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엔진-5 >
요빅 수난시대 - 157척의 요빅 중 12척이 파괴되었고, 델타 아일랜드와 다섯 개의 섬, 그리고 24척의 요빅이 강탈당했다.
요빅 상륙작전 - 아쿠타미 부대는 콘서트 시즌의 아이돌처럼 바빴다.
에바가 정해준 스케줄은 표준 노동법에 따라, 45분 전투 후에는 15분의 티타임을 즐기게 되어 있었다.
호세는 어이가 없었다.
“이래서 탁상 위에서 나온 계획을 믿질 못해! 군사작전에 쉬는 시간과 티타임이라니! 쉬는 건 이동시간에 한다.”
그는 작전을 밀어붙였다.
에바의 스케줄 중에서 파격적인 특근 수당도 있었다. 평소에도 고액 연봉이었지
만, 이번 특근 수당은 평소 감각으로도 비현실적인 숫자였다.
“에바 ···. 우리 특근비 너무 많은데 ···. 잘못 입력한 거 아니야?”
“잘 못된 거 없어.”
“액수가 너무 커.”
“받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세금으로 뜯겨.”
“그런 거라면 ···. 받아들인다.”
유진 악마가 29개의 작전 지역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경로를 찾아냈고,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는 그 경로를 따라 상륙작전을 반복했다.
파괴된 요빅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납치된 요빅과 섬은 되찾을 수 있었다.
빼앗긴 요빅에도 봄은 오는가? - 온다! 아쿠타미와 함께!!
약탈자들은 온갖 첨단 무기와 군사전략으로 아쿠타미를 잡으려고 했지만, 굿데이 기갑슈트의 성능은 모든 것을 따돌리고 압도했다.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 그리고 세이턴은 첨단 무기를 씹어 먹고, 군사전략을 놀잇감으로 삼았다.
롬멜 보병전략, 십자 포화 공격, 로렌스 기습전략, 보로디노 섬멸작전, 게릴라 전술 ···. 모든 것은, 굿데이의 기갑 슈트 앞에서, 허무 이론에 불과했다.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아쿠타미 부대는 무적이었다.
약탈자와 강탈자 그리고 기타 나쁜 놈들은 아쿠타미 부대를 ‘에어퓨마’로 불렀다.
에어퓨마와 하얀 악마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를 누비며 굿데이를 ‘홍보’했다.
18시간 만에 요빅 11척과 세 개의 섬을 해방했다.
홍보 효과가 나타났다.
나머지 요빅을 점령한 약탈자들이 자진 철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호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요빅 탈환만큼이나 홍보도 중요했다.
아쿠타미는 약탈자들을 끝까지 쫓았다.
요빅에 손댄 자들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차라리 죽여라!”
‘홍보’에 악이 받힌 해적이 소리쳤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다. 더 패라!”
고강도 홍보 활동이 계속되었다. 해적은 열 번 죽은 것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사 ···. 살려 주세요.”
그가 호세에게 매달렸다.
“그 말도 아니다.”
해적은 한참을 더 맞은 후에 다시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
“것도 아니네.”
“그럼 제가 뭐라 해야···.”
그는 퉁퉁 부은 눈으로 호세의 기갑슈트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정답은 ···. 잊지 않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말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지옥문이 수십 번 열렸다 닫혔다 했는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긴장이 풀린 그의 몸이 흐물흐물해졌다.
‘이제 홍보가 끝났겠지.’라고 생각한 순간, 호세가 말했다.
“두 번째 문제 들어간다.”
해적은 또 맞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해적의 눈높이에 맞춘 객관식이었고, 정답은 4번. ‘널리 알리겠습니다.’였다.
*
선장실에서 면도하던, 루베르 장군 손이 엇나가며 얼굴에 상처가 났다.
배가 크게 흔들리고, 거친 ‘쿵!’ 소리가 났다.
“뭐지 어뢰에 맞은 건가?”
밖에 나와보니, 갑판이 움푹 파였고 기갑 슈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루베르 장군은 수많은 전투를 통해, 전투 슈트의 무서움을 똑똑히 봤다.
그가 내전에서 패배한 것도 전투 슈트 부대가 전쟁에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투 슈트 - 기동헬기와 맞먹는 스피드와 장갑차에 버금가는 파괴력.
그 괴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의 부하들은 AK 소총과 작살 그리고 도끼를 들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 굿데이 에어퓨마.
모두 올 것이 왔다는 심정이었다.
길고 긴 홍보 과정 끝에 호세의 1번 문제가 나오자, 루베르 장군은 내가 이러려고 해적이 됐나 싶었다.
그는 다른 해적과 달랐다. 최단 시간으로 1번 문제를 풀었고, 2번 문제도 금방 맞췄다.
루베르 장군에겐 보너스 3번 문제가 기다렸다.
“누가 시켰지?”
“모른다. 정말 모른다.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말할 기력도 없다.”
1번 문제와 2번 문제를 빨리 풀었지만, 이미 초주검에 가까운 상태였다.
“너를 믿는다.”
호세는 기갑 슈트 손등 샷건으로 루베르 장군을 겨눴다.
“믿는다며?”
“3번 정답을 모르면 즉결 처형이다.”
호세는 루베르 장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원망과 공포 그리고 자비를 구하는 가련한 눈망울이었다.
루베르 장군은 의뢰자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다크웹으로 모든 것을 주고받았다.
“모르면 ···. 죽어라.”
호세는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약탈자들이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졌던 것은 홍보 효과 때문이었다. 이미 홍보 효과는 차고 넘쳤다.
의뢰자의 정체를 모르는 루베르 장군의 가치는 제로였다.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굿데이는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잔느는 스위스의 작은 왕조를 세웠던 퀴블러 가문의 여자였다.
퀴블러 가문의 남자는 권력을 잡아야 하고,
퀴블러 가문의 여자는 남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녀는 처음 준을 보고서, 바로 알았다.
‘저 남자는 진짜다! 타고난 권력자다! 권력의 화신이 될 사나이다!’
그녀가 준에게 접근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 준의 특출함이 다른 여자의 눈에도 보였다는 것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준의 가치는 빛났다.
준은 타고난 팜프파탈 줄리아의 유혹을 튕겨냈다.
잔느는 집안 배경을 총동원해서, 준과 엮이려고 노력했다. 굿데이에서 직원을 뽑을 때, 데스먼드 학과장과 심리학자 그리고 전직 경찰관은 이미 잔느를 내정했었다.
에바만 아니었다면, 잔느가 굿데이의 2인자가 되었을 테고, 준과 굿데이를 완전히 휘어잡았을 것이다.
상류사회 파티에서 실버 드래곤이 준을 노린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는 실버 드래곤에 입사했다.
트리탄이 준을 망하게 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싶었고, 그렇게 되면 트리탄과 엮일 계획이었다.
준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트리탄에 비하면 설익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준의 파멸은 초읽기였다.
그러나 실버 드래곤이 망하면서, 오히려 그녀가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
남자에게 무시당한 것도 준이 처음이었고 ···.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굿데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굿데이와 준이 그녀를 실직자로 만들었다.
그녀는 현실을 인정했다.
‘나는 준을 가질 수 없어. 굿데이에 낄 수도 없고 ···.’
가질 수 없으면 파괴하라! - 퀴블러 가문의 가훈이었다.
파괴공작은 자연스럽고 은밀해야 했다. 선데이의 랜달은 어리석은 남자였지만, 그렇기에 이용가치가 높았다.
잔느의 아버지 루이스 상원의원이 조금 거들자, 랜달의 성공은 거칠 것이 없었다.
정부 프로젝트를 따내고, 유망 벤처를 인수하고, 종교재단을 설립하고, 대학교까지 세웠다.
굿데이는 기후예측모형을 공개했듯이, 요빅 설계와 제작법까지 오픈했다.
기후예측모형도 요빅도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후예측모형은 수천수만 가지 시나리오 출력해낼 뿐, 어떤 것이 미래 사건인지 골라주지 않는다.
요빅의 입자 농축은 빛을 고체로 농축하는 수준까지 도달해야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준은 소스를 오픈하면 누군가 결점을 메워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선데이 같은 사이비의 등장이었다.
“굿데이가 제법인데.”
랜달은 다크웹에 떠도는 굿데이의 홍보영상을 보았다. 요빅에 손댄, 약탈자들이 에어퓨마에게 개박살 나는 장면이었다.
홍보영상은 그가 예상하던 것과 조금 달랐다.
그의 예상은 요빅을 되찾으려던 굿데이의 소수정예가 전멸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저런 기갑슈트를 만들어야겠어. 저거 어디서 구하지?”
“굿데이가 불카누스로 직접 만들었을 거예요.”
“우와! 부츠에 달린 저 플라즈마 엔진 좀 봐. 놀라워. 왜 우리에겐 저런 물건이 없지?”
“있습니다. 로크에게 지급된 아머 슈트는 현존 최강의 전투 슈트로 ···.”
“영상 안 봤어? 로크는 인간도 아닌, 개 모빌에게 당했어. 에어퓨마 대원 두 명이
개 모빌을 말리지 않았으면, 로크는 산산조각이 났을걸. 준의 주위에는 저렇게 실력 좋은 인재들이 있는데 ···. 나는 ···. ”
그는 옆에 서 있는 잔느를 힐끔 쳐다보곤,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에바와 비교한 것이리라.
잔느의 자존심이 걸레가 되었다.
“랜달. 감탄할 때가 아니야. 굿데이를 손에 넣으려면 다른 작전을 세워야지.”
그녀는 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퀴블러 가문의 여자는 남자를 사로잡고 휘두른다.
“맞아! 굿데이를 손에 넣어야, 굿데이 짝퉁이라는 소릴 안 듣지.”
랜달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선데이는 굿데이의 짝퉁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분할 정도로 변변치 못했지만, 이미 굿데이와 맞먹는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었다.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과 파는 것은 달랐다.
굿데이가 좋은 물건을 만든다면, 선데이는 아무 물건이나 잘 팔았다.
굿데이가 자기 세계에 몰두하는 예술가라면, 선데이는 TV에 얼굴을 파는 연예인이었다.
“에어퓨마의 기술력이라면, 처음부터 협상이 통할 리 없었어. 나는 그런 줄도 모
르고 ···. 찰스와 키노시타에게 괜히 미안해지네.”
야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협상에 실패한 찰스와 키노시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둘은 '숙면의 방'에 잠들어 있었다.
랜달의 족제비 같은 눈동자가 잔느의 피부에 닿았다.
잔느는 소름이 돋았다.
일 년 전만 해도 랜달은 갑작스러운 성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간이었다.
그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블랙마켓에 들락거리면서부터였다.
랜달은 그곳에서 강화 능력을 이식받았다.
어떤 능력인지 정확하지 않았지만, 잔느는 랜달이 나타나는 꿈을 꾸곤 했다.
그 꿈은 너무 생생해서 눈을 뜨고 샤워를 할 때까지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껌딱지 같은 꿈이었다.
잔느는 소매를 길게 뺐다.
그녀를 관찰하던 랜달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내가 무서워?”
“아니.”
“방금 너의 이마가 반짝였어.”
“조명 때문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 너는 전두엽이 바빠지면 이마가 반짝여. 거짓말을 할 때에는 전두엽이 활성화되지.”
“내가 거짓말했다고?”
“그래!”
“ ······.”
“아이들은 거짓말 못 하지만, 자라면서 전두엽이 발달하면 능숙한 거짓말쟁이가 되지. 나는 이해해. 다 살자고 그러는 거니깐. 정직은 위험하지. 따돌림을 당하거든. 진리는 죽음을 부르고, 진실은 거짓보다 훨씬 잔인하지.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건 ···. 약하다는 증거야. 진실을 제대로 볼 용기가 없는 거지.”
“왜 그런 말을 하지.”
“내가 말했었지. 너를 위해 굿데이를 차지하겠다고. 우린 한 침대에서 같이 작전도 세웠잖아. 요빅을 사냥하고, 굿데이에게 보안 솔루션을 빌미로 지분을 받아내고 ···. 조금씩 지분을 늘려서 굿데이를 우리 것으로 하는 거지. 네가 나와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
“같은 편이야.”
“또 거짓말한다. 너는 내가 굿데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잖아.”
“ ···.”
속마음을 들킨 잔느의 얼굴이 빨개졌다.
“괜찮아. 나에게 아주 좋은 작전이 있어.”
“그게 뭔데?”
“굿데이의 핵심 기술은 모두 준의 머리에서 나왔어. 그가 죽는다면, 굿데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굿데이가 사라지는 날, 우리 선데이가 갑이 되는 거지.”
“상대는 굿데이의 준이야. 어떻게 죽일 건데?”
“꿈속에서 죽으면 정말로 죽는다던데 ···. 그게 사실이었어.”
“뭐라고?”
“숙면의 방에 있는 찰리와 키노시타를 깨워.”
“왜 그런 걸 나한테 ···.”
“시키면 그냥 해라. 굿데이의 에바였다면, 토 달지 않고 했을 거야.”
잔느는 홱 돌아서 숙면의 방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찰리와 키노시타를 깨웠다.
아무리 흔들어도 둘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 다 사납고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악취가 났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찰스와 키노시타가 숨졌다는 것을.
그 둘은 실버 드래곤의 실력 있는 본부장이었다.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육체 능력도 뛰어났다.
그들도 랜달처럼 블랙마켓에서 강화능력을 이식받았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랜달의 악몽에 시달리다가, 숨진 것이다.
‘오! 잔느 네 머릿속이 환히 보인다.’
랜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울렸다.
뇌파 통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