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53화 (52/141)

< 파라엔진-3 >

전 세계에 분양된 요빅은 157척.

벵골만의 요빅은 녹조를 걸러내서 질소화합물로 농축했고, 농축 질소화합물은 비료와 사료로 사용된다.

서태평양의 요빅과 델타 아일랜드는 황금과 희토류를 공급했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요빅은 산화알루미늄과 이산화규소를 재배하는 보석 농장을 겸했다.

산화알루미늄은 루비와 사파이어 성분이었고, 이산화규소는 자수정과 오팔의 합성 베이스였다.

이탈리아의 최대 부동산 업자 프레드는 요빅이 토해내는 보석으로 에메랄드 고층 빌딩을 지었다.

요빅 효과는 새로운 대륙 발견과 맞먹었다. 금, 은, 심지어 비료와 비누까지 모든 것이 풍부해졌다.

남태평양에는 요빅 5척이 인공 섬을 이끌었고, 곡물과 과일을 재배했다.

팜 아일랜드로 불리는 그 섬은 좋은 날씨를 찾아 끊임없이 떠다녔다.

*

루베르 장군은 요빅이 침몰하는 영상을 확인했다.

바닷물을 삼키던 요빅 허리에서, 그리스 기둥 같은 불길이 일고, 두 동강 난 요빅은 타들어 가는 성냥처럼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한 대밖에 해치우지 못했군. 남은 레비아탄 네 개도 짝을 찾아줘야지.”

레비아탄은 최첨단 스텔스 어뢰였다.

“굿데이 놈들이 요빅의 위치를 암호화했습니다.”

부하가 대답했다. 그의 빛바랜 군복은 때에 찌들어 있었다.

루베르 장군의 군대는 내전에 패해 바다로 쫓겨났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군함을 개조한 모함母艦으로 신흥 해적이 되었다.

“바다에서 숨을 곳은 없어. 양키의 인공위성이라면 요빅을 찾을 수 있지.”

루베르 장군은 다크웹에 접속해서, 요빅의 위치를 요청했다.

다크웹은 비공개 거래 사이트로 범죄자와 마약업자가 애용하는 인터넷 공간이었다.

뒷마당에서 키운 대마초부터 인간 노예까지 다채롭게 거래되었다.

이식용 신장뿐 아니라 그 신장을 이식해줄 의사까지 구할 수 있다.

루베르 장군이 요빅 격함 의뢰를 받은 곳도 다크웹이었다.

그는 의뢰자가 누군지도 몰랐고, 요빅을 폭파하려는 이유도 궁금하지 않았다.

의뢰를 받아들이면 엄청난 돈이 입금되고, 요빅을 파괴하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 그거면 충분했다.

루베르 장군이 의뢰비와 내용을 확인하고, 오케이 버튼을 누르자, 일주일 후 다크웹의 ‘묻지마 배달 회사’ 다크퀵에서 최첨단 어뢰 레비아탄을 가져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루베르 장군의 모선 위치는 해적본부였고, 당연히 비밀이었다.

그런데도 다크퀵은 주소 한번 물어보지 않고, 정확하게 물건을 배달했다.

다크퀵 직원은 얼빠진 루베르 장군과 부하들에게 할인 쿠폰까지 던져주고 갔다.

루베르 장군은 7.5m 길이의 레비아탄 어뢰와 사용설명서를 보며, 이번 의뢰는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의뢰자는 최첨단 어뢰를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주고받는 존재였다. 의뢰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루베르 장군이 자초지종을 늘어놓고, 요빅의 위치를 알려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요빅이 있는 곳의 좌표와 인공위성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 속의 요빅 옆에는 오만왕국의 초계함과 구축함이 함께 있었다.

레비아탄의 최대사정거리는 80km.

정확한 좌표와 목표를 설정하면, 500m 물밑에서 소리 없이 다가간다.

“어뢰가 5km 이내로 접근하면 초계함에 걸립니다. 구축함이 가진 미사일은 어뢰보다 더 정확하고 더 빠르죠. 이번 의뢰는 ···.”

부하는 콧등을 긁었다. 오만왕국의 해군이 지키는 요빅을 공격하는 건, 자살 행위였다.

해적 모선은 구축함과 마주쳐도, 꽁지 빠지게 도망쳐야 했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다. 레비아탄은 돌고래처럼 움직이고, 초계함의 대잠용 소나에도 돌고래로 보인다. 너라면 돌고래에게 미사일을 쏘겠어?”

해적들은 스피드보트에 레비아탄을 싣고, 요빅 사냥에 나섰다.

대 성공이었다. 요빅은 속절없이 침몰했다.

*

서태평양을 누비는 요빅과 델타 아일랜드는 굿데이가 최초로 요빅을 풀어놓은 곳이었다.

요빅은 무인 시스템이었다.

관광객들이 다가가 요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과감한 관광객은 델타 아일랜드에 오르려고 했다.

델타 아일랜드는 커다란 그릇 같은 섬이었다.

섬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오를 수 없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델타 아일랜드는 황금색이 한곳에 모인 녹색이었다.

녹색 - 철새들이 잠깐 쉬어가면서, 남기고 간 똥에 있던 씨앗이 델타 아일랜드에 싹을 틔웠다.

요빅은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바다의 유기물과 모래성분으로 토양을 만들어냈다.

탠덤 로터를 단 치누크 헬기가 델타 아일랜드에 내려앉았다.

황금과 희토류 그리고 암모늄과 탄산염이 자동화 시스템에 따라 구역별로 모여 있었다.

가끔 기념품을 챙기려는 극성 관광객이 비행기로 섬에 들어오곤 했지만, 치누크 헬기에서 내린 사람들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해킹 채널 확보.”

“메인 엔진 통제권 접속.”

“항로 수정.”

그들은 약탈자였다.

“거저 먹기군.”

약탈자의 리더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움튼 새싹을 밟았다.

굿데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 괜히 긴장했네.

*

아라비아 해에서 어뢰를 맞고 침몰한 요빅은 굿데이 소유가 아니었다.

요절한 요빅들은 굿데이가 오만 왕국에게 분양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태평양에서 납치당한 요빅 세 척과 델타 아일랜드는 굿데이의 소유였다.

‘요빅 사냥’은 세계 곳곳에서 행해졌다.

“157척의 요빅 중 파괴공작으로 12척이 소실됐고, 델타 아일랜드를 포함해서 섬 다섯 개와 요빅 24척이 강탈됐어.”

에바가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 겨우 고난의 시절을 지나왔는데, 요빅 수난 시대가 시작된 셈이었다.

“감히 굿데이의 물건에 손대다니! 어떤 잡놈들입니까?”

호세가 흥분했다.

그와 아쿠타미 부대는 뛰어난 노가다 능력으로 요빅을 만들어왔다.

그들은 다른 직원보다 요빅에게 큰 애착을 느꼈다.

“해적부터 전문털이 꾼까지 다양해. 같은 조직은 아니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뜨내기 같아.”

“요빅을 왜 건드는 거죠?”

“델타 아일랜드를 납치한 놈들은 몸값을 요구하고 있고 ···. 요빅으로 망한 사업가들이 많아. 광산업을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패가망신했고, 알루미늄 제련공장, 비료공장, 보석 시장 관련자들도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중이지. 결론적으로 요빅을 없애고 싶어하는 사람은 널렸어."

빛과 어둠 - 샤나이슈카 지역 원주민처럼 생활터전을 구한 이들도 있었지만, 야심 찬 금광업자처럼 생활터전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당장 기간트를 타고 가서 박살 내고 오겠습니다.”

호세가 벌떡 일어서자, 아쿠타미 부대원 모두가 따라나섰다.

“놈들은 지대공 미사일을 가졌고, 섬 중앙에는 고공낙하로 접근하는 침입자를 자동 저격하는 블루아이 머신건도 있어.”

“그딴 건 굿데이의 은신 기술로 피해갈 수 있습니다.”

호세는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굿데이라면 블루아이든, 그린아이든, 대책이 있을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사건이고, 잡것들은 법이 미치지 않는 공해公海에 있어. 우리가 직접 작전을 펼치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그렇다면 그냥 두고 보자는 겁니까?”

“말투가 왜그래? 나에게 따지는 거야?”

에바가 눈을 부라렸다.

그녀도 지금 상황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잡것들에게 정성껏 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타오르는 눈동자를 본, 호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매달리는 눈길로 준을 바라보았다.

에바를 진정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준뿐이었다.

“에바.”

“네! 준 회장님.”

준이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에바의 눈동자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사라졌다.

“눈에서 욕 튀어나오겠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준이 그녀 대신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는 정부가 나선다. 우리가 낸 세금을 생각하면, 정부·군이 곧바로 정리해야 했다. 아직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

준은 에바에게 사인을 주자, 곧바로 그녀가 말을 받아냈다.

“루이스 상원의원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자의 딸 잔느는 선데이 랜달 회장의 비서로 일하고 있고, 한때 도서관 3번이었습니다.”

“3번이라는 게?”

호세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도서관에서 준을 꾀려던 암캐였어. 온 가족이 나서서 극성을 떨었었지. 만일 잔느가 굿데이 직원 1호가 되었다면, 안방마님이 되려고 준 회장님을 귀찮게 했겠지.”

“델타 아일랜드를 점령한 녀석들은 몸값이라도 요구하지만, 오만왕국의 요빅은 왜 죽인 거죠?”

에바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막힐 때마다 버릇처럼 준을 바라보았다.

필요할 때마다 준은 항상 통쾌하게 뚫어주었다.

“돈보다 더 큰 걸 원하니깐.”

“그게 뭡니까?”

*

선데이의 고위 간부 두 명이 굿데이를 찾아왔다.

실버 드래곤의 리스크 관리 본부장이었던 찰스와 전략 관리 본부장이었던 키노시타였다.

둘은 트리탄을 잃은 후, 선데이에서 일했다.

메피스토 - 키노시타는 페루에서 에바에게 엄청난 돈을 줘서, 채굴권 입찰을 포기하게 했다.

그때에는 크게 한 건 올렸다고 여겼고 트리탄에게 칭찬도 받았지만, 요빅이 300톤의 금을 싸대는 바람에 괜한 돈지랄이 되고 말았다.

드래곤의 설계자 - 찰스는 굿데이의 딥루트 포지션을 공략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숏커버링해야 했다.

키노시타와 찰스는 굿데이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들의 주군 트리탄이 사라졌을 때, 둘은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트리탄은 준에게 엉겼다가 묻혔다고.

그들은 절대 준을 건들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준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선데이의 랜달 회장 지시로 굿데이에 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솔루션이 있습니다. 해적과 약탈자들을 컨트롤 할 수 있죠. 세상은 요빅 생태계에 놀랐지만, 그 생태계의 보안이 형편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메피스토, 키노시타가 준과 에바에게 말했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였다.

에바는 키노시타를 볼 때마다 아툰파 식당의 감자튀김이 생각났다. 키노시타에게 받은 돈으로 맘껏 사 먹었던 기억이 나서였다.

“조건은요?”

에바가 묻자, 찰스와 키노시타는 서로 눈치를 봤다.

마녀 히파티아가, 에바의 욕으로, 뇌출혈로 숨진 사실은 능력자 세계에서 유명한 일화였다.

그리고 능력자 세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준은 파괴의 군주 트리탄을 묻었을 것이다.

에바와 준 앞에서 굿데이의 지분을 요구하는 발언을 한다는 건, 욕먹고 뇌출혈로 쓰러져서 논스톱으로 땅에 묻힌다는 뜻이었다.

“굿데이의 지분입니다.”

찰스가 기어이 말했다. 그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양손을 비벼 빌었다.

에바의 왼쪽 눈썹이 올라가자, 찰스의 손동작이 더 빨라졌다. 찰스가 팔꿈치로 키노시타의 옆구리를 찌르자, 키노시타도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 말을 하려 여길 왔나?”

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네. 선데이 회장님의 지시였습니다.”

“굿데이는 요빅 독점 기업이라서, 독점법 위반으로 조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선데이에게 지분을 넘기면, 독점법 위반도 피할 수 있습니다.”

“선데이의 마케팅 능력과 굿데이의 기술력이 합쳐지면 탄력계수 3.8 이상의 시너지를 얻습니다.”

찰스와 키노시타는 절박하게 지분 인수인계의 타당성을 노래했다. 그 둘은 랜달 회장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었다. 노래와 감성이 따로 놀았다.

노랫말은 랜달의 작사였지만, 음악은 살려달라는 원초적 아우성이었다.

에바에게 깨달음의 순간이 왔다.

모든 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아라비아 해의 요빅을 왜 공격했는지 확실해졌다.

그것은 굿데이의 지분을 내놓으라는 협박이었다.

요빅 장사를 하려면 월세를 내라는 본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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