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엔진-1 >
소코트라 섬 사람들은 북쪽 하늘에서 회색 버섯이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슈퍼셀로 불리는 메조 사이클론이었다.
연꽃처럼 아름다웠다.
더위를 날리는 기분 좋은 찬바람이 희망찬 미래를 노래하는 듯 했다.
많은 이들이 해변으로 나와 슈퍼셀을 감상했다.
아라비아 기상청은 단발성 뇌운으로 진단하고, 최대 3시간의 수명을 가졌다고 발표했다.
교과서적인 분석이었다.
아라비아 해의 진기한 슈퍼셀은 항상 그랬다.
멋지게 나타났다가, 30분에서 3시간 이내에 홀연히 사라졌다.
슈퍼셀은 섬에 상륙하기 전에 사라질 운명이었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굿데이의 오픈 데이터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라비아 해에 관한 불길한 예언은 없었다.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그 정도면 맘 놓고 풍경 즐기기에 충분했다.
거리는 구경꾼으로 넘쳐났다.
용피나무와 너무나도 닮은 슈퍼셀은 개인방송을 타고 실시간으로 방송되었다.
관련 이미지와 동영상이 십 분 만에 킹스덤 도서관 정보량을 넘어섰다.
한 시간이 지나자, 남아프리카 금융거래 단위와 맞먹는 파생 정보량이 발생했다.
세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 지옥을 보았다.
슈퍼셀은 세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더 강력하고 무자비한 사이클론으로 성장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소코트라 섬을 휩쓸었다.
총인구 5만 명 중 천 명이 숨졌고, 수백 척의 어선이 파손되거나, 주택가로 밀려 올라왔다.
지붕 대신 어선이 올라간 건물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된 사진 같았다.
샤바훈 - 귀신을 뜻하는 아랍어가 사이클론의 이름이 되었다.
샤바훈은 성경에 기록된 대홍수에 버금가는 최악의 사이클론이었다.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같은 육지를 비켜갔지만, 대륙붕에서 원유를 뽑아 올리던 시추탑을 차례차례 침몰시켰다.
블로우 아웃.
시추탑 파이프 섹션이 막혔고, 고정 플랫폼은 주저앉았다.
무지막지한 양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었다.
샤바훈이 내던진 비구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떨어졌고, 와디는 기름 강으로 변했다.
갑작스럽게 높아진 습도에 맞춰 깨어난 사막 개구리의 피부에 시커먼 기름이 달라붙었다.
피부호흡을 하는 개구리는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최악의 원유유출 사태 - 무거운 타르 성분은 바다로 가라앉고, 얇은 기름 막이 바다를 덮었다.
클로로필이 풍부했던 에메랄드 바다는 썩은 쓰레기 빛깔로 변했다.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는 이미 죽어 있었고, 기름 범벅된 갈매기들은 하늘을 날지 못했다.
물과 함께 증발된 기름은 구름이 되어 파키스탄에 기름 비를 뿌렸다.
검은 비는 저주였다.
새들과 짐승들이 쓰러졌고, 과수원과 농장들은 농사를 포기했다.
썩은 색깔의 기름 비는 농경지를 불모지로 만들었다.
일본 원폭에 맞먹는 환경 재앙이었다.
사람들은 굿데이의 의무 태만을 비난했다.
굿데이였다면, 충분히 재난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굿데이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했다.
침묵하는 것이었다.
굿데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불카누스 토끼굴에서 나오지 않았다.
멍청이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 - 침묵.
현존하는 기술로는 아라비아 해를 뒤덮은 석유를 걷어내지 못한다.
아무리 많은 유화제를 뿌려대도, 기름 차단막을 펼쳐도 일본열도의 다섯 배 면적에 달하는 피해 지역 복구는 불가능했다.
오만왕국의 카다르 왕자가 굿데이에 요빅을 주문하자, 굿데이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태도를 바꿨다.
바다 위의 플라스틱을 먹어치우는 요빅이라면, 기름 덩어리도 충분히 소화해낼 것이다.
그로 인해 얻어지는 금과 리튬 같은 광물과 탄산염과 암모늄은 보너스와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제만 해도 굿데이를 맹비난하던 사람들이 뇌수술을 받은 것처럼, 굿데이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
굿데이의 요빅 분양 사업은 순조로웠다.
요빅 설계도와 제작 방법을 모두 오픈했지만, 그것을 만들려면 불카누스와 같은 거대한 3D 프린터가 필요했고,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돌릴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어야 했다.
요빅은 기본적으로 자동화 시설로 만들어졌지만, 군데군데 인간의 손길이 필요했다.
인류 최강의 노가다 부대 - 아쿠타미가 그 일을 해냈다.
에바는, 굿데이의 새로운 둥지 토끼굴에서, ‘고난의 시절’을 주제로 발표했다.
고난의 시절 - 굿데이가 악의 축으로 내몰렸던 시절이었다.
“다람쥐와 즐겁게 뛰어놀고, 참새와 행복하게 지저귀는 늑대를 본 적 있어?”
직원들은 ‘어쩌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호세를 쳐다보았다. 아마존 출신인 호세라면 혹시 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호세는 심호흡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에바는 탁자를 탕! 치며 발표를 이어갔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다람쥐와 놀아줬어. 무시해야 할 참새들도 상대했지.
따지고 보면 그들은 우리의 먹잇감인데 ···. 고난의 시절은 필연적인 재난이었어. 다시는 그 똥 같은 일을 겪어서는 안 돼!”
그녀는 굿데이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분명히 깨달았다.
굿데이는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생존하는 초식동물이 아니었다.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탐구자였고, 맹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은빛 늑대였다.
“잡것들의 비위를 맞춰주다간, 속 터져서 늙어 죽겠어! 우리는 좀 더 외로워야 해.”
그녀의 결론이었다. - 외로워야 한다.
에바 - 굿데이 넘버2에 걸맞은 능력과 실력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녀는 거친 욕을 날려서, 개척자 트리탄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로켈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할 때에도, 하이힐을 벗고 욕을 날려 굴복시켰다.
호세와 아쿠타미 부대는 처음부터 말 잘 들어서, 욕할 필요 없었지만, 준에게 함부로 전화했던 리처드에겐 로봇팔이 고장 날 정도로 욕을 퍼부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노력에 의한 것인지, 준에게 기운을 받아서인지, 굿데이 2인자가 되면 원래 그렇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해냈다.
그녀는 마녀 히파티아를 상대하고, 극복하고, 죽음을 돌려주면서, 한계를 다시 극복했다.
로켈도 호세도 세이턴도 카이도, 그녀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에바에게 욕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발음이 격해질 때마다 직원들의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버릇처럼 코밑을 만져보았다. 혹시 코피를 흘리지 않을까? 걱정돼서였다.
“시온과 엠벨라 같은 조직이 비밀조직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래야 했기 때문이야! 앞으로 우리도 비밀조직처럼 ···.”
그녀는 준의 눈치를 살폈다. 준은 그녀만 눈치채도록 고개를 저었다. 준의 신호는 선명했다. - ‘그건 아닌 듯.’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신호가 너무 늦었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인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나더러 어쩌
라는 거야!’
“결론을 내리겠다.”
준이 타이밍 좋게 나섰다. 에바에게 쏠렸던, 시선과 귓구멍이 편안하게 준에게로 이동했다.
“하던 대로 한다.”
*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은 앙리 백작이었다.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지?”
날렵한 콧수염과 오팔로 만들어진 양복 단추, 그의 모습은 예전과 같았다.
“기후예측모형을 사고 싶어 하셨죠.”
“그땐 굿데이가 1인 기업이었지. 지금은 ···.”
앙리 백작은 널찍한 사무공간과 강이 보이는 전망을 둘러보았다.
“ ···. 많이 좋아졌군. 스웨덴 왕립학술원이 자네에게 큰 인상을 받았어. 가속도 수익배분 방식과 요빅 그리고 기후예측모형 세 가지 모두 노벨상 후보라네. 가속도 수익배분은 경제학상, 요빅은 물리학상, 기후예측모형은 ···.”
그는 이 부분이 가장 재밌다는 듯이 씽긋 웃었다.
“ ···. 평화상 후보라네. 기분이 어떤가?”
은근히 준의 흥분된 모습을 기대했지만, 준의 얼굴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만큼이나 고요했다.
“이얏호!” 라는 함성은 직원들의 것이었다.
노벨상 - 에바의 분석에 따라 비밀조직이 되었다면, 오지 않을 행운이었다.
에바가 가장 크게 환호했다. ‘역시 준이 진리야!’
그녀의 환호성에 앙리 백작이 얕은 기침을 했다.
‘방금 호흡이 엉켰는데 ···. 나이 탓인가?’
앙리 백작은 테이블 모서리를 부여잡고, 콜록거리며 호흡 리듬을 바로 잡았다.
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 비슷한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그저 고맙다. 라는 인사가 전부였다.
앙리 백작이 처음 겪는 무덤덤이었다.
그동안 그가 만났던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아했고, 졸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준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혹시 노벨상이 뭔지 모르나?”
“글로벌 버전의 ‘참 잘했어요.’ 죠.”
“그것보단 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
앙리 백작은 손가락으로 콧수염을 말았다.
“세상이 제가 한 일을 알고 있고, 그걸 좋게 평가한다는 뜻이죠.”
“자네 ···. 미친 듯이 겸손하군. 노벨상 후보라고! 노벨상! 자네에겐 노벨상이 의미가 없나?”
앙리 백작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노벨상 수상자가 노벨상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 노벨상의 권위가 떨어진다. 그래서 노벨상 위원회는 업적만큼이나 후보자의 성향도 고려해서 수상자를 선정했다.
“노벨상은 저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 제가 아주 나쁜 놈이
아니라는 뜻이죠.”
앙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준은 노벨상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 아쉽긴 해도 ···. 그 정도면 충분했다. 상대는 젊은 나이에 신비로운 업적을 남긴, 초절정 천재였다.
역사에 등장한 천재를 모두 합친 듯한 능력자였다. 노벨상을 깔보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항간에는 노벨상을 버블상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그룹도 있었다.
앙리 백작은 불카누스 1호에 관심이 많았고, 에바가 그를 안내했다.
“요빅은 환경보호를 뛰어넘는 환경재생의 선두주자죠. 금광이 들어서면 산과 들이 파헤쳐지고, 강물도 오염되어서 낚시도 할 수 없게 되죠. 인근 지역의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해요. 그곳을 떠나던가? 아니면 광부가 되는 거죠.”
에바는 요빅으로 노벨상을 받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앙리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사실 ···. 준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 굿데이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올랐습니다.”
에바는 앙리 백작이라는 인물이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해야 했다. 노벨 문학상이라니!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을 아십니까?”
“작년에 나온 책이잖아요.”
“스웨덴 학술원은 단테의 신곡을 능가하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과 우리 굿데이가 무슨 상관이죠?”
“정말 모르시는 것 같군요. 조사팀에 의하면 ‘지살법’의 저자는 굿데이 소속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준이 필명으로 쓴 책 같습니다.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도 노벨문학상을 받았죠.”
앙리 백작이 떠난 후 굿데이가 뒤집어졌다.
“준 회장! 네가 책을 썼어?”
“준 형아! 최고!”
“준짱 훌륭하십니다!”
“멍!”
준은 직원들에게 둘러싸였다.
“내가 아니다.”
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유진 악마의 홀로그램이 등장했다. 호빵 모자에 프랑스 작가의 롱코트 차림이었다.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을 네가 썼다고?”
에바는 침을 삼켰다.
“어렵지 않았어요. 지옥 생태계에서 겪은 일이었거든요.”
“굉장해!”
“준짱은 아셨습니까?”
“그럼요. 준느님은 알고 계셨죠.”
유진 악마는 도도한 표정으로 기쁨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걸 알았을 때, 준 회장이 뭐라고 했어?”
에바가 묻자, 유진 악마의 표정이 살며시 수그러들었다.
“그래! 준짱이 뭐라고 하셨나요?”
“나도 궁금해 준 형아가 뭐랬어?”
“멍멍멍!”
유진 악마는 잠깐 준의 눈치를 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고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뭐라고?”
에바가 되묻자, 유진 악마는 신경질 섞인 뉘앙스로 톤을 높였다.
“타자기보다 낫대!”
< 파라엔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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