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엠벨라-1 >
시계열 분석처럼 아기자기한 챕터도 있지만, 돈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약육강식.
약자는 꼭꼭 숨어라! 강자에게 걸리면 먹힌다.
약자가 냄새를 풍긴다는 것은, 상처를 입고 약점이 드러났다는 뜻이었다.
굿데이 숏포지션에서는 노릿하게 잘 익은 고기 냄새가 났다.
굿데이의 숏포지션은 그야말로 약점투성이였다.
300톤의 황금을 결재해야 하는데, 보유한 황금은 없다.
포지션을 청산하려면 금을 사서 메워야 하는데, 살 돈도 없다.
청산일이 다가오고, 금값이 오르자, 냄새 맡은 투자자들이 계속 달려들었다.
만찬을 즐기자!
투자꾼들은 일치단결하여 야금야금 금값을 올리며, 굿데이 폭망에 베팅했다.
굿데이 숏포지션이 무너지면, 큰 수익을 내는 파생상품까지 나돌았다.
잘나가던 굿데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 올 것이 온 것이었다. 젊은 사업가가 망상에 빠져, 일을 그르치는 것은 흔하다.
기회가 오셨다. - 전 세계 전문 투자자들이 합심해서 굿데이를 엿 먹이는 분위기였다. 굿데이 왕따였고, 동네북이었고, 축제에 올리는 제물이었다.
“날씨는 예측해도, 시장은 예측할 수 없어. 그동안 젊은 놈이 너무 설쳤어.”
그들은 청산일 하루를 앞두고 샴페인을 터트렸다.
“돈 벌 기회를 준 멍청이를 위하여!”
“멍청이여! 영원 하라!”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샴페인 잔을 비웠을 때, 뉴욕 항에 델타 아일랜드 배가 들어왔다.
뉴욕거래소 디렉터와 상품시장 매니저가 물건을 확인했다. 보통은 페이퍼와 전산 거래로 거래가 이뤄진다.
오늘처럼 실물을 확인하는 일은 십수 년 만에 처음이었다.
300톤의 황금.
바다에서 방금 퍼올린, 비린내 섞인 싱싱한 황금이었다.
품질관리사는 보석 감별사와 보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무게를 달았다.
“300톤이 넘는군요.”
“남는 분량은 빨리 팔아주세요.”
에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
이상한 일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금이 많아졌는데, 금 시장이 몰락했다.
금의 몰락 - 금값은 투신자살하듯이 가파르게 떨어졌다. 금값을 끌어올렸던 롱포지션은 증거금을 채우지 못해서, 반대매매 당했다.
반대매매는 즉결처형과 같았다.
금융계는 금 시장을 중심으로 패닉에 빠졌다.
인류가 처음 겪는 황금 인플레이션!
리처드는 ‘황금 대홍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들뜬 얼굴로 준을 인터뷰했다.
“그러니깐 ···. 네 말을 정리할 게. 유조선 3척으로 요빅이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 그 괴물의 똥이 황금이라는 거지?”
준은 간단한 눈짓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 똥 때문에 경제에 피바람이 불고 있어. 금광 산업과 금 중개인들이 개박살 났지. 이런 파급효과는 예상했어.”
리처드는 보았다.
냉혹한 준의 눈동자를.
준은 알 바 아니라는 투였다.
“요빅을 만든 이유는?”
“내가 원했으니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넘쳐나는 쓰레기와 오래된 가능성이 아까웠다."
리처드는 이번 인터뷰가 베스트 뷰로 뜰 거로 확신했다.
세상 사람들은 준의 생각을 궁금해한다.
황금 대홍수의 주인공 ···. 경제 역사상 가장 포악한 괴물, 요빅을 만들어낸 장본인 ···. 그가 지금 모든 사건이 시작된 시발점을 밝히고 있다.
“그랬구나. 아까웠구나!"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누네즈 전 장관이 고맙다고 전해 달래. 샤나이슈카 채굴이 무산됐거든. 널 위한 원숭이 요리를 준비했다고, 꼭 놀러오래. 자, 이제 다시 시작할까? 넘쳐나는 쓰레기는 알겠는데, 오래된 가능성은 뭐야?”
“요빅 형태의 솔루션은 25년 전부터 가능했어. 그때 필요한 기술이 모두 등장했고, 바다에는 일본 영토의 오십 배 크기의 쓰레기 섬이 생기던 시절이었지. 왜 아무도 요빅을 만들지 않은 걸까? 그 당시 금값에 비하면 거의 공짜로 얻는 방법이었는데 ···. 그것은 게으름이야. 무능한 탐욕에 길들여진 거야. 게으르고, 무능하고, 너무 길들여져서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가지지 못했어. 나는 ···.”
준은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핵심은 단 하나였다.
“ ···. 가져야겠어.”
마땅한 것을 가지는 것 ···. 그것은 두려움과 공허감 위에 우뚝 선 남자의 권리였다.
“그러니깐 ···. 마땅히 가져야 해서, 가졌다는 거지. 이 세상에 그런 게 많아?"
“널렸지.”
*
트리탄과 찰스는 서로 손을 맞잡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경쾌하고 명쾌한 패배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짜릿한 절망이었다.
“저의 설계는 정말 완벽했습니다. 핫하하하!”
찰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이언트 너구리를 잡은 후로, 가장 완벽한 올가미였다. 굿데이는 분명히 걸렸다! 그리고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빠져나왔다. 그냥 빠져나온 것도 아니고 ···. 판 자체를 바꿔버렸다. 지각변동! 그 자체였다.
“그럼 그렇고말고! 완벽했어! 너무나 완벽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굿데이를 건들지 않았겠지. 핫하하하!”
트리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파괴의 군주, 용의 주인, 파괴자 ···. 그가 정신줄 놨다.
갑자기 찰스가 트리탄의 따귀를 때렸다.
“정신 차리십시오. 파괴의 군주여!”
찰스는 정색하고 트리탄을 노려보았다.
“너나 차려!”
트리탄도 찰스의 따귀를 때렸다.
그들은 미친 짓을 그만두고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도 망했다. 같은 패턴이었다. 괜히 굿데이를 건드려서 ···.
“일곱 자매가 도와줄까요?”
“도와주겠어? 우린 두 번이나 패배했어.”
“노후자금은 실버 드래곤이 죽었을 때, 다 날렸고 ···. 이제는 빚까지 졌습니다. 저 어떻게 살죠?”
“이 치욕을 당하고도 살 맘이 있냐? 그거 욕심이야. 어떻게 죽을지나 골라라.”
트리탄이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파괴의 군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죽으러 간다.”
*
카리 형사는 굿데이로 배달된 손가락을 직접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가 살담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손가락 절단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샤워라도 하고 가시죠. 아직 술 냄새가 ···.”
로켈도 카리 형사를 따라 일어섰다.
“서둘면 봉합할 수 있어요!”
“늦었습니다. 오븐으로 초벌구이했어요. 이미 다 죽은 세포입니다.”
“아!”
카리 형사는 가늘게 탄식했다.
로켈은 카리를 보면서, 딱하다고 생각했다.
카리는 경찰로 적당한 남자였다. 딱히 뛰어나진 않았지만, 큰 욕심도 없다.
똑똑한 범인이라면 카리의 수사망을 빠져나갈 수 있지만, 카리의 수사망에는 억울한 사람이 걸려들진 않는다. 로켈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살담 카메조 ···. 그 잡놈의 이름이 엠벨라 족의 언어라고 했죠?”
“엠벨라 족을 아십니까?”
“짐작이 가는 곳이 하나 있는데 ···.”
“어디에 있는 부족이죠? 아마존?”
“그런 곳에 사는 족속이 아닙니다. 아마존보다 더 위험한 곳을 누비고 다니죠 ···.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
“어떤 부족인지, 알려 주십시오.”
“확실치 않지만 ···. 도시 괴담 같은 겁니다. 이 세상에 가장 위험한 곳은 자동차가 달리는 도시이고 ···. 도시에서 생존기술을 갈고 닦는 그룹이 있다는 거죠.”
“도시 생존기술이라면,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 되는 건가요?”
“공무원이라 ···. 그것도 훌륭한 전략이지만 ···. 엠벨라 족이 추구하는 것은 ···. 법 위에 서는 겁니다. 초원의 사자가 교통신호를 지키진 않잖아요. 살담은 어떤 식으로 탈출했죠?”
“가짜 치아를 뽑아서, 독가스와 열쇠를 만들었죠.”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잡혔거나, 탈출 방법과 범행 방법이 같은 거겠군요.”
*
학교다 학교!
카이는 교실과 복도에서 학생들의 땀과 체취로 찌든 냄새를 듬뿍 마셨다.
‘오오! 달콤하다!’
임모디피아의 배경 악취에 비하면, 향수와 같았다.
따분했지만, 선생님의 수업도 좋았다.
수업 내용보다 수업 그 자체가 좋았다.
쉬는 시간에 또래들과 떠드는 것은 더 좋았다.
카이와 또래들은 물물교환하는 원시인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곳 사람들은 쓰레기를 줍지 않아도 살 수 있구나!’
다시 생각해도 놀라웠다.
카이는 학교의 슈퍼스타였다. 똑똑하고, 기발하고,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넘치는 에너지 ···. 비유컨대 ···. 발정 난 준이었다.
카이에게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카사노바 카이.
껄떡새 카이.
카이에게 관심 있는 여학생은 많았지만, 카이의 관심은 ···. 여선생님 레벨이었다.
그는 조금은 무모하고 철저하게 연상 취향이었다.
카이의 수컷 레이더는 디아나와 에바에게도 반응했다.
디아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은근히 즐겼지만, 레즈인 에바는 카이의 수컷 본능을 좋게 보지 않았다.
레즈 본능과 수컷 본능은 서로 상극이었다.
레즈 본능과 수컷 본능은 ···. 같은 먹잇감을 놓고 경쟁하는 두 마리의 육식동물이었다.
먹잇감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지만, 보통은 수컷 본능이 유리했다.
불리한 레즈 본능, 그래서 에바는 조급했다.
그녀는 라이벌 견제와 경쟁력 유지라는 차원에서 ···.
“카이 귓구멍을 활짝 열어.”
에바의 처방이 시작되었다.
“두개골이 다 닫히지도 않은 새끼가 여잘 넘봐! 고장 난 나침반처럼 여기저기 찔러대면, 인생이 침몰하는 거야! 네가 사랑을 알아? 사랑은 참는 거야! 달린 게 많을수록 더 많이 참아야지. 앞으로 네 물건의 이름은 인내의 육봉이야!”
그녀는 15세 등급에 맞춰서 욕을 날렸다. 임펙트 함량보다 교훈 함량이 월등히 높은 ‘교육용’이었다.
“복창한다! 네 물건이 뭐라고?”
“인내의 육봉!”
카이는 에바의 기세에 밀려, 얼떨결에 복창했다.
인내의 육봉 ···.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에바의 욕설에 카이의 물건이 겸허하게 수그러들었다. 콘크리트벽에 비벼도 굳건하던 놈이었는데 ···.
인내의 육봉, 인내의 육봉 ···. 그것은 마법 주문과도 같았다.
“누나 고마워요. 학교 가서 친구들과 같이 복창할게요.”
카이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리고 진심에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누나 물건의 이름은 뭐예요? 오른쪽 가슴 왼쪽 가슴 그리고 센터 ···. 모두 알려주세요.”
갑자기 눈앞에 초신성이 보였다.
- 노바 파워가 처방되었습니다. -
에바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 반지!!'
*
트리탄은 절망 앞에 도착했다. 무덤으로 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모양새도 무덤과 비슷했다.
굿데이의 골프공.
‘준의 통찰력이라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라고 생각한 순간,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악마 세이턴이었다.
‘- 합!’
트리탄은 양다리에 힘을 주고 가슴을 폈다. 자세를 고쳤을 뿐이었는데, 무겁게 깔리는 저음의 ‘펑’ 소리가 났다.
세이턴은 상대를 알아봤다.
2m 거구의 우람한 체격, 보통 놈이 아니다. 그리고 저 녀석은 방귀가 잦다.
“네 주인을 만나러 왔다. 주인도 알고 계실 거다.”
트리탄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죽음이 어울리는 화창한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