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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 준-45화 (44/141)

< 엠벨라-4(유료시작입니다. 고맙습니다.) >

노랑 바탕 검은색 글자, 폴리스 테이프는 거미줄처럼 살담의 집 현관을 막았다.

카리 형사는 커터로 테이프를 가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살인사건 현장 특유의 냄새 - 공중 화장실 같은 냄새가 확 다가왔다.

몇 개의 특징적인 냄새는 과학수사대가 남겨 놓고 간, 냄새였다.

카리는 휘청거리며 거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창문이 그대로 보이는 방향이었다.

살담은 이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과연 생각이라는 걸 했을까?

카리 형사와 경찰 특공대가 살담 카메조의 집을 덮쳤을 때,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로켈이 전해준 ‘지리정보 분석 프로필’이 전부였다.

지리정보 분석 프로필 - 시체 위치와 상태 그리고 주변 지형을 토대로, 범인의 위치를 추정했다.

처음 살담을 보았을 때, 카리 형사는 잘못 찾아왔다고 여겼다. 살담은 침착했고, 선량했으면, 친절했다.

그는 혼자였지만, 집 안은 손님맞이 준비를 끝낸 것처럼 깔끔했다. 카리 형사는 살담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 아닐까? 싶었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카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특공대원이 지하실에 갇혀 있는 여자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살담을 놓쳤을 것이다.

지하실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지하 매설물 탐지기’의 도움으로 위치와 생명반응을 찾아냈다.

지하 매설물 탐지기는 시청에서 사용하던 싱크홀 탐지기를 개량한 제품이었다.

살담은 체포되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했고 여유가 넘쳤다. 그가 궁금해하던 것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 날 찾았소?”

카리 형사는 사건을 정리하면서,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시체는 널렸지만, 살담과 연결되는 단서와 증거는 없었다.

수사팀은 살담 카메조의 출생증명서도 확보하지 못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살담의 자백이 필요했다.

고강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살담이 특수부대에 지원했다가, 정신적인 이유로 탈락하고, 세계를 여행했다는 내용도 인터뷰를 통해 추려낸 것이었다.

살담과 관련된 공문서는 운전면허증이 전부였고, 그나마 위조된 것이었다.

살담 카메조라는 이름은 엠벨라 족 언어라고 했다. 살담의 진짜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살담의 지문, DNA, 얼굴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했지만, 들어맞는 데이터는 없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

제3 세계에서 넘어왔거나, 출생 자체가 등록되지 않았을 경우였다.

이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빈틈이 수두룩하다.

카리 형사는 바닥을 살폈다. 무거운 가구를 옮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즉흥적인 성격이거나, 호르몬 영향을 받는 여자들은 정기적으로 가구 배치를 바꾸면서, 바닥에 흔적을 남긴다.

바닥 흔적을 제대로 읽어내면, 여자의 생리주기를 맞출 수도 있다.

살담은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이 아니었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조용하고, 실용적이다.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하는 부류였다.

그런 사람이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이다니!

살인은 귀찮고, 성가시고, 뒤처리에 손이 많이 가는 범죄다. 실용적이지도 않고, 생기는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 살해 동기도 캐내지 못했다.

살담은 범행을 인정하는 자백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살담을 체포했을 때,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승승장구했는데, 지금은 ···.

머리가 아팠다.

‘이제 겨우 술이 깨는군.’

카리 형사는 조금씩 숙취에서 벗어나는 중이었다.

그는 살담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굿데이가 도와준 거였군! 너희 경찰은 날 잡지 못해.’

주황색 죄수복과 금속체인 수갑을 찬, 살담은 원하는 정보를 얻는 순간, 빠져나갔다. 되짚어보건대, 정보를 빼내려고 일부러 붙잡혔던 것이다.

살담이 맘만 먹었다면, 카리 형사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행정직 여직원의 손가락 하나만 챙겼고, 그 손가락을 굿데이로 보냈다.

‘어떤 의미일까? 놈은 어디에 있을까?’

‘달그닥’ 소리가 났다.

카리 형사는 조용히 소리 나는 곳을 노려보았다.

현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카리 형사님?”

카리는 상대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경찰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프란츠 회장님 밑에서 일하는 필코입니다.”

필코는 2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였다. 그는 어둠의 성자, 프란츠 부하였다. 주변에 몇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최소한 세 명이 몰려 다니는 것 같았다.

“여기서 뭐 해?”

카리의 목소리는 살짝 꼬였다. 술기운 탓이었다.

“살담이 오지 않을까? 지키는 중이었습니다.”

“경찰 일을 왜 너희가?”

“연쇄 살인범이잖아요. 우리도 도와야죠. 경찰은 ···.”

필코는 템포를 늦춰서, ‘경찰은 멍청하고 우리 때문에 바쁘잖아요.’라는 말을 생략했다.

“···. 하여튼 바쁘잖아요.”

“살담은 위험인물이야. 보거든, 경찰에 알려.”

“알겠습니다! 카리 형사님!”

카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경찰 고위층에서 프란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분명했다.

경찰과 프란츠의 콜라보레이션은 흔한 일이었다.

조직 똘마니들과 경찰 땅개들은 서로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지만, 경찰 고위층과 프란츠의 간부들은 생일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했다.

그렇고 그런 세상이었다.

질서를 유지하려면 빛과 어둠 두 가지 모두 필요했다.

어느 쪽이 빛이고 어둠인지는 상황에 따라 달랐다.

살담의 탈출로 경찰은 미련한 어둠이 되었다.

카리 형사가 살담의 집을 떠날 때,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리 형사라면? 살담을 놓친 멍청이잖아.’

‘맞아.’

‘술 냄새 쩔던데.’

‘술은 멍청이의 가장 친한 벗이거든.’

*

준의 집 앞에는 순찰차가 서 있었다.

살담은 굿데이의 정보 분석력 때문에 꼬리를 잡혔다. 그가 굿데이에게 앙갚음으로 하는 것은, 관성의 법칙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굿데이에 보낸 손가락의 의미도 곧 찾아가겠다는 뜻일 것이다.

순찰차에 있는 경찰은 열심히 거리를 노려보고, 드론과 보안 카메라의 영상을 점검했지만,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다.

8시간마다 교대를 했지만, 벌써 일주일째였다.

“내가 살담이면, 이 도시 떴다.”

그는 좌석을 최대한 뒤로 젖혀서, 수면 모드를 취했다.

“선배님, 제가 살담이라면 기필코 준을 잡아 죽일 겁니다.”

“연쇄살인범은 굉장히 냉철한 놈들이야. 준을 죽여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그 짓을 해? 한시 빨리 떠서, 안전한 곳에 숨는 게 먼저야.”

“어디로 숨어요? 굿데이가 금방 찾아낼 텐데요. 꼭꼭 숨으려면, 굿데이를 없애야죠.”

“후배 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

그는 젖혔던 의자를 다시 올리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거리를 노려보았다.

*

준은 창밖에 있는 순찰차를 보며 쟤들은 왜 저기 있는 걸까? 궁금했다.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제대로 하는 게 없군.’

준은 보보아 의자에 앉아 있는 살담과 창밖에 있는 순찰차를 번갈아 보았다.

왜 경찰 중에는 살담처럼 요령 좋은 녀석이 없는 걸까? 시대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올 때부터 살담은 소파에 앉아서 카카오 열매를 먹고 있었다.

쿠스코 카카오는 누네즈가 보낸 선물이었다.

외형적인 이유는 미다스 그룹으로부터 샤나이슈카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이유였지만, 속 내용은 ‘이거 먹고 힘내! 사위!’였다.

“이거 엄청 맛있군!”

살담은 마지막 남은 카카오를 입에 털어 넣었다.

준이 세이턴을 살리느라 집에 없는 동안, 살담은 냉장고 음식과 견과류를 맘껏 즐겼다.

준이 아껴 먹는 말린 열대과일도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통을 보아하니, 피자와 낙타 혹 볶음 같은 음식도 시켜먹은 것 같았다.

“살담, 몸 성하려면, 경찰서로 가서 자수해라.”

“분위기 파악 못 하는군. 여기에는 너와 나 단둘이다. 나는 지금 널 죽이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어.”

살담은 준을 향해 왼손을 펴 보였는데, 왼손의 손톱이 곰의 발톱처럼 스르르 길어졌다.

“엠벨라의 능력이다.”

그는 꽤 자랑스럽게 말했다. 준은 살담이 서커스에서 탈출한 게 아닐까? 싶었다.

첫 번째 쇼의 제목은 ‘야한 생각만 해도 손톱만 자라는 남자.’이었다.

“준! 네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살담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로쉐 보보아 테이블을 긁었다. 특수 열처리로, 칼로 긁어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는 최고급 테이블에 깊은 상처가 났다.

준은 비딱한 시선으로 살담을 쳐다보았다. 하는 짓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서커스에서 탈출한 게 아니라, 쫓겨난 거였어!’

두 번째 쇼의 제목은 ‘여자 앞에 서도 손톱만 자라는 남자’였다.

살담은 준의 지루한 반응이 의아했지만, 두려움과 공포의 색다른 표현이라고 여겼다.

‘내가 너무 심하게 했나?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나갔나? 겁은 그만 주고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

“나의 능력에 놀라겠지만, 이 정도는 엠벨라 족의 수련생에 불과해. 세계를 돌며 백 명을 죽여야만 하위 전사가 되지. 무작정 죽이는 건 너무 쉽고, 강한 상대를 골라 죽이되, 꼬리를 잡혀서는 안 되지. 경찰청을 빠져나오면서, 피의 파티를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지. 나는 99명을 죽였다. 마지막 한 명으로 프란츠를 택했는데, 어쩌면 너로 바꿔도 될 것 같아. 너의 의견은 어때?”

“강한 상대를 고른다고? 경찰이 너의 집 지하실에서 구해낸 여자는 뭐야? 원더우먼?”

“장난감이다. 잠깐 가지고 놀다 버리는 ···.”

“요 며칠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 경찰서로 가서 자수해라. 네가 있을 곳은 그곳이다.”

“웃긴 녀석! 너무 무서워서 미쳤군. 굿데이의 자료 분석 능력은 엠벨라에 위험하더군. 선택해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손에 죽든지, 엠벨라의 일족이 되어 새 삶을 살아라.”

준은 긴 소파에 누웠다.

“로켈.”

나지막하게 말하자,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의 작은 그림자 속에서 로켈이 나타났다.

“준짱 부르셨습니까?”

살담은 갑작스러운 로켈의 등장에 적잖게 놀랐다. 적외선을 보는 그의 동체시력으로도 로켈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치워라.”

“알겠습니다.”

로켈이 다가오자, 살담은 화들짝 놀라 의자 위로 올라갔다. 겁먹은 고양이 같았다.

“잠깐!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거지?”

살담은 양손을 펼쳤다. 손가락 열 개 모두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 있었다.

“네가 들어올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그랬다. 로켈은 살담이 준의 집에 숨어들던 순간부터 줄곧 살담을 감시했다.

살담만 아니었다면, 로켈은 트리탄이 준짱과 일대일로 만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도 안 돼!”

살담은 혀로 입안에 있는 어금니를 빼내서, 씹어댔다. 그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솔솔 새어나왔다.

“후!”

그가 입김을 내뿜었다. 오랜지 경찰본부를 탈출케 했던, 최면 가스의 능력이었다.

“오즈15 가스군. 그 가스의 면역은 너만 가진 게 아니야.”

“넌 도대체!”

“준짱께서 너를 그냥 두라고 하셨지. 여기서 내쫓으면 엄한 사람을 헤칠지도 모르고, 다시 잡으려면 여러모로 귀찮다 하셨다.”

“허풍떨지 마라! 엠벨라의 능력을 보여주겠다!”

살담은 양손을 휘저으며 로켈을 압박했지만, 로켈은 키 작은 신체 특징을 잘 살리며 가볍게 피했다.

준은 곤히 잠자고 있었다.

스피드, 파괴력 그리고 낮은 키!

모든 것에서 로켈이 한발 앞섰다.

살담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손톱은 모두 부러졌고, 이빨도 털리고, 갈비뼈와 골반도 나갔다.

로켈은 살담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현관 신발장으로 끌고 갔다.

때맞춰 현관 벨이 울렸다.

“카리 형삽니다. 급한 일이라고 해서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켈이 문을 열고 살담을 내던졌다.

“치워주세요. 아! 그리고 준짱께서 주무십니다. 사이렌은 울리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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