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빅-13 >
집, 도서관, 골프공 ···. 준의 트라이앵글.
준의 생활 궤도는 트라이앵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인공위성이 지구를 바라보듯이 준은 트라이앵글 궤도를 걸으며 세상을 관찰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다. 그리고 상상하고 창조한다.
그의 관찰 범위는 인간과 자동차를 벗어나, 벌레와 새 그리고 길고양이와 하늘까지 넓어졌다.
소립자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까지.
사람과 자동차가 오가는 길 - 트라이앵글 일부분은 노출을 뜻했다.
누구든 맘만 먹으면 준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준에겐 감히 다가갈 수 없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다.
공허감을 길들이고, 삶의 주인이 된 남자.
“오! 귀공자!”
체격 좋은 남자는 술병을 높이 쳐들었다.
온몸에서 짙은 술 냄새가 났다. 술을 마신 게 아니라, 술독에 빠졌다 나온 거 같았다.
“마셔!”
그가 준에게 술병을 들이밀었다. 준은 살짝 비켜가려 했지만, 남자가 팔을 펼쳐 길을 제대로 가로막았다.
“굿데이로 번 돈으로 샀지. 너도 마실 권리가 있어.”
권유보다는 강요에 가까운 압박.
남자의 찰진 근육은 전문적인 운동선수에서 볼 수 있는 종류였다.
자세와 걸음걸이를 보면 체조나 발레처럼 균형 잡힌 운동은 아니었다.
앞을 향하는 운동, 한 곳에 집중하는 운동 - 권투나 격투기 종류였다.
“굿데이 돈으로 혼자 술 마시는 게 심심해서 그래 ···.”
술병을 거듭 내밀던 남자는 말을 멈추고 앞을 노려보았다. 눈알이 앞으로 쏠리면서 그의 얼굴이 앞쪽으로 움직였다.
없다! 준이 안 보인다.
그는 뒤돌아보았다.
있다! 준이 저기 걸어간다.
어떻게 빠져나갔지. 분명 길을 제대로 틀어막았는데 ···.
‘내가 생각보다 많이 취했군.’
에라이! 그는 준을 향해 술병을 던졌다.
술병은 스프링클러처럼 사방으로 술을 뿌리며 날아갔다.
준은 방향을 살짝 틀어, 가로수를 방패막이 삼았다.
준에겐 술 한 방울 튀지 않았지만, 운 나쁘게 지나가던 사람들은 애꿎은 피해자가 되었다. 술병은 금속 파열음을 내며 깨졌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흩어졌다.
“이게 뭐야.”
길 가던 회사원이 짜증 냈다.
“어머!”
유리병 깨지는 소리에 놀란 여자가 소프라노 톤을 냈다.
술이 튄 것보다, 몸에 술 냄새가 묻은 것이 더 신경 쓰였다. 그녀들은 술주정뱅이를 경멸했다.
“이봐요! 지금 이게 뭐하시는 겁니까?”
정장 입은 회사원이 따지자, 주정뱅이는 냅다 주먹을 날렸다.
망설임 없는 스피드.
퍽!
펀치는 정확하게 턱에 꽂혔다. 회사원은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주정뱅이는 남녀평등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겁에 질린 여자에게도 펀치를 날렸다. 여자는 팔다리를 벌린 채 뻗었다. 치마를 입었기에 그 모습이 더 참담했다.
한 남자가 주정뱅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주정뱅이의 하이킥이 어깨를 내리찍었다. 도끼로 장작을 패는 기세였다.
분위기를 눈치챈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주정뱅이는 하이힐 때문에 뒤처진 여자 머리를 잡아챘다.
“살려주세요!”
겁에 질린 여자가 울먹였다. 여자의 두려움과 공포를 본 주정뱅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여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여자는 얼굴을 움켜쥐고 바닥을 굴렀다.
주정뱅이는 큰소리쳤다.
“이게 다 굿데이 때문이야! 굿데이의 돈이 술 먹였다!”
이게 다 굿데이 때문이다. - 유행어와 같았다.
굿데이는 헬하운드 시즌 ‘가속도 수익분배 방식’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놀라운 부를 안겨주었다.
그 파급효과는 땅값 집값만 올려놓은 게 아니었다. 혁명정부가 들어선 것처럼, 생활 방식도 바꿔버렸다.
돈 때문에 무언가를 하는 것은 답답하고 촌스러운 것이 되고 있었다.
다음 시즌에 1달러만 투자해도, 어마 무시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돈을 버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굿데이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가로수에 기댄, 준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되짚었다.
처음에는 ‘광기’가 앞을 가로막았다.
요령껏 피해 나왔지만, ‘폭력’이 길거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리석음’이 목소리를 높인다.
광기, 폭력, 어리석음 - 패망의 삼박자
주정뱅이는 유리조각으로 신음하는 여자 얼굴을 그으려 했다.
유리날이 여자 피부에 닿으려는 찰나, 몸이 굳었다.
유리날보다 더 날카로운 냉기!
주정뱅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는 준이 서 있었다. 주정뱅이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개자식! 도망친 줄 알았는데 ···.”
“뭐하냐?”
“내 이름을 새기려고, 이 여자도 누구에게 맞았는지 알아야 하잖아.”
지금 보니. 주정뱅이는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체격과 근육도 고퀄리티였다.
준을 알아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준과 주정뱅이를 에워쌌다. 그들은 준을 응원했다.
“준! 저 자식 손모가지를 분질러!”
“혼꾸멍내줘요!”
“다시는 술을 못 마시게 아구창을 날려요!”
“그냥 확 죽여버려요!”
“지옥으로 보내버려요!”
‘이런 게 대중심리라는 건가? ···. 소박하네.’
준은 원하는 만큼 주정뱅이를 개박살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범죄의 영역이 아니라, 법의 영역이었다.
몇 분 이내로 경찰이 올 것이다. 주정뱅이에게 손대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뒤를 따르는 법률적인 절차는 덧없이 지루하다.
“너 때문이야!”
주정뱅이의 눈에 핏발이 섰다. 분노와 원망의 상승 작용으로 혈압이 높아진 탓이었다.
그는 킥복싱 선수였다.
타이틀 전을 일주일 남기고, 굿데이의 수익금을 받았다. 처음에는 축하의 의미로 가볍게 한잔했다. 타이틀을 치러야 하는 날에는 술에 푹 쩔어 있었다.
술 냄새를 풍기는 - 일방적이고 무기력한 패배.
그는 모든 것을 굿데이와 준의 탓으로 돌렸다.
‘고작 그런 거냐?’
준은 눈을 부릅떴다.
주정뱅이는 자신도 모르게 킥복싱의 방어자세를 취했다. 수많은 시합을 해봤지만, 준과 같은 기세는 처음이었다.
거대한 용을 마주한 느낌.
주위 사람들도 느꼈다.
살기처럼 위협적이었고 ... 훨씬 더 무겁고 깊었다.
살기가 죽음을 노래한다면, 준의 기세는 죽음까지 씹어먹는 ···. 소멸이었다.
하늘의 구름은 방향을 바꾸었다. 지저귀던 새들이 침묵했고, 쓰레기를 뒤지던 고양이도 발을 뺐다.
화창하고 따듯한 날이었지만, 주정뱅이는 방어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스탠리!”
“아셨어요? 회장앙니임.”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스탠리가 어버버 웃었다.
스탠리 - 준의 초등학교 동창. 뼈대 있는 변호사 집안.
거짓을 진실로 제련하는 언변의 연금술사. 그의 정교한 거짓 논리는 진실보다 화려했고 설득력도 높았다.
준을 따라다녔던 건 아니었고, 우연의 일치로 만난 것뿐이었다.
“거둬라.”
“네~에! 회장앙니임 뜻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스탠리는 꺾쇠처럼 허리를 숙였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었다. 준과 굿데이는 스탠리 법률회사의 최고 고객이다.
어릿적 스탠리는 준을 괴롭혔다. 준이 앙심 품을 법도 했지만, 준은 되려 스탠리의 능력을 인정해주었다.
기사는 능력을 인정해주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
그러고 보니, 스탠리는 준이 단 한 번도 남 탓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남 탓’은 테스토스테론 계통의 본능이었다.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정신정화 능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은 남 탓하지 않는다. 만일 0.0001%라도 했다면, 지금의 준은 없었을 것이다.
준이 도서관을 향하자, 에워쌌던 군중이 ‘바다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경찰 사이렌이 들렸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도 주정뱅이는 얼어 있었다. 그는 영혼을 얼려버리는 냉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스탠리는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으세요. 제가 변호해드리겠습니다.”
스탠리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암흑 기술, ‘법의 빨대’를 발동했다.
‘굿데이의 수익금이 그렇게 힘들게 했다니, 네 뜻대로, 술 한 모금 마실 돈도 없는, 개거지로 만들어주마.’
*
선반에 놓인 물건들, 과자 초코릿 시리얼 빵 비스킷 쨈 ···.
전자 제품코너에는 영화관 사이즈의 TV 화면과 자동차보다 큰 냉장고와 세탁기가 있었고,
싱싱 코너에는 차가운 수증기가 끊임없이 피어났다.
토마토, 사과, 망고, 오크라, 상추, 양배추, 인디언 시금치 ···.
의류 코너에는 ···.
‘옷에 구김살이 없다니!’
쇼핑센터에 온 카이는 차원 이동한 것처럼, 충격이었다.
임모디피아에서 얼룩 없는 신발은 레어 아이템이었고,
상하지 않은 사과는 슈퍼 푸드였다.
흠집 없는 냉장고와 스마트 폰은 황금보다 귀했다.
그런 것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다니!
에바와 함께 바다를 봤을 때에도 이토록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골라.”
에바는 카이를 준에게 데려가기 전에, 거지꼴을 벗겨 내야 했다.
갑자기 카이가 몸을 날려서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왕창 집어냈다.
몸에 밴 거지 근성 - 먼저 줍는 자가 임자다!
“뭐해! 에바도 빨리 집어! 이런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야!”
카이의 눈은 반쯤 돌아가 있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온 그에게 쇼핑센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다.
신은 있다. 이 쇼핑센터가 그 증거다.
“카이, 어금니 꽉 물어. ‘처방’ 들어간다.”
우아한 아크사인 곡선을 그리며 싸다귀가 작렬했다. 그러나 카이는 움켜잡은 옷가지를 놓지 않았다.
‘증세가 심각하네. 보통 한 방이면 치료되는데.’
에바의 두 번째 처방이 이뤄졌다.
노바 파워 - 순간 타격 시, 밝은 신성이 보이는 강력한 싸다귀였다.
찰지게 짝 달라붙는 소리가 의류 코너를 흔들었다. 카이의 ‘거지 근성’은 코피가 되어 배출되었다. - 욕구해결.
“ ···. 고마워. 제가 잠시 ···.”
카이는 돌아간 입으로 웅얼거렸다.
“카이 필요한 것만 말해. 다 사줄 게.”
“7층 빼고 다 주세요.”
에바는 그냥 ···. 쇼핑센터를 샀다.
*
헤어 디자이너가 헤어 스타일을 잡아주고, 전문 때밀이 세 명이 카이의 묵은 때를 벗겨 냈다.
그들은 보았다. 인간의 몸에서 자전거 타이어가 빚어지는 것을.
카이는 갑자기 가벼워진 몸에 말없이 깜짝 놀랐고, 달라진 모습에는 소리를 쳤다.
“저게 누구예요?”
“너야.”
“아니에요. 저건 너무 ···. 깨끗하고 말끔해요.”
카이는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끝으로 거울을 만졌다.
카이는 볼테르 티셔츠를 벗었다.
“어색해서 못 입겠어요.”
그는 누더기 같은 옛날 옷을 찾았다.
“이거 받아.”
에바가 스마트 폰을 건넸다.
굿데이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물건이었다.
카이가 액정화면을 활성화하자, 준의 메시지가 나왔다.
메시지는 에바가 카이를 찾기 전에, 준이 미리 입력해둔 것이었다.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된 간단한 메시지였다.
‘적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