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 준-35화 (34/141)

< 요빅-10 >

로켈은 벼락 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디아나와 토크는 죄인처럼 조아렸다.

“소란을 피웠다고? 그래서 준짱이 프란츠와 말을 섞고? 오오!”

악몽이었다.

디아나를 믿고 ‘천문대 시체 사건’에 신경 썼던 것이 화근이었다.

시체도 치우고 범인도 잡고, 주변 청소까지 끝냈는데, 그 사이에 준짱을 불편하게 하다니! 디아나에게 묻고 싶었다.

‘왜 사니?’

그녀에게 맡기지 말았어야 했다.

디아나는 훌륭한 그림자 기사였지만, 모성애가 너무 강하다.

준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나서지 말아야 할 타이밍에 설친 것이리라.

“규율에 따라 정화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네?”

“너의 행동은 그림자 기사의 것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깊이 뉘우치고 ···.”

로켈이 그녀 말을 잘랐다.

“너는 굿데이 직원이다! 직분을 행한 것이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강조했다.

“알겠느냐!”

“아! 그렇습니다. 늦게 알아서 죄송합니다. 한 가지 더 ···.”

바둑이를 잃었다고? 태풍 같은 두통이 밀려왔다.

“준짱이 프란츠를 가만뒀어?”

로켈은 믿을 수 없었다.

준짱의 정신세계가 가속 팽창 우주였지만, 적에게 넘어간 바둑이를 내버려두다니!

도서관에 가는 게 세이턴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아니면 ···. 내가 나서길 바라시는 건가? 부하 교육을 겸해서? 연습문제 3번 뭐 이런 건가?

로켈은 지금 당장 프란츠의 본거지에 쳐들어가서, 세이턴을 구할 작심이었다.

고민은 오직 하나, 세이턴을 구하면서 프란츠를 지울까? 말까?

뿌우우웅!

뱃고동 같은 웅장한 경적 소리가 났다. 길가에 고급진 리무진이 멈췄다.

리무진의 이름은 ‘아르크스’, 라틴어로 요새라는 뜻이었다. 장갑차처럼 튼튼하고, 경주용 차량에 버금가는 기동능력을 자랑하는 괴물 ···. 고귀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리무진의 성배였다.

운전사가 골프 모자 같은 드라이빙 모자를 벗었다.

“준 회장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로켈의 시선을 끈 것은 VIP에 앉아 있는 ‘바둑이’었다.

‘세이턴 무사했구나.’

그렇군! 준짱은 알았던 거야!

프란츠에게 시간을 주면, 세이턴도 돌려받고 덤으로 아르크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로켈이 문을 열자, 세이턴이 나와서 로켈의 얼굴을 흠뻑 핥았다.

로션 같은 침이 잔뜩 묻었지만, 로켈은 기뻤다.

그는 까치발로 몸을 늘려서, 세이턴의 머리를 쓰다듬고 디아나와 토그를 바라보고, 아르크스를 만졌다.

쓰다듬고, 바라보고, 만지다. 에로틱한 흐름이었다.

“좋은 물건이다. 너희 공이 크다.”

디아나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 “감사합니다.”

세이턴이 꼬리를 치며 짧게 - 멍!

토크는 긴 호흡으로 - “좋을 땐 ···. 피이~자.”

그들은 아르크스를 타고 피자집으로 향했다.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오니, 서비스가 좋았다.

*

오로토칸은 황금으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송아지를 낳은 암소에게 짠 우유로 채우고 데운 목욕물이었다. 진한 밀크 향이 진동했다.

목욕물에 넣은 박하와 올리브 잎이 풍미를 더 했다. 몸에 나는 잡내를 지우는데, 우유 목욕이 최고였다.

목욕을 끝내고, 건강한 20대 혈액에서 분리한 혈청 주사를 맞았다.

모기 침보다 가는 바늘 수천 개가 통증 없이 약물을 전달했다.

청춘 혈청 주사를 맞은 후로 점점 젊어졌다. 60대 후반인 오로토칸은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현대 의학이 젊음의 샘물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쓸만했다. 그러나 오로토칸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 황금처럼 변하지 않는, 영생 - 영원한 생명을 원했다.

“영생의학 팀이 프로토타입에 성공했습니다.”

닥터는 마이크로니들을 정리했다.

밀크 목욕과 진피층에 스며든 혈청으로, 오로토칸의 피부는 탱탱하다 못해 팽팽했다. 신대륙을 향하던 범선의 돛처럼.

“추악한 영생은 안 돼. 저 모습에 부끄럽지 않아야 해.”

오로토칸이 가리킨 곳에는 황금으로 조각된 동상이 있었다.

황금을 기초 물질로 3D 프린터로 찍어낸 오로토칸의 젊은 모습이었다.

눈썹 하나 숨구멍 하나까지 완벽하게 재현된 형상이었다.

오로토칸은 빼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황금으로 빚어낸 그의 모습은 고귀하고 성스러웠다.

오로토칸은 그것을 ‘황금 효과’라 했다. 누구든 황금을 가진 자는 위대하다.

황금으로 만들면 지렁이도 용이 된다.

바다 끝에서 짐꾸러미 같은 구름이 다가왔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징조였다.

*

오로토칸은 돼지 뒷다리 햄을 얇게 썰어 멜론에 싸서 먹었다. 그는 스페인식 식사를 즐겼다.

뒷다리 햄, 하몽의 품질도 중요했지만, 멜론의 숙성도가 맛의 포인트였다.

가스파초 - 싱싱한 토마토와 각종 채소로 차갑게 만든 스프.

뽈가르 - 치즈와 땅콩 그리고 말린 베리를 넣어 만든 스페인식 주먹밥.

모두 리베아티 섬에 어울리는 음식들이었다.

잘 구워진 옥수수 한 알을 먹었다.

폴렉스 옥수수 낱알은 엄지만큼 컸다. 요리사는 구운 소금과 간장으로 맛을 냈다.

오로토칸은 폴렉스를 영양제처럼 챙겨 먹었는데, 황금 빛깔이 맘에 들어서였다.

그가 식사를 마칠 즈음에 새로운 소식이 곁들어졌다.

“샤나이슈카 채굴권을 따냈습니다.”

“서둘러라. 탈로스의 고통을 빨리 채워야 한다.”

탈로스의 고통은 섬 서쪽에 있는 동굴이자, 비밀 금고였다.

세상이 가진 금보다 더 많은 금을 가진 오로토칸이었지만, 그는 항상 배고팠다.

탈로스의 고통이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적 전설에 따르면 탈로스의 고통이 가득 차는 날, 세상이 뒤엎어진다.

일곱 자매는 그 전설을 믿었고, 오로토칸에게 탈로스의 고통을 가득 채우는 일을 맡겼다.

*

탈피 - 준은 굿데이 사무실을 골프공으로 옮겼다.

호세의 아쿠타미 부대와 로켈의 그림자 기사단이 이삿짐을 날랐다.

그들은 직접 페인트칠하고,

낡은 문을 새로 달고,

창문을 바꾸고,

바닥도 다시 깔았다.

보안장치를 세우고 침입자를 맞이할 함정도 세팅했다.

준의 예언대로 아쿠타미 부대는 타고난 노가다꾼이었다. 정글에서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해결해야 한다.

맨손으로 불을 피우려고 몇 시간 동안 대나무를 비벼대야 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살갗이 벗겨진다.

해가 지기 전, 5분 안에 그날 잠잘 임시 숙소를 만들어야 한다.

적을 추적하면서 먹을 것을 사냥해야 했다.

그들은 생존형

목수,

사냥꾼,

어부,

약초 전문가,

짐꾼,

일꾼,

기타 등등이었다.

지옥 생태계에서 유진 악마가 나왔다면, 아마존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아쿠타미라는 훌륭한 노가다꾼이 완성되었다.

노가다 2호와 3호가 DNA 컴퓨터를 가뿐하게 옮기는 것을 본, 로켈은 감탄했다.

‘놀랍군!’

전쟁터에서 온갖 것을 경험했지만, 아쿠타미처럼 일 잘하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아마존 군대개미도 저들만큼 해내진 못할 것이다.

아쿠타미 부대는 진정 즐겁게 일했다. 아마존 생활에 비하면 거저먹기였고 ···.

‘목숨을 구해준 것도 고마운데, 엄청난 연봉까지.’

호세는 솟구치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가락 마디를 깨물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부대원들이 골프공 뒤쪽에서 엉엉 울다가 오는 것을.

부대원들도 꿈 같은 현실이 북받친 것이다.

비록 샤나이슈카를 지키진 못했지만, 사는 건 좋아졌다. 그리고 그들은 믿었다.

준이라면 채굴권을 따내지 못했어도, 엄청난 마법으로 아마존을 지켜 줄 것이라고.

무책임한 믿음이었지만, 그 믿음이 그들을 편안하게 했다.

세이턴은 산으로 둘러싸인 골프공이 맘에 들었고, 할 도리를 다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오줌을 찔끔찔끔 흘렸다.

제정신을 가진 야생동물이라면, 하얀 악마의 지린내가 나는 곳을 넘보지 않을 것이다.

에바는 굿데이의 새로운 둥지가 불륜 악어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킹스덤 강 상류에 있는 그 창고는 개조 작업을 거쳐서, 거대한 3D 프린터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리처드는 이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불카누스 1호가 된, 창고형 3D 프린터 개발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사용되었다.

120층 빌딩을 세우고도 남을 비용이었다.

준은 프린터를 설계하느라,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들 만큼 밤새웠다.

삐쩍 곯은 준을 본, 여학생들은 아픈 가슴을 숨길 수가 없었다.

비난의 화살은 굿데이의 넘버 2. 에바에게 향했다.

‘저년이 밤마다 준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에바는 그런 오해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자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것이 기회였다.

에바는 그 기회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여자를 꾀었다.

‘준이 좋아하는 걸 알려줄 게.’

이렇게 말하면 십중팔구 다 넘어왔다.

이 세상 여자는 에바의 것이었다.

*

유진 악마는 준에게 시험지를 내밀었다.

“아이큐 테스트 시험입니다.”

유진 악마는 준의 자료에서 아이큐가 75라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능이 발현되기 전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이제는 제대로 된 아이큐 점수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지금의 준이라면 인류 최강의 아이큐 점수가 나올 것이다.

“귀찮다.”

“귀찮아도 해야 합니다. 아이큐가 75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별 거지 같은 놈들이 다 와서 찝쩍거릴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귀찮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

준은 연필을 잡고 아이큐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유진 악마가 점수를 매겼다.

결과는 ···. 75.

유진 악마는 그녀의 논리 회로가 타버렸거나, 연산 오작동이 일어난 줄 알고, 자기진단을 반복했다.

진단 결과 정상.

준의 아이큐 점수 75는 불변이었다.

“왜 3번 문제의 답을 3번으로 하셨죠? 정답은 1번입니다만 ···.”

3번 문제는 언어영역이었다.

‘보트와 물의 관계는 비행기와 X의 관계이다.’

‘1번 하늘, 3번 태양.’

준은 뻔한 1번 정답을 두고, 3번으로 체크 했다.

“물은 응집력이 있지. 그래서 무중력 공간에서 공처럼 뭉친다. 그러나 하늘은 응집력이 없다. 그래서 그나마 응집력을 가진 태양으로 정했다. 정확한 대응관계를 가진 낱말은 ‘공기’였지만, 보기에 없다. 하늘은 물처럼 물질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넓은 의미로 우주를 뜻하는 중의적인 단어이다. 차라리 비행기가 아니라 우주선이었다면, 하늘을 골랐겠지.”

“아!”

유진 악마의 홀로그램 동공이 확장됐다. 새로운 연산 알고리즘을 뚫은 느낌이었다.

25번 문제는 수리영역이었다.

“그것도 좋은 문제가 아니다.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 듀아멜 공간에서는 오직 4번만이 정답이다.”

유진 악마는 비로소 아이큐 75의 정체를 알았다.

“유진.”

“네.”

“시작하자.”

준은 에어스크린으로 주위를 둘러치고 무언가를 설계했다. 유진 악마는 긴장했다.

1.5 솔라 연산 능력의 그녀였지만, 지난번 3D 프린터를 설계할 때, 1시간마다 일곱 번씩 좌절했다.

준은 동시에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명령했는데, 유진 악마가 볼 때에는 불가능한 모듈이었다.

그때마다 유진 악마는 브레이크 걸었고, 준은 한숨을 내쉬고, 유진 악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준은 항상 옳았다.

유진 악마의 시뮬레이션 능력과 데이터 조합 능력이 준을 따르지 못한 것이었다.

준은 좌절한 유진 악마를 위로했다.

“괜찮다. 그 정도면 계산기보다 낫다.”

계산기보다 낫다. 계산기보다 낫다. 계산기보다 낫다. 계산기보다 낫다.

유진 악마의 논리회로가 빨갛게 달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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