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47화 (46/141)

< 엠벨라-6 >

변호사의 오피스 드레스는 보랏빛 깃털처럼 번들거렸다. 그녀 손 등에는 밝은 레드 컬러 루비가 박혔다.

그녀가 경찰서에 들어서자, 경찰들은 고양이 오줌 냄새를 맡은 생쥐처럼 움찔했다.

법조계 - 변호사는 법의 잣대를 갖고 노는 전문가였고, 기묘한 잣대로 마구 난도질하면, 어쩔 수 없이 경찰이 당하는 구조였다.

변호사의 실력이란, 멀쩡한 증거도 쓰레기로 만드는 기만술을 뜻했다.

먹이사슬로 보면, 경찰은 변호사의 밥이거나 먹이를 잡아오는 일꾼이었다.

카리 형사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는 많은 변호사를 상대하면서 진리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저것들은 기생충이다! 만날수록 손해다!’

회충, 편충, 요충, 십이지장충을 합친 것보다 더 악랄한 존재가 변호사였다. 카리 형사의 경험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변호사의 보라색 옷차림이 맘에 들지 않았다. 보라색은 중세시대부터 권력을 의미했다.

“살담이 고용하기에는 비싸 보이는 옷이군요.”

“그 발언은 의뢰인의 명예 훼손입니다.”

히파티아는 데이터 수첩을 꺼내서 시간과 장소 그리고 내용을 적어넣었다.

카리 형사는 ‘끄응’하며 이를 앙다물었다.

“자료를 모두 봤는데, 살인에 대한 증거는 없더군요. 무슨 근거로 의뢰인을 구속한 거죠?”

그녀는 매의 눈으로 카리 형사를 노려보았다. 하얀 손톱이 독수리 발톱 같았다.

히파티아는 경찰이 가장 아파하는 곳을 정확하게 찔렀다.

경찰이 가진 증거라곤, 지리 정보 프로필 같은 정황 증거뿐이었다. 경찰의 유일한 희망은 고강도 인터뷰로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히파티아는 경찰의 희망을 흔들고 뿌리 뽑으려고 온 것이었다.

“살담의 집 지하실에 감금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 말로는 ···.”

“자발적 감금이었습니다.”

“네?”

“그녀는 분위기에 휩쓸려 경찰이 듣고 싶은 말을 했어요. 이건 그녀가 예전 진술을 철회한다는 내용 증명서입니다.”

히파티아가 내민 증명서에는 공증인의 서명까지 있었다.

“살담은 특수기술을 이용해서, 탈출했습니다. 행정직 공무원의 손가락도 잘라갔죠.”

“처음부터 의뢰인을 연쇄살인범을 몰았더군요. 그 과정에서 의뢰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정신 이상을 일으켰습니다. 취조실을 빠져나간 것은 극심한 압박감에 따른 이상행동이었고, 손가락을 자른 것도 정신 착란 때문이죠. 여기 심리학 전문가의 의견서가 있어요.”

의견서는 고급 표지로 장식되어 있었다.

*

그녀는 구속복을 입고 강철 의자에 묶여 있는 살담을 보고, 데이터 수첩으로 사진을 찍었다.

“기자들이 좋아하겠네요.”

“저자는 위험인물입니다. 언제든 탈출할 수 있는 흉악범입니다.”

“뭐라고요? 입증된 범죄가 있나요? 무죄추정 원칙도 몰라요! 당장 풀어주세요!”

카리 형사는 히파티아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카리 형사를 내보내고, 의자에 앉았다.

살담은 악어처럼 입을 다문 채, 루비가 박혀 있는, 그녀의 손등을 보았다.

“엠벨라의 마녀 히파티아 ···.”

“경찰에게 꼬리를 잡히다니. 넌! 엠벨라의 수치야.”

“경찰이 아니야! 굿데이가 경찰을 도왔어. 굿데이엔 ···.”

“그림자 기사단의 로켈이 있지.”

“소문 이상이더군.”

“왜 시체를 뿌리고 다녔지?”

“재밌으니깐. 굿데이가 아니었다면 ···.”

“굿데이가 아니었어도, 넌 끝이야. 너의 취미는 용서받지 못해. 여자를 지하실에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다니.”

“잔인함은 힘의 원천이지. 자비가 내 몸에 깃들지 못하게 훈련한 거야. 어서 여기서 내보내 줘! 로켈에게 복수하겠어!”

“네 실력으론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로켈을 이기지 못해.”

그녀는 손등의 루비를 눌렀다.

루비는 검은색으로 변했다.

살담은 배를 얻어맞은 것처럼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지도자의 뜻이냐?”

*

요빅 생태계 ···. 바다의 폐플라스틱을 촉매로 바닷물에 녹아 있는 원소를 추출하는, 입자농축법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계.

굿데이의 홈페이지엔 세 척의 초대형 유조선을 개량해서 만든 요빅과 델타 아일랜드의 파노라마 사진이 있다.

델타 아일랜드에 야자수가 자랐다.

바다를 떠다니던 야자 열매가 아일랜드에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요빅은 거대한 지렁이였다. 황금 똥뿐만 아니라, 규산염과 암모늄 복합체도 열심히 싸질렀다.

바람에 날린 꽃가루와 씨앗들이 아일랜드에 뿌리를 내렸다.

굿데이는 요빅의 설계도와 작동 원리를 공개하고,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감탄과 찬양의 댓글도 많았지만, 요빅 때문에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망가졌다는 의견도 상당했다.

준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에바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그녀는 굿데이의 넘버 2로 여러 사람을 만나야 했고, 굿데이의 이미지는 그녀의 얼굴이기도 했다.

굿데이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고스란히 굿데이의 손해와 기회비용 상실로 이어진다.

“트럼프 타임지에서는 요빅 생태계를 신종 전염병처럼 묘사하는 심층 보도를 내보내고 있어.”

에바는 참고 자료로, 금값 폭락으로 투신 자살한 A씨의 사진을 보였다.

트럼프 타임지 1면에 실렸던 사진이었다.

“시시한 죽음이군.”

“요빅 생태계는 민감한 문제야. 예티와는 달라. 예티는 자연현상 예측이고, 우리는 아무 액션도 하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은 예티를 우리 탓으로 말하고 욕해.”

“그래서?”

“예티 때문에 욕먹는 건, 기후 예측 필요성을 설명하면,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요빅 생태계는 달라. 요빅은 전적으로 굿데이 책임이야. 설계 제조 운영 모두 굿데이의 작품이지. 트럼프 타임지의 여론 흐름을 차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공공의 적이 될 거야. 대중들에게 요빅의 정당성을 알려야 해.”

에바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그녀에겐 요빅의 에너지 효율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했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었고, 감정은 이미지로 활성화된다.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감정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나쁜 이미지가 박히면, 의미 없는 소모전을 끊임없이 치러야 했다. 생기는 것도 없이 피곤한 일이었다.

준은 멍청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건 시간 낭비다.

멍청이를 상대할 시간에, 차라리 개에게 말을 가르치겠다.

“세상을 경제에 맞추려는 멍청이에게 해줄 건 없어.”

“그 멍청이가 대통령이 되고, 상원의원이 되어 법을 만들어 ···. 멍청이가 맘에 들지 않겠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이야.”

“멍청이를 가르칠 시간에 아메바를 연구하겠어.”

“아메바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지만, 멍청이는 가발을 쓰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덤벼.”

에바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잠깐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미친개라고 생각해. 물리면 너만 손해야. 어려울 거 없어. 미친개가 다른 곳을 향해 짖게 하면 돼.”

“무리야. 멍청이들은 요빅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해. 그들은 시야가 너무 좁아. 경제가 세상에 맞춰 변해야 하는데 ···. 세상이 경제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고 믿지. 세상을 보려면 넓은 시야가 필요하지만, 경제만 보는 건 좁은 시야로도 충분하거든.”

“알겠어. 내가 알아서 할게.”

에바는 인맥을 통해서 캠페인을 시작했다.

굿데이 홈페이지에 알림창이 추가되었고, 다른 포털 사이트에도 광고창이 떴다.

내용은 간단했다.

‘멍청아! 눈을 떠라!’ - 그녀는 정직한 것이 효과적인 광고임을 잘 알았다.

*

굿데이는 모든 기상 이변을 예측하지 못했다.

파루시아와 헬하운드 예티 같은 큼직한 사건은 한 달 전부터 경고했지만, 홍콩을 습격한 폭우와 태국 바나나 농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우박은 건너뛰었다.

사람들은 굿데이를 비난했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이었다.

‘굿데이! 요즘 뭐 하고 있나. 전문가들은 말한다! 호주 시드니 가뭄은 예측 가능했다고!’

갑자기 이 세상 모든 불행이 굿데이의 음모이거나, 게으름 때문인 것처럼 그려졌다.

“준이 맞았어! 멍청이는 그냥 멍청이야. 눈을 뜨지 못해!”

에바는 엄청난 홍보비를 쏟아붓고도, 뭇매 맞는 굿데이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인맥들도 은근히 ‘굿데이 까기’ 놀이를 즐겼다.

굿데이는 요빅 생태계로 상품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고, 유진 악마가 착실하게 돈을 굴려서 현금 유동성도 풍부했고, 독보적인 기후예측 능력도 여전했지만 ···. 조롱거리가 되고 있었다.

“언론이 너무 노골적이야.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여자의 육감이었다.

‘엄청난 위기가 다가오고 있어!’

그녀는 넘버 2의 직권으로 비상사태를 선언하려 했지만, 로켈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로켈은 준짱과 에바 그리고 호세와 부하들을 골프공으로 불러들였다.

로켈 옆에는 디아나와 토그가 서 있었다.

“준 회장님, 무슨 일인지 알아?”

에바가 작은 목소리로 준에게 물었다.

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로켈은 출입구를 바라보다, 세이턴이 들어오자 시작했다.

“10분 전에 카리 형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살담이 죽었답니다. 사인은 뇌동맥 파열. 부검결과 자연사로 처리되었지만 ···. 살담은 엠벨라 족으로 야수 계열 강화인간입니다. 야수 계열의 심혈관과 뇌혈관은 고무호스보다 질깁니다. 그것들은 뇌동맥 파열로 죽지 않습니다.”

그는 사뭇 진지했지만, 공감을 얻진 못했다.

에바, 호세 그리고 카이는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부족했다.

“살담을 만나기 전까지는 엠벨라 족을 도시 괴담으로 생각했습니다. 도시 최강자가 되려는 미치광이들이 있다는 소문이었죠. 살담을 만나고 나서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엠벨라 족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에바 양은 최근 언론의 부정적인 노출로 걱정이 많았죠? 그 배후에 엠벨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기요!” 카이가 손을 높이 들었다. “살담은 왜 죽은 거예요?”

로켈이 손가락을 세우자, 디아나가 에어 스크린을 띄웠다.

보라색 옷을 입은 히파티아의 사진이 보였다.

“살담의 변호사입니다. 코엠 재단 소속이죠. 혹시 코엠 재단에 대해서 아시는 분 계신가요?”

에바가 손 빠르게 스마트 폰으로 검색했지만, 딱 떨어지는 검색 결과는 없었다.

“영국 정보부만큼 비밀스러운 조직이죠. 변호사 히파티아의 코드네임은 ‘마녀의 뇌출혈’입니다. 방법은 모르지만, 그녀의 타깃은 뇌출혈로 숨집니다. 살담은 뇌동맥 파열로 머리가 풍선처럼 커진 채 죽었습니다. 히파티아의 특기죠.”

“수법은 일렉나이프와 비슷할 거야. 머릿속에 뇌혈관과 공명하는 농축 주파수를 꽂겠지. 시간 함수로 매듭지어진 농축 주파수가 혈관을 진동시켜 출혈을 일으키지.”

준은 나름 쉽게 설명했지만, 모든 직원은 손톱 끝을 물었다. ‘방금 뭐였지? 분명 인간의 언어였는데 ···.’

“준짱. 엠벨라는 트리탄과 전혀 다른 상대입니다. 그들은 비밀스럽고, 은밀하며, 사회 곳곳에 기득권을 잡고 있습니다. 굿데이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들의 입김이 작용한 게 분명합니다. 여론몰이로 굿데이가 만신창이가 되면, 다음 단계는 요인암살입니다.”

“전쟁이군요.”

호세가 끼어들었다.

그는 준과 굿데이를 은인으로 여겼다.

갈라파고스에서 표류하던 그를 구해주었고, 샤나이슈카도 지켜주었다.

준과 굿데이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 바라던 바였다.

“저기요!” 카이가 다시 손을 들었다. “살담은 왜 죽인 거예요? 누가 죽였는지 말했지만, 이유는 말하지 않았어요.”

“그건 ···.”

로켈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을 모았지만,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준짱은 이럴 때, 통찰력을 발휘해서 속 시원하게 설명했는데 ···.

그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준짱을 쳐다보았다.

준짱이 응답했다.

“카이 ···.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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