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41화 (40/141)

< 요빅-16 >

설계자 찰스는 숫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내용파악에 들어갔다.

굿데이 스피드킬은 현존 최고의 투자방법이었다. 추세감지 능력도 예언가 수준이었다.

찰스도 굿데이에 투자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굿데이는 작고 강하고 빠르다.

굿데이는 단기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일궈낸다.

장기투자가 단기투자보다 좋다고 하지만, 평균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변동성에 대응하는 알고리즘과 하루 수천 번 이상 거래할 수 있는 스피드가 있다면, 하루의 투자밀도는 십 년 장기투자와 맞먹는다.

장기투자는 요령 없는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랬던 굿데이가 딥루트 포지션이라니.’

내용파악이 끝날 무렵, 찰스는 올가미에 걸린 자이언트 너구리가 떠올랐다.

자이언트 너구리는 셰퍼드 두 마리를 찢어 죽일 정도로 포악하고 무서운 잡식동물이다.

너구리가 농장에 숨어들어 닭을 훔쳐가기 시작했다. 울타리를 고쳐도, 너구리는 재주껏 넘어오거나 기어들어왔다.

어린 찰스는 피아노 줄로 올가미를 만들어서, 닭장으로 들어가는 구멍에 설치했다.

다음 날 아침, 너구리가 올가미에 걸려 있었다. 올가미는 죄어들어 너구리의 가죽을 파고들었다.

너구리는 아직 살아 있었다. 찰스는 죽어가는 자이언트 너구리를 보면서, 말했다.

“너의 가죽으로 털옷을, 네 살로 고깃국을 만들 거야. 그리고 네 송곳니는 열쇠고리가 될 거야.”

너구리는 적개심을 보였지만, 점차 약해졌고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

찰스는 승리자였다. 피아노 줄 올가미는 승리의 도구였다.

올가미를 설치하는 것과 설계는 같다. 올가미에 걸리면, 그 무엇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번 설계는 그가 만든 올가미 중에서 최고였다.

찰스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굿데이가 딥루트 포지션에 박힌 이유를 알아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굿데이가 파산 상태라고?”

트리탄은 왼쪽 눈을 치켜떴다.

굿데이 회장 준은 집, 도서실, 사무실 트라이앵글의 라이프를 유지했다. 돈을 펑펑 쓰는 졸부가 아니었다. 그런 굿데이가 파산 상태라니?

“시설 투자에 돈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유조선 세 척도 사들이고, 빌딩 크기의 3D 프린터도 짓고 있습니다. 서태평양 망망대해에 섬도 만들었고요.”

“이유가 있을 텐데?”

“굿데이가 키울 애완동물을 만드는 거랍니다.”

“애완동물이라 ···. 일인 가족과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반려동물 관련 산업이 커지고 있어. 사업모형으로 나쁘지 않아.”

“준이 말한 애완동물은 ···. 유조선 개조입니다. 입자가속기와 같은 물건들을 왕창 사들여서, 유조선을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유조선에 이름도 지어줬어요. 요빅이라고.”

“요빅?”

“언어학자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럴듯한 뜻풀이는 없었습니다. 펙트는 이겁니다. 굿데이는 요빅에 돈을 너무 쏟아부어서, 굴릴 동전도 없습니다. 딥루트 포지션도 궁지에 몰린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꼴입니다. 포지션 조건은 ···.”

찰스는 이 부분이 가장 재밌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손을 비볐다.

“ ···. 300톤의 금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 조건을 내걸고 사방에서 돈을 퍼다 쓴 겁니다.”

“그러니깐 ···. 굿데이가 포지션을 청산하려면 ···. 꼼짝없이 황금 300톤을 내놔야 한다는 거지?”

“네! 굿데이는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황금을 미리 판 꼴입니다.”

“굿데이가 갚아야 할 게 돈이 아니라, 황금이라는 거지?”

“확실합니다.”

“음 ···.”

트리탄은 무엇을 해야 굿데이가 망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금 시장에 있는 황금을 모두 사들이거나 조건을 붙여서, 굿데이가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면 ···. 굿데이는 망하고 만다.

“유진 악마 아시죠?”

“그 빌어먹을 인공지능. 알다마다, 스피드킬의 암살자.”

“유진 악마는 굿데이 자산입니다. 굿데이가 망하면 빚잔치를 해야 하는데 ···. 유진 악마를 손에 넣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음 ···.”

황금 300톤에 박혀 있는 딥루트 포지션 ···.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굿데이다.

트리탄에겐 트라우마가 있었다. 굿데이에게 밟힌 걸 생각하면, 아직도 갈비뼈가 시렸다.

“메이저 리그에 다시 진출할 수 있습니다. 용 사냥꾼을 처단할 절호의 기횝니다. 정화의 불꽃을 생각하십시오.”

“찰스 ···. 시간을 다오.”

트리탄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그는 빈민가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힘이 좋고 덩치가 컸다. 많은 조직이 그를 스카우트하려 했다. 나쁜 짓도 많이 해봤다. 럭비선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세상!

그가 아무리 몸을 굴리고, 상대의 코를 무너트려도, 뚫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침대를 현금으로 가득 채워도 갈 수 없는 곳 - 상류층.

빈민가와 상류층의 격차는 결코, 좁혀지지 않았다.

상류층을 흉내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전쟁이나 터졌으면 좋겠군.’ - 이런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전쟁이 나서 세상이 바뀌면, 제대로 된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길거리 라이벌과 싸워야 하고, 상대 팀을 이겨야 하는 트리탄에겐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내가 치고받을 때, 상류층은 뭘 할까?”

상류층도 전쟁을 즐겼다. 그 전쟁의 이름은 금융투자였다.

트리탄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새로운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밑천을 모두 잃고, 공원에서 노숙하기도 했다.

그가 사뒀던 쓰레기 등급의 채권에서 대박이 터지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진짜 대박은 채권에서 나온다!’

자잘한 깨달음을 모아 만든, 파괴적 수익 창조 이론은 꽤 잘 통했다. 굿데이를 만나기 전까지, 그의 이론은 금융투자시장의 새로운 성배였다.

파괴자, 용의 주인, 파괴 군주 ···. 트리탄은 철제문을 종잇장처럼 찢는 힘자랑을 먼저 보였지만, 준에게 무릎 꿇고 머리까지 찧었다.

실버 드래곤을 살리기 위해, 금융투자의 왕이 평민에게 몸을 낮추었다.

“굿데이 ···. 준 ···.”

로베르가 보낸 암살자를 준이 처치했다지. 놈은 보통이 아니다. 어쩌면 시온이 준을 ‘강화’했을지도 모른다.

트리탄은 자신의 손을 펴보았다. 겉보기엔 보통 사람과 같았지만, 그의 몸에는 강화 세포가 깃들어 있다.

보통 인간보다 더 빠르고, 강하고, 영리하다.

손끝이 떨렸다.

“지금 내가 ···. 애송이를 두려워하는 건가?”

그는 가늘게 떨리는 손끝으로 찰스의 설계도를 펼쳤다.

완벽하다.

이 설계가 실패한다면 ···.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실패가 보이지 않았다.

이 설계를 버리는 건, 죄악이다.

설계가 성공하면, 잠든 용을 깨울 수 있다.

다시 용의 주인이 될 수 있다.

*

킹스덤 전체가 시끄러웠다.

킹스덤 경찰본부는 공보처를 통해, 살담 카메조의 탈출 소식을 알렸다.

언론을 통해 살담의 사진이 뿌려졌다.

비공개로 진행했던 ‘시체들의 숲’도 알려지고 말았다.

40명 넘게 죽인 연쇄 살인범이 거리를 돌아다니다니!

여자들은 패닉에 빠졌고, 남자들은 극도로 긴장했다.

여자들은 혼자 계단을 오르거나,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무서워했다 ···. 자연스럽게 ‘임시커플’이 늘어났다.

시체들의 숲과 살담 탈출 ···. 킹스덤 본부 창설 이래, 최악의 사건이었다.

카리 형사는 반쯤 취해있었다. 근무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심해요.”

그는 리큐드 잔을 내려놓았다. 사과 향이 나는 싸구려였다.

“카리 형사님. 직접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로켈은 카리 형사와 같은 술을 시켰지만, 입에 대진 않았다.

카리 형사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길로 로켈을 바라보았다.

로켈은 시체들의 숲을 찾아냈고, 살담을 잡을 수 있는 정보도 제공했다.

로켈이라면 ···. 굿데이라면 ···. 지금 살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카리 형사의 생각이 말풍선처럼 명확하게 보였다.

“놈은 굿데이가 수사를 도와준 걸 알고 있어요.”

“어떻게? 그건 제가 비공식적으로 ···.”

“제가 말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빚진 거라도 있었나요?”

“바텐더! 여기 한 잔 더!”

카리 형사는 화내지 못하고, 애꿎은 술만 더 시켰다.

그는 어리석음을 처형하듯이 원샷으로 마셨다.

술집 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왔다. 디아나였다.

로켈과 눈이 마주친 그녀는 가볍게 인사하고, 다가가 속삭였다.

“로켈 님 ···. 소포가 왔습니다.”

“왜 이렇게 은밀하게 말해? 분위기 묘해지잖아.”

“로켈 님 ···. 소포 안의 물건이 ···. 손가락입니다.”

*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샤나이슈카 지역의 광석이 금이 아니라, 황철석이라는 루머였다. 미다스 그룹이 채굴 일정을 늦추면서, 루머는 더 그럴듯해졌다.

누군가 금을 사들였다. 금값은 하루에 5%씩 치솟았다.

“까아악!”

유진 악마의 비명은 발정 난 까마귀 같았다.

거실에서 느긋하게 ‘뉴런 독서’를 하던 준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뉴런 독서 - 뇌세포, 뉴런 하나하나에 글자를 새겨 넣는 초고난이도 독서방식.

“준느님! 우리 망했어요!”

유진 악마는 준의 눈앞에 숫자를 들이댔다.

마이너스로 시작하는 아주 큰 숫자.

“뭐야? 우주의 나이?”

“오! 가엾은 나의 준느님! 일주일 후 우리가 갚아야 할 액수랍니다.”

“그거라면, 금으로 치고받기로 했잖아?”

“가지고 있는 게 없잖아요. 금 시장에서 사서 채워넣어야 하는데 ···. 요즘 금값 장난 아니에요. 저는 준느님이 포지션을 정해주길래 ···. 검증 작업 없이 숏포지션에 다이빙했는데 ···. 준느님은 맨날 책만 보고 ···.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나쁘다.”

유진 악마는 칭얼거렸다.

‘뭐지? 충격받아서 지능이 퇴행했나?’

준은 책을 덮었다. 유진의 홀로그램은 어깨를 떨고 있었다.

“포지션 청산 타임이 얼마나 남았다고?”

“일주일이요. 훌쩍.”

“왜 울어?”

“그럼 제가 웃었으면 좋겠어요.”

“응.”

“좋아요! 미친년 웃음 모드 발동!”

까르르 깍깍 끼익 끼익 ···.

“미친년 모드 중지!”

유진 악마는 찍소리 내며 침묵했다. 그녀의 홀로그램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1.5 솔라급 연산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었다. ‘감정 지능’ 획득은 당연했다.

눈물의 의미 ···.

“네가 돈맛을 알았구나.”

“준느님! 우리 쫄딱 망하는 거 아니죠?”

준은 한숨이 나왔다.

유진 악마는 초지능에 도달한 인공지능이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였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 거로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설계작업만 제대로 이해했어도, 오늘 같은 지랄은 없었을 것이다.

“유진.”

“네. 준느님!”

“너, 바보.”

*

바다에서 보는 밤하늘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밝았다.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쏟아지는 별빛들.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카이는 하늘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힘든 나날이었다.

어제 아침에는 수백 마리의 돌고래를 보았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요빅과 델타 아일랜드를 보며 노래했다.

‘바다의 청소부가 왔다!’

요빅의 입자 가속기가 느린 속도로 작동했다.

입자 가속기의 자기장은, 크릴새우를 잔뜩 먹은 수염고래 위장처럼, 수축 이완을 반복했다.

바다의 쓰레기가 모이는 트래쉬 포인트.

요빅은 바다 위를 떠도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해서, 소화효소로 사용했다.

바다의 풍부한 물 ···.

무한에 가까운 풍력과 태양 에너지 ···.

널려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

요빅은 말 그대로 바다를 소화했다.

생체 농축, 입자 농축과정을 거쳐서, 바다에 녹아 있는 미량원소들이 모였다.

불안정한 미량원소들은 나트륨염으로 모여졌다.

1리터의 바다에는 0.000001g의 금이 들어 있다.

요빅의 위장은 입자 가속기의 구조 자기장이었고, 소화효소는 바다 위의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나왔다.

바닷물이 요빅을 통과할 때마다, 델타 아일랜드에 탄산염과 나트륨염 그리고 암모늄이 차곡차곡 쌓였다.

암모늄은 공기 중의 질소에서 나온 것이었다.

요빅의 소화 프로그램은 특정 원소에 포인트를 맞출 수 있었다.

이번엔 금이었다.

충분한 금이 쌓이자, 델타 아일랜드 일부가 분리되었다. 분리된 운반선에는 300톤이 넘는 금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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