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빅-11 >
가디날 부하들이 시체를 가져왔다.
썩어 문드러지고 엄청난 악취를 풍겼지만,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머리까지 멀쩡하게 달린 시체였다.
치아 상태를 보면, 30대 초반이었다. 아랫배를 갈라보면 확실해지겠지만, 남자였다.
“새끼발가락에서 나왔어.”
‘새끼발가락’은 임모디피아 매립장 중에서 제일 작은 곳이었다.
반지와 시계 같은 귀금속은 ‘쓰레기 새’들이 탈탈 털어 갔고, 남은 건 곰팡이가 화창하게 핀 몸뚱이뿐이었다.
쓰레기 새는 매립장에서 ‘채집활동’을 하는 사람을 뜻했다.
“캐나다로 갈 물건이다.”
그들은 시체를 내려놓았다.
카이는 석회가루와 탈취제를 듬뿍 뿌리고, 군용 방독면을 썼다.
능숙하게 살과 근육 힘줄을 발라내고, 내장과 뇌도 긁어냈다.
고대 이집트 승려들이 미라를 만들 때 쓰던 방법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살 껍데기까지 벗겨 냈다는 점이었다.
임모디피아 매립장에 버려지는 시체들은 절단된 경우가 많았다. 고문의 흔적이었고, 뺑소니의 표시였다.
카이는 그런 시체를, 생존분석 용어를 빌어서, ‘절단자료’라고 불렀다.
오늘처럼 멀쩡한 시체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발라진 시체를 삶아서, 나머지 단백질과 지방을 떼어냈다. 가치가 있는 부분은 뼈대였다.
골격 표본은 개당 삼천 달러에 팔린다. 링거줄로 핏줄과 신경까지 표현하면 가격은 칠천 달러까지 올라간다.
골든 보이 - 카이.
매립장에 버려진 가전제품에서 금을 뽑아낸 소년.
임모디피아에서는 똑똑해봤자, 가디날의 도구에 불과했다. 누구든 그가 시키는 것을 해야 했다.
카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넘치는 재능 때문에 더 많은 일이 돌아왔다.
카이는 TV, 컴퓨터, 가전제품들도 수리했는데, 덕분에 임모디피아 어느 집이나 TV와 컴퓨터가 있었다.
게임기도 흔해졌다.
악취 나는 빈곤이 굳은살처럼 밴 곳이었지만, 이곳 아이들도 웃고, 소리치며 뛰어논다. 아이들에겐 모든 것이 놀이터였다.
카이가 그랬다.
다른 아이들처럼, 카이도 매립장을 사랑했다. 넘치는 쓰레기를 보며 황홀해했다.
쓰레기장의 랜덤 가능성이 그를 설레게 했다. 그곳에 가면 별것이 다 있다.
고장 난 스피커는 우주선이 되고, 빈 로션 통은 우주인이 된다. 자전거 타이어는 우주 중력이다.
아이들이 신는 블랙슈즈도 타이어로 만든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은 냉장고에 붙어 있는 강력한 자석이었다.
한 시간 동안 돌아가는 팽이를 만들었고, 스피커 원리로 멋진 소리를 내도록 했다.
‘노래하는 팽이’는 임모디피아 아이들의 놀이가 되었다.
카이가 정상적인 환경에 노출되었다면, 팽이 특허만으로 큰돈을 벌었으리라.
“띨! 척추 사이에 고무 넣지 말랬지!”
카이는 주먹으로 덩치 큰 남자의 옆구리를 툭 쳤다.
카이보다 세배 이상 나이 많은 남자였다.
남자는 껌을 삼키듯이 입을 쩝쩝거렸다.
“뼈에 얼룩 묻어! 아크릴이나 글라스 섬유를 끼우라고!”
“어떤 게 아크릴이고 어떤 게 고무인지 모르겠어.”
남자는 손에 든 고무의 냄새를 맡았다.
“뚱딴 짓 말고, 모르면 물어봐. 만져봐서 말랑하면 고무! 딱딱하면 리놀륨이나 아크릴! 골격 표본에 고무 쓰면 자세가 안 나와!”
“딱딱한 고무도 있던데 ···.”
“그럼 맛을 봐! 쓴맛은 고무야!”
“아!”
남자는 고무를 씹었다. 시커먼 맛 - 쓰다.
카이는 날이면 날마다 같은 잔소리 하는 게 지겨웠다.
가디날이 보낸 부하들이 카이를 도왔지만, 그들은 좀비만큼이나 머리가 나빴다.
가디날의 부하 중에서 아인슈타인급인데도 그랬다.
그들에게 일을 시키려면, 한눈팔 새가 없었다.
카이는 그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몽땅 싸잡아 ‘띨’이라고 했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놈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띨! 똑바로 해! 네가 잘해야 내가 나가 놀 수 있어!”
그랬다.
카이는 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설명하고,
봐주고,
도와주고,
알려주고,
고쳐주고,
혼내고 야단치고 화냈다.
그리고 지금은 ···. 포기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 잘못이 아니었다. 임모디피아에서는 똑똑하면 빨리 죽고 멍청할수록 오래 산다.
똑똑한 사람은 ···. 가디날에게 살해되거나 쓰레기 더미의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띨들이 만든 골격 표본은 벽에 달라붙은 도마뱀 모양이었다.
카이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마치 인류가 도마뱀에서 진화한 것 같았다. 몇 시간을 공들여서 겨우, 마네킹 자세로 다시 잡아냈다.
갈빗대 두 개에 난 흠은, 아이보리색 충전재로 채워넣었다. 남자의 사망원인은 칼로 심장을 찔렀기 때문이리라.
카이에겐 익숙한 흔적이었다. 그것은 가디날의 솜씨였다.
죽음의 쇠사슬 - 가디날.
가디날에겐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그에게 임모디피아를 다스리라고 했다.
임모디피아에 오는 성직자는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했다. 뜻있는 대학 동아리도 같은 꼴이 났다.
라이코스 정부는 임모디피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의료비와 교육비 같은 국가 재원을 쏟아붓는 대신, 지도에서 임모디피아를 지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쪽이 싸고 간편했다.
노 터치! - 가디날에겐 하늘이 내린 기회와 같았다.
정부 단체는 임모디피아에 손대지 않았고, 비정부 단체는 손댈 수도 없었다.
“사람에겐 50mL의 황금이 흐르지.”
50mL는 작은 갈색 병에 든 감기약 볼륨이었다.
가디날의 눈동자는 허공을 향했는데,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증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카이는 잠자코 있었다.
신의 목소리를 방해하는 자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똑똑한 사람이 빨리 죽는 첫째 이유였다.
“시체를 주겠다. 금을 모아라.”
가디날은 관대한 음색으로 말했다.
카이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임모디피아의 똑똑한 사람들이 빨리 죽는 둘째 이유는, 가디날의 터무니 없는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좀비들이 카이를 감시했다. 카이는 달아날 수도 없었고, 금을 만들 수도 없었다.
시체만 쌓였다.
‘조만간 내 시체도 저기 쌓이겠네.’
카이는 짝짓기는 하고 죽어야지, 하면서 또래 여자를 살폈다.
개중에는 작년 미스 임모디피아에 뽑힌 그라이스도 있었다.
임모디피아 주민들이 좌절과 절망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축제를 열었고, 파티하며 삶을 즐겼다. 그들도 같은 사람이었고, 환경만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그라이스는 수줍게 웃는 미소가 일품이었고, 위아래 왼쪽 오른쪽 모든 각도에서 다빈치의 황금 비율을 만족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카이는 깨달았다.
‘나는 연상 체질이구나.’
또래들이 눈에 차지 않았다.
그라이스마저 흥미롭지 않았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 아줌마에게 끌렸다.
작정하고 하려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었다.
다행히 펑퍼짐한 아줌마는 포함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예쁘고 잘빠져도 ···. 아줌마는 아줌마였다.
카이는 몰래 모아둔 밤알 크기의 황금을 꺼내봤다.
이정도면 ···. 충분하겠지. ‘내 아이를 낳아서 잘 키워달라고 해야지.’ 미안하다. 내 아이야. 아빠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네가 태어나고 아빠 나이가 될 즈음이면 가디날은 죽고 없어졌을 거야. 엄마 말 잘 듣고 ···. 카이는 진심으로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길 바랐다.
카이는 누구를 엄마로 정할까?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카이의 눈빛을 읽어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녀들은 카이를 피해 다녔다.
카이는 굶주린 늑대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렸고, 여자들은 동굴 속에 숨은 토끼처럼 딴청을 피웠다.
레이시 - 아줌마 중에서 그나마 젊고 건강한 여자였다. 여기서 건강하다는 뜻은 날씬하다는 의미.
의학적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뚱뚱한 건 병이었다. 카이의 서툰 기준에 따르면 그랬다.
“아이를 낳아줄 순 없어. 하지만 ···. 후회 없는 밤이 될 거야.”
그녀는 카이가 보여준 황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황금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카이는 ‘틈새’라고 부르는 그의 집에서 물건들을 정리했다.
유서를 써둘까? 했는데, 그만뒀다.
임모디피아에서는 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카이는 쓰레기장에서 주운 낱말 카드로 혼자 터득했다.
바닥에 있는 컴퓨터도, 낱말 카드처럼, 덤핑 사이트에서 찾아서 고친 물건이었다. 덤핑 사이트는 쓰레기장을 뜻했다.
모니터가 깜박거렸다.
누군가 보낸 메시지였다.
‘봐라.’
카이가 스크린을 터치하자, 오페라 같은 그래픽들이 휙휙 지나갔다. 카이는 홀린 듯이 그래픽에 몰입했다.
카이는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요빅을 보았삼.’
상대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요빅?’
‘쓰레기장에 사는 괴물임. 지렁이가 흙 파먹고 땅을 이롭게 하듯이, 요빅은 쓰레기를 먹고 그곳에 생명을 돌려줌. 나는 ···.’
카이는 놀란 고양이처럼 손가락을 쫙 폈다. 이렇게 하면 눈물을 참을 수 있다.
요빅이 되고 싶었다.
임모디피아에서 쓰레기는 생명이다.
요빅이라는 괴물이 정말 있다면, 임모디피아는 멋진 곳이 되었을 것이다. 가디날은 정신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을 테고 ...
카이는 이 세상에 요빅이 없다면 ···. 내가 요빅이 되겠어! 라고 생각했었다.
상대의 메시지가 떴다.
‘넌 요빅이 아니다.’
깜빡깜빡 깜빡 ···. 다른 메시지가 떴다.
‘···. 요빅에겐 네가 필요하다.’
‘미안. 도울 수 없삼. 설계도 보여줘서 고마웠삼. 빨리 특허 등록 하삼.’
카이는 통신을 종료하고, 밝아지는 거리를 내다봤다. 레이시와의 약속시각은 예전에 지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
시체 곱하기 50mL. 적어도 500g의 금을 만들어야 한다.
금은 물에 잘 녹지 않는다. 환산 단위로 mL가 아니라 g 단위를 써야 한다. mL는 부피단위였고, g 단위는 질량이다.
가디날이 금을 받으러 왔을 때, 카이는 몰래 모아두었던 황금을 내놨다.
“거봐! 신의 목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가디날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카이도 진심으로 생각했다. - ‘좋으냐. 가엾은 새끼.’
쓰레기 더미에서 금을 추출할 게 아니라, 정신병약을 만들었어야 했다.
“내일도 기대하겠어!”
가디날은 시체들을 내던졌다.
카이에겐 숨겨 놓은 금이 더는 없다. ‘이제 내일 죽으리.’
*
“어제 왜 안 왔니?”
레이시의 얼굴은 평소와 좀 달랐다.
입술이 더 붉어지고, 뺨도 밝아지고, 눈도 커진 거 같고 ···. 그리고 잠을 설친 거 같았다.
“미안해요. 레이시 아줌마. 이제 금이 없어요.”
“아줌마라고 하지 마. 누나라고 해봐. 그러면 그냥 한 번 줄게.”
레이시의 웃음은 은밀하고 화려했다.
*
가디날은 누런 눈알을 굴리며 손님을 쳐다보았다. ‘거래’ 때문에 그를 찾아오는 손님은 종종 있었지만, 여자는 처음이었다.
신의 목소리는 명확하고 강력했다.
지금껏 들었던 그 어떤 목소리보다 울림이 컸다. 신의 표정과 입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저년을 죽여라!’
‘저년을 죽여라!’
‘저년을 죽여라!’
가디날 앞에는 에바가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