성공한 남자는 여자를 탐한다.

한나는 아직 예외를 보지 못했고, 젊은 준이 예외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한나. 솔직히 말해봐. 우리가 너희 연구를 훔쳤다고 생각하지?”

“그랬어?”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해?”

“그냥.”

“한나! 지금 부탁하는 게 아니야.”

에바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았다.

“화내지 마. 나의 연구팀은 초강력 자석으로 구조화 자기장 영상 장비를 만들었어.”

“그게 뭐? 스카렛 아이는 초강력 자석을 쓰지 않아. 스피커에 사용되는 자석으로도 충분한 ···.”

“알아. 스카렛 아이는 초강력 자석을 쓰지 않고도, 우리 연구팀 장비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발휘해. 몇 년 전 팀원 중 한 명이 스카렛 아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냈어. 평범한 자석으로 MRI보다 좋은 영상장치를 만들려 했지.”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 연구원은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고, 그래서 쫓겨났어.”

“안 봐도 훤하네.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조직에서 쫓겨나게 마련이지. 그 사람 능력이 너무 넘쳐 흘려서, 파트장과 팀장에게 미움받았을 거야.”

“지금 보니 그랬던 거 같아.”

“그 사람은 요즘 뭐해?”

“학원 강사.”

“그래서 준이 대단한 거야. 준도 스티브 교수에게 미운털이 박혔지만, 혼자 힘으로 극복했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푸리에 구조방정식 따위는 내팽개치고, 세상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았을 거야. 한나, 독일로 돌아가면 ···.”

“알아! 연구팀장과 파트장 모두 자를 거야!”

“그게 아니라, 연락하라는 말이었어. 오늘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갈게.”

*

누네즈가 초대장을 보냈을 때, 에바는 그냥 건너뛰려다가 특유의 육감이 걸렸다.

준이 페루에 간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육감에 따라 누네즈의 초대를 준에게 알렸다.

‘간다!’

준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뇌파 통신으로 답했다.

뇌파 통신은 메시지의 밀도까지 전달했다.

강력한 의지로 꽉 차있었다.

“저기 ···.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에바는 뭔가 아주아주 특별한 이유를 기대했다.

트라이앵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던 준이었다.

준의 생활반경은 마녀 히파티아의 언론 플레이로, 불카누스의 토끼굴까지 넓어졌지만, 준은 수소 원자를 맴도는 전자처럼 그만의 궤도를 유지했다.

히파티아 때문에 잠깐 들뜬 상태가 됐던 것뿐이었다.

그런 준이 페루에 가다니!

준이 뇌파 통신으로 응답했다.

‘지난번 먹었던 쿠스코 카카오가 맛있었다.’

메시지는 쿠스코 카카오의 알싸하고 씁쓰레한 맛으로 꽉 차 있었다.

덕분에 에바는 쿠스코 카카오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의 음식이라 불리는 카카오였다.

“그런 거라면 지금 당장 페루로 가서 가져올게.”

‘쿠스코 카카오 파는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 싱싱한 과육을 먹으려면 직접 가서 따자마자 먹어야 한다.’

준의 뇌파 통신으로 에바의 입안에 침이 고였다.

모든 것이 준의 뜻대로 ···. 기간트가 활주로를 달렸다.

준, 에바, 로켈, 디아나, 토크, 카이,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 모두 함께였다.

좋은 호세와 아쿠타미는 그들의 고향으로 간다는 사실에 들떠서 벙글거렸다.

“로켈! 표정이 왜 그래. 누가 보면 기분 나쁜 줄 알겠어. 너도 좀 웃어!”

호세는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호세. 미안하다. 나는 나쁜 로켈이다.”

“그런 거였어? 언제까지 나쁜 로켈 할 거야?”

“25일 남았다.”

“한참 남았네.”

“그래서 괴롭다.”

*

준이 오고 있다!

페루 정치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굿데이는 미다스 그룹을 망하게 하고, 샤나이슈카를 구했다.

황금 똥을 싸는 요빅의 주인 - 준.

그가 오고 있다!

환경부 장관이었던 누네즈는 딸 카멧을 살리려고 사퇴했었다. 그런 그녀에게 페루 현직 대통령 자미에가 달려왔다.

손과 몸에 털이 많은 자미에의 별명은 침팬지였다.

“사실이오? 굿데이가 당신의 초대를 받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게?”

“맞아요.”

“누네즈! 이건 신이 주신 기회요.”

자미에는 누네즈의 손을 덥석 잡았다.

누네즈는 검은 털이 난 큰 벌레가 달라붙은 것 같았지만, 뿌리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자미에와 같은 생각이었다.

페루는 굿데이가 필요했다.

준을 페루에 잡아둘 수 있다면, 굿데이가 페루에 자리를 잡는다면 ···. 많은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된다.

요빅 생태계로 샤나이슈카가 구원받았지만, 페루의 광업은 개박살이 났다.

페루 GDP의 30%가 일차산업인 광업과 농업에서 나왔다. 원자재 산업과 광물산업은 페루의 경제 엔진이었다.

요빅이 바닷물을 처먹을 때마다, 페루 경제 엔진은 시들어갔다.

엔진을 교체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미다스 그룹은 환경파괴를 일삼았지만, 그만큼 세금도 많이 냈다.

미다스 그룹이 망해서 샤나이슈카가 살아남았지만, 페루 정부는 현금 결핍증에 시달려야 했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10%가 넘었다.

환경단체가 환호하며 엄지를 치켜든, 요빅 생태계의 진실은 곳곳에 따라 잔인했다.

요빅 때문에 망한 기업이 수천이었고, 직장을 잃은 사람은 수만이었다.

요빅이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굿데이로 흘러갔다.

현금 결핍증에 시달리는 페루와 돈이 넘쳐나는 굿데이.

굿데이가 페루에 둥지를 틀면, 미다스 그룹의 빈자리를 채워주고도 남는다.

“준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자미에 대통령은 분명히 그럴 거라 믿었다. 그리고 어쩌면 ···.

“누네즈 당신이 딸, 카멧은 어디에 있죠?”

페루에는 그런 소문이 있었다. 준이 카멧을 맘에 두고 있다고. 그래서 목숨 걸고 카멧을 구했다고.

“꽃단장하고 있어요.”

“훌륭하오.” 자미에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겁니다. 카멧도 훌륭하지만, 페루를 위해 플랜 B, 플랜 C, 플랜 D 끝없는 안전장치가 필요하오.”

“그게 무슨.”

“준을 유혹할 미스 페루들을 준비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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