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엠벨라-9 >
준은 굿데이를 킹스덤에 두는 조건으로 학부생활을 면제받았다.
굿데이는 수행평가보고서이자 이수과목이었고, 미래의 졸업논문이었다.
킹스덤 대학은 준과 굿데이를 잡아둘 수 있어서 좋았다.
준도 손해는 아니었다.
킹스덤이라는 울타리와 간판은 굿데이를 돋보이게 했고, 학생 벤처 지원법에 따라 세금 혜택도 받았다.
킹스덤 버전의 윈윈 게임이었지만, 언론에 알려지면서 특혜 시비가 일었다.
“특혜가 아니라, 특별 케이스죠.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데스먼드 학과장은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갔다. 그의 앞에 있는 영국인 기자는 스티브 교수를 인터뷰했었다. 기자의 이름은 닐슨 퍼거슨이었다.
닐슨은 ‘안티 굿데이’를 인생 목표로 삼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 세상에 굿데이라는 병균이 생겼고, 그 병균을 치료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전에도 킹스덤 응용통계학과에서 이런 일이 있었나요?”
“연극영화과에서는 흔하죠. 유명 배우가 학교에 입학하면, 스케줄에 따라 강의를 빼주고, 영화 출연 내용을 수행평가보고서로 받죠. 대학 생활이라는 게,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배움을 실천하는 게 우선이죠. 제가 교수이긴 해도, 결강하고 시위에 동참한 적도 많습니다.”
데스먼드 학과장은 진땀을 뺐다. 학칙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었고, 법률팀이 검토했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굿데이와 관련된 사건은 무조건 의심하고 비판하는 게 유행이었다.
“교수님은 헬하운드 시즌에 얼마나 버셨죠?”
“합법적인 투자였습니다.”
“누가 뭐랬나요?”
닐슨은 코웃음 쳤는데, 데스먼드가 번 돈의 액수를 아는 눈치였다.
준에게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은 교수가 굿데이로 큰돈을 벌었다.
합법적이었다고 해도, 악랄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대가성 시비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 것이다.
데스먼드는 굿데이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고, 굿데이 덕분에 킹스덤 대학과 오랜지 시티가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굿데이와 한패로 엮여서 개고생할 게 뻔했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시위에 자주 동참했지만, 지금 입을 잘못 놀렸다간, 시위대의 타깃이 된다.
그의 인생철학은 ‘소나기는 피해라!’ 였다.
데스먼드는 침묵의 우산을 펼쳤다.
“교수님, 침묵이 능사가 아닙니다. 준과 굿데이에 대해서 잘 아시죠? 소스를 주시면 교수님의 이름이 기사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소스라는 게?”
“기사를 맛나게 해주는 거죠. 준에 대해 하실 말씀 없으세요? 예를 들면 가속도 수익배분 방식은 어떠세요? 빈부의 격차를 줄여준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나친 불로소득이라는 해석도 있죠. 굿데이의 기후예측모형은 어떤가요? 스티브 교수님은 최악의 비대칭 정보 게임이라고 진단하셨죠. 동의하십니까?”
“···. 동의합니다.”
“굿데이가 천문대를 갖게 된 과정은 어떤가요? 굿데이의 압력이 있었나요?”
“굿데이에게 천문대를 준 것은, 굿데이를 잃고 싶지 않아서죠. 그 당시엔 다른 명문대학교에서 준을 스카우트하려 했고, 준을 빼앗기는 것은 크나큰 손해였죠.”
“제가 원하는 맛이 아니네요. 맛을 내려면, 준이 주인공이어야 하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준이 다른 대학교로 편입하려는 페이크를 써서, 킹스덤을 압박한 겁니다.”
“관점에 따라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요빅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류 공공의 자원인 바다를 굿데이가 독식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
“그건 제 전공이 아니라서 ···.”
“교수님. 익명을 위한 초지일관 부탁합니다.”
데스먼드는 인생철학에 따라 초지일관했다. 굿데이를 돕는 것보다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
법률적인 문제는 스탠리가 틀어막았지만, 자발적인 시위까지 차단하진 못했다.
킹스덤 대학교와 중앙도서관 앞에는 시위대가 푯말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학생들과 사람들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준의 맘을 빼앗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던 ‘번호들’도 은근슬쩍 꼬리를 감췄다.
줄리아와 몇 명의 최정예 번호가 남았지만, 준이 도서관에 오는 날이 드문드문해졌다.
준의 집 앞에서 시위대가 텐트를 치고, 농성했다.
블루 스트릿 입주자 협의회는 준에게 여행을 떠나거나 이사 갈 것을 권했다.
굿데이의 둥지였던 골프공은 킹스덤이 다시 가져갔다.
준의 육체 능력이라면, 시위대의 눈을 피해서 집과 도서관을 오갈 수 있었지만, 준은 그런 사치가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시위대를 피해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보다, 시위대를 연구하는 게 더 끌렸다.
이유가 어쨌든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기회였다.
에바는 오랜만에 악어 불륜 천국으로 왔다. 처음 왔을 때에는 진창길로 그녀가 아끼던 람보르기니가 흙탕물을 뒤집어썼지만, 지금은 기간트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까지 뻗어 있었다.
불카누스 1호 - 창고형 3D 프린터.
불카누스에 투입된 자본은 120층 빌딩을 세우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이곳에서 요빅에 필요한 여러 장비가 만들어졌다.
불카누스와 활주로 사이에는 격납고 타입의 건물이 들어섰다.
준이 굿데이의 둥지로 삼으려고 했던 곳이었다.
강 쪽에서 개구리와 홍학의 짝짓기 노랫소리가 들렸지만, 한가하고 느긋한 풍경이었다.
반경 20km가 모두 굿데이의 사유지였다.
허가 없이는 시위대와 기자들도 출입할 수 없다.
에바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감탄했다.
‘준 회장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
격납고가 그 증거였다. 격납고 안에는 사무용 가구와 숙소 그리고 유진 악마의 옷장이라고 할 수 있는 DNA 컴퓨터가 있었다.
“에바 누나! 토끼굴에 잘 오셨어요!”
먼저 와 있던 카이가 반겼다. 들뜬 모습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준 형아가 숙제 검사한대요.”
“숙제라니?”
“엠벨라 족이 살담을 죽인 이유 말이에요.”
“그건 ···. 히파티아가 직접 말했잖아. 필요 없어졌다고.”
“누나는 변호사 말을 믿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 목숨 걸고 알아낸 거야.”
“그 목숨 얼마나 남았죠?”
“짧아도 하루 정도 ···.”
“하루가 지나면 뇌동맥이 터지는 거죠?”
“어째 반응이 걱정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거 같다.”
“이해해주세요. 제 뇌가 도파민계라서 그래요.”
토끼굴의 컨퍼런스 룸은 백악관의 작전본부에 버금가는 보안 수준을 유지했다.
감청이나 해킹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준과 굿데이의 모든 직원이 자리했다. 세이턴에겐 전용 깔개가 제공되었다.
“이번 숙제는 로켈 아저씨와 에바 누나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리고 이 자리엔 없지만, 리처드 아저씨도 도와주셨어요.”
에어 스크린에는 시체들의 숲 사진이 나왔다.
“차라투스트는 죽음은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말했죠. 우리가 엠벨라 족을 만나게 된 계기가 바로 시체들의 숲이었습니다.”
카이는 과장된 손짓과 말투로 발표를 시작했다.
요빅은 준이 모든 설계를 끝내고 카이에게 넘겨준 일감이었지만, ‘살담은 왜 죽었나!’라는 주제 탐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이가 들쑤셔야 하는 작업이었다.
“길다. 요점만 말해라.”
“준 형아. 참고 들어요.”
카이는 턱을 쳐들었다. 정말 열심히 해온 숙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준의 평가보다는 숙제 그 자체가 더 중요했다.
화면이 바꾸면서 뇌혈관분포도가 나타났다.
“살담은 뇌동맥 파열로 숨졌죠. 뇌동맥은 수도꼭지로 써도 될 정도로 튼튼한 혈관이에요. 야수 타입의 강화인간의 뇌혈관은 자동차 타이어로 쓸 수 있는 정도죠. 뇌동맥이 터질 정도의 충격이라면, 뇌 모세혈관과 정맥도 걸레가 되어야 하는데 ···.”
화면이 바꾸면서, 살담의 부검 사진이 나왔다. 머리가 열린 그의 모습은 시체들의 숲에서 나온 희생자처럼 보였다.
그의 뇌는 초코릿 시럽 같은 핏덩이로 찌들어 있었다.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모세혈관 손상이 거의 없어요. 마치 바늘로 찔린 것처럼 뇌동맥만 파열됐죠.”
“저기 말 끊어서 미안한데 ···. 살해수법은 히파티아의 뇌동맥 파열 주파수라고, 준 회장님이 말했잖아. 일렉나이프와 비슷하다고도 했고 ···.”
호세였다. 그는 뇌동맥 파열 주파수가 뭔지도 모르고, 일렉나이프의 원리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설명이 반복되는 걸 원치 않았다.
“길다.”
준이 추임새를 넣듯이 끼어들었다.
카이는 도움을 청하듯이 다른 사람을 보았다.
에바, 로켈, 디아나 모두 카이를 외면했다.
심지어 세이턴까지 하품했다.
“결론 ···. 살담은 엠벨라 족의 일원이었고, 취미로 연쇄살인을 저질렀으며, 시체들의 숲을 만들었다. 그가 경찰에 꼬리를 잡힌 이유는 유진 악마가 지리 정보 프로필이 결정적이었고, 이 사실을 알아낸 살담은 준 형아를 해치려 했지만, 로켈 아저씨에게 개 털렸다.”
카이는 이정도면 됐겠지 싶었지만, 준은 졸린 눈빛으로 더 빨리하라고 채근했다.
“준 형아는 좋은 선생님이 아닌 거 같아. 차라투스트는 교육의 반은 기다리는 거라고 했어!”
“너도 차라투스트도 말 많다 ···. 5분 준다.”
준은 계속해서 카이를 몰아붙였다.
경찰 부검 리포트를 참고할 정도의 고등학생을 기다려줄 이유가 없었다.
카이는 준비한 슬라이드를 건너뛰다가, 보라색 코트를 입은 여자 사진에서 멈췄다.
“마녀 히파티아입니다. 코엠 재단 소속으로 전자파 암살 기술을 가진 변호사죠. 학교에도 찾아왔는데, 손이 아주 따듯했어요. 전자레인지처럼 손에서 마이크로파가 나오는 거 같아요. 누나의 손등을 보면 ···.”
히파티아 손등에 박힌 루비가 확대되었다.
“스펙트럼 분석기 결과 루비처럼 보이는 단백질이었습니다. 생체형 주파수 발생 장치죠. 로켈 아저씨가 도와줘서 엠벨라 족 계보를 구했는데, 강화인간 기술을 만든 시초자가 시작했다고 해요. 시초자의 이름은 코엠인데, 아직 사진은 구하지 못했어요.”
“코엠은 신인류를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인체 강화 기술을 개발했죠. 트리탄에게 이식된 강화능력도 그의 작품이고요. 인간을 더 강하게 하는 목적은 이뤘지만, 그만큼 더 악해졌습니다. 코엠은 강화인간이 통치하는 세상을 꿈꾸죠. 엠벨라 족은 코엠의 꿈을 이루기 위한 특수 조직으로 보입니다. 히파티아가 살담을 죽이고 그 시체를 경찰이 찾도록 놔둔 것은, 경찰의 엠벨라 족 추적을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살담이 죽으면서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죠. 히파티아가 굿데이를 흔들고 공신력을 떨어트리는 것도, 엠벨라 족을 보호하기 위함이죠.”
로켈이 불쑥 끼어들었다. 카이는 황당한 표정으로 로켈을 쳐다보았다.
“앞으로 고급 정보를 계속 다룰 텐데, 요점 정리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로켈은 길게 손을 뻗어서 카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에바 누나가 히파티아를 만났어요.”
세이턴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에바에게로 쏠렸다.
“히파티아는 기회를 놓칠 여자가 아닙니다. 분명히 수를 썼을 텐데 ···.”
“당연하죠. 그년이 내 머릿속에 뇌출혈 주파수를 박아놨어요. 이제 하루 남았어요.”
“하루 남은 걸 어떻게 아셨죠?”
“그년을 만나기 전에, 그년을 만나고 나서 죽은 사람들을 조사했어요. 최소 이틀에서 일주일 사이에 뇌출혈을 일으켰죠. 어제 만났으니깐, 최소 하루 남은 거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지금 빨리 ···.”
로켈은 이렇게 말하면서, 준짱을 보았다.
일렉나이프로 숨이 끊어진 트리탄을 일렉나이프로 되살렸던 준짱이었다. 결국, 준짱이 직접 트리탄을 치웠지만, 뇌출혈 주파수의 원리가 일렉나이프와 비슷하다면, 에바를 살릴 기회가 넘치도록 충분했다.
“에바.”
“네. 회장님.”
“정확하게 163시간 남았다.”
준의 눈에는 에바의 이마에 꽂힌 뇌출혈 주파수가 보였다. 검붉은 반디처럼 또렷한 이미지였다.
고밀도 지식생태계의 탐색능력은 적외선과 자외선 그리고 농축된 전자파도 볼 수 있었다.
*
히파티아는 수첩에서 에바의 이름을 지웠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에바가 죽으면 굿데이의 나머지 떨거지들이 복수하겠다고 설칠 것이다.
코엠 재단에 특급 강화인간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특급 강화인간이라면 로켈도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그녀는 디지털 수첩으로 로켈을 상대할 수 있는 특급 강화인간 리스트를 살폈다.
수첩에 전화벨 표시가 떴다.
‘누구지?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코엠 재단뿐인데?’
수신자 정보를 터치했지만, ‘정보 없음’이라는 메시지만 떠올랐다.
“누구시죠?”
“굿데이를 건드리는 자는 박살 나.”
“에바? 어떻게 너는 분명 ···.”
“너의 뇌출혈 주파수는 우리에게 안 통해.”
“그게 무슨 ···.”
“굿데이 직원들은 너의 뇌출혈보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지내고, 단련되어 있어.”
“거짓말! 넌 이미 죽었어. 이 통화는 미리 녹음한 거겠지.”
“녹음된 거 아니야. 나의 동료들은 평소에 내 욕을 들으며 지내지. 우리에겐 코피가 터질 정도의 격한 쌍욕으로 단련된 뇌혈관이 있어! 너의 잔기술은 통하지 않아.”
에바는 심호흡하며 히파티아 때문에 개고생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뭉쳐있는 뇌혈관 파열 농축 주파수가 생각의 흐름을 타고, 그녀의 혀끝으로 모였다.
의미 없는 각종 위원회의 조사, 별 거지 같은 시위대, 값싼 오해들 ···. 결정적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악어 불륜 천국.
“처방 들어간다. 귓구멍 잘 열고 들어!”
에바는 짧고 단단하고 예리한 욕을 날렸다.
히파티아의 머릿속에서 슈퍼노바가 번쩍였다.
쌍코피가 터졌지만, 망연자실 손쓰지 못했다. 에바의 욕에 응축된 에너지가 히파티아의 뇌혈관을 파열시킨 것이었다.
마녀 히파티아의 눈에 핏물이 흐르고, 입에서 피 거품이 보글거렸다.
에바는 마녀 히파티아를 능가했다. - 히파티아의 죽음이 그것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