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엔진-7 >
은폐해제!
호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자파 왜곡장을 만들어내는 컨실슈트는 얇았다.
랩처럼 얇은 슈트 밑으로 호세의 피부와 혈관이 그대로 드러났다.
영화 속 타잔의 침실 재림 - ‘아마존 머슬’로 불리는 그의 몸은 근접전과 노가다에 최적화된 형태였다.
“기갑슈트 같은 몸이군.”
랜달은 만족스러웠다.
상대가 완벽할수록 파괴의 쾌감은 커진다.
투명한 컨실 마스크를 통해 호세의 눈이 똑똑히 보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의 눈빛이었다.
랜달은 호세의 눈빛이 맘에 들었다.
여러 휴양지와 사파리에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호세의 눈빛처럼 강하고 단단한 것은 처음이었다.
가벼운 흥분이 밀려왔다.
‘호세와의 아이컨텍 - 잔느의 섹스보다 낫군.’
정말이지 ‘예고편’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대였다.
잔느는 홑이불을 끌어안듯이 몸을 가렸다.
침실에 고릴라 같은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이건 악몽이야!
그녀와 고릴라 호세 사이에 랜달이 있었지만, 그녀는 랜달을 믿지 않았다.
랜달과 몸을 섞었지만, 그것은 ‘타도! 준’을 위한 동맹 서약에 불과했다.
여자가 몸을 주면, 남자는 마음을 준다.
잔느는 남녀 사이의 교환법칙을 적절히 이용해서, 랜달을 ‘관리’해왔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
‘랜달이 저 고릴라를 이길 수 있을까?’
어려워 보였다.
랜달의 능력은 블랙마켓에서 받은 것이었다.
그런 얄팍한 능력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상대할 수 있을까? 호세는 딱 봐도 베테랑이었다.
블랙마켓에서 최고품의 능력을 얻었다 해도, 호세는 에어퓨마의 리더였다. 그가 보여준 요빅 상륙 작전은 현대 군사 전략 전술을 허깨비로 만들었다.
에어퓨마의 기갑슈트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랜달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거 같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홍보용’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판 붙자고 했나?”
아쿠타미 부대를 이끄는 호세였다.
몸과 목소리에서 강력한 의지가 빛났다.
“몰래 들어온 쥐새끼치곤 너무 당당하군.”
“당당해서 미안하다. 요빅이 당한 만큼 패주겠다. 그리고 ···. 여자는 나가라.”
호세는 문에서 비켜섰다.
잔느는 홑이불을 껴안고, 옷가지를 집었다.
“잔느. 이건 예고편이야. 잘 봐둬.”
랜달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의 손짓에 맞춰 침실문이 잠겼다.
가정자동화 - 홈오토메이션에 따른 것이었다.
랜달이 리드미컬하게 손짓을 하자, 봄의 왈츠가 흘러나왔다.
“랜달! 내 보내줘.”
“내가 준을 파괴하길 바라잖아. 남자들의 싸움판을 만들었으면 구경은 해줘야지.”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야.”
“금방 끝난다.”
강력한 아이컨텍!
랜달의 시선은 호세의 머릿속을 꿰뚫었다. - 마인드 해킹.
호세는 약간의 욕지기를 느꼈다.
난투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직하게 몸으로 치고받을 줄 알았는데, 훅 들어오는 ‘사이키 공격’이라니. 방심했다.
“마음의 창을 보인 순간, 게임은 끝났다.”
랜달은 가슴을 내밀고 허리를 길게 폈다.
그의 양팔은 하늘을 나는 군함새처럼 뒤로 젖혀졌다.
쉬운 승리였다.
‘마음의 창?’
호세는 랜달의 집중적인 아이컨텍을 떠올리며, 아차 했다.
랜달은 페어플레이를 할 인간이 아니었다.
형편없는 기회주의자였다.
랜달에게 호세를 처치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랜달은 호세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처치할 기회는 없었다.
마인드 해킹을 하려면 아이컨텍이 필요했지만, 컨실슈트는 아이컨텍을 원천 봉쇄했었다.
‘은폐 기능을 차단한 게 실수다!’
너무 순진하게 걸려든 거 같아서, 맘이 아렸다.
‘준 밑에 있다 보니, 너무 단순해졌어. 어쨌든 좋아. 농축된 전투 경험과 노가다 경력을 원펀치로 알려주지!’
그는 몸을 날려,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호세의 마음은 저만치 펀치를 날렸건만, 그의 몸은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벌써 당한 건가!’
그는 정신을 수습하려 했지만, 보이는 것은 오직 짙은 어둠뿐이었다.
트라우마 Z의 강림 - 그의 두려움과 공포가 어둡게 타올랐다.
“이런, 위대한 에어퓨마가 굳어버렸군.”
랜달이 호세의 뺨을 때렸지만, 호세는 나무토막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사후경직된 시체 같았다.
잔느는 움켜잡은 홑이불을 놓았다.
랜달에게 능력이 생긴 건 알았지만, 에어퓨마를 단숨에 제압하다니!
그녀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놈의 정신을 얼렸지.”
“그게 가능해?”
“나는 강하다.”
“오! 랜달 ···.”
그녀는 랜달의 등 뒤에서 껴안았다. 지금의 랜달이라면 준을 ···.
“멋진 예고편이었어.”
그녀는 있는 힘껏 랜달을 껴안았다.
*
시간이 지나면서 디아나는 초조해졌다.
초조함은 지수함수처럼 커지면서, 걱정을 지나 두려움이 되었다.
랜달 빌딩에 잠입하는 것은 그녀의 임무였고, 호세는 차량 지원 역할이었다.
“여자를 백업하는 건 ···. 체질에 안 맞는데.”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남자 여자 따지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에요.”
“그리고 보면, 내가 좀 멍청해. 그리고 실은 ···.”
호세는 잠입임무를 하고 싶어 했다.
뭐랄까 ···.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싶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어두운 아마존에서 더 어둡게 움직였던 그였다.
작전 하루 전날, 컨실슈트 사용법을 익혔다.
군인다운 빠른 습득력이었다.
요빅 상륙작전에 비하면 너무나 쉬운 일거리였다.
그런데 ···.
“왜 이렇게 늦지?”
디아나는 걱정과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컨실슈트의 성능과 호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해내고도 남는다.
누가 호세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 쿵!
거대한 무언가가 풀 사이즈 밴의 지붕이 떨어졌다.
지붕이 내려앉았다.
호세였다!
그는 벌거숭이였다.
디아나는 그를 둘러업고 밴 안으로 옮겼다.
심폐 정지 상황.
응급구조 장비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미안해! 내가 해야 했는데 ···. 호세 죽으면 안 돼!”
호세의 몸은 놀랍도록 튼튼했다.
자동차 지붕으로 떨어졌어도, 생채기만 났고 뼈가 부러진 곳은 없었다.
“제발 숨 쉬어!”
그녀는 마우스 마우스 법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반응이 없었다.
그녀 입에 종이가 훅 들어왔다.
호세의 혀 밑에 끼어있던 메모지였다.
휘갈겨 쓴 필체 - ‘쓰레기는 쓰레기에게’
“호세 그냥 가지 마! 널 보낼 수 없어!”
그녀는 강제 소생 킷트를 꺼냈다.
날카로운 전극이 문어발처럼 달린 강제 소생 킷트는 지속적인 전기자극으로 심장과 허파를 강제 작동시킨다.
디아나는 정해진 부위에 전극을 찔러넣었다. 호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
호세는 곧바로 바이오 리큐드 실린더로 옮겨졌다. 심장과 호흡근은 강제 작동 중이었지만 ···.
“뇌 활동이 정지되었군.”
로켈은 참담했다.
잠입작전은 그의 판단이었다.
랜달 빌딩의 보안 수준으로 평가할 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가 하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경력자에겐 따분한 레벨이었다.
우리 팀의 임무 때문에 호세가 저 지경이 되다니!
최악이었다.
“호세가 지원했다고 해도 ···. 제가 해야 했습니다.”
디아나는 눈물을 먹었다.
“네 탓이 아니다. 이번 작전을 허락한 건 나야.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라고 말하면서,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준짱에게로 향했다.
‘준짱아! 호세 좀 살려주라!’
실린더 주위에는 에바와 카이 그리고 세이턴과 아쿠타미 부대원이 함께였다.
에어스크린에 뜬 호세의 바이탈 사인은 절망적이었다.
시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는 좋은 호세였다.”
준이 말하자, 모두 숙연해졌다.
‘아! 이번 일은 준도 어쩔 수 없구나.’
디아나의 마음은 칼로 깎여나가듯 아팠다.
랜달은 실버 드래곤의 본부장이었던 찰스와 키노시타를 끝장냈다.
그의 능력을 알아내기 위한 정보 활동이 이번 잠입임무의 목적이었다.
랜달 주변에 마커를 심고 조용히 빠져나오면 된다.
랜달 빌딩에는 컨실슈트를 디텍팅하는 보안 장치가 없었다.
무게 감지 장치가 있었지만, 바닥을 밟지 않고 지나갈 방법은 많았다.
호세는 랜달 빌딩에 잠입한 순간, 외부 통신을 끊고 단독행동에 들어갔다.
외부 통신을 유지하면 꼬리를 밟힐 우려가 있었다.
지원팀과 차단된, 단독행동 - 매뉴얼에 따른 행동이었다.
굿데이가 알고 있는 건, 호세가 알몸으로 빌딩에서 떨어졌고, 그의 입안에서 쪽지가 나왔다는 것뿐이었다.
“컨실슈트를 회수했다면 ···.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만 ···. 필체 분석 결과 랜달의 것이었습니다. 호세는 랜달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로켈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준 앞에 무릎 꿇었다.
“준짱. 모두 제 책임입니다.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준 회장님!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로켈에게 정보활동을 지시했습니다.”
에바도 무릎을 꿇었다.
준이 둘 앞에 섰다.
“로켈 ···. 긍지를 가져라. 앉은키는 네가 에바보다 크다. 에바 ···. 중심을 잡아라,
네가 로켈보다 ‘훨씬’ 무겁다.”
에바와 로켈은 멘탈이 흔들렸다.
‘방금 뭐였지? 엄청난 박해를 받은 거 같은데 ···.’
에바와 로켈이 멘탈을 수습하기 전에, 준이 결론을 내렸다.
“이번 일은 내 책임이다. 내가 찰스와 키노시타를 살려 보냈다. 너희가 그 일을 이토록 괴로워하고 근심할 줄은 몰랐다. 랜달의 능력을 알아내겠다고 작전을 넣다니!”
준은 한숨을 내쉰 후, 에어스크린으로 랜달 회장의 직통 번호를 불러냈다.
컬러링이 두 번 반복되기 전에 랜달 회장의 비서 잔느가 나타났다.
“준 회장님이군요. 연락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상류층에서 유행하는 펄 메이크업과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서 고귀한 빛이 흘러넘쳤다.
“랜달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전해드리겠습니다.”
“찰스와 키노시타 그리고 호세에게 어떤 능력을 쓴 거지?”
“기다려주십시오.”
화면에서 잔느가 사라지고, 선데이의 로고가 깜빡였다.
“랜달 회장님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응하겠다.”
“고맙습니다.”
“호세 입안에서 랜달이 쓴 메모가 나왔다.”
“은폐슈트에 대한 감사 쪽지입니다.”
그녀는 깜찍하게 웃었다.
‘준 회장아. 나 지금 욕해도 돼?’ - 에바가 준에게 슬쩍 물었다.
‘참아라.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한다.’
약속장소는 포시즌으로 정해졌다.
준은 실린더 속에 있는 호세에게 다가갔다.
생명유지 코드가 목등뼈와 척추에 박혀 있었다.
뇌 활동 정지 상태였지만, 코드를 통해 뇌하수체 호르몬이 공급되었다.
그의 정신은 죽었지만, 몸은 살아 있었다.
“호세. 트라우마를 극복해라.”
준은 살아 있는 호세를 대하듯이 말했다.
“준짱! 호세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아니. 그는 좋은 호세였다.”
“하지만 ···. 방금 호세에게 한 말씀은?”
“가능성은 있다.”
“무슨 가능성입니까?”
“더 좋은 호세가 될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