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43화 (42/141)

< 엠벨라-2 >

세이턴은 트리탄의 강한 냄새를 맡았다. - 달궈진 강철.

‘저 덩치 ···. 강하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크르릉 - ‘멈춰라! 이곳은 나의 영역! 너를 들일지 말지는 주인님이 판단하신다.’

트리탄이 몇 초만 기다렸어도, 준의 언질이 나왔겠지만, 트리탄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용의 주인이었다.

웨딩드레스 같은 털을 뒤집어쓴 짐승 따위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트리탄은 주저 없이 세이턴의 경계지역에 들어섰다.

그것이 방아쇠였다.

무조건 반사 - 세이턴은 몸을 날려 트리탄을 덮쳤다.

하얀 악마의 하얀 송곳니는 하얀 총탄이었다.

트리탄은 팔을 들어 세이턴을 막았다.

세이턴의 송곳니는 강철을 뚫는다.

벵갈 호랑이를 이겨 먹은 블러드 스틸도 단숨에 끝장내지 않았던가!

트리탄의 갑옷 같은 양복은 방탄 방검 효과가 있는 금속 섬유였고, 뚫리지 않았다. 그러나 강력한 송곳니는 옷감을 구겨 누르며, 트리탄의 피부 깊숙이 들어갔다.

“개마사지냐? 제대로 해봐라! 스포츠마사지도 너보다 낫다.”

트리탄은 요령 있게 손목을 돌려 세이턴의 멱살을 잡아,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세이턴의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하얀 악마 세이턴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엄청난 굴욕이었다.

크르릉 - 세이턴은 잇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힘을 주며 이를 갈았다.

송곳니 끝 부분에서 이뤄지는 초밀착 압박 - 옷이 뚫렸다.

서로 물리고 잡힌 형국이었다.

세이턴이 머리를 흔들자, 전동 드릴처럼 송곳니가 더 깊숙이 들어갔다.

조금 더 들어가면, 힘줄 사이에 있는 동맥을 끊는다!

트리탄은 한 손으로 세이턴의 코를 붙잡고, 엄지로 밀어냈다.

엄청난 힘이었다.

‘개새끼! 얼굴 뼈를 으깨주마!’

세이턴의 송곳니가 트리탄의 동맥에 닿고,

트리탄의 손아귀가 세이턴의 얼굴 뼈를 어긋 내려는 순간,

트리탄과 세이턴의 머릿속에서 준의 목소리가 울렸다.

‘멈춰라!’

뇌파 통신이었다.

‘동시에 놔라! 당장!!’

준의 뇌파는 세이턴과 트리탄의 뇌를 흔들었다. 둘 다 가벼운 현기증과 욕지기를 느꼈다.

세이턴은 깔끔하게 힘을 풀었지만, 트리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이턴의 목을 비틀었다.

‘두-드득’ 뼈가 엇갈리는 소리가 났다.

세이턴은 물에 젖은 옷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개가 사람을 물면 이렇게 되는 거다.”

그는 골프공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서자, 자동 스캔이 작동했다.

‘신원확인 프로그램 가동 ···. 얼굴 찾기 완료 ···. 트리탄 맥스 ···. 소속 불명 ···. 목적 불명 ···. 방문 목적을 말씀해주십시오.’

“잡소리 치우고,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부수겠다.”

트리탄의 기세는 프로그램에게도 통했다.

자기보호 본능이 살짝 코딩된 프로그램은 버그인 양, 물러섰다. 자기보호 본능은 프로그램 관리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굳건하게 닫혀 있던 출입문이 조용히 열렸다.

프로그램이 못 이긴 척 열어주지 않았다면, 출입문은 풍비박산 났을 게 뻔했다.

골프공 안은 박물관처럼 높고 넓었다. 눈에 띄는 것은 DNA 컴퓨터였다.

형광으로 빛나는 농축 DNA 실린더.

사무용 가구는 널찍하게, 드문드문 배치되었다. 작은 전시회장 분위기였다.

준 혼자였다. 소파에 반쯤 파묻혀, 에어 스크린을 넘기는 중이었다.

에어스크린에는 근육과 혈관 그리고 신경계가 환히 드러난 육체 조감도가 보였다.

황금 대홍수! 이른바 ‘골든 쓰나미’로 골드바 시장이 무너지며, 연쇄적으로 금값에 기댔던 채권, 주식, 파생 그리고 외환 시장까지 흔들렸다.

금융시장에서 황금은 고귀한 종교였다.

그 믿음이 깨지자, 투자자들은 겁에 질린 양 떼처럼 우왕좌왕했다. 투자자가 느끼는 공포를 지수화한 VIX는 한 시간에 45%씩 급등했다.

요빅 아마겟돈으로 불리는 경제 대혼란!

각국의 중앙은행이 보유한 황금 가치가 증발하면서, 하루는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내밀고, 다음날에는 디플레이션이 기지개를 켰다.

달의 중력이 바꾼 것처럼 세상이 뒤죽박죽이었다.

골든 카오스.

준은 파루시아와 헬하운드로 ‘킹스덤의 예언자’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골든 카오스는 그에게 새로운 호칭을 부여했다. - ‘리미트리스 준.’

리미트리스 준은 태평스러워 보였다.

현생 인류를 뛰어넘는 예지력과 창조력.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

트리탄이 크게 발을 내디뎠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이 진동했다.

전투기 활주로에 사용되는 지르코늄 바닥재는 충격을 견뎌냈다.

일반 바닥재나 대리석이었다면, 큰 구멍이 났을 것이다.

지르코늄 바닥재를 선택한 것은 준이었다.

준은 예전에 트리탄이 박치기로 바닥을 망가트린 것을 기억하고, 지르코늄 바닥재를 고집했다. 뛰어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었다.

“준! 내가 왔다.”

“파괴자라는 닉네임이 딱이네. 올 때마다 하나씩 망가져. 지난번에 문을 뜯어내더니, 이번에는 ···.”

“정당방위 ···. 똥개가 먼저 덤볐다.”

“경계영역 침범은 ‘나를 물어줘.’ 라는 뜻이야. 지난번에도 남 탓 쩔더니, 이젠 개 탓까지 하네.”

“믿을 수가 없군. 천하의 내가 개 한 마리를 놓고 입씨름을 하다니.”

트리탄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그는 두 번이나 준을 타겟팅 했고, 그 때마다 준은 놀라운 방법으로 벗어나서, 더 놀라운 방법으로 반격했다.

돌이켜 보면, 변명보다 감탄이 먼저 나올 정도로 완벽한 패배였다.

준은 트리탄을 용서치 않았지만, 끊어진 목숨을 다시 이어주기도 했다. 치우는 게 귀찮다는 이유였지만 ···. 생명의 은인이었다.

트리탄 - 생명의 은인을 상대로 다시 작전을 걸고, 패배했다.

쪽팔리고, 부끄럽고, 창피하고, 죽고 싶었다.

그가 준을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쪽팔림을 씻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

“세이턴이다.”

“뭐?”

“꼬리를 흔들며, 헥헥 소릴 냈지. 침에 점액질이 장난 아니었어.”

“뭔 개소리야!”

“요점 파악이 빠르군!”

“람세스의 연금술사를 아느냐?”

“직접 말하고 싶을 텐데, 계속하시지.”

“람세스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지. 쇠를 금으로 만든 연금술사가 왕을 찾아왔다. 왕은 연금술사를 의심했지만, 연금술사는 왕이 보는 앞에서 금을 만들었지. 아무런 속임수도 쓰지 않았어. 람세스가 어떻게 했을 것 같나?”

준은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너무 뻔한 스토리였다.

“람세스는 ···. 연금술사를 죽였다. 황금 만드는 비법이 새어나가면, 람세스가 가진 황금 가치가 떨어질 테니.” 트리탄은 목소리를 높였다. “준! 이 세상이 널 살려둘 거 같아? 이 세상의 수많은 람세스가 널 죽일 거다!”

그는 겉옷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청동 거인 같은 몸이었다.

준은 바닥에 떨어진 옷을 보며, 저 위치에 옷걸이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곳을 보면, 뭔가 허전했는데 ···. 옷걸이였구나.

“로베르가 보낸 암살자를 처치했지? 너 같은 책벌레가 어떻게 한 거지?” 트리탄은 의심의 눈길로 준을 살폈다. “그분들에게 ‘강화의 은혜’를 받았나?”

준은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트리탄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아무리 살펴봐도 준은 강화 인간이 아니었다.

강화인간 특유의 오라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

“뇌파 통신을 하던데 ···. 오리지널의 육체로 해냈단 말인가?”

직접 듣고, 보고, 느꼈지만, 믿을 수 없었다. 뇌파 통신은 강화 능력 중에서도 탑클레스였다. 트리탄도 이르지 못한 경지였다.

‘아! 저 싸가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어!’

“좋아! 직접 확인해주지.”

그는 럭비선수처럼 상체를 깊게 숙였다가, 손바닥으로 지면을 내리치며 날아올랐다.

성난 고릴라가 준을 덮쳤다.

최고급 카우치 소파가 잔털을 날리며 흩어졌다.

숱한 먼지 속에 ···. 준은 없다!

‘뭐지? 피할 시간이 없었는데.’

트리탄은 소파의 팔걸이 부분을 움켜잡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최고급 카우치 소파는 나무만으로 골격을 잡는다. 이음새에도 쇠못을 사용하지 않았다.

소파는 도살된 것처럼 해체되어 있었다.

트리탄은 온몸의 신경을 안테나처럼 곤두세우며, 준의 기척을 찾으려 했다.

느낌이 ···. 왔다!

‘뒤다!’

그는 재빨리 뒤돌았다.

준은 바로 코앞 거리였다. 혀를 내밀면 닿을 거리.

박치기든, 무릎이든, 배치기든 ···. 작은 동작으로 가격 가능한 거리.

쿵!

트리탄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 꿇었다.

그의 거리는 준의 거리이기도 했다.

“느리다.”

“그럴 리가 ···. 나는 개척자 레벨의 ···.”

그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강한 중력이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지독한 통증.

그의 몸은 통증을 위한 세레나데였다.

맞은 건지, 찔린 건지, 베인 건지 ···. 알 수 없지만 지독하게 아팠다.

준은 원 터치로 트리탄의 모든 신경을 진동하게 했다.

“으-윽!”

트리탄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고통은 준의 즐거움일 것이다. 더는 준을 즐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귀밑으로 동맥이 팔딱거렸다.

준이 손끝으로 동맥을 짚으려 하자, 트리탄이 꿈틀거렸다.

“기다려! 내가 졌다. 준! 나를 써라! 나는 개척자 레벨의 능력자다! 네가 모르는 세상의 신비를 알고 있다! 리미트리스 준! 너를 섬기겠다. 이곳에 온 것은, 내 능력을 보이고, 너와 함께 일하기 위함이었어!!!”

“넌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어. 오히려 내 명령을 따른 세이턴의 목뼈를 비틀었지.”

“람세스의 연금술사를 기억해라! 나는 너를 지켜줄 수 있다!”

“연금술사가 죽은 건 ···. 황금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람세스를 찾아갔기 때문이야. 그가 홀로 섰다면, 죽지 않았어. 나는 홀로서겠다.”

준은 트리탄을 받아줄 수 없었다.

지난번에 문을 부수고, 천정을 뜯고, 바닥을 망가트리고, 꼴사납게 부하에게 죽임이나 당하고 ···. 시체 치우는 게 귀찮아서 살려서 내보냈더니 ···. 다시 돌아와서 하는 짓이 개를 잡고 소파를 박살 내? 그리고 한다는 소리가 '나를 보호하겠다고?' 뭐 이런 ···.

“귀찮지만 ···.” 살짝 손해 보는 느낌이었지만, 손끝을 트리탄의 목 동맥에 갖다 댔다.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다. “···. 끝내자.”

트리탄은 검은 고통에 빨려 들어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 홀로서기! 잊고 있었다. 만일 나도 홀로 섰다면 ···.

트리탄의 생명은, 매듭이 풀리듯, 사라졌다.

남 탓, 개 탓의 종말이었다.

*

리베아티 섬 서쪽 해안 절벽에 있는 커다란 동굴, 탈로스의 고통.

해적 전설에 따르면 탈로스의 고통이 황금으로 가득 차면, 세상이 뒤바뀐다.

오로토칸은 그것을 ‘황금의 승리’라고 해석했다.

황금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황금률의 시작’이라고 ···. 탈로스의 고통을 채우려고 그 얼마나 노력했던가!

탈로스의 고통은 황금으로 가득 찼다. 가득 찬 정도가 아니라, 넘쳐 흐른다.

탈로스의 고통에만 넘쳐나는 게 아니라 ···. 동쪽 리조트 해변에서도 조개껍데기처럼 나돈다. 황금이 든 화장품, 치약, 자외선 차단제, 컵과 책표지까지 황금을 사용한다.

그는 가득 찬 탈로스의 고통을 보며, 헛웃음을 참아야 했다.

‘이게 다 똥이라니!’

푸른 눈동자에 서라운드 황금이 겹쳐지면서, 흐릿한 연두색으로 변했다.

“카보토 님의 전갈입니다.”

수행비서는 양손으로 조그마한 에어스크린이 떠받들었다.

카보토 - 일곱 자매의 기둥.

카보토는 트리탄을 오로토칸에게 보냈었다.

오로토칸은 공손하게 에어스크린을 넘겨받아, 눈높이 위로 모셨다.

“위대한 기둥이시여. 탈로스의 고통을 모두 채웠습니다.”

오로토칸은 무릎을 꿇으며, 고개 숙였다.

“전설대로 세상이 뒤바뀌었군. 소감이 어떤가?”

카보트는 방금 영화를 본 듯한 말투였다. 그에겐 금값 하락 따위는 삼류 영화와 비슷했다.

“취미를 바꿔야겠습니다. 다른 걸 모으겠습니다.”

“적응이 빠르군.”

“감사합니다. 황금은 영생의학 판타지늄에 필요했습니다. 생명의 만찬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오로토칸.”

“네. 기둥이시여.”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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